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230화 (231/279)

제 230화

230화 – 진정한 평화를 위해

#1

드워프는 성공적으로 침공을 막았다.

덕분에 도시 외곽이 완전히 박살 나버렸지만.

자발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십 년 동안 일궈왔던 유산들이 쑥대밭이 되었으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위기는 넘겼군.”

“당신이 드워프의 지도자인가요?”

그의 곁으로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렸다.

자발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름다운 여인의 흉부가 보였다.

“으잉?”

“위를 보셔야죠.”

어딘가 나무라는 목소리에, 그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훤칠한 키를 가진 엘프가 눈에 들어왔다.

엘프.

말로만 들었던 종족이었다.

실존하는지도 몰랐는데-.

그래서일까, 그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엘프 하이디엔이라고 합니다. 드워프들을 도우러 왔어요.”

“아아, 성좌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구려!”

“성좌와는 관계가 없답니다.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안배하셨을지도 모르죠.”

“크흠! 어쨌든 감사를 드리겠소. 덕분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소이다.”

자발라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예를 보였다.

그녀 역시 그들의 예를 받아주었다.

자발라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함께 온 남자는 어디 간 거요?”

“안쪽에 일을 해결하러 들어갔을 겁니다. 곧 나올 거예요.”

“대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요. 당신은 외부에서 왔으니,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되오만.”

하이디엔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드워프들은 마족에 대한 것들을 알고 있으니, 그것부터 이야기를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들이 지키고 있던 저 균열 알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그렇소. 끔찍한 기계 생명체들이었지. 오늘 그들이 침공한 것도 균열이 벌어졌기 때문이니까.”

“마족, 베리드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자발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절로 몸이 경직되었다.

마족의 대대적인 침공이라니.

이 땅이 어떻게 되려고 그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밖에 탑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렇소.”

“그 탑은 각 종족의 멸망을 앞당기는 힘이 있어요. 마침 우리가 그곳을 부수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 그대들이 탑을 부쉈다고?”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인간에 대한 것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나 단신의 힘으로 많을 것을 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발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그게 가능한 일이오?”

“네. 저분은 전직 용사였으니까요.”

그녀는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으로 드레젠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조금 있으면 자발라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들고 올 거니까.

하이디엔은 그렇게 믿고 미소를 지었다.

자발라 역시, 그녀의 웃음이 퍽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2

“끄으- 죽여라.”

“에이, 내가 말 했잖아. 안 죽인다니까?”

“이…… 악마 같은…….”

“악마 같은 놈은 너고.”

동족을 배신하고 마족에게 미래를 팔아넘긴 자들이 할 말이 고작 악마 같은 놈이라니.

웃기지도 않은 녀석들이었다.

뿌득-!

관절을 더욱 비틀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를 부러뜨리거나 하는 고문 방법이 아니었다.

-악랄한 거 보소

-역시 사탄의 후예ㅋㅋㅋㅋ

-사탄 : 나도 저렇겐 안 해;;

인대와 건을 조금씩 파열시켜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

드레젠이 자주 쓰던 고문 방식이었다.

거기에 마나를 이용한 기교를 살짝 더해주면?

“으아아아아아아-!”

“어허, 지금부터 시끄럽게 하면 1분씩 추가다.”

“끄흡,”

“착하지. 다시 한 번 물을게. 너희들밖에 없나?”

“우리들밖에 없다고 몇 번을…….”

드레젠이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담담히 ‘1분 추가’라고 말하며 마나를 흘려보냈다.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드워프를 괴롭혔다.

“끄으으으으으으-!”

“이 방법이 악랄한 게 뭔지 알아? 절대 안 죽는다는 거야. 쇼크사도 안 와. 마나가 고통과 회복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어차피 남은 마나는 많이 있었다.

드워프 하나 조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아직 그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말할 생각 없으면, 계속 버텨 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드워프는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또렷한 정신은 고통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라고 했다.

끔찍한 고통은 참을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겁의 세월 같았지만, 실제로 지난 것은 겨우 1분 정도였다.

“오, 여기까지 잘 버텼네? 그럼 이제 두 배로 간다?”

‘차라리 죽여어어어-!’

이미 사지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겼고, 힘줄, 인대는 모조리 박살 났다.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정말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아, 드워프는 발악하듯 입을 열었다.

“순찰 조! 순찰 조가 외부의 정보를 가지고 옵니다! 제발, 제발 그만!”

“오, 그래? 고맙다. 그래, 내가 괴롭히는 건 그만두지.”

마침 저 멀리서 여러 발소리가 들렸다.

이곳으로 오고 있던 드워프의 군대겠지.

드레젠은 고문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들을 맞이했다.

울드렌은 특공대를 이끌고 유물이 있는 곳으로 도착한 상태였다.

“벌써 상황이 끝났나 보군.”

“조금 늦었네. 아티팩트는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당신은 대체 누구요?”

드레젠은 한 손에 성좌, 스텔라의 힘을 피워냈다.

아주 조금이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는 힘.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증표였다.

“성좌의 대리자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그 힘은…….”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거야.”

신성력도 아니었고, 혼돈의 힘도 아니었다.

드워프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에도 분명히 해당 구절이 있었다.

<은빛 힘을 내뿜는 자, 모든 성좌의 어머니이거나, 그녀의 대리자일지니.>

“성좌의 후계자로군요.”

“후계자는 아니고, 같이 일을 하는 사이야. 순찰 조는 누가 관리하고 있지?”

울드렌은 눈동자를 돌려, 뒤에 쓰러져있는 동포들을 바라봤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 역시 꿈틀거리는 무언가와 처참한 시체들을 바라봤다.

기분이 묘해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지.

하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다른 간부가 있소만, 저기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에게 뭐가 얻어낸 거라도 있소?”

“맞아. 순찰 조가 외부에서 소식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거든.”

“흠.”

울드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머리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 정보라면 돌아가는 일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골치가 아팠다.

이렇게 적은 수만 살아가는데도 배신자가 있고, 분열이 있었다니.

한숨이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후우, 그대에게 감사를 표하겠소. 밖에 난리도 끝났겠지. 저자는…….”

“아아, 알아서 하라고.”

“알겠소. 저놈을 끌고 와.”

“예.”

널브러져 있는 드워프는 장인 중에서도 유명한 자였다.

그동안 그들에게 좋은 무장을 만들어 준 자였는데, 이렇게 배신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울드렌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배신자를 끌어냈다.

다른 드워프들도 잔뜩 굳은 얼굴로 배신자를 끌어냈다.

“왜 그랬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

“문제?”

“그래! 저주받은 이 몸뚱이! 저주받은 환경! 그리고 저주받은 운명까지!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

드워프들은 일족의 번영과 안녕을 꿈꾸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개인의 열등감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지독히 저주받은 운명들.

단지 드워프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들이 진짜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믿나?”

“적어도 수천 년 동안 방관했던 성좌들보단 낫겠지!”

“성좌들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의 추종자가 성좌보다 낫다는 건 아니다. 머저리야.”

드레젠의 평가는 냉담했다.

그래.

성좌들이 방관한 것은 빈말로도 잘했다고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다른 일을 하거나 했겠지.

그렇다고 드워프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웃기지 마라! 그들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말해 뭐하냐.”

드레젠은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드워프를 설득할 마음은 없었다.

그를 구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도시의 일이 끝났다.

이젠 밖의 일을 해결해야 할 차례였다.

#3

드워프 마을은 아직 어수선했다.

드워프가 지은 거대 지하도시는 장단점이 확실했다.

외부의 침입에는 확실히 굳건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부에서 무너뜨리면 하염없이 나약해진다는 점.

지금 드워프 도시는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빨리 수습하고 다시 정비해야 하는데-.”

“제가 좀 도와드릴 수 있겠는데요?”

하이디엔은 불길을 진화하며 연신 바쁘게 뛰어다니는 드워프들을 바라봤다.

전투가 끝난 직후, 노곤한 몸을 이끌고 뒷정리를 하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그녀는 거대한 마나를 움직였다.

드워프들의 몸에 환한 빛이 깃들었다.

“이, 이건?”

“미약하지만 버프를 걸어 드렸어요. 회복 마법은 덤입니다.”

그녀는 다섯 개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쉬운 마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엄청난 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자발라는 그녀를 여신 보듯 쳐다봤다.

“자, 이제 작업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거예요.”

“거듭 감사하오. 그대는 천사 같구려.”

“진짜 천사들은 더 대단하답니다.”

하이디엔의 도움 덕분에 수습은 빠르게 진행됐다.

폭발하거나 전소된 건물이야, 바로 복구가 어렵겠지만, 잔해를 치우고 부상병을 옮기는 등의 일을 진행했다.

그러는 사이, 드레젠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드레젠 님!”

“무의 추종자들의 끄나풀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불쑥 끼어드는 자발라.

드레젠은 자연스럽게 그의 참견을 허락해 주었다.

대화에 끼게 된 자발라가 이야기를 들었다.

“드워프 한 놈을 심문해서 물었다. 순찰 조가 외부 세력과 내통하고 있다더군.”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었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다.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해.”

“알겠소. 한데……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드레젠과 하이디엔이 눈을 마주쳤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자와 엘프 로드인 자.

두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이디엔은 드레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요.’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드레젠은 고개를 돌려 자발라를 쳐다봤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하이디엔이 미소 지었다.

그래, 그들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