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9화
209화 – 용병의 지도자
#1
스카이워커.
그를 천마라고 부르는 자들은 항상 공포에 떨었다.
무림에서 그를 몰라보는 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천하제일.
자신의 라이벌이 죽고 난 후,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젠 꽤 하잖아?”
“또 그거 보고 있냐, 마스터가 뭐라고 해.”
천마는 자신의 옆에서 팔짱을 낀 금발의 여인에게 눈을 돌렸다.
색목인이라고 불렸던 존재.
브락시아 대륙에서 자신의 정인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분에 스카이워커라는 가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휴가니까. 그보다 이것 봐. 엄청나지 않아? 나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고.”
“그만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였으니…… 그래서, 언제쯤 보러 갈 거야?”
천마는 넓게 펼쳐진 황무지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많은 사람에게 존재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방해될 터.
“차라리 지구로 갈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면 그곳도 마스터의 고향처럼 변할지도 몰라.”
“그렇지. 일단 기회를 보자고.”
“아아, 대모는 벌써 만났던데, 그냥 가 볼까?”
“호호, 당신 마음대로 해.”
성좌들의 대화치곤 제법 가벼웠다.
하지만 내용까진 가볍지 않았다.
끝을 모르고 펼쳐진 이질적인 실내.
SF 영화에 나올 법한 건축물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찾아온 자가 있었다.
“천마. 잠깐 정찰을 가지.”
“나 휴간데?”
“다른 이들은 모두 전투에 나가서 말이야. 자네의 힘이 필요해.”
“-다녀와요.”
천마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전장이 될 차원.
이곳의 지리를 충분히 익혀야 전투에서 유리하겠지.
무한에 가까운 군대가 있었지만, 무의 추종자들과 벌이는 전투는 꽤 힘들었다.
저들도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다녀오지.”
“가자고.”
“잠깐, 너도 휴가 아니야?”
“말 시키지 마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모습에서 귀찮음이 느껴졌다.
입가를 가리며 웃는 아내의 모습은 귀여운 아이를 보는 눈빛과 비슷했다.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모습.
영생을 얻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지도 꽤 지났지만 언제나 변치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2
[우어어어어-!]
드레젠의 마력은 오거 렉스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나로 인해 재생력이 뛰어난 오거 렉스였지만, 마력은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혔다.
단순, 1초식을 두 번 쓰는 것만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린 드레젠.
“2번까지는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결국, 검의 끝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휘두르느냐에 달렸다.
그 때문에, 고수들의 초식은 단순했고 빨랐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은 그저 마나의 순환을 돕기 위해서 행하는 의식일 뿐, 괴수를 상대할 때는 마나가 뻗어 나오는 형상이 더욱 중요했다.
천마검법 · 2장 · 천마강혈
(天魔劍法) · (二章) · (天魔講血)
피를 배운 천마는 거칠 것이 없이 날뛰었다.
콰르르르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마력.
피의 폭포처럼 내려치는 마나가 오거를 짓눌렀다.
[우어어어어-!]
압력, 그리고 마나의 힘.
오거 렉스를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우지직,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거 렉스의 뼈가 전부 부러지는 소리였다.
“후우, 이건 마나 소모량이 장난 아니군요.”
-지렸다;;
-우리도 저거 배울 수 있음?
-페베스 검술이 끝이 아니었다니!
-으엌ㅋㅋㅋㅋ 진짜 쩐닼ㅋㅋㅋㅋ
가브리엘 메샤가 봤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검술이었다.
프로 구단, 특히 하이츠 선수들은 눈을 부릅떴다.
저 검법!
저 검법만 익힐 수 있다면 프로리그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까.
‘어떡하지? 돈을 더 줘야 하나?’
동기화를 진행하고 있던 이현성이 고민했다.
그의 꿈은 세이브 더 브락시아에서 최고의 구단을 키우는 것.
명실상부한 최강의 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구단.
‘그 꿈을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억만금을 써서라도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이현성은 후원계좌를 확인했다.
‘0’이 수도 없이 많은 자신의 계좌.
그는 거침없이 드레젠에게 후원을 날렸다.
‘부디,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시길.’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드레젠의 행보를 지켜봤다.
오거 렉스가 무너지는 모습은, 흡사 그의 적들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후우-.”
드레젠은 몸을 풀었다.
그는 오거 렉스의 뿔을 쑥 뽑았다.
이로써 첫 번째 재료를 모았다.
“와아-.”
“진짜 죽였어! 혼자!”
“대박, 진짜 어떻게 저런 힘이…….”
용병들은 감탄과 환호를 쏟아냈다.
오거 렉스는 절대 넘보지 못할 산과 같았다.
특히 이곳에 적응 중인 신입 용병들이 그러했다.
드레젠은 인간 같지 않은 강함을 선보였다.
마치 성좌를 보는 것 같았다.
“……마력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구나.”
“진짜 정체가 뭘까?”
아더와 스테판은 전율에 몸을 맡기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에게 드레젠이란 기연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다루는 힘은, 기연이 없으면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힘이었으니.
“피해는 좀 어때?”
“다행히 사망자는 처음 오거 렉스를 마주했던 두 녀석 빼고는 없습니다.”
“두 사람이나 죽었군. 운이 없었어.”
드레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거 렉스가 처음 마주한 것이 자신이었다면, 아무런 인명 피해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렉스에게 치여 죽은 두 사람은 말 그대로 하늘이 데려간 거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드레젠은 은자디아에게 뒷수습을 부탁한 후, 오거 렉스의 흔적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어디 가십니까?”
“시신은 찾아 줘야죠.”
“알겠습니다.”
은자디아는 감명한 얼굴이었다.
숲에서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아 죽은 이들은 그냥 두고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몬스터에게 죽었다는 건, 전력의 열세를 의미했으니까.
오직 드레젠이기에 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진국인 사람이로다.”
조금 더 일찍 저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니, 처음부터 이곳 알마리스를 드레젠이 다스렸다면 어땠을까.
은자디아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그래, 지금이라도 만난 것이 어디인가.
‘지금이라면 개척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겠어.’
드레젠과 함께라면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였던 오거들이 전멸했으니, 확실히 수월하겠지.
아르게논 대륙 원정대의 미래가 맑아 보였다.
#3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케이드 백작님이 오거 렉스를 쓰러뜨렸습니다.”
“홀로?”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베르난디 자작이 한숨을 쉬었다.
오거 렉스.
용병들의 대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은자디아도 피했던 괴물이었다.
그가 말하길, 마스터라도 정면 승부는 피해야 한다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홀로 잡았다 이 말이지.”
“가공할 무력입니다. 대륙 본토에서 얼마나 위명을 떨쳤는지 모르겠군요.”
“그랬다면 집사가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는…… 본토에서 절반의 실력도 뽑아내지 않았을 거야.”
본토와 달리, 아르게논 대륙에서는 힘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황궁에서 반역죄로 잡아간다 해도 뱃길로 이주가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동안 이곳을 싹 쓸어버리고 도주한다면?
‘알아서 기어야겠군.’
그간 용병들과 접점이 없었기에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이곳 역시 개척지인 만큼, 브레이시스 제국의 법이 적용되고 있었으니까.
용병들은 딱히 건들지 않고, 땅을 제공해 준 자신을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백작인 드레젠은?
“후우, 어떡하면 좋을까, 집사.”
“잘 보여서 나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새로운 바람이 불 테니까요.”
“그래. 난 여기서 안전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될 일이지.”
베르난디 자작은 딱히 이곳 생활에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딱딱한 제국에 비해 자유로워서 좋았다.
이곳에선 자신이 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문제는 드레젠이 얼마나 간섭을 행하느냐였다.
“뭐, 그냥 적당히 사리지 뭐.”
욕심이 없는 자는, 결국 평화를 원할 뿐이었다.
드레젠 역시 그것을 원하는 바였고.
본래라면 죽었어야 할 베르난디 자작의 운명이 다시 굴러갔다.
#4
“여기 있었군.”
황금빛 폴리곤 가루가 흩뿌려진 곳 근처.
드레젠은 그곳에서 두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를 잘 수습해, 다시 용병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부서진 곳을 보수하던 용병들이 그를 발견했다.
“장례식은 어떤 형식으로 하지?”
그의 말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드레젠 곁으로 모였다.
무덤을 차리기엔 부지가 모자랐기에, 결국 화장을 하기로 했다.
주변에 있는 잔해들을 모아, 장작을 쌓았다.
“멍청한 놈들.”
“바로 도망갔어야지.”
용병들은 갑옷의 끈 하나를 풀어, 시체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저승에 간 친구를 위해서 한마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용병들 특유의 풍습이었다.
화륵-.
드레젠의 손에서 작은 화염이 피어났다.
용병들은 신기한 광경에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그럼, 잘 가라고.”
마지막 말과 함께 불이 타올라, 끔찍하게 살해된 용병을 집어삼켰다.
용병들은 고개를 숙여,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들은 장작이 모두 타 없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감사합니다.”
“백작님이 없었다면 녀석들의 시신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감사드립니다. 백작님.”
용병들이 모두 드레젠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인사를 건네는 것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드레젠은 용병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것이 용병들이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문화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인사 잘 해주네
-여기 용병들은 다르네. 본토에 있는 놈들은 좀 그런뎈ㅋㅋㅋ
-거긴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는 놈들이 많음ㅋㅋㅋㅋ
-여긴 아무래도 타지니깤ㅋㅋㅋ
시청자들은 2부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용병의 세계를 똑똑히 경험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용병 루트를 타고 있는 만큼, 용병들의 생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은자디아가 드레젠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부디 용병들을 이끌어 주시오.”
“내 말을 잘 따를까?”
“물론입니다. 여태까지 시체도 못 찾고 떠나보낸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용병들은 은자디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보내지 못한 동료들이 얼마나 많던가.
드레젠과 함께하면, 적어도 동료들을 숲속에 버려두고 오진 않아도 되겠지.
“부디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대들이 뜻이 그렇다면.”
드레젠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베르난디 자작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이 알마리스의 주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일이 점점 편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