제 243화
243화 – 프로라고 봐주진 않는다
#1
순식간에 일어난 격돌.
적들은 봐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 프로 중에서도 프로라서일까, A팀 선수들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들 캐릭터는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띠었다.
“오, 갑자기 연습인가요?”
“좋아! 가자!”
드레젠 역시 검을 꺼냈다.
그가 고른 캐릭터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화염 속성의 전사 클래스.
스킬 셋도 가장 평범한, 그야말로 초심자를 위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 캐릭터야말로, 그의 실력을 온전히 뽐낼 수 있었다.
“저도 가세하죠.”
-크으 pvp는 오랜만이넼ㅋㅋㅋ
-언제 한 번 랭겜 가즈아!
-올스타전 끝나면 랭겜 생긴다던뎈ㅋㅋ
-지옥이 펼쳐지겠넼ㅋㅋ
프로는 프로였다.
실력 상승이 빨리 이뤄진 프로리그는, 순수 검술로만 본다면 마스터에 필적했다.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한국인다웠다
어쨌든, 드레젠은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선수들의 실력을 평가했다.
‘확실히 군더더기가 없군. 안 좋은 습관들을 많이 빼려고 노력한 게 보여.’
그는 단순히 눈으로만 선수들을 평가하지 않았다.
캐릭터를 다루는 습관, 검을 휘두를 때의 호흡, 마나를 어떻게 응집시키고, 벼려내는가.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다.
스텝은? 힘의 배분은? 시선 처리는?
그 모든 정보가 드레젠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몸을 풀고, 가볍게 평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이건 A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 올린다고 했으니,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지적당하면 처음엔 어색하고 바꾸기 어렵겠지.
하지만 어색함을 극복하고 난다면, 훨씬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라이트닝 배쉬]
콰지직-!
번개속성 – 용병 클래스를 주로 쓰는 아트가 전장을 화려하게 휘저었다.
화염 속성 마법사인 다이노가 화려하게 화염 마법을 퍼부었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스킬은 정말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같은 스킬이라도 마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위력과 연출이 천차만별이었다.
“라이트닝 배쉬를 저런 식으로 쓰는군요. 본래 터뜨리면서 한 방에 대미지를 가하는 스킬이지만, 몸에 축적한 뒤, 에너지를 꺼내 쓸 수도 있죠.”
아트 선수는 하나의 스킬을 가지고 연구하고, 뜯어보는 것이 취미였다.
같은 캐릭터라도 운용 방법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는 엄청난 무기로 변했다.
“라이트닝 배쉬! 또 온다!”
“마크해!”
프로 선수들이 아트의 경로를 모두 봉쇄하듯 움직였다.
빙벽이 올라오고, 거대한 방패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아트 선수는 이미 심리전까지 완벽한 선수였다.
[라이트닝 배쉬!]
콰아아앙-!
이번엔 정석대로 사용, 일대를 모조리 날려버렸다.
물론 상대편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콰드드드-!
주변으로 빙벽이 올라오며 폭발의 여파를 줄였다.
“흥! 내가 맨날 너랑 연습하는데, 이 정도도 예상 못 하면 안 되지.”
“어우, 형 살살해요.”
하이츠의 얼음 마법사, 스프링 선수였다.
본래 물 속성이었지만, 그가 특별히 연구해 만든 빙계 마법들.
오직 스프링 선수만이 다룰 수 있는, 정말 특별한 마법이었다.
“반격한다!”
“오케-!”
프로들은 봐주는 법이 없었다.
단순한 연습 경기였지만, 웬만한 프로 리그 경기보다 훨씬 열기가 뜨거웠다.
그래서일까, 현재 드레젠의 방송은 그야말로 미어터지기 직전이었다.
#2
“사장님. 드레젠 님 때문에 서버를 또 증설해야 할 것 같은데요?”
“……중계방은?”
“거기도 터지려고 합니다.”
아마존TV의 사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중계방이 무려 2개나 있음에도 꽉꽉 미어터지는 상황.
전 세계에서 몰리다 보니, 방송의 딜레이까지 생기는 상황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다른 스트리머들에게 부탁하는 건 어떨까?”
“엥? 그거 되게 위험한 발언인데요.”
“수익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하꼬 위주로 해 보자고. 어때?”
절충안이었다.
이미 자신만의 콘크리트 팬을 형성한 스트리머들은 달갑지 않은 제안이겠지만, 아직 성장세인 스트리머들은 달랐으니까.
드레젠은 전 세계 1위 스트리머였다.
이 주 만에 몇천만 원을 땡겨버린, 그야말로 준재벌급 스트리머.
“1부 방송이 끝나면, 연락 쫙 돌려.”
“네. 알겠습니다.”
일명, 중계 스트리머의 시작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시청자들을 감당하기 위한 방법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3
“후우, 겨우 이겼네.”
“으아, 힘들다.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습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여러분의 진짜 버릇이 나오는 법이거든요.”
드레젠이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모든 것이 짜였다.
감독들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소속 선수들을 키워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먼저 아트 선수부터 피드백 들어갈게요.”
“네.”
“전체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밸런스가 꽉 잡혀 있어서, 왜 최고의 선수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트 선수가 멋쩍게 웃었다.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여지없이 지적은 날아들었다.
“하지만 마나를 너무 펑펑 써요. 그래서 대미지를 줄인 대신, 마나 회복력이 붙어 있는 캐릭터를 골랐겠죠. 맞아요?”
“아, 네. 맞습니다.”
“그 부분을 꼭 다듬어야 합니다. 제 마나 게이지를 보세요. 이게 일반적으로 스킬을 썼을 때.”
기본적인 스킬을 쓰자, 마나가 쭉 빠져나가며 지면이 터져 나갔다.
아무 보정도 없는, 순수하게 스킬만 사용했을 때였다.
약 3분의 1 정도가 날아가 버린 마나 게이지.
드레젠은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정확히 500이 달았습니다. 이번에는 똑같은 스킬을 써 볼게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세 번이나 터져 나가는 지면.
선수들이 입을 떡 벌렸다.
똑같이 500이라는 마나를 사용했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대박.”
“이런 식으로, 더 많은 대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같은 위력이라면-.”
퍼엉-!
이번엔 마나 소비량이 200으로 뚝 떨어졌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미묘한 마나 컨트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결정짓는 차이였다.
“마나 소비량을 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정신이 없을 테지만, 팀원을 믿고 컨트롤에 조금 더 집중하세요.”
“네!”
다음은 다이노였다.
그녀가 꿀꺽, 침을 삼켰다.
1대1로는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가진 아트 선수.
프로리그 최강자도 피해갈 수 없는 신랄한 비판이었다.
자신은 과연 어떨까?
“다이노 선수 역시 마법사, 화염계라는 장점을 잘 살리고 있어요. 뛰어난 마나 운용과 적재적소에 떨어지는 마법. 아주 훌륭합니다.”
역시 처음엔 칭찬으로 시작하는 드레젠.
다이노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어지는 비판엔 여지없이 입술을 깨물어야 했지만.
“사소한 루틴이 있는데, 자신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마법 한 번 캐스팅 해 볼래요?”
“아, 네.”
그녀가 캐스팅을 시작했다.
하나-.
둘-.
화륵-, 불꽃이 일 때, 드레젠이 돌멩이 하나를 던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캐스팅이 깨져버렸다.
“-어라?”
“마법사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납니다. 사소한 습관 하나가 이런 결과를 만들죠. 다이노 선수는 캐스팅할 때, 무의식적으로 주문을 입술로 오물거리는 버릇이 있어요.”
“아-.”
정말 사소한 문제였다.
치열한 경기 중에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의 문제.
하지만 돌멩이 하나로 결과가 달라져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제 사소하지 않아진 것이다.
“마법사는 이렇게-.”
화륵-.
드레젠의 손에서 불꽃이 일었다.
정식 경기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자유 연습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주문을 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고의 분리 비슷한 건데…… 깊게는 들어가지 않을게요. 이건 방송 끄고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와아……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약점을 지적해주고, 해결 방법도 마련해 줬다.
선수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나름대로 상위 1%만 모아둔 곳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드레젠 앞에 서니 아마추어가 된 기분이었다.
“아, 물론 여러분이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아셨죠? 그래도 프로잖아요. 일반인들보단 훨씬 잘 하니까 약점만 보완하면 될 겁니다.”
네에-!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을 붙잡았다.
황금색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았다.
드레젠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마지막 말을 했다.
“전사도 마법사처럼, 마법사도 전사처럼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캐릭터 본연의 약점을 상쇄할 수 있어요.”
훗날 프로라면 꼭 지켜야 하는 덕목으로 꼽히는 명언의 탄생이었다.
#4
한편 외국에선, 드레젠의 방송을 보고 반응들이 터졌다.
해외 레딧에 올라온 한 글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드레젠. 그는 지금 우리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굳이 방송에서 저런 콘텐츠를 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봤을 땐, 그는 전 세계 프로들이 못마땅한 거야. 그래서 대놓고 지적하는 거고. 그는 더 수준 높은 경기력을 원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지. 평소 그가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봐.
-동의한다.
-일반인이 프로를? 너무 비약적인 거 아닌가?
└그 일반인이 프로를 가르치는 코치야.
└아 그래? 실례했군.
-일본을 박살 내는 것도 기대되지만, 가브리엘이랑 붙는 것도 기대된다.
댓글들이 주르륵 달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프로 선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드레젠의 방송을 보고 난 후기를 SNS 등에 올렸다.
“마에, 이거 봐.”
“아, 나도 봤어. 고마워.”
그 레딧은 일본 팀들도 읽었다.
사나다 마에는 VPN을 사용, 아예 방송까지 보는 중이었다.
치열한 경기 끝에 평가하는 모습은, 일본 코치들과는 차원이 다른 디테일을 보여줬다.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길 수 있을까.’
기존 한국 프로팀은 세계에서도 수준이 다르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거기다 드레젠의 코칭까지 더해진다면, 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훈련, 훈련을 해야 해.’
마에는 드레젠의 시야를 가지고 싶었다.
그가 가진 시야를 본인도 가질 수 있다면, 팀원들을 더 강하게 이끌 수 있겠지.
그래서일까, 그녀의 시선은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드레젠의 시야는, 결코 일반인이 따라 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무척이나 불공평한 일이었지만, 드레젠과 그녀는 이미 도달한 경지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