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4화
224화 – 새로운 종족을 만나러 갑시다.
#1
신성 왕국 근처.
누군가가 열심히 정보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이,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흠, 이 정도면 단장님께 가져갈 수 있겠군요.”
달빛에 어렴풋이 비추는 모습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 찾은 거요?”
“네. 대현자에 대한 정보가 여기 있었군요.”
“그럼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군.”
여인, 아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재정비를 얼추 완료한 정보 조직의 수장을 만나는 중이었다.
대륙의 정세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여건.
그중에서 그들이 주목한 것은 ‘영웅’이라 불릴 만한 자들의 행보였다.
“문헌이 뭔가 이상하군요. 지금 영웅이라 추앙받는 자들은 셋. 하지만…… 뭔가 더 있는 기분은 뭘까요?”
“비밀을 파헤치려면 위험 부담을 짊어져야지. 어때, 더 할 건가?”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시기를 늦춰야 하겠네요. 하…… 안 그래도 무의 추종자들이 귀찮게 해서 짜증 났는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그는 적잖은 인연으로 얽혀 있었다.
한때, 두 사람은 상관과 부하의 관계였으니, 함께 움직이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그림자 기사단을 쫓는 놈들이 있다니. 어지간히 간이 크긴 크군.”
“뭐어, 그들이 할 일이란 것이 그런 거겠죠. 어때요, 위도우. 당신도 제대로 훈련받아 볼래요?”
“그런 무식한 훈련은 받고 싶지 않아. 내가 천재도 아니고.”
위도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제 다크몬드가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다.
정보 단체로써 활동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어서 움직이자고. 놈들이 여길 발견하는 것도 시간문제니까.”
“손잡아요.”
“뭐?”
“손. 잡아요. 얼른 가게.”
아그네스는 위도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남자가 당황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의 신형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일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이미 사라졌습니다!”
“젠장! 이번에도 놓친 거야!? 이 새끼들아아아-!”
뒤따라온 이들은 상관의 히스테리를 받아내야 했다.
유구무언이었다.
놓친 것은 사실이었고, 그들은 소중한 정보를 잃었다.
여기뿐만이 아니었다.
무의 추종자들이 있는 곳 어디든, 그림자 기사단이 다녀갔다.
“이 일을 어떻게 보고하냐, 어떻게-!”
처음 그들의 계획은 그림자 기사단을 끌어들여, 각개격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자 기사단은 호락호락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소재를 알아도 절대 모습을 볼 수가 없었던 것.
왜냐고?
거기에는 다크몬드의 은밀한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을 바꿔야 한다. 당장 보고서 작성해. 당장!”
시체를 넘어, 사람들이 황급히 흩어졌다.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지휘관은 빠진 정보들을 확인했다.
적들은 ‘영웅’에 관한 정보를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체 공학, 각지의 검술과 마법 등등에 대한 것들도 빼앗았다.
대체 저런 거로 뭘 하려는 걸까?
‘알 수 없군. 말단인 우리들로서는…….’
지금은 각지에서 날뛰고 있는 그림자 기사단을 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대륙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남쪽에 있는 드워프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2
드워프는 예로부터 지하에 사는 종족이었다.
땅굴을 파고, 광석을 채집하며 사는 종족.
그래서 천혜의 요새였고,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종족에도 고민거리는 있었으니.
“균열이 더 벌어졌수다.”
“거기다 정체 모를 탑까지 솟아 올랐수. 이제 우리의 힘만으로 어림도 없을게요.”
드워프들은 총체적 난국을 겪는 중이었다.
이상한 기계 생명체가 나오는 균열이 점점 커졌고. 알 수 없는 탑까지 솟아올랐다.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오는 탑은, 새로운 재앙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돌았다.
주민들은 연신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이제라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외다. 이대로 있다간 갇혀서 몰살당한다고!”
“우리도 그러고야 싶지! 하지만 누가 이런 난쟁이들을 도와주겠단 말이야!”
사람들은 드워프가 자존심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반대였다.
드워프는 자신들의 외모를 저주받았다고 생각, 극도로 소심한 이들이었던 것!
이 어마어마한 사실은 드워프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몰랐다.
왜냐고?
그 누구도 드워프와 만나지 않았으니까.
“끄응…… 그것도 그렇군.”
“일단 정찰대를 파견하도록 하지.”
“으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구원자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냐고!”
드워프가 교류가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오는 종족을 모두 박대했다.
의식 저편에 깔린 열등감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부추겼다.
그래서 오해에 오해가 겹쳐, 드워프는 괴팍한 종족이라는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수. 지금이라도…….”
“아 그러니까! 누가 우리 같은 땅딸보를 도와주겠냐 이 말이야!”
“모르면 성좌한테 물어보면 되지! 우리도 성좌가 만들었을 거 아니유!”
누군가 소리친 덕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성좌한테 얘기를 해. 멍청한 놈아. 성좌가 뉘 집 개 이름이야!?”
“아 그럼 어떻게 하라고!”
“요 뒤에 안 쓰는 재단 있잖아. 그거 원래 성좌들이 내려오던 통로였다던데?”
“그래?”
드워프 수뇌부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성좌!
옛날에 썼던 그 제단!
그곳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자, 그렇다면 그 제단은 어디 있을까?
“그, 그런데 그거 얼마 전에 공사 때문에 묻어버린 거로 알고 있는데…….”
“뭐!? 미쳤냐!?”
“아 그 명령을 내린 건 형님이었잖수!”
“당장 다시 땅 파!”
드워프의 로드, 자발라가 말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닦달하는 모습이, 꼭 군대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드워프들은 묻혀버린 제단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성좌들의 그들의 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그들을 구원해 줄 누군가가 오고 있긴 했다.
드레젠.
엘프, 서리, 거인족을 구원한 그가 드워프마저 구원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드워프들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3
다음날.
드레젠은 합류 요청이 뜬 것을 발견했다.
‘하이디엔’이라고 적힌 코드였다.
귓속말로 하이디엔이 볼일이 잠깐 있다고 얘기했다.
[이번 여행은 파티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여러분?”
-아 ㅋㅋㅋ 이건 무족건이지!
-대표님! 후욱후욱!
-여기 빨리 주인공 불러 주시죠!
-ㅋㅋㅋㅋㅋ아 주인공이 안 왔네!
열광했다.
지금이야, 여성 게이머, 여성 스트리머가 많아졌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게임은 남자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하이디엔이라면 엄청난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같이 가는 게 이득이었다.
그래서, 하이디엔은 자신의 캐릭터로 드레젠의 파티에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하이디엔입니다. 드워프 관련해서, 제가 도움을 드리려고 왔어요.”
“그 도움이란 건?”
“저는 마법사 유저니까, 여러 가지 도움을 줄 수 있죠. 드워프들은 정교한 친구들이잖아요?”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확실히 도움이 많이 되지.
하이디엔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게다가 드워프라면.
“그 친구들을 다루는 덴 마법사가 최고거든요.”
드워프는 손재주 하나로 먹고 사는 종족이었다.
마법?
그들은 마법이 있는지도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그래서 마법에 환장했다.
하이디엔은 정말 귀중한 전력이 될 것이다.
“아, 여러분. 회사 대표로서 하는 공지인데, 탑 공략에서 드레젠 님은 랭킹 집계가 안 될 겁니다.”
-??
-왜유?
-허허 이게 무슨 일이야!
-ㅋㅋㅋㅋ 드레젠 님 표정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소리야?
드레젠이 의문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하이디엔을 바라봤다.
그도 한 명의 유저였다.
비록 베타테스터긴 했지만.
하이디엔의 낭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신, 공략을 진행하는 가이드로 임명할 겁니다. 물론 보상은 따로 지급해야겠죠?”
-그거 찬성!
-선발대 가즈아!
-한 번 베타 테스터는 영원한 베타 테스터짘ㅋㅋㅋ
-그럼 공홈에도 걸리나요?
“네! 공식 홈페이지에도 영상을 올려 둘게요. 모쪼록 응원 부탁해요. 그리고-.”
하이디엔이 자신의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당당한 모습이, 전장의 여신과도 같았다.
“저도 탑 공략에 참여할 겁니다. 괜찮죠?”
“대표님이라면, 믿을 만하죠.”
드레젠이 웃었다.
시청자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후원 역시 자잘하게 계속 쏟아지는 중이었다.
드레젠이 미리 후원 메시지를 막아두지 않았다면, 방송 진행이 불가능할 뻔했다.
“그럼 출발하죠. 준비는 끝났으니까.”
“좋아요. 어떻게 이동하실 건가요?”
“택시 타고 가야죠.”
드레젠은 와이렉스를 호출했다.
저 멀리서 하얀색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쪽 멀리 날아가야 했으니, 꽤 긴 여행이 되겠지.
하이디엔과 드레젠은 긴 여행에도 무섭지 않았다.
“우리에겐 자동진행이 있으니까요. 갑작스러운 합방이지만, 쾌적할 겁니다.”
훗날, 패왕 콤비라고 불리는 듀오의 결성이었다.
두 사람은 드워프가 살고 있는 땅, 모라이스 돌산 지대로 향했다.
천연자원의 보고.
각종 광물의 성지인 곳이었다.
#4
드레젠과 하이디엔은 사흘을 날아갔다.
중간에 들러 식량을 사러 간 것 외에는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드디어 저 멀리, 탑이 보였다.
“도착했군요.”
-오 겁나 크네
-63빌딩보다 큰 듯?
-언제쩍 63빌딩이야 아재야ㅜㅠ
-ㅋㅋㅋㅋㅋㅋ
-요즘은 롯데 타워라구요
엄청난 높이의 탑.
검은 탑이 돌산 구릉지에 떡하니 자리했다.
저 탑 안에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겠지.
드레젠은 과거의 일을 잠시 회상했다.
“저 탑은 완전한 이면세계입니다. 무의 추종자가 뚫어놓은 게이트나 마찬가지죠.”
“베타 테스터 때도 깨보셨죠?”
“네. 이것보다 총 다섯 개의 탑을 정복했었죠. 꽤 재밌었습니다.”
빈말로도 재밌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게임이니까 그렇게 말했다.
괜히 유저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이디엔 역시 굳은 표정으로 탑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물었다.
“드워프를 먼저 보실 건가요? 아니면?”
드레젠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탑부터 부술 생각입니다. 그러면 드워프들을 구워삶기도 편하겠죠.”
“좋은 생각이에요. 가시죠. 제가 전심전력으로 서포트 해드리겠습니다.”
하이디엔이 빙긋 웃었다.
엘프의 창술을 주로 쓰던 하이디엔이었지만, 그녀 역시 8서클 대마도사였다.
마법만 따지고 봐도 대륙에서 손꼽히던 강자였던 그녀.
하이디엔의 진정한 활약이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