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1화
211화 – 새로운 보금자리
#1
아침에 눈을 뜨니, 하이디엔이 없었다.
단칸방, 그것도 반지하에서 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침대였다.
강일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물을 마시러 나왔다.
하이디엔이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는 장면이 들어왔다.
“일어났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엄청 부지런하네. 일은 안 가?”
“대표가 회사에 자주 나가는 것도 안 좋아요. 적당히 보고 받고, 적당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을 처리하면 되죠.”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일곱 시.
이삿짐을 옮기는 것은 열 시였으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이디엔은 의외로 한정식을 좋아했다.
정갈하게 차린 한 상이 먹음직스러웠다.
“해장에는 역시 찌개죠.”
“우리가 해장할 것도 있었나?”
“기분이니까. 저도 오늘 도와드려도 되나요?”
“좋아. 같이 가자.”
엘리스와 몇몇 엘프들이 직접 도와준다고 했으니, 이사 자체는 금방 끝나겠지.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제대로 차려 먹는 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식사는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생각으로만 진행했으니까.
“어때요? 맛있어요?”
“음, 역시 최고네.”
엘프의 손맛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섬세한 손길과 요리가 만나니 미슐랭 식당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강일과 하이디엔은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냈다.
둘은 일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많던 반찬과 찌개가 모두 없어졌다.
하이디엔이 싱긋 웃었다.
“다 먹었으니 출발하죠.”
“그래.”
두 사람은 준비하고,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 두 사람 앞으로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자가 하이디엔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아, 현아 씨. 오랜만이네요. 오늘도 스케줄?”
놀랍게도, 그자는 현재 TV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연예인이었다.
연예인들이 산다니,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
게다가 하이디엔과도 꽤 친해 보였다.
현아는 눈을 돌려 강일을 쳐다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어? 드, 드레젠 님?”
“아 네, 안녕하세요.”
“와-! 진짜 팬이에요!”
작은 체구의 그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강일은 ‘드레젠’이라는 이름값이 많이 커졌다는 것을 느꼈다.
연예인도 자신을 알아볼 정도라니.
“저도 스케줄 끝나면 항상 캡슐부터 찾거든요. 대표님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방송 이미지와 비슷한 현아의 입담.
덕분에 두 사람은 심심하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현아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강일에게 사인까지 받고 종종걸음으로 밴에 올라탔다.
하이디엔은 어깨를 으쓱하며 강일에게 말했다.
“어때요? 굉장하죠? 여기는 참 좋아요.”
“그래. 진짜 살기 좋긴 하겠네. 어머니랑 같이 살면 좋겠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그러면 재미없지. 이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무려 10억이 넘는 거금을 썼지만, 고작 한 달 만에 벌어들인 돈이었다.
지금 드레젠의 채널에는 더 많은 영상이 있었고, 올렸다 하면 인기 동영상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차곡차곡 적금을 쌓아두는 것처럼, 영상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돈이 불어났다.
“이참에 저랑 같이 브락시아를 운용해 보는 건 어때요? 이제 슬슬 원천에 있는 마나도 흡수하셔야죠.”
“그것도 생각해 보고.”
일반인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 몸 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어머니를 깨워서 마나를 뭉텅 쓴 것도 한몫했다.
배신자들을 색출하면 마나를 얻을 수 있으니 그 작업도 서둘러야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 대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정리해야지.”
“네.”
은평구는 재개발하며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특히 신축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는데, 그곳 중 하나에 강일이 모습을 드러낸 것.
오늘이 입주일이라 수많은 사람이 이삿짐을 들고 나타났다.
“좋죠?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요?”
“그러네. 우리 아들이 능력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짐 정리는 우리가 할 건 없겠네. 가서 감독만 하자.”
“올라가 볼까?”
가구 자체가 시간에 맞춰 하나씩 도착했다.
이제 진짜 방송인이 되어버린 강일은 이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었다.
그가 촬영하려 하자, 옆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용사…… 아니 강일 님! 제가 직접 촬영해 드리겠슴다!”
엘리스였다.
왠지 엘르엘라가 생각나는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강일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설치 끝났습니다.”
“저희도 끝냈습니다.”
가구를 설치하러 온 기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캡슐이 새로 설치되었고, 인테리어 업체에서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돈으로 이사를 하는 중이었다.
임수아 여사와 강일은 잘 되고 있는지 바라보며 편안하게 이사를 마쳤다.
“자, 그럼 청소는 우리가 할게요.”
하이디엔과 엘프 두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모든 가구가 배치된 후, 이젠 가족밖에 남지 않았다.
거리낌 없이 마법을 사용할 때가 된 것.
하이디엔이 거실에 서서, 팔을 펼쳤다.
[클린]
솨아아-!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집에서 작업을 하면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생성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삿날,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면 더욱 심했다.
보통이라면 쓸고 닦고를 몇 시간 동안 반복해야 할 정도로 지저분한 집안.
많은 분량의 먼지들이 싸악 없어졌다.
“와, 이, 이거…….”
“엘프들은 마법에 능통하죠. 영화 같지 않아요?”
“그러네. 정말 마법이 존재하는구나.”
임수아 여사가 감탄했다.
마법.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진짜 두 눈으로 마주했으니.
단번에 먼지 한 톨 없는 집을 보고 감탄했다.
호텔보다 넓었고, 가구들도 모두 최상급이었다.
돈이 좋긴 좋았다.
“자, 정리 끝났습니다. 어머님.”
“와아-! 정말 대단해요! 정말 마법이에요?”
“네. 맞아요. 다른 세상에서 흔히 쓰던 마법 중 하나였어요.”
하이디엔은 임수아 여사와 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이, 엘리스가 배달 음식을 시켰다.
역시 이삿날에는 자장면이 아니겠는가.
몇 명 안 되지만, 무려 열 그릇이 넘는 자장면을 주문했다.
“그, 그렇게 많이 시켜도 되겠어요?”
“네? 그럼요 여사님. 저희 엘프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잘 먹는답니다.”
“그렇구나. 정말 신기한 사람들과 알게 돼서 기쁘네요.”
엘리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딸이 있다면 이렇게 예쁠까?
임수아 여사가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온 세월만 따지자면 자신보다 배는 많이 살았다는 걸 알까?
“엄마. 얘네들 엄마보다 나이가 두 배는-읍!”
“하, 하하! 어머님.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대해 주세요.”
하이디엔이 황급히 강일의 입을 막았다.
강일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임수아 여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엘프 로드답게, 하이디엔의 몸놀림은 히어로의 그것과 비슷했다.
“읍읍-!”
“아 참! 어머님, 캡슐 구경하고 싶어 하셨죠? 한 번 해보실래요?”
“그럴까요?”
하이디엔은 강일을 한 번 째려보고는 캡슐 방으로 사라졌다.
엘리스가 강일에게 말했다.
“정말, 너무 짓궂으신 거 아님까?”
“뭐, 이젠 이런 장난도 치고 그래야지.”
“흐흐, 좋은 분위기던데, 저는 찬성임다. 용사님.”
강일은 피식 웃고 캡슐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게임이라, 옛날에는 거부감이 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직장생활을 할 필요도 없으니, 도와줄 생각이 만연했다.
“와, 이게 그 캡슐이란 말이죠?”
“맞아요. 시차는 다섯 배지만, 마법으로 잘 조율해 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도 마법으로? 좋네요. 다음 학기에 애들하고 얘기할 거리가 많겠어요.”
“엄마, 다시 학교 나가게?”
임수아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 직업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럼. 그러려고 선생님이 됐는데. 바로 복직 신청할 거란다.”
“그래, 우리가 돌봐줄 수 있으니까 괜찮겠다.”
자신의 의지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친김에 드레젠은 어머니를 도와드리기로 했다.
3월까지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았으니,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리라.
“어머님. 저희가 특별히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사용하면 귀족으로 시작할 수 있을 수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어머, 귀족?”
“네. 이번에 패치를 하려고 준비 중이거든요. 테스트로, 어때요?”
“좋아요. 귀족이라니, 거절할 이유는 없지.”
강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으로 시작하는 건 엄청난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것.
하이디엔은 회사에 연락해서 데이터를 캡슐로 전송하라 일렀다.
임수아 여사가 게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강일은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최신형 컴퓨터를 켰다.
“부팅 속도가 다르네.”
컴퓨터는 총 두 대였다.
개인적으로 쓸 윈도우 데스크톱과 기타 작업을 할 아이맥 프로였다.
갑작스럽게 기획안을 짜거나 자투리 작업을 할 때 쓸 컴퓨터였다.
“어디……와, 구독자가 드디어 600만을 돌파했구만.”
“600만이라니. 올해 안으로 1,000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게. 앞으로 업데이트만 잘 해주면 가능하겠지.”
초반 정석이라고 불린 드레젠의 공략.
사람들은 아직도 이 공략을 따라 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이제 히든 피스 역시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상황.
강일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좋아! 다 됐다!”
“생각보다 이사가 빨리 끝났으니, 저희도 돌아가 볼게요.”
“오늘 편집할 일이 조금 있어서, 저도 이만 일 하러 가보겠습니다. 사장님.”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시작하는 방송.
오후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방송을 해야겠네.”
“좋은 생각입니다.”
다른 이들을 배웅하고, 강일 역시 캡슐로 들어갔다.
2부는 어머니를 초대해도 되겠지.
방송을 키자 시청자들이 ‘?’를 치면서 몰려들었다.
다시 회백색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 드레젠.
“다들 반갑습니다. 생각보다 이사가 빨리 끝나서, 방송을 키게 되었습니다.”
-와!
-ㅋㅋㅋㅋ대박
-엄청 빨리 끝나셨나 보네요
-대박ㅋㅋㅋㅋ 돈 많이 쓰셨겠다
-ㅇㅈㅇㅈ
-우리야 좋지!
“오늘은 사룡을 잡아 보시죠. 다들 준비는 되셨는지?”
-미리 팝콘 대기 중임
-ㅋㅋㅋㅋ캡슐에서 팝콘 우찌먹엌ㅋㅋㅋ
-엌ㅋㅋㅋㅋ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 멀리, 울창한 숲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말라 비틀어진 곳, 오늘은 그곳이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