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5화
235화 – 흑백의 던전
#1
하이디엔, 드레젠, 니오베, 샤크스.
네 사람은 균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묘한 현상을 마주했다.
온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어 있는 곳.
드레젠은 이전, 이 균열을 ‘흑백의 던전’이라고 명명했다.
[레이드 : 흑백의 던전에 진입하셨습니다.]
[제한 시간은 없습니다.]
[던전 끝에 있는 ‘고통의 정신’을 처치하십시오.]
항상 있었던 제한시간이 없는 던전.
하지만 방마다 퍼즐을 풀어야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던전이었다.
마족 놈들은 이런 식의 장난을 좋아했다.
퍼즐을 풀지 못해 고통받는 침입자.
그들을 서서히 가지고 노는 쾌락.
“하얀색 땅에 서 있으면 하얀색 결정이 나옵니다. 반대로 검은색 땅에 서 있으면 흑색 결정이 나오죠.”
키이익-!
마족들이 납치해, 멋대로 실험한 생명체들이 등장했다.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괴기한 생명체, 심지어는 기계까지 있었다.
드레젠이 검을 꺼내며 말했다.
“저 결정들을 모아, 문을 열어야 합니다.”
기다란 통로처럼 생긴 구조의 방.
그 끝에는 하얀색, 검은색으로 점멸하는 홈들이 있었다.
저길 다 채워 넣어야 다음 방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퍼즐.
상당히 쉬운 축에 속하는 기믹이었다.
“이놈들을 죽이면 되는 건가?”
“네. 한 곳에서 다 죽여버리면 문을 열 수 없으니, 그것만 주의하면 됩니다.”
“재밌군.”
샤크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 흑색 땅에 섰다.
드레젠은 반대로 백색 땅에 서서, 그를 바라봤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실험체들.
기괴한 모습이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다…… 마족들이 벌인 짓인가요?”
“맞아요. 그들은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종족을 양산하고 있을 겁니다. 전회차 때도 그랬으니까.”
지금 마족들은 뭘 하고 있을까.
베리드라는 종족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종족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최적의 결과를 끌어내는 종족.
그게 베리드였다.
‘성좌들이 전투에서 애를 먹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긴 가.’
이곳에 있는 베리드는 본대가 아니라 정찰병 수준이었다.
균열들은 정찰병들이 머무는 전진 기지였고.
이곳을 파괴하면, 이제는 진짜 본대가 도착하리라.
“내가 이쪽을 맡지. 자네는 그쪽을 맡게.”
“한 번에 쓸어버리면 편하겠군요.”
[우어어어어어-!]
온몸의 절반이 전선과 기계부품으로 되어 있는 오거를 필두로, 수많은 몬스터가 울부짖었다.
드레젠과 샤크스는 마나를 둘러, 전투태세를 갖춘 후, 전진했다.
콰아앙-!
실험을 거쳤어도 태생이 가진 힘은 어쩔 수 없었는지, 몬스터의 힘은 원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두 남자가 휘두르는 검은,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했다.
“저희는 결정을 모으죠.”
“그러도록 하자꾸나.”
니오베와 하이디엔이 여유롭게 두 남자의 뒤를 쫓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적을 분쇄해 나가는 그들을 따라, 두 여인은 흑백의 결정을 모았다.
손을 휘휘 저으면 결정들이 알아서 딸려왔다.
극강의 마나 컨트롤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저건 좀 부럽다
-진짜 초호화 파티잖앜ㅋㅋㅋㅋ
-팩트 : 우린 절대 따라 해선 안 된다. 공략만 숙지하자.
-ㄹㅇ ㅋㅋ
일반 유저들은 아직까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퍼포먼스였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만 했다.
캠은 적절한 위치에서 드레젠과 샤크스의 모습을 잡아 주었다.
드레젠의 검술은 말할 것도 없고, 샤크스는 한때 전쟁영웅이었던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콰르르르-!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시퍼런 불길이 적을 집어삼켰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재밌군.”
“성룡이 되신지 얼마 안 된 겁니까?”
“올해로 3천 년을 조금 넘겼네. 아직은 어린 편이지. 저 뒤에 있는 니오베 님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고.”
샤크스는 그럼에도 자신을 친우로 인정해 준 니오베에게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3천 년이라니.
한 인간이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이 작은 도시 단위로 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 100년만 따지고 봐도 세계 대전이나 각종 사건, 사고가 일어났는데 3천 년이면 오죽할까.
“드래곤들은 한 번 잠을 자기 시작하면 500년은 기분이니까. 별로 긴 시간도 아니야.”
“다시 나온 세상은 어떻습니까?”
드레젠이 묻자, 샤크스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일격에 오거 한 마리가 타들어 가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은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뚫고 지나갔다.
해일을 뚫고 가는 인간의 모습이라니, 대단하면서도 아이러니했다.
“많이 망가져 있더군. 마족이라……. 내가 잠들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생명체였는데.”
“드래곤들이 힘을 빌려준다면, 훨씬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일족의 수장인 레드릭이 잠들어있다. 그를 깨워, 협조를 구해 보거라.”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콰득-!
문 앞까지 도달한 시간은 약 5분 정도.
뒤를 돌아보니, 엄청나게 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원석이 되었다.
“여기다 끼우면 되는 거군요.”
“고생했다. 둘 다. 피로를 풀 거라.”
니오베가 샤크스와 드레젠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 주었다.
포근한 빛에 휩싸인 두 사람의 체력이 모두 회복됐다.
적당히 달아올랐던 몸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몸이 풀렸으니, 이제 보스를 상대해야 할 차례였다.
“앞엔 제법 강력한 보스가 있습니다. 빛의 결정과 어둠의 결정으로 동시에 타격을 해야 배리어가 없어질 겁니다. 시간을 조작한 배리어라, 그편이 빠릅니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드래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죠.”
샤크스와 니오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쉽고 합리적인 방법이 있는데 무식하게 들이받는 짓은 사양이었다.
그들은 드래곤.
지성체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럼, 가시죠.”
빛과 어둠의 결정체를 홈에 끼워 넣자, 문이 열렸다.
취이이익-!
증기를 뿜어내며 열리는 문은, 확실히 베리드가 기계라는 걸 표현했다.
안쪽에는 거대한 기계가 있었는데, 일전에 상대했던 ‘얼음 여왕’과 비슷하게 생긴 마족이었다.
[침입자 발견]
[배제한다.]
딱딱한 기계음이 들렸다.
그 후, 흑백의 세상에서 엄청난 양의 기계들이 쏟아졌다.
드레젠이 빠르게 움직이며 공략 방법을 설명했다.
“이들을 잡아, 결정을 모으세요! 빛과 어둠의 땅에서 적절하게 잡아야 합니다!”
“귀찮군.”
샤크스는 혀를 한 번 찬 후, 빠르게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에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일종의 여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바깥세상의 공기였다.
허무하게 끝내버리고 싶진 않았다.
“저희도 적절하게 움직이죠.”
“아아, 베리드라는 종족은 참 신기하구나. 언젠가 연구를 해 보고 싶을 지경이야.”
흑백의 구역은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기믹이 추가되었다.
결정을 실험체들이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 결정을 흡수한 개체는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결정을 흡수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놈을 잡아야 합니다.”
“재밌어, 이런 발상을 하다니, 자넨 또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건가?”
드레젠은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샤크스는 아무렴 어떠냐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검을 휘둘렀다.
점점 거대해져 가는 적을 상대할수록, 그는 옛날 기억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도 강자를 상대하는 즐거움은 있었지.”
하지만 진정한 강자는 절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드래곤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었으며, 군대가 와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쇳덩어리들이라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샤크스는 검을 든 손에 힘을 더했다.
[구어어어어어-!]
“버러지가 잘도 까부는구나.”
콰드드득-!
힘 대 힘으로 대결해, 그는 한 손으로 오거를 짓뭉개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드래곤은 역시 드래곤.
압도적인 피지컬로 적을 찍어누르는 패왕다웠다.
“이거로군.”
“조금만 기다리십쇼!”
검은 결정체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샤크스가 웃었다.
드레젠은 아직 결정이 모이길 기다리는 상황.
곧이어 거대한 ‘어보미네이션’이 결정을 모두 흡수해, 드레젠에게 덤벼들었다.
파지직-!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 그대로 일격을 내질렀다.
[그어어어어억-!]
드래곤에게 질 수 없다는 듯, 그 역시 일격에 거대한 괴물을 날려버렸다.
지이잉-!
그 사이, 보스가 공격했다.
어마어마한 열기의 광선이 공간 전체를 훑었다.
물론 가만히 보고 있을 두 여인이 아니었다.
[엡솔루트 쉴드]
9서클.
절대자만 쓸 수 있다고 여겨지던 마법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두 방향에서 펼쳐진 거대한 방어막.
황홀한 광경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지렸다
-ㅋㅋㅋ 와 드래곤이랑 비슷하넼ㅋㅋ
-대표님 대박
-오늘부터 팬카페 가입합니다
-ㄹㅇ 진짜 멋있네 ㅜㅜ
가히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광경.
보스의 광선은 절대적인 방어벽에 막혀,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했다.
오히려 주변에 널려있던 잡졸들만 죽어 나갔다.
“제법이구나. 아이야.”
“과찬입니다.”
니오베는 내심 놀랐다.
하이디엔이라고 밝힌 엘프 여인.
엘프라고 하기엔 너무나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었고, 마법 실력 역시 드래곤과 필적할 정도였다.
드레젠도 그랬지만, 그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신비한 자들이었다.
“아니, 과찬이 아니란다. 내가 지금 키우고 있는 제자보다 훨씬 큰 그릇이구나.”
“저도 겪은 것이 많거든요. 저이와 같이.”
“흐응,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했더니, 그랬구나.”
니오베가 살포시 웃었다.
어마어마한 공격을 막아낸 사람들의 대화치고는 소소하고 단란했다.
한편, 직접 발로 뛰는 두 사내는 빛과 어둠의 결정체를 손에 쥐고, 보스에게 뛰어갔다.
빛과 어둠의 결정체는 이상 현상을 만들어, 베리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믹들을 벗겨낼 수 있었다.
[에러 발생]
[보호막 과부하]
[수복 필요.]
파지직-.
배리어가 없어진 보스는 그대로 추욱 늘어졌다.
지금이 바로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이퍼 라이즈]
콰지지직-!
8서클에 달하는 버프 마법이 걸렸다.
최고의 일격을 가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드레젠이 검을 똑바로 세웠다.
다시 한 번, 천마가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