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2화
242화 – 누구나 사연은 있다
#1
다음날.
강일은 미리 만나기로 한 카페로 향했다.
하이디엔은 오늘부터 해외에서 대회 일정 등을 조율하고 추진하기 위한 출장에 나섰다.
감히 그녀를 건들 사람은 없었기에, 강일은 간단한 안부만 전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옆 동네 다니듯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엘프였으니까.
‘여긴가.’
택시를 타고 꽉 막힌 도로를 겨우 뚫었다.
슬슬 차를 사는 게 어떻겠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싹 지워버릴 수 있었다.
차라리 택시를 타고 편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교통 체증이었다.
“어! 드레젠 님!”
“여깁니다, 여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청담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일로 미팅을 하는 사람, 여유를 부리는 사람,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등등-.
그들 모두, ‘드레젠’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가 팩 돌아갔다.
정작 당사자는 주변엔 신경 쓰지 않고 여유 있게 걸음을 옮겼다.
“감독님, 그렇게 크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민폐에요 민폐.”
“아, 그, 그런가? 죄송합니다.”
프로팀 감독, 그리고 구단주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본래라면 회의실을 마련해야겠지만, 누군가의 강력한 주장으로 카페로 장소를 잡았다.
이현성 역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다들 반갑습니다. 최강일입니다.”
“덕분에 하이츠가 승승장구하고 있다죠? 부럽습니다. 정말.”
경쟁 관계인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한뜻으로 뭉쳤다.
바로 전 세계에 한국 게이머의 위상을 알리려는 것.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에서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놓치지 않던 대한민국이었다.
그들은 시스템을 분석하고, 치밀한 전략과 우월한 피지컬로 세계에 우뚝 섰다.
“다른 선수들도 이 기회에 좋은 훈련 기회가 되겠죠.”
강일이 넌지시 운을 띄웠다.
감독들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돈 주고도 못 받는다는 드레젠의 강의.
하이츠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모두 그의 덕이었다.
업계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렇겠죠? 좋은 선수들을 내보내야겠네요.”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어제 방송은 잘 봤습니다. 코치님.”
“제가 뽑은 건 어디까지나 가상 캐스팅입니다. 전 최대한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만.”
감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 강일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노는 선수가 없게 하는 것.
그것이 강팀을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 요소였으니까.
프로의 세계는 냉정했다.
“그렇지요. 조금만 기량이 떨어져도 대중들은 득달같이 달려드니까.”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극성입니까. 선수들 멘탈 케어 하는 것도 정말 힘들어요.”
그러니 돌려가며 써야 한다는 것.
전체적인 팀원의 상향 평준화는 꼭 이뤄내야 했다.
모든 감독이 원하는 궁극적인 방향이기도 했다.
조합도 다양하게 짤 수 있으니, 파훼도 쉽지 않겠지.
“제 생각인데, 최대한 많은 인원이 연습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용성의 감독이 말했다.
그의 방향성이 궁금했다.
“선수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겁니다. 빽을 쓰려는 자들도 있겠죠. 하지만 상대는 일본입니다.”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그래서요?”
상대는 일본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만큼 감정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단어가 있을까?
그 말에, 모든 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양궁 협회 아시죠? 그것처럼 선의의 경쟁을 하게 만드는 거죠.”
“괜찮은데요?”
“하지만 그래서는 잠재력을 다 발휘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가만히 듣고 있던 강일이 손을 들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 리그의 수준을 확 끌어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여러 팀에 제가 껴서, 다 같이 연습을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은-?”
“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팀원들을 바꿔 연습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각성하는 이들이 분명 나올 겁니다.”
감독들이 눈을 빛냈다.
서로 합의만 잘 한다면, 충분히 괜찮은 방법이었다.
문제는 드레젠 본인의 피로도였는데, 인간이 할 스케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건강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방송도 강행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분간 방송 콘텐츠를 뽑으면서 선수들도 가르친다면 주목도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레젠은 자신의 생각을 이어서 말했다.
“제 방송 시청자들에게 선수들을 두루두루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있겠죠.”
감독들의 눈이 조금씩 빛났다.
짜악-!
박수를 치는 감독도 있었다.
“그러네요! 홍보도 할 겸, 선수들 얼굴도 좀 비추고!”
“우리가 너무 이용만 하는 그림으로 비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드레젠은 정말 공평하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경기는 꾸준히 시청하고 있었다.
누가 어떤 심정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대충 눈에 보였다.
자신도 수많은 이들과 직접 검을 맞대봤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어디 가서 맛있는 거나 먹읍시다.”
“그럴까요? 이 근처는 다 예약을 해야 해서…….”
이현성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예약해 둔 곳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역시 준비성 하나는 철저했다.
감독들이 우르르 일어나며 기뻐했다.
강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문득, 감독 한 명이 넌지시 물었다.
“그, 코치님.”
“네?”
그는 획획, 주변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일은 그의 물음을 듣고, 꽤나 놀랐다.
“하이디엔 대표님과 사귀시는 거, 진짜예요?”
“오, 어떻게 아셨어요?”
“지, 진짜요!?”
“네. 딱히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조용히 만나고 있었습니다.”
와아-.
감독이 조용히 감탄했다.
브락시아의 대표와 사귀는 사이라니.
솔직히 다 때려치우고 놀아도 될 정도의 재력 아닌가?
“진짜 대단하네요.”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긴 했습니다. 그녀가 멋대로 밝히면 화를 좀 낼 겁니다.”
“그, 그렇겠죠?”
감독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돈은 모두 브락시아 때문에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락시아 대표에게 찍히면 어떤 일을 당할지 누가 알까?
보호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뭐, 조만간 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하하, 어쨌든 축하합니다.”
강일은 피식 웃고 걸음을 빨리 했다.
이미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고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그와 그녀가 딱히 숨긴 것은 아니었으니까.
‘같이 현실 합방이라도 해야겠는데.’
이제 방송인이 다 된 강일이였다.
#2
그날 오후.
방송을 킨 드레젠이 한 가지 공지를 했다.
1부 방송은 올스타전 준비, 2부 방송은 본래 진행하던 스토리 진행이었다.
3부를 편성하긴 했지만, 그 시간이 2시간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공지는 다들 읽어 주셨나요?”
-ㄷㅎ
-ㄷㅎ!
-선생님 드디어 팀 꾸리는 겁니까?
-회의하고 오셨나요????
-궁금해궁금해궁금해!
역시나 채팅창은 폭파 직전이었다.
요즘 가장 핫한 주제답게, 드레젠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사람들은 드레젠에게서 공식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잠시 뜸을 들인 드레젠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 결과는 썩 만족스러웠습니다.”
-뭔데요?
-팀 다 짰어요?
-사람들 다 찼습니까!?
드레젠은 선선히 웃었다.
얼마나 궁금할까?
그들이 짓고 있을 표정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잠시 뜸을 들이며 장난을 쳤다.
이제 그는 제법 많이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짱이야!’님 5,000코인 후원!]
[알려줘요알려줘요알려줘요]
후원이 우수수 쏟아졌다.
드레젠은 후원이 모두 끝난 후, 본론을 꺼냈다.
“팀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볼거리는 많이 마련해 왔죠. 모든 선수들과 한 번씩 합을 맞춰볼 겁니다. 계속 그렇게 연습할 거고요.”
-?
-??
-선생님 몸 두 개임?
-분신술 쓰시나
-ㅋㅋㅋ엌ㅋㅋㅋㅋ
당연히 물음표들이 난무했다.
게임도 심신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체력 관리는 필수 요소였고.
특히 상대방과 PVP를 하는 장르의 특성상, 그 피로도는 배가 되었다.
그런데 모든 선수들과 합을 맞춘다니.
“모든 선수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분명 생각보다 잘 풀리는 선수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을 거거든요.”
-오
-근데 실전에서 강한 타입이 아니라면?
-엌ㅋㅋ검증된 사람들만 가져가도 될 것 같은데;;
-맞아 좀 무리수 아니에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최고의 팀을 꾸려 연습할 시간도 빠듯할 터.
그런데 다른 선수들의 기량까지 걱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드레젠이라, 뭐든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의 한 마디는 꽤 파급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태도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무엇이든 해결하는 남자.
그것이 바로 드레젠이었으니까.
“그러면, 첫 번째 팀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팀은 드레젠이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팀이었다.
사실상 이들과 일본전을 치를 가능성이 제일 많은 드림팀이었다.
소속 선수는 하이츠의 아트, ST의 조인성, 용성의 최종원을 비롯한 팀 내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는 여덟 명이었다.
“오늘은 이 A팀과 연습 경기를 진행하고, 스토리를 이어서 진행할 겁니다. 오늘 올린 공지에 시간표가 나와 있으니,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표는 일본전이 끝날 때까지 유지될 예정이었다.
선수들은 미리 대기하는 중이었다.
지금 드레젠의 방송은 무려 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응집해 있었다.
게임을 잘 모르는 40대, 50대 아저씨들도 홀린 듯이 이끌려 보기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드레젠 님!”
“와……실제로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선생님!”
드레젠이 세션에 들어가자마자 격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들에게 드레젠은 꿈이자, 목표였다.
그와 함께 게임을 하고 싶어 프로에 지망한 선수도 있을 정도였다.
드레젠은 선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습 상대는 B팀입니다.”
곧이어, 같은 세션에 여덟 명의 선수가 등장했다.
하나같이 쟁쟁한 선수들이었다.
게다가 저쪽 조합도 완벽에 가까웠다.
다른 팀에서 장점만 모아 이상적인 팀을 꾸렸다.
그것이, 이번 스크림의 상대였다.
“지금부터 연습 게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드레젠이 웃었다.
선수들이 당황할 새도 없었다.
B팀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돌격해왔기 때문이었다.
드레젠의 훈련 : 지옥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