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7화
227화 – 드워프와 웨이드.
#1
드워프의 골렘은 그들의 형상을 닮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들과 비슷한 형태의 골렘을 만든 것과 달리, 드워프는 오직 실용성을 강조했다.
두 발로 서는 것보다 네 발로 서는 것이 조금 더 튼튼했으며, 네 발로 서는 것보다 두 발로 서는 것이 조금 더 유연했다.
이렇게, 용도에 맞는 설계를 함으로써 역할군을 나눴다.
[명령 이행]
[드워프 말살 프로토콜 실행]
균열을 찢고 나온 것은 하이브와 마족의 군대였다.
두 기의 하이브가 이끌고 나온 베리드의 군대가 드워프를 덮쳤다.
콰아앙-!
대포에서 불이 뿜어졌고, 하이브와 베리드의 군대를 요격했다.
“쏴! 한 방에 무너뜨려라!”
드워프의 막강함은 바로 이런 곳에서 드러났다.
인간들과 달리, 엄청난 수성능력을 지닌 종족.
같은 병력으로 수성전을 진행할 시, 최고 다섯 배까지 효율을 낼 수 있는 종족이 바로 드워프였다.
“우리는 웨이드의 화신이다! 정신 차리고 포격 날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다 부숴버려!”
콰과과광-!
골렘 위에 얹혀있는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들은 마나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하지만, 마나에 관련된 물품을 만드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한 탄약?
드워프의 손에 걸리면 일도 아니었다.
“계속 쏴라-!”
균열 근처가 초토화되었다.
현대에서 흔히 쓰이는 고폭탄이 펑펑 터져 나갔다.
콰앙-!
하이브의 장갑에 맞은 폭탄 하나가 맞고 튕겨 나갔다.
[위력 계산 중]
[전면 마나 추가 집중]
[대형 수정. 방어력이 높은 개체 전열로.]
척척-!
베리드들이 움직였다.
덩치가 큰 녀석들이 앞으로 나섰다.
지잉-!
마나로 이뤄진 방패가 만들어졌다.
콰아아앙-!
근처에 떨어진 폭탄이 마나 방패를 두들겼다.
“대장! 저 자식들, 전열에 튼튼한 놈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도 더 센 폭탄으로 바꿔!”
저쪽에서 대형을 수정하면, 이쪽도 대응방법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두 종족 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드워프 로드, 자발라는 냉철한 눈동자로 전황을 훑었다.
아직은 백중세였다.
‘돌파구가 필요한데…… 누가 안 도와주려나.’
적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반대로, 이쪽은 물자와 병력에 한계가 있었다.
자발라가 입술을 씹었다.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렇게, 지독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2
한편 드레젠과 하이디엔 쪽은 거침없이 탑을 오르고 있었다.
벌써 최상층에 제법 가까워졌다.
하이디엔의 마법은 절묘하고 위력적이었으며, 드레젠의 전위는 절대 뚫리지 않았다.
드레젠이 앞에서 막고, 하이디엔이 쓸어버리는 전술.
간단하지만 정말 어렵고, 합이 잘 맞아야 하는 방식이었다.
[드워프의 멸망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탑을 정복하세요.]
[멸망까지 2 : 50 : 30]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창 하나.
이것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올라가는 중이었다.
드레젠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이디엔은 당연히 모를 일이었고.
‘설마, 탑이 멸망을 앞당기는 장치였다니.’
이 탑들을 모두 때려 부쉈던 전성기의 드레젠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캐릭터는 현재 하이디엔의 수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조금씩 숨이 거칠어지는 드레젠과 달리, 그녀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드레젠 님. 힘내세요.”
“후우,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더 극한 상황에서도 싸워봤으니까요.”
숨이 잘 안 쉬어질 때까지 검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앞이 몽롱해지고, 꿈속에서 전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있던가.
드레젠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투를 지속해봤고, 승리한 경험이 있었다.
뼛속 깊이 각인된 생존본능.
그것이 드레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이제 한 다섯 번 정도만 더 싸우면 되겠군요.”
“그러게요. 탐지 마법에도 걸리는 걸 보니.”
강력한 기운이 점진적으로 포진해 있었다.
드레젠의 기억대로라면, 이 위는 골렘들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골렘.
드워프의 골렘은 강력하고, 더 단단했다.
인간이 만든 골렘과는 차원이 다른 병기였다.
“하이디엔.”
“네?”
“드워프가 만든 골렘과 싸워본 적 있어요?”
“아, 아뇨?”
드워프는 전쟁 초반, 이미 멸망한 상태였다.
그들의 힘만 있었어도 변수가 더 많았을 텐데.
하이디엔은 드워프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비운의 존재였으니까.
“골렘과의 전투는 드래곤과 필적할 만큼 어려울 겁니다. 왜 마족들이 드워프의 기술력을 경계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 그 정도예요?”
“물론 성룡급은 아니지만, 어쨌든 힘든 전투가 될 겁니다. 드워프는 마법은 못 쓰지만, 마법을 쓰게 만드는 재주는 있으니까요.”
하이디엔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니.
묘한 감정이 뒤섞였다.
게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두근거림과 드워프가 멸망해버려 전쟁에서 볼 수 없었던 드워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얼른 올라가 보죠.”
“네. 새로운 공략이 되겠어요.”
드워프의 골렘 제작 기술을 배운다면, 반드시 큰 전력이 될 것이라 믿었다.
두런두런 말을 하는 사이, 다음 층에 도착했다.
드워프가 아닌, 골렘과의 전투.
기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골렘.”
“엘프들은 저런 기계를 만들지 않죠.”
“기계는 자연을 파괴하는 힘이니까요.”
엘프는 기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건 상식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자연을 깎아 만든 인공적인 무기였다.
치익-!
마나로 돌아가는 구동계가 작동하며, 붉은 눈이 두 사람을 노려봤다.
“가죠. 그래 봤자 골렘은 기계입니다. 기계는-.”
콰아앙-!
드레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나가 잔뜩 실린 포탄이 날아왔다.
포탄의 위력은 웬만한 고서클 마법과 비슷했다.
하이디엔은 블링크를, 드레젠은 스텝을 밟아 포탄을 피했다.
“-어차피 패턴이 정해져 있거든요.”
기계는 치밀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무수히 많은 패턴을 기반으로 움직였다.
드워프가 만든 골렘은,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였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개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골렘을 상대할 때 필요한 열쇠였다.
“골렘은 기본적으로 어떤 패턴에 대응하는 패턴을 내놓습니다.”
드레젠이 빠르게 질주하자, 골렘은 탄막을 쏟아냈다.
쿠웅-!
거대한 앞발이 바닥을 굴러, 거대한 파편들을 날렸다.
훌쩍 위로 피해내자, 조준해서 포탄을 쏘았다.
“이 대응하는 패턴을 파훼하기 위해선, 우리도 패턴을 꼬아서 낼 필요가 있습니다.”
골렘과의 전투는 가위바위보랑 똑같았다.
서로 이기는 패턴을 내놓다가, 빈틈을 만들어 찔러야 하는 게임.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간 바로 잘 익은 쥐포가 될 정도였다.
[체인 라이트닝]
콰자자자작-!
새하얀 번개 줄기가 골렘을 강타했다.
안쪽에 있는 구동부를 망가뜨릴 심산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드워프가 만들어낸 골렘은 ‘고작’ 체인 라이트닝 정도에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좋아, 패턴이 조금 꼬였습니다. 대응하는 것이 느려졌어요.”
“계속 마법을 날릴게요!”
골렘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졌다.
가위를 내야 할지, 바위를 내야 할지 아주 잠시 고민한 결과였다.
하이디엔은 절묘한 타이밍에 마법을 사용했다.
조금씩 위력을 높여서.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골렘은 완전히 렉걸린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콰지지직-!
하이디엔이 거대한 마법을 준비했다.
그녀의 손에서 뇌룡이 꿈틀댔다.
7서클 마법 : 라이트닝 드래곤이었다.
단순 파괴력만으론 수위에 꼽히는 마법이었다.
“단번에 꿰뚫어 드리죠!”
콰아아아아아-!
드레젠이 골렘의 혼을 쏙 빼놓는 사이, 뇌룡이 날았다.
무시무시한 입을 쩍 벌린 뇌룡이 그대로 골렘을 집어삼켰다.
구동부가 파괴되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고열로 동체가 녹아버리기 시작했다.
“잘 했습니다. 대표님.”
“제 마법도 꽤 쓸만하죠?”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프로도 찜쪄먹을 수준이었다.
전 세계 유저 중, 그녀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자는 없었으니까.
고위력 마법을 난사하고도 표정 하난 안 바뀌는 것이, 대단했다.
-그나저나 대표님 캐릭은 마나가 몇이에요?
-ㅋㅋㅋㅋㅋ 그거 궁금했음
-대표니까, 치트 캐릭 하나 만들지 않았을까?
-랭킹에서 빼면 상관없긴 하짘ㅋㅋㅋ
“저요? 제 마나는 30만이 조금 넘어요. 치트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베타 테스트때부터 키워왔던 캐릭터를 지우진 않았어요.”
-30만?
-ㅋㅋㅋㅋ 지금 드레젠이 몇이지?
-아니 실화야?ㅋㅋㅋㅋ
-30만????
30만이라니.
유저들이 깜짝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드레젠의 마나가 5만이 채 안 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문제는, 하이디엔이 기겁할 만한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오래 한 사람은 다르네
-랭킹에서 뺀 이유가 다 있었다 이 말이다;;
-ㅋㅋㅋㅋㅋ반칙! 반칙!
-대표님이니까 인정합니다.
하이디엔이 키우는 캐릭터는 절대 랭킹에 집계되지 않았다.
아무리 치트 프로그램을 썼어도, 이렇게 마법을 잘 다룰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드레젠이 피식 웃었다.
“대표님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아마 저 다음으로 세이브 더 브락시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걸요?”
“이래 봬도 개발자니까요. 엣헴.”
실제로 시뮬레이션 마법을 구현하고, 설계한 것이 하이디엔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린 두 사람은 골렘을 격파하며 최상층까지 올라갔다.
#3
[드워프 멸망까지 : 0 : 55 : 12]
시간이 빠듯했다.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은 타이머.
이 시간에, 드레젠과 하이디엔은 최상층에 도착했다.
기계의 잔해더미 위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그들을 발견했다.
“이거, 여기까지 올라온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는걸.”
“웨이드. 맞습니까?”
“그래. 내 이름도 유명한가 보군. 크크크.”
중2병이 심하게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웨이드는 거대한 병기를 가지고 있는 드워프였다.
그 병기는, 총과 창이 합쳐진 기묘한 무기였다.
병기의 출처는, 역시 성좌들이었다.
“왜 무의 추종자와의 싸움을 그만둔 겁니까?”
“왜 싸움을 그만뒀냐고? 흐…… 그건 위에 있는 성좌들에게 물어봐라.”
진짜 웨이드 본인인 것 같았다.
그가 훌쩍 내려오며 말했다.
총구가 하이디엔과 드레젠을 겨누고 있었다.
“내가 친히, 너희의 영혼을 성좌들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우리를 영혼으로 만드는 것이 쉽진 않을 텐데.”
드레젠이 피식 웃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육체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