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8화
238화 – 드디어 만난 간부
#1
분명 자신의 통제를 받고 있었던 실험체들이었다.
항상 본인이 주던 고통을 받으며, 베리드를 위해 헌신하던 생명체들이었는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고통을 참았던 실험체들이, 이제는 베리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으니까.
하이브가 아무리 많아도, 이 시설에 있는 실험체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본대. 지원 바람]
[간부 하나를 속히 파견하길 바란다.]
고통의 정신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간부.
베리드를 이끄는 자들 중 한 명을 뜻했다.
그들의 이름은 ‘화신’으로 끝나는 자들이었는데, 하나하나가 홀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간부가 온다고? 그럼 화신체들이 온다는 건데.’
드레젠이 아비규환이 되어 있는 전장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겼다.
아니, 어쩌면 여기서 상대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
지금 그의 상태로 화신들을 상대하는 건 다소 어려웠으나,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가능했다.
[우어어어어어-!]
오거를 필두로 쏟아져 들어오는 실험체들.
하이브들이 그들을 막았으나, 니오베의 든든한 버프 때문인지 잘 죽지도 않았다.
게다가, 죽어도 계속해서 일으켜 세우는 니오베 때문에, 하이브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뿐인가.
“쇳덩이를 자르는 맛이 있군! 예전엔 이런 놈들이 없었는데 말이야.”
콰르르륵-!
백염으로 하이브의 동체를 지진 샤크스가 고통의 정신을 향해 도약했다.
공중에 있는 샤크스를 향해 수많은 공격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드래곤.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고열의 빔을 모두 쳐냈다.
“덩치가 큰 만큼, 장갑도 단단하겠지-!”
콰드드득-!
그가 검을 내리치자, 고통의 정신이 방어 프로토콜을 발동시켰다.
시간 장막이 그를 둘러싸고 모든 공격을 느리게 만들었다.
샤크스의 눈이 빛났다.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휘젓자, 시간 방어막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따위 방벽을 마법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고통의 정신이 당황한 듯, 붉은 눈동자를 점멸했다.
그들은 드래곤도 상대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으나, 그들의 진짜 능력을 제대로 분석하기엔 시간이 일렀다.
고통의 정신이 반응할 새도 없이, 샤크스의 검이 정신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기이이이익-!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정신이 몸부림쳤다.
[경고]
[경고]
[심각한 손상]
[심각한 손상!]
“이 정도도 커버하지 못할 전투력이었던가. 실망스럽군.”
샤크스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서걱서걱 잘리는 몸체가 허공을 갈랐다.
그 잔해는 그대로 재앙이 되었다.
하이브들은 난데없는 낙석을 맞이해야만 했다.
콰앙-!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이브들이 찌그러졌다.
[우어어어어어-!]
그 위를 실험체들이 덮쳤다.
다소 야만스러운 방법으로 상대 해 나갔지만, 뭐 어떤가.
그들의 눈빛은 광기로 번들거렸고, 손발을 미친 듯이 휘둘러 하이브들을 갈기갈기 해체했다.
미친 듯이 손을 휘둘러서 장갑을 뜯어내고, 전선을 뽑아내고 코어를 짓이겼다.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는, 결국 영원할 수 없다.”
니오베가 손을 움직이자, 마법들이 쇄도해, 적들을 분쇄했다.
파지직-!
고통의 정신이 파괴되려는 순간, 균열이 열렸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광기를 집어삼켰다.
“호오-.”
니오베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기운이자, 드래곤에 필적할 수준의 기운이었으니까.
간부라고 그랬지.
저자가 바로 간부인 건가?
“인간의 형상이로군.”
“화신체들은 성좌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죠.”
드레젠이 앞으로 나섰다.
이젠 뒤에서 보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신들은 강했다.
그들은 성좌를 뛰어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성좌’를 본떠 만든 화신들이었다.
“아직 여덟. 이제 넷이 더 추가될 겁니다.”
“우리 일족이 질 가능성은?”
“뭉친다면 없습니다. 저들은 분열을 상정하고 일을 벌일 겁니다. 브락시아의 생명체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걸 가장 잘 보여줬던 것이 전쟁이었다.
엘프와 인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각자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모두 전멸하는데 걸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말, 기억하겠다.”
니오베가 빙긋 웃었다.
고통의 정신이 완벽하게 소멸하는 순간, 균열 안에서 기계 인간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무튀튀한 피부.
붉은 눈동자.
겉은 분명 인간이었지만, 팔과 다리는 금속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날 이런 곳에 부르다니, 요즘 정신들은 영 약해 빠졌군.”
그는 분명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화신이 등장하자, 드레젠의 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히든 보스 등장]
[화신 : 지드론을 처치하세요.]
히든 보스.
그 어감이 주는 중압감은 꽤 무거웠다.
시청자들도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이놈의 세상은 왜 계속 이상한 보스들이 튀어나오는가.
그 어마어마한 볼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드래곤인가. 성좌들의 개를 상대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가 낄낄 웃었다.
성좌들의 개.
화신들은 드래곤을 그렇게 불렀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성좌들을 대신해서 브락시아를 수호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이거,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군.”
“그러는 너희들은, 무의 추종자가 낳은 개가 아닌가.”
니오베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역으로 작용했을까, 화신은 입을 다물었다.
니오베의 도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면승부는 답이 없으니, 졸렬하게 뒷공작이나 펼치고 있더군.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아직도 겁쟁이처럼 숨어 있는 건지.”
피식 웃는 모습이, 상대방의 기분을 박박 긁기에 충분했다.
결국, 먼저 도발에 걸려든 것은 화신 쪽이었다.
“하-. 이런 건방진 소리나 듣자고 이딴 곳에 온 게 아닌데 말이야. 개는 도축을 해야 제맛이지.”
키이잉-!
그의 오른쪽 손에서 거대한 톱날처럼 생긴 검이 튀어나왔다.
스치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상처를 입을 것 같이 생긴 검이었다.
드레젠은 저 검을 기억했다.
북쪽 전선에서 악몽이라 불렸던 톱날 검.
“저 녀석, 제법 빠릅니다. 샤크스 님.”
“그래, 주의하지.”
샤크스는 백염을 일으키며 화신을 바라봤다.
광기의 화신.
정확한 이름은 몰랐지만, 인간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광기로 가득 찬 웃음소리와 미친 듯이 휘두르는 톱날 검.
그것만으로, 인간들이 공포에 떨기엔 충분했다.
마스터조차 상대가 되지 않아, 결국 블랙 드래곤 하나와 일곱 영웅 중 두 명이 나서서 처리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더 좋아.’
저놈의 힘이 전성기인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차라리 지금 싸우는 편이 훨씬 좋았다.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의 힘을 빌려야 할 때였다.
드래곤은 그의 약점을 찌를 수 있는 카드였으니까.
[제가 놈의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드레젠은 샤크스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샤크스는 광기의 화신과 마주 보며 답했다.
[적당히 얘기해주면 대응하겠다.]
적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심리적으로 큰 차이를 만드는 법.
아무것도 모르는 적과 달리, 이쪽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샤크스는 제법 여유로운 상태로 화신을 상대할 수 있었다.
“크흐-. 재밌겠어.”
키이이이이-!
톱날 검이 마나를 머금고 심하게 울었다.
두 초월자가 부딪혔다.
콰가가가가가-!
광기의 화신이 든 톱날 검은 상대방의 마나를 흡수하는 특성이 있었다.
[마나를 빼앗아 갈 겁니다. 녀석의 기술은 보잘것없습니다. 빈틈을 노려 신체 위주로 공격하십시오.]
샤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동이 곧바로 변했다.
광기의 정신은 압도적인 피지컬이 있었다.
단단한 몸뚱이와 무식할 정도로 많은 마나.
사기적인 무기까지.
하지만 그런 것들을 너무 믿었기 때문일까.
‘검술 수준은 마스터에 못 미친다.’
경험은 많지만, 그 경험이 독이 되는 경우이기도 했다.
샤크스는 일부러 극의에 이른 검술을 보여주지 않았다.
실력의 3할은 감추고 있으라는 말은, 심리전을 통해 상대방을 농락할 때 이용하는 말이었다.
탐색전에선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기도 했고.
“드래곤치고는 보잘것없군.”
“……바보냐.”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히는 상대는 없었다.
간을 보고, 상대를 파악하는 건 전투의 기본이었으니까.
처음부터 모든 실력을 발휘할 땐, 상대방이 방심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크히히히히! 좋구나! 더 발악해 봐라!”
“본인도 가세하지.”
니오베가 실험체들을 다시 무덤으로 돌려보내며 말했다.
드레젠은 그녀에게 마법은 안 된다고 말하던 찰나였다.
쿠우웅-!
거대한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 푹 꽂혔다.
-저게 뭐야
-저걸 들고 싸운다고?
-엌ㅋㅋㅋㅋㅋ
-진짜 반전ㅋㅋㅋ
-눈나 크, 큰 거 좋아하는구나;;
성인 남성 세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거대한 길이.
그 길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외날의 언월도.
어마어마한 모습에, 드레젠도 입을 떡 벌렸다.
“그, 그걸로 싸우실 겁니까?”
“왜, 본인이 다루지 못할 것 같은가?”
그녀가 매력적인 웃음을 짓고 거대한 병기를 쑥 뽑아냈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온몸’으로 거대한 병기를 다뤘다.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언월도가 스르륵 움직였다.
“보아라. 크고 아름다운 병기야말로, 진정한 파괴의 미학이 담겨 있는 것이니라.”
어쩐지, 그녀의 눈이 조금 위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부웅-!
가볍게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돌풍이 몰아쳤다.
드래곤의 압도적인 근력과 어마어마한 무게의 병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샤크스 홀로 재미 볼 수 있게 할 수는 없지.”
“2대 1인-?”
콰가가가가가-!
거대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져 내려, 톱날 검을 들어 막았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압도적인 질량이 톱날 검을 넘어, 광기의 화신까지 짓눌렀다.
“으그그그그극-!”
“어디 건방지게 입을 놀렸느냐.”
고작 이 정도도 받아내지 못하면서.
질량의 힘은 정말 엄청났다.
드레젠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하이디엔이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요.”
“아니, 저런 전투방식은 처음이라…….”
-놀랄 만하지.
-ㅋㅋㅋㅋㅋ 킹정
-아 저건 나도 못참짘ㅋㅋㅋ
-드래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들ㅋㅋㅋㅋ
시청자들도 깜짝 놀랐다.
설마 그 고고하던 니오베가 저런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드레젠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자신들이 아닌, 광기의 정신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