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210화 (211/279)

제 210화

210화 – 데이트

#1

푸쉬익-!

캡슐이 열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강일.

그는 미리 휴방 공지를 해 놓은 상태였다.

내일은 꿈에 그리던 이삿날이었으니까.

“드디어 이 반지하를 벗어나는구만.”

방송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일반인이라면 생각지도 못한 돈을 벌고, 드디어 성공의 길로 들어섰다.

이제 그 결실을 눈으로 확인할 순간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집을 산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이 서울권이라면 더욱 힘들었다.

5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지금 이뤄냈다.

“간단하게 짐 정리나 조금 해 볼까.”

연예인들과 달리, 자신은 방송인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팬들에게서 자유로웠다.

다양한 매체에 출현하지 않아서일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낡은 노트북, 입던 옷가지 등등, 생각보다 정리할 것은 별로 없었다.

워낙 소탈하게 살아서 그런가?

‘소탈은 무슨, 가난하게 살아서 그렇지.’

게다가 어머니가 쓸 가구는 아예 없었다.

다 팔아서 어떻게든 생활비와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으니까.

그는 임수아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브락시아에서 이삿날에 맞춰 캡슐을 보내준다고 했으니, 내일 제대로 받아볼 수 있으리라.

“여보세요? 엄마?”

“어, 그래. 방송은 잘 했고?”

“응, 잘했지. 내일 이삿날인 거 알지?”

“그럼~ 내일 몇 시에 봐?”

임수아 여사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가구들은 대부분 주문을 완료했다.

어머니와 자신은 몸만 가면 되는 수준이었다.

이른 아침 업체와 함께 움직이면 되겠지.

“느긋하게 와. 어차피 엄마가 할 일은 없을걸?”

“그래? 그러면 느긋하게 스파나 받고 가야겠다.”

“마음대로 해. 오면 자장면 먹자.”

임수아 여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튜브는 여전히 호황.

요즘 광고로 말이 많았지만, 그는 광고 영상을 하나도 찍지 않아서 해당 사항이 없었다.

물론 광고 제의는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침대에 누우니, 하이디엔에게 전화가 왔다.

“어, 무슨 일이야?”

“강일 님, 지금 맥주 한 잔 안 할래요?”

“지금? 어딘데?”

톡톡, 자신의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하이디엔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강일은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녀와 맥주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일은 옷을 챙겨입고 집 밖으로 나갔다.

이젠 제법 날이 풀려서인지,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하이디엔이 생긋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내일 이삿날이죠?”

“벌써 그렇게 됐네.”

“집들이 선물 가지고 갈게요. 엘리스도 같이 가도 되죠?”

강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경사스러운 날이었으므로, 오고 싶어 하는 자들을 막진 않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작은 호프로 향했다.

강일이 가끔, 아주 가끔 맥주를 마시던 곳이었다.

“와, 하이디엔 대표님이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드레젠의 방송을 즐겁게 감상하고, 바람을 쐴 겸, 베란다 창문으로 구경하고 있는 다영이었다.

그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밑을 바라봤다.

‘좋겠다.’

그녀는 강일 옆에 서 있는 것이 자신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하지만 하이디엔에 비하면 자신은 무척 초라한 사람이었다.

강일이 과연 자신을 봐줄까?

게다가 내일이면 강일이 이 집에서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조금 있었던 접점도 완전히 없어지겠는데.’

푸우-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옹이들이 곁에서 골골 소리를 냈다.

그나마 그녀의 위안이 되어주는 반려동물들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를 안아 든 그녀가 하염없이 강일을 바라봤다.

“……들어가자.”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쓸쓸한 발걸음이 빈집을 거닐었다.

#2

호프집에서 대화하는 하이디엔과 강일.

둘 다 술에 취하지 않는 몸이라, 테이블에는 맥주잔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강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럴 거면 칵테일 바를 가지. 거긴 맛있기라도 하잖아.”

“그럴 걸 그랬네요. 여기 있는 맥주를 거덜 내도 안 취할 것 같은데.”

“그러면 요 앞에 바로 가자. 꽤 잘 하더라고.”

“어떻게 그런 걸 아세요?”

강일이 피식 웃었다.

정말 우울할 때 한 잔씩 마셨으니까.

휴식이 필요할 땐 생맥주를 포장해 갔었고.

달달한 칵테일을 마시면 괜스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결국,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기-.”

그때,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였는데, 아마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모양.

친구들로 보이는 자들 역시 그에게 시선을 보내는 중이었다.

“혹시 드레젠 님 맞나요?”

“아, 네. 맞아요, 드레젠.”

“와아-! 그, 그럼 옆에 계신 분은!”

하이디엔이 빙긋 웃었다.

지구의 인간들은 브락시아와 달리, 엘프에 대한 악의가 없어서 좋았다.

그들은 동경, 부러움의 시선을 주로 보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브락시아의 인간들은 어떻게든 해보려는 자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이디엔입니다. 반가워요.”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자, 주변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도 그럴 게, 하이디엔은 외국 영화배우 옆에서도 빛이 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미 인터넷에선 그녀를 두고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여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부르고 있었다.

“저! 가,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강일은 하이디엔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일도 덩달아 웃으며 수락했다.

작은 호프집이라 그런지, 손님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친구분들하고 같이 찍어요.”

“그, 그래도 되나요?”

요새는 인식이 제법 좋아져서, 공인들에게 무례하게 접근하는 자들이 별로 없었다.

매우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행동에, 강일과 하이디엔의 기분 역시 나쁘지 않았다.

내친김에 하이디엔은 이곳에 있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를 해 주었다.

“사장님. 오늘 계산은 제가 다 하고 갈 테니, 여기 있는 분들이 즐기게 해 주세요.”

“저, 정말입니까?”

“이 정도면 될 겁니다.”

그녀는 지갑에서 천만 원짜리 수표를 턱 내놓았다.

사장님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하이디엔 입장에서 천만 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었으니까.

세계적인 대부호이자 윈도우의 개발자의 자산을 빠른 속도로 따라가고 있는 그녀였다.

“오늘 기분 좋은가 본데?”

“네. 아주 좋아요. 강일 님하고의 데이트니까.”

“너도 많이 변했네.”

배시시 웃는 하이디엔은 한창 꿈을 좇는 나이 같았다.

다 늙어버린 자신과는 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그녀가 슬며시 강일의 손을 잡았다.

“이제 저도 좀 행복해지려고요.”

“그래. 그것도 좋겠지.”

두 사람은 그렇게 두 손을 맞잡은 채 길을 걸었다.

하이디엔은 문득, 다른 곳보다 더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강일을 초대했다.

“거기가 어딘데?”

“우리 집이요. 저-기, 한강도 보여요. 가끔 연예인들도 봐요. 다들 예쁘더라고요.”

“그것도 좋겠다.”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의 자신이었다면, 기만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날카로움이 많이 무뎌졌다.

세월의 흔적인지, 아니면 옆에 있는 이 여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네.’

역시 지구에서 있는 것이 최고라고 느껴졌다.

두 사람은 스포츠카를 타고, 하이디엔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정말 으리으리했다.

지하 주차장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스포츠카나 슈퍼카가 눈 닿는 곳마다 있었다.

“나도 슬슬 차 한 대 뽑을까 봐.”

“제가 집들이 선물로 드릴까요?”

“됐어. 뭘 그 정도까지 해줘.”

하이디엔이 강일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그녀가 움찔했으나 강일은 편안하게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왜, 뭐가 불만인데?”

“아…….”

하이디엔은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싸늘했던 피부가 다시 혈색을 되찾았다.

전에는 건방지게 자신의 앞을 막은 자를 가만두지 않았을 용사였다.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많이 달라지셨네요.”

“뭐가?”

“옛날엔 이랬으면 당장 비키라고 손부터 나가셨을 거잖아요.”

“그땐 그랬겠지.”

많이 예민했던 시기였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때였으니.

지금은 아니었다.

하이디엔은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녀에게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저도 강일 님밖에 없는 거 아시잖아요.”

“그거, 되게 속물적인 발언이다? 지구가 엘프들을 다 버려놨네.”

“엘프적인 말로 말한 거예요.”

하이디엔의 귀가 빨개졌다.

강일은 피식 웃고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 말은 지하 주차장이 아니라 집에서 해야지.”

“그, 그럴까요?”

두 사람은 으리으리한 아파트로 올라갔다.

하이디엔은 연신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일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름없이 대할 뿐이었다.

‘엘프 로드가 이게 뭐람.’

그녀는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본래 고고한 엘프의 지도자로 키워졌던 그녀였다.

인간?

제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엘프의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제가 확실히 대접할게요. 인간이 만든 술도 꽤 괜찮더라고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려, 귀를 감싼 마법도 풀지 않았다.

흥흥~ 하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녀는 와인 창고에 있는 컬렉션 중 몇 개를 꺼냈다.

보드카, 위스키,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등등, 맛이 좋아 모아두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이걸 이렇게-.’

엘프들은 드워프 못지않게 손재주가 좋았고, 그녀의 손기술은 화려했다.

챡챡 소리를 남기며 완성되는 여러 칵테일들.

묘기까지 선보이는 터라, 강일이 피식 웃고 말았다.

하이디엔이 정말 기분이 좋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럼 나는…… 안주나 좀 만들까?”

강일 역시 요리 실력 하나는 어디 내놔도 주목받을 수준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주방에서 준비를 하고, 나란히 앉았다.

밀착되어 느껴지는 체온이 퍽 따스했다.

“그-.”

“왜?”

하이디엔이 수줍게 말했다.

대기업의 대표이자 엘프 로드라고 해도, 강일 앞에서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변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랑 같이 살아가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백까지 다 했으면서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고 그래? 난 딱히 거절한 적이 없는데.”

“그, 그럼?”

강일이 부드럽게 웃었다.

하이디엔의 떨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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