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1화
231화 – 현실에서도 도발이?
#1
푸쉬이이익-!
캡슐의 문이 열렸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몸이 찌뿌둥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날짜가 변해있었다.
24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캡슐 안에 있었던 것.
“아으 배고파.”
“아들, 이제 나왔어? 뭐 좀 먹자.”
임수아 여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녀 역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맛있는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하이츠 숙소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이번 여름에 올스타전 한다던데, 누가 나갔으면 좋겠어?”
“일단 하이츠 선수가 주축이 되어야겠죠.”
하이츠의 아트 선수는 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었다.
그를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북미에서는 가브리엘이, 유럽에선 ‘유고’라는 선수가 그런 포지션을 가져갔다.
그들은 뛰어난 피지컬로 전장을 휘저었고, 어마어마한 팬을 보유했다.
[드레젠 VS 가브리엘]
[드레젠 VS 유고]
이런 식의 토론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팬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직 프로 선수들이 드레젠을 뛰어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지를 얻는 상황.
그래서 이번 올스타전이 더욱 기대되었다.
드레젠 역시, 세계 각국의 실력자와 붙어보고 싶었다.
‘내 기록을 깨는 자가 과연 나올까?’
예전에도 말했지만, 드레젠은 영광의 전당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또한, 한 번도 리타이어 된 적도 없었다.
그의 역량은 제국을 넘어, 대륙에서 최고였으니까.
유일하게 전성기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얼른 가 볼게.”
“그래. 조심히 다녀와.”
임수아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강일은 하이츠의 숙소로 향했다.
아마 연습이 한창이겠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감독과 코치 측에서도 열심히 노를 젓고 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2
“이거, 생각보다 많이 삐걱거리는군요.”
강일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리그에서 잘 하고 있다고, 진짜 실력이 올라가는 건 아니었다.
강일의 기준에서, 합격점을 받아낸 팀은 용성과 하이츠, 두 군데밖에 없었으니까.
“이래서는 팀 전체의 밸런스가 조금씩 무너질 겁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 아트 선수의 기량을 다른 선수들이 전혀 받쳐주질 못하고 있어요.”
아직 선수들에겐 전달하지 않았다.
코치와 감독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는 아트 선수의 활약으로 재미 좀 봤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톱 체제는 맹점을 드러낼 것이다.
“아트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싶으면, 다른 선수의 기량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둘 중 하납니다. 호흡을 계속 맞추거나, 각자의 기량을 따로 훈련하거나.”
감독과 코치는 한숨을 삼켰다.
그간 승승장구했으니, 이 방법이 맞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업계 최고인 자가 아니라니, 실망감이 몰려왔던 것.
감독이 강일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가 틀렸다면, 최 코치가 바꿔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죠. 그게 제 일이니까요.”
자신만만한 일에, 코치와 감독은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말 몇 마디면 끝날 문제이기도 했다.
프로 선수들은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내 말이면 껌뻑 죽는단 말이지.’
다른 코치의 말이면 모를까, 강일 본인의 이야기라면 마법사가 검을 들고 싸우라고 해도 들을 기세였으니까.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강일은 감독에게 꾸벅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코치들이 감독에게 말했다.
“정말 저희가 잘못 가르치고 있던 걸까요?”
“감독님. 솔직히 지금도 잘 하고 있었잖습니까.”
“지금 우리가 몇 승 몇 패지?”
며칠 동안, 리그는 꽤 많이 진행되었다.
하이츠는 총 열두 경기를 해서, 단 세 번만 지고 모두 승리를 챙겨갔다.
그 세 번은 아트 선수를 저격해서 밀린 경우였고.
확실히, 감독은 그 부분을 지적할 만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문제야. 단지 최 코치의 기준이 높았던 거겠지.”
“자칫 선수들의 컨디션이 저해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밥값을 못 하면 쳐내면 된다. 그리고-, 여태까지 최 코치가 한 일들 중, 잘못된 일은 없잖아?”
감독의 말이 맞았다.
코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을 부정당할 때의 기분은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틀린 길을 계속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를 보고, 피드백을 받으면 된다. 아직 우리는 최고의 팀이야. 강일 코치의 능력은 이미 전 세계 최고고. 여기서 더 올라가려면 그를 배워야 해.”
“알겠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라. 하지만 자만하면 안 된다. 내가 구단주님께 배운 철학이지. 다들 이 말 명심하고, 최 코치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부 빼먹으란 말야.“
“네!”
감독은 코치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코치들 간의 파벌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감독의 일이었다.
구단주, 이현성의 꿈은 원대했다.
이제는 핵심 산업 중 하나인 E 스포츠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했으니까.
“다들 나가봐.”
강일의 피드백이 끝나고, 코치들은 심기일전했다.
그래, 누가 뭐래도 지금 업계 최고는 드레젠으로 명성을 날리는 강일이였다.
아직 1년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보다 정확한 눈을 가질 코치는 없겠지.
“자, 모여보세요.”
선수들을 집합시킨 강일이 여태까지의 경기 영상을 쭉 나열하며 브리핑을 했다.
누구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고, 누구는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공통점이라면, 그들 모두 위로 올라가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 정도?
“다들 충격받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유럽, 북미의 열강을 압도적으로 누르기 위해선,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죠?”
“그럼요!”
“저흰 프로니까요. 승률이 높은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의젓한 발언을 했다.
강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응당 프로라면 이 정도 각오는 있어야지.
약점은 보완하라고 있는 것이지, 계속 놔두라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
“그럼 지금부터 훈련 스케줄을 짜드리겠습니다.”
강일은 진정한 시즌의 패왕을 만들기 위해 비법을 내놓았다.
자신의 뒤를 이을, 진정한 용사들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3
“감독님! 최 코치님!”
한창 훈련을 진행하던 때, 관계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소식인 것일까?
코치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다들 바빠.”
“일본이 갑자기 성명을 발표했답니다.”
“일본이?”
일본 프로팀도 수준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유럽 선수들과의 친선전에서도 꽤나 선전한다고.
유고와 가브리엘이 인정한 ‘사나다 마에’라는 여성 프로선수가 있기도 했다.
그런 일본이 갑자기 성명을 발표했다는데.
“네. 그…… 한일전을 치르자고 하더라고요.”
“한일전?”
“네, 문제는 그냥 한일전이 아니고 저…… 드레젠 님이 꼭 꼈으면 한다는데요?”
“푸웁-! 진짜?”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뿐만 아니라 선수들 역시 비슷한 느낌의 반응을 보였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뭘 한다고?
“네. 그 사나다 마에 선수가 꼭 붙어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자신 있다면서.”
“간이 진짜 크다.”
“재밌겠네요. 대표님께도 일러둬야겠어요.”
강일의 말에, 모든 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초리를 보였다.
그들은 상상했다.
드레젠이, 자기네들 잘난 맛에 사는 일본 선수들을 가지고 노는 장면.
패배감에 물들어, 좌절하고 있는 일본 선수들.
대한민국의 국민이 열광하는 장면!
“크으, 이거 재밌겠는데요?”
“그러게. 근데 일본 애들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려 할까?”
“어쩌겠어요. 지들이 먼저 도발했는데.”
그것도 그랬다.
강일은 핸드폰을 꺼내 하이디엔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자,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소식 들었어?”
“네. 재미난 짓을 했네요.”
“가서 밟아줘도 되겠지?”
“물론이죠. 누가 감히 강일 님을 건듭니까?”
하이디엔은 대놓고 판을 깔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드레젠의 진짜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4
“음-.”
“어이, 뭐 하고 있어?”
“드레젠이라는 사람, 영상 보고 있어.”
다시 보기, 그리고 브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여인.
화려한 퍼포먼스.
압도적인 마나량으로 찍어 누르는 스킬.
사나다 마에는 그 점을 약점으로 꼽았다.
‘마나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분명 약점은 있을 거야.’
그래서 도발 아닌 도발을 했다.
한국.
E 스포츠의 강국이자,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
그들을 꼭 넘어서고 싶었다.
“공략법은 찾았어?”
“기술이랑 물량 싸움으로 밀고 나가야겠지.”
“그게 가능할까?”
“우리가 일반적인 한국 선수들보다 기량이 떨어지진 않을 거야. 최대한 시간을 끌고, 그를 고립시키면 돼.”
사나다 마에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중 하나는, 한국 선수들의 기량을 우습게 봤다는 것.
두 번째는, 드레젠의 진짜 특기는 바로 영광의 전당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스펙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잖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역시 그런 부분이고.”
“난 어째 좀 걱정된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진짜 실력자는 일본이란 걸 보여주겠어.”
게다가 그녀에겐 증명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일본은 콘솔 게임 시장이 컸고, 온라인 게임 시장은 위축되어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곧 일본 E 스포츠 시장의 부흥이 걸렸다.
꼭 위엄을 달성해야만 한다.
‘드레젠을 이용하는 건, 단순히 한일전만 치르려는 목적이 아니야.’
이 일만 원활하게 풀리기를 기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
이번 일만 성사된다면 정계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며, 딸에게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그녀는 절대로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