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8화
228화 – 성좌를 꺾어라
#1
웨이드.
드워프의 몸으로 성좌의 자리에 올라간, 위대한 영웅.
하지만 그의 말로는 결국 타락이었다.
창조주가 자신을 중히 쓰지 않는다는 열등감.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전투.
그 모든 것들이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왕년에 하이브 좀 때려 부수던 노인넵니다. 절대 방심하지 마세요.”
“알고 있어요. 성좌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만…….”
하이디엔은 조용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녀에게 이곳은 게임이되, 게임이 아닌 곳이었다.
일족, 그리고 미래를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였다.
일반 유저들이랑은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클클, 와라. 애송이들아.”
웨이드는 아직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드레젠이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자, 웨이드의 인상이 딱딱하게 변했다.
파지직-!
그건 너무도 익숙한 기운들이었다.
왜 모르겠는가.
“어디서 되다만 힘을 흉내 내는 것이냐-!”
콰아아아-!
웨이드의 작은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드레젠의 머리 위.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찍는 것을, 드레젠이 곧바로 반응했다.
콰아앙-!
탑 전체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격돌이었다.
“잘난 성좌의 힘을 빌려 쓴다고 해서, 네가 뭐라도 된 것처럼 느껴지겠구나!”
“딱히 빌려 쓰는 건 아닌데.”
말까지 할 수 있는 여유까지 보였다.
웨이드는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탑 꼭대기까지 어중간한 실력으로 올라온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저년부터 노려야겠군!’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으나, 마법사.
자신처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자들에게 버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력으로 드레젠을 밀어내고, 곧바로 하이디엔을 노리는 웨이드.
그는 곧바로 성좌들에게 받은 무기, 거대한 장총을 발사했다.
“어딜-.”
하이디엔 역시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에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쉴드를 전개했고, 겹겹이 둘렀다.
더블 캐스팅이 아닌, 쿼드라 캐스팅까지 선보인 하이디엔의 주변엔 공격마법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가라-!”
“흥! 마법사도 한 가닥 한다 이거구나!”
웨이드는 더욱 거세게 둘을 몰아쳤다.
그의 장기는 압도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총탄 세례였다.
그 총탄 하나가, 엄청난 마나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리저리 도탄이 되어 사각을 파고드는 총탄들.
드레젠은 마나를 둘러 어지간한 것들은 몸으로 때웠다.
‘일일이 총알을 가르고 있을 시간은 없어.’
무엇보다, 드워프가 버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보여, 웨이드를 몰아치기로 결심했다.
파지직-!
마력 위에 흑뢰를 덧씌우고, 그 안에 혼돈의 힘을 집어넣었다.
전성기보다 떨어지는 몸뚱이에 그 모든 힘을 압축하려니 팔 전체가 벌벌 떨렸다.
“이 쥐새끼 같은 것들이! 일단 너부터 상대해 주지! 마법사!”
“이거, 아주 얕보인 모양인데-.”
콰아아앙-!
웨이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사각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캐스팅할 타이밍을 주지 않고, 절묘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무언가!
“성좌……라고 생각해서 긴장했더니, 별것도 아니었잖아?”
“뭐라!?”
키기긱-!
쇠와 쇠가 부딪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드레젠은 그사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총알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하이디엔을 믿었다.
엘프 로드는 강하고, 현명한 자였으니까.
“너- 마법사가!”
“마법‘도’ 쓸 줄 아는 거랍니다. 성좌 나으리!”
기다란 묵빛 창이 웨이드를 튕겨냈다.
이어지는 마법 세례.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창사였다.
8서클 대마도사와 마스터급 창술의 소유자.
그것이 전쟁 끝판에 완성된 하이디엔의 모습이었다.
“당신은 진짜 성좌가 아니로군요.”
하이디엔이 웨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이 기폭제였을까, 웨이드의 마나가 폭발했다.
“으아아아아아-! 이런 건방진 귀쟁이 년이!”
“이제 당신은 나랑 놀아야지.”
쿠와아아아아-!
드레젠의 일격이 쏟아졌다.
웨이드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그의 일격을 막았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 검술! 그 검술은-!”
“그래, 당신이라면 익숙하겠지? 보아하니 사념이 되어 힘도 많이 빠진 것 같은데, 그만 포기해.”
“시건방진 자식들이, 드워프의 영웅을 무시하지 마라-!”
전투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세 사람의 전투는 더욱 격렬해졌다.
특히, 모든 힘을 집중한 드레젠의 위력은, 웨이드도 침음을 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탑 전체가 요동쳤다.
-뭐가 보이긴 하니?
-ㅋㅋㅋ 어지러워ㅜㅜ
-역시 안 보이는 맛으로 보는 거지!
-ㅋㅋㅋㅋㅋ 아 그거 인정이짘ㅋㅋ
탑 안에서 싸운 것만 아니면, 대륙 전체가 와서 구경해도 모자랄 전투였다.
그렇게 조금씩, 두 사람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다.
웨이드는 조급했는지, 게임 시스템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마족들아! 빨리 나를 도와라! 당장!”
“마족? 설마-!”
하이디엔이 웨이드의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는 듯, 그에게 달려들었다.
웨이드가 하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그는 차원을 찢어 마족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이 마족들이 탑 밖으로 나간다면, 이 일대는 쑥대밭이 되겠지.
“결국, 성좌를 버리고 마족을 택했다 이거군. 결국은 배신자였네.”
드레젠이 천마검법을 펼쳤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천마검법 중 발군의 파괴력을 지닌 초식을 선보였다.
그의 뒤에서 거대한 악귀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천마검법 · 7장 · 천마대멸겁
(天魔劍法) · (七章) · (天魔大滅迲)
다섯 갈래의 악귀가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나아갔다.
유형화된 마나가 공기를 찢고 나아갈 때, 악귀의 비명이 들렸다.
소리, 파괴력, 속도.
삼박자가 모두 갖춰진 기술이 이제 막 열리는 포탈에 직격했다.
삐이이이이-!
인간의 가청영역을 넘어선 폭음이 몰아쳤다.
“―――――――――――!!”
폭발의 여파로 날아간 웨이드가 무어라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워낙 소리가 커, 드레젠과 하이디엔에겐 닿지 않았지만.
천마검법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탑의 외벽에 구멍이 뚫렸다.
꿀꺽-.
‘역시 굉장해.’
하이디엔이 작게 감탄했다.
방금 그의 모습은, 일시적이나마 전성기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 눈빛.
막아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담대함.
그에 맞는 실력까지.
“쿨럭, 이-, 이 개같은 자식들이!”
울컥, 검은 피를 쏟아낸 웨이드가 분노했다.
과연 천마의 검법.
하지만 그처럼 완벽한 기술은 아니었다.
진짜 천마가 썼다면, 이 탑쯤은 한 방에 가루가 되었겠지.
쿵-!
“찢어 죽일 성좌 놈들! 그 끄나풀들은, 이 웨이드가 용서하지 않을 거다!”
분노한 그가 땅을 한 번 쿵! 찍고, 다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이디엔이 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지금 웨이드는 상당히 타격을 입었다.
흘끔, 옆을 보자 그녀의 얼굴이 살포시 구겨졌다.
‘용사님의 상태도 좋지 않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드레젠.
방금 전 공격으로 오른팔이 심하게 다쳤다.
황금빛 가루가 심하게 휘날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이디엔은 얼른 회복마법을 걸어 주었다.
“후우, 고마워요.”
“괜찮아요? 그 팔…….”
“검 휘두르는 것 정도는 문제없어요. 대신 결정타는 하이디엔이 먹여줘야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드도 전투 초반의 기세는 없었다.
분명 그도 힘이 떨어졌을 테지.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마나통 30만의 힘을 보여드리죠.”
“풉.”
“왜, 왜 웃어요!?”
“아니, 대표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마나통이라니.”
“크, 크흠! 이, 이건! 어디까지나 저도 게이머니까, 같은 유저의 입장에서 말하는 거라고요!”
귀까지 빨갛게 변한 하이디엔이 버럭 소리쳤다.
당연히 이건 시청자들이 바로 클립으로 따버렸고.
그녀는 영원히 커뮤니티에 떠돌 운명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이 연놈들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시시덕거리는지 모르겠군. 내가 우습더냐!?”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아요.”
하이디엔이 마법과 함께 돌격했다.
뛰어난 창술까지 보여준 그녀는, 그야말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재였다.
살 떨리는 공방을 주고받을 때, 드레젠은 검을 왼손으로 고쳐 잡았다.
그리고 사신을 소환했다.
“역시 배신자는 참수형에 처해야죠.”
-고문해서 죽여야 되는데
-정보를 캐내야지!
-그러기엔 시간이 얼마 없음 ㅜㅜ
-빨리 하고 드워프 구하러 가즈아!
“성좌이긴 했지만, 결국 열등감에 못 이겨 저렇게 된 겁니다. 그 끝은 결국 사념행이고요.”
어찌 보면 불쌍한 영혼이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동료를 믿지 못하는 존재.
그 끝은 결국 파멸일 뿐이었다.
동료를 배신한 자들을 가만둘 성좌들이 아니었으니까.
“당신은, 차라리 창조주에게 고민을 털어놨어야 했어.”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우리를 왜 저주받게 했냐고.
그렇게 말했다면, 창조주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 주지 않았을까?
그도 지구를 알고 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나는 억울하다! 나는-!”
“그 억울함을 토로했어야지. 열등감 덩어리야.”
드워프의 사념은 결국, 열등감일 뿐이었다.
드레젠이 다시 힘을 모았다.
쿠구구구구구-!
더 강하게.
더 완벽하게.
‘옛날에도 이거 한 번 했다가 사흘을 요양했었는데.’
웨이드를 일격에 찢어발기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도 성좌까지 올라갔던 드워프였다.
그 드워프의 자랑거리가 바로 단단한 내구력이었고.
“후우우우우-.”
파직-!
마력 위에 신성력을 덧씌우면 어떻게 될까?
서로 반대되는 힘이라, 반발력을 일으켰다.
밀어내는 반발력은 곧 폭발로 이뤄졌는데,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레드릭의 아들에게 치명상을 입혔었지.
“허튼수작!”
“드레젠 님에겐 못 갑니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웨이드가 튀어나가려고 했지만, 가만히 있을 하이디엔이 아니었다.
웨이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엘프 여인은, 그야말로 엄청난 실력자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드래곤과도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자를 떼어놓고 드레젠에게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켜라아-!”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푸슉-!
검은 폴리곤 덩어리가 휘날렸다.
하이디엔을 지나치는 웨이드.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황급히 몸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죽어라-!”
“-이미 늦었어.”
하이디엔은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었다.
이제 성좌를 뛰어넘을 시간이었다.
드레젠이 힘차게 검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