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6화
236화 – 고통의 정신
#1
-와, 시원하게 터지네.
-크으 시원하다
-역시 극딜의 드레젠ㅋㅋㅋ
-드래곤까지 있으니 딜은 문제없구나.
“만렙 찍으시고, 1만 이상의 마나를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검술은, 용병들이 사용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검술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검술에 얼마나 마나를 주입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걸 얼마나 딜량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이제 유저들은 자신들의 특기를 제법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검술이면 검술, 활이면 활, 창과 둔기를 다루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마법사는 웬만하면 NPC를 구해서 가세요. 마법은 정말 극소수의 능력자 아니면 사용하기가 어려우니까.”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이 괴물인 거지, 일반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 그리고 엘프 로드이자, 하이 엘프인 하이디엔.
이들은 ‘마법’이란 것을 사용하기 위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호오, 제법 흥미로운 걸 뱉는군.”
“이 코어는 베리드의 중심 부품입니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죠.”
“이거, 내가 가져가서 연구를 좀 해도 되겠는가?”
샤크스의 요구에,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 베리드에 관한 것을 연구해 준다면, 대응하는 것은 더욱 쉽겠지.
샤크스는 아공간을 열어 베리드의 잔해를 수납했다.
직접적인 타격에는 약하지만, 그걸 커버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들이 잠들어 있었다.
베리드는 그런 종족이었다.
“어서 가지. 다음은 뭐지?”
다음은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지구력과 협동력을 시험하는 곳이기도 했다.
드레젠은 설명을 시작했다.
“다음은 두 조로 찢어져야 합니다. 서로 타이밍을 맞춰 문을 열어야 하죠.”
이번에도 빛과 어둠의 땅으로 나뉘어 있는 건 똑같았다.
출구를 찾기 위해 버텨야 하는 조와 퍼즐을 직접 풀어야 하는 조로 나뉘었다.
여러 방향으로 돌아가는 방, 그리고 그 밖에서 방을 조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야 했다.
“공간에 있는 하이브를 잡으면 방이 움직일 겁니다. 총 열다섯 번을 잡아야 하고, 그동안 방에서 버텨야, 안과 밖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흠, 별 것 아니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대가 결정하게. 이번 공격대의 리더는 자네니까.”
그 높은 자존심을 가진 드래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원한 대답.
니오베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하이디엔은 언제나 그를 따랐다.
드레젠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일곱 영웅과 이 던전을 돌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협동심이었다.
‘이런 파티와 함께라니, 느낌이 좋네.’
그답지 않게 아저씨 감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니오베와 한 팀을 이뤘고, 하이디엔과 샤크스를 같은 조로 배정했다.
그들은 군말 없이 결과를 받아들었다.
<내가 왜 이 자랑 같은 조가 되어야 하죠?>
<하, 같잖은 것들이랑 같이 던전을 도는 것도 짜증 나는데…….>
옛날, 자존심만 높은 놈들이랑 던전을 도느라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팀원과 합을 맞추는 것이 더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다 연기였다는 건가.
잡생각을 떨치고, 다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버티는 건 기본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만, 가끔 튀어나오는 근위대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녀석들은 방을 다시 원상태로 뒤집어 버리거든요.”
“우리가 버티는 역할인가?”
“네. 하이브는 제가 더 많이 상대해 봤으니, 그편이 낫겠죠.”
샤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흘끔, 그는 하이디엔을 보며 말했다.
“이 엘프의 마법 실력이면, 버티는 거야 문제없겠지. 나도 있고.”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럼, 출발하죠.”
근위대를 잘만 처리하면, 버티는 건 문제 없었다.
10분 정도만 버틸 수 있다면, 두 번째 네임드를 통과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그 10분이 지옥 같은 시간이라 문제가 되는 거였지.
“하이디엔, 회복 마법과 방어 마법을 위주로 사용해 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한쪽은 흑색의 세상으로, 다른 한쪽은 백색의 세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니오베는 드레젠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한 번도 오지 못한 곳을 잘 알고 있지?”
“시간을 거슬러 왔기 때문이죠.”
“……정말인가?”
니오베의 걸음이 일순 멈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그건 드래곤에게도 금기시되는 마법이었다.
시간을 역행하여 이미 일어난 일을 바꾸는 건, 세상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몸이 바뀌었죠. 제 육체가 그대로 넘어온 건 아닙니다.”
“그런 일도 있구나. 하긴…… 이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지. 그래서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느냐.”
“성좌로부터 세계의 멸망을 막아 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멸망…… 멸망이라.”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났던 그때, 범상치 않음을 알고 있었으니.
그녀는 궁금한 것을 더 물었다.
“그 미래의 끝에서, 드래곤들은 뭘 하고 있었느냐.”
“서로 갈라졌죠. 다투고, 싸우고……. 그러다가 하나씩 죽어 갔습니다. 니오베 님도 마찬가지였어요.”
“드래곤은 그런 종족이니까.”
개인이 하나의 세계와도 같은 존재가 드래곤이었다.
자신을 부정한다는 건, 곧 그가 구축한 세계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게 드래곤.
세계에 침입자를 허락하지 않는 본성을 가진 생명체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겁니다. 저희도, 드래곤들도.”
“그러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움직인 것 아니겠는가. 다행히 지금은 순조롭다.”
한 일족의 수장이 직접 움직였다.
그 여파는 당연히 컸다.
일족의 수장은 무언가 요구하지 않았다.
외부의 압력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 일족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일 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 반려를 위한 일이다. 걱정하지 말도록.”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순간적으로 드레젠마저 살짝 걸음이 꼬일 정도였다.
하이디엔이라는 정인이 있었음에도, 이 정도 파괴력이었다.
‘이걸 말해야 하나?’
하이디엔은 지구, 그것도 대한민국 법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
그들에 맞게 사고를 변화시켰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과연, 그가 가상현실 속에 있는 니오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거, 완전 랜선 연애잖아? 일단은 접어 두자.’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막말로, 이 세계가 다시 리셋되지 말라는 법도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여태까지 쌓아온 인연은 모조리 사라지게 되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깔끔하게 미련을 털어버릴 수 있었으니,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정말로 세상을 구하고 나면, 그때는 진정 게임으로써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하이디엔과 계속 살게 된다면,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고.
“저깁니다.”
“흠, 확실히 드워프들만으론 힘들겠어.”
무려 열다섯 대의 하이브가 그만큼의 병력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뿐이랴, 실험체들이 득실거리는 광경도 보았다.
저걸, 단둘이 뚫고 격파해야 했다.
드레젠은 마나를 점검했다.
“저는 만전입니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단번에 쓸어버리자고.”
그들이 우물쭈물한다면, 결국 고생하는 건 동료들이었다.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이었으니, 짬을 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드레젠이 먼저 돌파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검술은 차고 넘쳤다.
거기다 파괴력까지 겸해야 했으니, 역시 천마검법이 제격이었다.
“제가 포문을 열겠습니다.”
파직-!
천마가 전수해 준 검술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살심’이 끓어 올랐다.
저 기계들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을 어서 끊고 싶었다.
한 번에 죽일 요량으로 검 끝에 마력을 모았다.
“한 번에 뚫겠습니다.”
“보조하겠다.”
쿠웅-!
드레젠이 높이 뛰어올랐다.
거대한 기계들을 수용해야 했기에, 도약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파지직-!
천마가 전장에 합류할 때, 가장 애용했던 검술.
유성처럼 내리꽂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묘미가 있는 거라고 연신 떠들어댔었지.
-이 검술 하나면 적들의 기가 팍! 죽어버린다고. 알겠어?-
‘기계들이라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마나를 전신에 배치했다.
폭발적인 각력으로 공기를 차, 그대로 떨어진다.
어중간한 무기로 이 검술을 시전 하면, 무기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신체까지 박살 나는 검술이었다.
그가 한 줄기 유성이 되어, 적진으로 낙하했다.
천마검법 · 8장 · 천마거압
(天魔劍法) · (八章) · (天魔巨壓)
쿠와아아아아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일대가 싹 쓸려나갔다.
하이브 두 대가 격침됐으며, 수백의 잡몹들이 증발했다.
숙련 포인트가 오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이건, 조금 인상적이군.”
니오베는 잠시 감탄했다.
마치 소형 브레스를 쏘아낸 것 같은 비주얼이었으니까.
그녀는 끄덕끄덕, 감탄하며 마나를 펼쳐냈다.
비교적 낮은 서클의 마법이었지만, 그 위력은 절륜했다.
“가라.”
각종 원소 마법들이 쏘아졌다.
불, 물, 얼음, 전기 등등.
휘황찬란한 마법들이 적들에게 쇄도했고, 곧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고통의 정신에게 보고]
[적들의 위험도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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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보스를 쉽게 상대하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었다.
하이디엔과 샤크스는 제대로 잘 버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드레젠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가급적 기본기만 사용해서 상대해 보세요. 제법 수련이 될 겁니다.”
휘두르고, 베고, 때리고 막고 피한다.
이 기본적인 것들로만 싸우다 보면, 일정한 경지에 올라갈지도 몰랐다.
실제로 드레젠은 엄청난 성과를 봤던 방법이었다.
기계를 때려잡는 맛은 제법이었다.
“이거, 손맛이 있네요.”
-샌드백이 많다.
-약간 무쌍류 게임 하는 것 같네
-ㅋㅋㅋ 아! 빨리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ㅠㅠ 요즘 진짜 개노다가 하는 중ㅋㅋㅋ
시청자들은 시원스레 적들을 박살 내는 드레젠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건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감히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일본인들에게.
그리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옛 동료들에게.
‘지켜보고 있어라. 차근차근 올라갈 테니까. ’
니오베는 그런 드레젠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저렇게 화가 나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다고 했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돌아오게 되었을까.
자신도 그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고 싶었다.
‘그대가 원하는 만큼 바뀌었길 바란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이 눈에 어렸다.
이젠 과거와는 달리, 옆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드래곤이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