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9화
219화 – 괴물 안으로
#1
야마타노오로치는 긴 잠에서 깨어났다.
옆구리 부근에서 일어난 폭발.
과거, 옆 동네에 사는 건방진 드래곤 이후 처음이었다.
[으어어어어어-!]
그가 분노한 이유.
갑작스러운 폭발 때문에 고통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지만, 드래곤이 부린 마법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성좌가 낳은 죄악은 드래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억제장치였다.
즉, 드래곤 외에는 생명체로 취급도 하지 않는 고고한 자라는 것.
“야마타노오로치의 몸 곳곳엔 동굴 같은 입구가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거대한 산이 통째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오로치의 기감엔 드레젠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얼마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저지하느냐였다.
쿠웅-!
대지가 뒤흔들렸다.
‘웬만한 유저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는데.’
이건 레이드의 기준을 훌쩍 넘어버렸다.
야마타노오로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안내창이 떴다.
[월드 보스 – 야마타노오로치 출현!]
[야마타노오로치의 분노를 잠재우세요.]
[분노를 멈추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의 목숨을 끊으세요!]
“말이야 쉽지.”
-ㅋㅋㅋㅋㅋㅋ
-인정ㅋㅋㅋㅋ
-자기 일 아니라고 아줔ㅋㅋㅋ
-ㄹㅇ ㅋㅋ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이런 적을 처치할 때,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바로-.
[야마타노오로치가 알마리스를 궤멸시키기 전에 처치해야 합니다.]
[제한 시간 – 1 : 25 : 00]
한 시간 25분.
정말 애매한 시간이었다.
드레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거대한 뱀의 몸체를 훑었다.
워낙 몸체가 크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안 되면 강행 돌파를 해야겠지. 다행인지 모르겠는데, 아직 발견한 것 같진 않으니까.’
야마타노오로치가 드레젠을 발견했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드레젠은 한순간 힘을 방출할 거니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진짜. 이번엔 집중해서, 빠르게 가겠습니다.”
공략을 찍어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인정하는 천재들도 아직은 버거운 수준이겠지.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공략이란 말도 꺼내지 않았다.
순수하게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였으니까.
“나중에, 여러분들도 마나와 체력, 실력이 쌓이면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멘트 칠 정신도 없네요.”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몬스터는 레이드로도 나올 수 없었으니까.
정석적인 공략대로라면 최대한 알마리스와 반대쪽으로 유인하면서 안쪽에 특공대를 보내야 하지만, 로키의 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제한 시간 안에 안쪽으로 들어가 심장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 없으니까 빠르게 가겠습니다. 캠이 잘 잡아 주겠죠?”
-그걸 우리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아마 잘 잡아주지 않을까?
-ㅋㅋㅋㅋ 알 수가 없다.
파앙-!
미약한 힘을 담아 도약했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멋지고 우아했다.
그림자를 타고 간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여기, 저기, 그리고 저 위에.
드레젠은 그렇게 야마타노오로치의 몸을 타고 올랐다.
“후읍-!”
투콰앙-!
그의 목표는 이미 손상을 입은 부분이었다.
어디로 이어질지 몰랐지만, 동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정확한 입구였으니까.
[으어어어어어-!]
폭주한 야마타노오로치의 울음은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커다랬다.
고함만으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드레젠은 동굴로 무사히 들어왔다.
콰아아아아-!
그가 들어오자마자 돌풍이 몰아쳤다.
“어휴,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샤아아악-!]
동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몬스터가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의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침입자를 감지한 녀석들이 흉포함을 토해냈다.
드레젠은 검을 꺼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본체를 상대하는 것보다, 얘네들이 훨씬 낫죠.”
콰아아앙-!
검을 휘두르자 몬스터들이 터져 나갔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녀석들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심장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녀석들이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심장이 터지면 그들 역시 몰살이었으니까.
“비켜라-!”
쿠와아아아아-!
천마검법의 초식이 화려하게 터져 나왔다.
검의 인도를 받은 오러가 몬스터들을 찢어발겼다.
제아무리 고레벨의 몬스터라도 성좌의 심득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안쪽으로, 계속 안쪽으로 가야 합니다.”
맥동하는 불길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두근-.
무협에서 나오는 정기(正氣)와 같은 원리였다.
모든 땅에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런 것과 일맥상통했다.
“기본적으로 이 에너지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마나를 갉아먹을 겁니다.”
야마타노오로치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 두 번째.
바로 계속해서 깎여 나가는 마나였다.
드레젠이 이상한 거지, 이제 막 99를 찍은 유저나 NPC 마스터나 마나 통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1,500에서 2,000 사이일까?
“1분에 영구적으로 10씩 깎이거든요. 게다가 버티기 위해 최소한의 마나는 500이군요.”
일단 500은 봉인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영구적으로 10씩 사라지는 페널티였다.
계속 나오는 몬스터.
깎여 나가는 마나.
어디까지 있을지 모르는 긴 동굴.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빨리 가겠습니다.”
드레젠 역시 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숙련 포인트는 약 100 정도.
모두 마나로 돌려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결국, 얼마나 빠르게 심장에 도달하느냐에 대한 싸움.
“후우-.”
차라리 전력으로 한 번에 돌파하는 게 낫다고 판단, 그는 마력과 오러를 일으켰다.
유연한 오러와 마력은 꽤 상성이 좋은 조합이었다.
머리가, 심장이, 마나와 관련된 모든 기관이 극도로 곤두선 느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모든 감각이 동원되었다.
[샤아아악-!]
작은 빌라 하나는 충분히 휘감을 수 있는 뱀들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드레젠은 예전에 선보였던 검술을 다시 선보였다.
몸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검기들.
마치 천마검법 3초식을 축소해 둔 느낌이었다.
[감히 내 신체에 들어오다니, 간이 크구나.]
“아, 당신을 원하는 성좌가 있거든요.”
드레젠은 연신 전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황금빛 분수가 앞을 가렸다.
[발악을 하는구나. 그래, 여기까지 오면 내 친히 상대해주마.]
야마타노오로치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각 구역을 넘어야 비로소 심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중간에 지키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고.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따로 있습니다. 심장으로 바로 가는 길은 막혀있거든요.”
심장이 뛰고 있는 곳의 문을 열기 위해선, 에너지를 차단해야 했다.
일종의 영양 공급을 막는 것이랄까.
그 기관은 바로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뭐 하시려고.
-여기서 내부 수술 들어가십니까?
-그의 생각은 과연 뭘까?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구간에 도착한 드레젠.
아직 마나는 충분한 여유가 넘쳤다.
남아 있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25분을 소요했다.
‘전성기가 아니니, 확실히 속도가 느린데.’
수많은 사람을 갈아 넣은 결과, 일곱 영웅이 이곳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여.
홀로 돌파했다는 점과 전성기가 아니란 것을 감안해도 퍽 마음에 드는 성적은 아니었다.
드레젠은 멍하니 위를 쳐다봤다.
“여기가, 그 기관에서 수직으로 쭉 내려오면 있는 곳입니다.”
천재적인 기억력이 다시 발휘되었다.
적어도 자신이 잡았던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잊어버리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빛을 발했던, 옛 동료의 기술이 있었다.
검성이라고 불렸던 자.
자신과 검을 두고 항상 최강자 자리를 다퉜던 인물이었다.
“그 녀석의 기술을 다시 쓸 줄이야.”
왜인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 녀석.
대체 서버에 무슨 장난질을 쳐 놓은 것인지 생각하기 전에, 생전 그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건방지고, 오만방자한 녀석이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났지만, 그의 기술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네놈 따위가 어째서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느냐!-
-그건 신성한 검술이다! 네놈처럼 천출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 아니라고!-
‘웃기는 놈이었지.’
그가 가진 오만함은 결국 드레젠의 독기에 잡아먹혔다.
오만함은 열등감으로 변했고, 드레젠을 사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론 그곳에서 천마검법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늘도 새로운 기술을 보여드리죠.”
검성이 사용하던 기술은 대부분 ‘찌르기’였다.
왜, 바람의 검X이라는 만화에서도 나왔듯 한 가지 기술을 극한으로 단련하면 꽤 강력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검성도 마찬가지.
그 역시 찌르기를 주력으로 단련해, 성룡급 드래곤도 한 번에 꿰뚫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흐읍-.”
마력을 검 끝에, 그리고 신체에 집중했다.
파지직-!
검신의 끝, 가장 날카로운 부분에 마력이 뭉치기 시작했다.
허리를 낮추고 다리 근육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단번에 끝까지 올라갈 겁니다.”
콰드득-!
그가 디딘 지면에 금이 갔다.
폭발적인 힘을 견딜 수 있는 방패.
뒤쪽에서 나가는 마나의 추진력.
마지막으로 극한으로 압축된 검 끝의 마나.
“가즈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앙-!
드레젠이 한줄기 선이 되어 야마타노오로치의 몸을 관통했다.
폭탄이 터진 것처럼 쩍쩍 갈라진 대지.
암석과 알 수 없는 물질로 이뤄진 내부를 뚫고, 그대로 상승했다.
-이거 뭐냐곸ㅋㅋㅋㅋㅋ
-길은 내가 만들면 된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짘ㅋㅋㅋ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시도할 수 없는 부분.
드레젠은 평범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거침없이 뚫고 올라가는 그는, 흡사 활화산의 마그마 같았다.
[이, 이건 건방진-!]
“그 자식은 이걸 어떻게 한 거야!?”
드레젠은 무심코 검성을 욕했다.
끝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자식이었는데, 꽤 대단한 놈이었더라.
그래도 끝까지, 끝까지 올라갔다.
퍼석-!
“으랏차아-!”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못 참짘ㅋㅋㅋㅋㅋ
-뚫었어! 넣었어!
-아 진짴ㅋㅋㅋ 이게 무냐곸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낄낄댔다.
그야말로 엄청난 장면이었으니까.
굴착기도 아니고, 누가 땅을 그대로 파서 올라갈 생각을 했을까.
온통 흙더미로 뒤덮인 드레젠이 척, 하고 내려섰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야마타노오로치의 뇌죠!”
-텐션ㅋㅋㅋㅋㅋ
-찐텐이네ㅋㅋㅋㅋ
심장 부근에서 바로 뇌까지 뚫어버린 드레젠.
그곳엔, 황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야마타노오로치의 환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