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3화
213화 – 거짓된 생명
#1
밤새 꼬박 돌아다닌 드레젠은 결국 열두 가지의 심장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그림자 장막, 그림자 밟기를 이용한 기동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해가 뜨기 전, 숙소로 돌아온 그가 열두 마리의 심장을 늘어놓았다.
웨어울프, 거미 여왕, 트롤, 데스웜 등등.
“자, 펄떡펄떡 뛰고 있는 녀석들을 냄비에 넣고 제 피를 한 방울 넣어줍니다.”
본래는 현자의 돌을 넣어야겠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 없었다.
근처에서 구해온 청금석 하나를 넣으면, 준비는 끝.
심장에서 흘러나온 걸쭉한 피가 보석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들끓었다.
“들키면 좋은 꼴은 못 보니까, 가급적 들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피라스의 토벌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해도 되겠지만, 애초에 들키지 않으면 일이 편해졌다.
추궁하는 것도 질렸으니까.
드레젠은 간단한 마법으로 퀴퀴하고 비릿한 냄새를 날려버렸다.
생명력을 모두 흡수한 청금석은 전혀 다른 물체로 변해 있었다.
작은 아기 모양으로 변한 금속.
“조금 그로테스크합니다만, 만드라고라의 금속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액세서리로 달고 다녀도 될 듯
-도랏?
-ㅋㅋㅋㅋㅋㅋ아니 여기 취향 이상한 사람 왜 이렇게 많앜ㅋㅋㅋㅋ
-엌ㅋㅋ 그래도 보기 나쁜 정도는 아니네요.
드레젠은 호문쿨루스를 심장 부근에 두었다.
심장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호문쿨루스(미완성)가 당신의 심장을 인식합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대상을 지켜줍니다.]
“준비는 끝났으니, 출발하시죠.”
사룡의 거처로 갈 준비가 끝났다.
드레젠은 밖으로 나갔다.
동이 터올 무렵,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중이었다.
정신을 맑게 해 주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시더군요.”
“눈치채셨습니까?”
은자디아가 검을 차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새벽부터 드레젠의 기척이 없어진 것을 눈치챘다.
항상 은은한 존재감을 뿌리고 다녔던 이였다.
그가 없어진 것은 민감한 자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터.
“저희를 위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히. 그저 볼일이 있어 나간 것뿐이거든요.”
“그렇군요. 오늘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드레젠은 잠시 고민했다.
은자디아와 아더, 스테판이 함께라면 둥지에서의 돌파는 쉽게 이뤄지겠지.
하지만 사룡의 생명력 흡수를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호문쿨루스를 만들라고 할 수도 없고.’
혼자 가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오늘은 홀로 어딜 좀 다녀올 겁니다. 훈련은 다음으로 미뤄야겠군요.”
“알겠습니다. 도울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지요.”
은자디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곤 이내 자리를 떴다.
장막을 이용한다면 쓸데없는 전투는 피할 수 있겠지.
드레젠은 간단한 식량을 챙겨 고성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어라? 스승님. 어디 가세요?”
“밖에. 사냥하러.”
“오늘도요?”
가던 도중, 스테판과 만났다.
그는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드레젠을 쳐다봤다.
용병들은 물론이고 기사, 마스터까지 휴식은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장에 오랜 기간 틀어박혀 있거나, 적진 한가운데가 아니라면 충분한 휴식은 훈련보다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게임 내 세상에 있는 자들은 모를 일이었다.
게임 캐릭터는 모든 수치가 보정되어있기 마련.
제아무리 드레젠이라도 그 특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게임의 주인공은 플레이어 자신들이었으니, 이 정도는 기본이었다.
“이번 일만 마무리하면 쉬기 싫어도 쉬게 될 것 같거든. 훈련 열심히 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응?’
스테판은 드레젠에게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심장 부근, 뭔가가 더 있는 것 같달까.
마치 드레젠이 두 명이 된 느낌을 받았다.
스테판은 마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마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체질이기도 했다.
“난 간다.”
“예, 예에.”
순식간에 멀어진 드레젠.
스테판은 인상을 찌푸리며 해당 현상에 대해 생각해봤다.
저런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것은…….
“설마?”
그 역시 어젯밤 드레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밤중에 아르게논 대륙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 돌아왔고, 알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앞뒤 생각을 하던 도중,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에이 설마. 스승님이 그러겠어?”
“왜? 무슨 일인데?”
아더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끊었다.
스테판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아더를 바라봤다.
머뭇거리는 그의 입 모양을 확인한 아더가 추궁하듯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지간해선 입을 열지 않았으니까.
“뭔데, 무슨 일인데? 말 안 하면 이제 같이 훈련 안 한다?”
“그, 그게-.”
스테판은 저 멀리 걸어가는 드레젠의 등을 눈으로 좇았다.
아더 역시 드레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어느 정도 눈치챘다.
“어제 없어진 것 때문에 그래?”
“후…… 그게 아니야.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달까? 그러니까 이런 느낌은…….”
“뭔데, 답답하게 할래!?”
“아, 알았다니까. 호문쿨루스를 만드신 것 같단 말야.”
아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호문쿨루스를 만든 이는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모두 불온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어난 결과였지만.
“위험한데…… 호문쿨루스를 왜?”
“그러니까. 한 번 따라가 볼래?”
“그래. 이상한 짓을 하시면 막아야지.”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드레젠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2
-그런데 호문쿨루스가 왜 금기된 겁니까?
-그르게
-딱히 나쁜 목적으로 쓰는 거 아니면 상관없지 않나?
“호문쿨루스는 반인도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다양한 실험, 의식을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호문쿨루스는 브레이시스 왕국의 난제 중 하나였다.
심심하면 다른 차원에서 이상한 생물들을 불러대니, 여간 골치가 아니었던 것.
마족, 그리고 무의 추종자가 거느린 세력 중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라는 자들도 많았으니까.
그때마다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다양한 의식을 치렀다.
널린 것이 시체였고, 힘들여 제물을 공수할 필요가 없었으니, 아주 좋은 방식이었다.
“죽은 자에 대한 모욕, 그리고 위험한 실험에 쓰일 수 있다는 이유죠. 제가 가진 호문쿨루스는 용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인식은 비슷할 겁니다.”
-확실히 그러면 ㅇㅈ
-으 시체 재활용 그켬이네;;
-흑마법이 문제여 흑마법이;;
-으으 그켬이네
호문쿨루스는 그런 존재였다.
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원죄와 같달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기에 성좌들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게 하는 것.
인간이 성좌를 넘볼 수 있겠다는 자만심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은 절대 성좌가 될 수 없죠. 이 호문쿨루스는 인간이 헛된 꿈을 가지게 해 주는 물건입니다.”
드레젠은 사룡의 둥지로 걸음을 옮겼다.
고성을 지나고, 칙칙한 늪을 지났다.
몬스터의 습격을 간단하게 물리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곳이군요.”
블랙 드래곤 스피라스.
그가 쓰던 둥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퀴퀴한 죽음의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호문쿨루스의 생명력이 흡수됩니다.]
[잔여 시간 : 3 : 00 : 00]
[레이드 페이즈에 돌입합니다.]
“역시, 스피라스도 레이드에 속했군요.”
오랜만에 보는 레이드.
헤시라둔, 여왕에 이어 세 번째였다.
공교롭게도 모든 레이드를 거의 솔로로 클리어 한 드레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세 시간 만에 깨야 하는 레이드라, 조금 빡세겠군요.”
이번 레이드는 만렙 전용 콘텐츠나 마찬가지였다.
드레젠은 지금까지 모아왔던 숙련 포인트를 확인해 봤다.
무려 2,000포인트가 넘게 모여 있었다.
“오…… 이렇게 많이 있다니, 이번에는 마나 반, 체력 반에 투자하겠습니다.”
천마검법 덕분에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쌓인 모양.
게다가 다른 검술의 숙련도도 꽤나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잠행, 탐색, 은신, 대검술, 환검, 중검 등등…….
알람을 꺼놓은 사이에 엄청난 스킬이 쌓였고, 포인트가 팍팍 누적되어 있었다.
쿠우우우우-!
주변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마나가 차올랐다.
“역시, 이 기분은 짜릿합니다. 여러분도 얼른 해보세요.”
-크으 만렙 빨리 찍고싶닼ㅋㅋㅋㅋ
-ㄹㅇ 이제 사람들 어느 정도 적응해서 50은 그냥 넘겼던데
-하 진짜 브락시아 마렵넼ㅋㅋㅋㅋ
-치인다 치옄ㅋㅋㅋ
사람들은 만렙 이후에 확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유명 스트리머들 역시 슬슬 70레벨에 근접했고, 구덩이 정도는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진짜 성장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진짜 실력이 필요할 때,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가 되는군요. 그럼, 레이드 시작하겠습니다. 매니저님은 방제 바꿔주세요.”
-넵!
짧은 대답과 함께 드레젠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피라스의 둥지, 드래곤 레어는 세 가지의 봉인식이 있었다.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레이드로 인정되어, 숨겨진 레이드로 판명 난 것.
“스피라스의 레어는 세 가지의 봉인식을 풀어야 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디언의 몸속에 잠들어있는 빛과 어둠의 마석으로 봉인을 푸는 것.
두 번째는 드래곤 석상에 마나를 특별한 마나를 주입해, 봉인을 푸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문지기를 잡는 것이었다.
“까다롭진 않을 겁니다. 공략만 잘 알고 있다면.”
-와! 레이드!
-이건 렙 몇 때 갈 수 있을까?
-ㅋㅋㅋ일단 만렙부터 찍자 ㅜㅜ
-빨리 패치 날 왔으면 좋겠다ㅜㅜ
지난날, 유저들이 발견한 레이드를 인스턴스 던전 형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고 한다.
보통 싱글 게임과 달리, 이건 싱글 게임을 가장한 멀티 게임이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추가될 요소까지 생각하면, 경쟁력을 키워 두는 건 필수였다.
“첫 번째 방은 방패의 길과 검의 길이 있습니다. 간단히 가서 죽이면 됩니다.”
드레젠이 한창 레이드를 하려 걸음을 옮길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두커니 서 있는 아더와 스테판을 발견했다.
‘중간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용케 쫓아왔군.’
그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결국, 끝까지 쫓아왔군. 왜, 호문쿨루스가 신경 쓰였나?”
“그-.”
“사룡을 토벌하려면 호문쿨루스가 필요하지. 너희도 얼른 돌아가라. 생명력을 빨릴 테니까.”
두 사람은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이번에도 헛다리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