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3화
233화 – 우리는 극복하고 싶었다.
#1
드워프의 외부 정찰조.
군대로 따지자면 수색대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제일 먼저 위험을 판별하고 외부의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
그들은 드워프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울드랜 역시 그곳 출신이었는데, 술을 마실 때면 그때 얘기를 빼먹지 않기로 유명했다.
“어찌, 어찌 저런-.”
“잘 지켜보라고. 이게 너희의 썩은 부분이니까.”
울드랜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이 붉게 변했고,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기운을 풍겼다.
옆에서 드레젠이 막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뛰쳐나갔을 테지.
그는 두 눈이 벌게질 정도로 참담한 과정을 지켜봤다.
“소리까지 들려야겠지?”
“그, 그거까지 가능하겠소?”
“문제는 아니지.”
마나를 이용하면 이 정도 기교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기묘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일렁이는 마나가 저 멀리 있는 자들의 소리를 끌어왔다.
“내부는 어떻지?”
“지금쯤 난리나 났을 겁니다. 유물을 빼돌리는 자들이 움직였겠죠.”
“탑은?”
그들은 저 멀리 있는 탑을 바라봤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는 상층부.
탑의 상층부가 그대로 날아간 것을 발견했다.
-참 빨리도 발견하네
-멀리 있어서 그런가?
-ㅋㅋㅋ 할말하않;;
드워프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이 접촉하고 있는 자들을 제외하면, 발견한 이들은 없었으니까.
“탑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 그럴 리가. 저기엔 그분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성좌라고 만능은 아니야. 그저 월등히 강한 생명체일 뿐이지.”
“…….”
드워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성좌.
이 브락시아에서 그 단어가 주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니까.
땅 위에 사는 자들이 절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일이 조금 꼬인 것 같군.”
“우,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도시로 돌아가, 사태를 정리해라. 탑을 망가뜨린 녀석들이 그쪽으로 향했을 테니까.”
“그리고 나선?”
“다음 지시를 기다려. 너희들이 할 일은 단 하나다. ‘네 명의 화신’들을 도와 너희 종족의 염원을 이루는 것.”
딱딱한 목소리였다.
드레젠은 ‘네 명의 화신’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했으니까.
마치, 어딘가 빠진 퍼즐 조각이 저곳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
눈치가 빠른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어졌다.
-네 명?
-어? 이거 설마?
-네 명이 오리라!
-이거 엄청난 냄시가 난다!
드레젠도 동감했다.
네 명이라-.
이거, 딱 그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입가를 비틀어, 비릿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만약 그의 생각이 적중한다면,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를 것 같았다.
‘움직일 목표가 생겼네.’
무척 궁금했다.
저들이 말하는 ‘네 명의 화신’이란, 과연 누구일까?
배신한 성좌?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마족?
무의 추종자들이 섬기고 있는 간부들?
“어느 쪽이든, 일단 족칠 이유는 충분하군.”
“어떻게 할 거요?”
“뭘 어떻게 해. 다 잡아 족쳐야지.”
드레젠이 입가를 비틀었다.
자신을 향한 살기가 아님에도, 울드랜은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건 포식자 앞에 놓인 먹잇감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드레젠이 ‘무서운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 잘 들어야겠군.’
그가 호의를 가지고 울드랜과 드워프를 대하는 건, 움직이려는 목적에 걸림돌이 아니기 때문이란 걸 느꼈다.
만약 드워프가, 그리고 자신이 그의 목적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순간이 온다면?
드레젠이라는 인간은, 절대 드워프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갔다 오지. 가만히 있어.”
“아, 알겠소.”
서슬 퍼런 드레젠의 말에, 울드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스르륵-.
기묘한 소리와 함께 드레젠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울드랜은 멍하니 밀회의 장을 바라봤다.
이 조용한 분위기도 곧 지옥도로 바뀌겠지.
‘명복을 빌어 주마.’
울드랜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한 곳에 숨어서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배신자들이 어떻게 파멸로 향하는지.
그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2
드워프들과 무의 추종자들은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외부조는 대놓고 그들을 만나고 있음에도 지금껏 들키지 않았다.
이는 드워프들이 워낙 폐쇄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럼, 한 달 후에 보자고.”
“알겠습니다. 물품은 잘 받아가겠습니다.”
그들은 ‘상단’으로 꾸며 그들과 만나고 있었다.
일정한 물품을 전달하는 대신, 드워프들을 무의 추종자들로 끌어들이고 있었던 것.
스륵-.
그들 가운데 낯선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럼, 살펴 가십쇼.”
“알았다. 인원 체크하고, 어이-. 거기 말 안장에다 뭐 하는 짓이야?”
“상단으로 꾸미고 온 건 잘 했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아니, 들어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들어본 적은 없는 목소리였지.
순간적으로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 됐다.
-갑.분.싸
-ㅋㅋㅋㅋ 정신 못차리넼ㅋㅋ
-아니 왜 못알아 보냐!
-AI의 한계인갘ㅋㅋㅋ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저들을 바라본 드레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신이 선고했다.
“우리 구면이지?”
서걱-.
서걱서걱서걱-!
마차, 말, 물건, 사람 밑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에서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혼돈의 힘을 잔뜩 담은 사신의 형벌이, 이 세상을 좀먹는 버러지들을 청소했다.
“으악-!”
“꺼흑, 기, 기습-!”
“드레젠! 드레젠이야!”
현재, 그림자 기사단의 기술을 이 정도 수준까지 구사할 수 있는 인원은 그뿐이었다.
한때 스승이었던 눈티아가 죽었으니, 최강자는 드레젠뿐이었다.
무의 추종자 중 드워프 도시를 궤멸로 이끌기로 한 간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드레젠-!”
“나는 네 이름을 모르는데, 너는 내 이름을 알고 있구나.”
불공평하지 않니?
드레젠의 뒷말에, 간부는 사색이 되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무척 신속한 반응이었다.
만약 드레젠이 적이 아니라 아군이었다면, 손뼉을 칠 정도의 반응속도였다.
“대체 무의 추종자들은 왜-.”
콰직-!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IF의 이야기일 뿐.
드레젠은 막 움직이려는 간부의 사지를 꿰뚫었다.
그림자에서 나온 꼬챙이가 적을 꿰어냈다.
“끄아아아아아-!”
“미안하지만 못 빠져나간다.”
혼돈의 힘을 머금은 체페슈였다.
거기다 흑뢰까지 묻혀, 완벽하게 마나를 차단했다.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넌 뭐야!”
“침입자!”
드워프의 외부 수색조가 무기를 들었다.
울드랜, 그리고 자발라에겐 미안한 얘기였지만, 드레젠은 그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 역시 죄를 지었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너희들도 죽어라.”
“이런 미친놈이!”
드워프의 전사는 두려움을 모른다.
드레젠 역시 말로만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희생정신이 뛰어난 지는 겪어볼 새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나친 용감함은 무모함이고, 적과 나의 차이를 계산하지 못하는 건 무지함이었다.
드레젠이 본 드워프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불나방이었다.
“진정 무의 추종자들이 드워프의 염원을 이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콰아아아아-!
거대한 마나가 해일이 되었다.
유려한 검술이 올올이 펼쳐졌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급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치명적인 검술.
허공에 선이 그어질 때마다 황금빛 가루가 흩날렸다.
“도망가! 도시에 알려라!”
“빨리 도망쳐! 우리가 막고 있을 – 크악!”
건방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게 같잖았다.
드워프가 왜 일찍 멸망했는지, 왜 제일 먼저 타깃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폐쇄적인 종족의 한계랄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꿈도 야무지네.”
“도망가!”
“으아아아! 도망쳐!”
드워프들은 유례없는 재앙을 맞이했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산사태보다 훨씬 위험한 재앙.
그 이름은 드레젠이었다.
‘젠장-. 일이 단단히 꼬였군. 어째서 저 녀석이 여기 있는 거지?’
뿔뿔이 흩어져, 각지에 있는 종족들을 와해하기로 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설마, 배신자가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대체 누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뜬금없는 생각을 이어갔다.
“후, 배신자들은 얼추 정리했군요.”
-배신자들은 짤없지
-배신 : 사형
-도망가라니, 도망갈 수 있겠냐고 ㅜㅜ
-진짜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어리석다 어리석어
채팅창은 동정심 반, 냉소적인 반응 반이었다.
동족에 대한 배신.
그들이 어떤 염원이 있었든, 배신행위는 좋게 보이지 않았을 테니.
물론 그 결과가 좋은 쪽이라면 어떻게 변했을진 몰랐겠지만, 드레젠이 있는 이상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넌 나랑 얘기 좀 해야지?”
“누구와…… 크윽, 누구와 내통하고 있는 거냐!”
“내통?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난 너희들을 다 찢어 죽일 생각밖에 안 하는데.”
“……배신자는 결국 감시자의 눈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너희는 출구가 없을 것이다!”
드레젠은 그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착각을 해 준다면, 그걸 이용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내분을 가속화 할 수 있겠지.
작은 의심으로부터 모든 조직의 와해가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 전에 대답해 줘야 할 문제가 있는데.”
드레젠이 간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그가 생각하는 바가 맞다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테니까.
지금부터 일어날 일은,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네 명의 화신이, 사라진 네 영웅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
동공이 떨렸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의 동요.
부들부들 떨리는 전신,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가 그것들을 증명해주었다.
히죽, 드레젠이 웃었다.
“그랬던 거였군. 그래서…….”
자신에게 열등감을 가졌던 검성.
묘하게 어긋난 길로 인도했던 대현자.
전쟁을 치르며, 조금씩 어긋났던 모든 것들.
“하하…….”
퍼즐이 딱딱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미친 듯한 분노가 몸을 지배했다.
쿠우우우우우-!
돌산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그의 분노는 거셌다.
“괴, 괴물…….”
“그 괴물을 만든 게, 바로 너희들이지. 안 그래?”
더없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드레젠이 간부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공포에 젖은 눈동자가 우악스럽게 가려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는 악마가 울부짖는 목소리 같았다.
“먼저 가서 기다려라. 다들 지옥으로 보내 줄 테니까.”
퍼석-.
황금빛 폴리곤 덩어리가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