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5화
205화 – 파티를 꾸려보자
#1
“이, 이게…….”
“이 정도면 증명은 됐겠지?”
아더는 정확히 반 토막으로 갈라진 연습용 대검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확히 눈앞에 있는 검 끝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드레젠이라고 했나?
저 귀족이 조금만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눈을 잃었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 대단하시네요.”
“제법이던데, 조금만 더 노력해 보라고.”
드레젠이 빙글 웃으며 검을 거뒀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몸이 축 처졌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용병들은 탁 풀린 긴장감에 열정적인 반응을 끼얹었다.
“워후-!”
“저 골리앗이 지다니!”
“봤어!? 봤냐고! 대박이잖아!”
시청자들 반응도 비슷했다.
아니, 이제는 감탄하는 용병들을 하수 취급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 퍼포먼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수준까지 와버렸다.
-졸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이런 것에 놀라다니, 아직 멀었구나
-드좌의 ‘움직임’에 놀라다니
-ㅋㅋㅋㅋㅋㅋ아 개웃기넼ㅋㅋㅋ
-이것이 시청자들과 용병의 눈높이다
드레젠 역시 유쾌한 시청자들의 모습에 미소를 머금었다.
연습용 검을 반납하기 위해 움직였을 때, 은자디아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작님. 그, 그 검술은-.”
“아, 사라미스 출신이라고 하셨는데, 익숙하시겠습니다.”
“익숙하다마다요. 그 검술은 제가 염원했던 검술, 그 자체입니다.”
은자디아는 눈물을 흘릴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검술을 완성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머나먼 땅인 사라미스에서 제국까지 들어와 많은 이들과 경험을 쌓고, 아르게논에서 그 끝을 보려 했다.
지지부진한 나날이었다.
지루한 일상 중에 드레젠이 튀어나왔다.
그에게 있어, 이건 기연이었다.
“백작님. 부디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죠.”
드레젠이 웃었다.
이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은자디아는 미래, 부상으로 현역 용병에서 은퇴한다.
그 후로 미완성인 자신의 검술을 완성할 기재를 찾아 떠돌기 시작한다.
여행의 종착역은 바로 용사 육성이었다.
‘그게 바로 나였지.’
운이 좋게, 가장 처음 배운 검술이기도 했다.
은자디아는 자상하고 매력 있는 스승이었다.
드레젠 본인이 검에 흥미를 갖게 해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노고를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사라미스 검술이 제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겠군요.”
완성된 검술을 돌려주는 것 정도야, 무척 쉬운 일이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은자디아는 감격한 얼굴로 넙죽 엎드렸다.
‘절’이라는 개념이 없는 브락시아 세계였지만, 사라미스의 후예는 스승을 모실 때 이렇게 하곤 했다.
“감사합니다. 백작!”
“와, 외조부께서!”
“그, 그 정도라고?”
용병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은자디아는 모든 용병을 할아버지처럼 돌봐줬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외조부.
실력은 말해 뭐하는가.
대륙의 어지간한 마스터도 웃으면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백작.”
“돌아갈 사람에게 돌아가는 거니까, 열심히 배우시면 됩니다. 아마 일주일 내로 깨닫는 것이 있겠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이미 고수가 된 이들에겐 작은 가르침을 줘도 크게 다가가는 법.
드레젠은 은자디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좋은 검술이 될 겁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제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 그냥 백작이라고 부르시죠.”
“알겠습니다.”
그날 오후, 드레젠은 은자디아에게 몇 가지 요령을 알려 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고수에겐 요령이 곧 새로운 길이었다.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인영이 있었으니, 거구를 잘도 숨기고 있는 아더 로릭스였다.
“거기 서서 그러고 있지 말고 와.”
“……아 네!”
아더는 강한 사람에겐 수그리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쪽은 더욱 아니었다.
그녀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 신경 쓰는 타입.
드레젠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놀려 먹었다.
“남의 수련을 훔쳐보다니, 뭘 얻고 싶어서?”
“아, 그- 죄송합니다! 처음이거든요. 한 번에 저를 꺾는 사람은…….”
“그렇겠지. 네 몸은 좀 특별하니까.”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걸 딱 보고 아는 사람은 드레젠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기이한 힘을 궁금해하는 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원인을 단박에 파악하는 것은, 눈앞에 있는 은자디아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걸 바로 알아채다니…… 백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아더는 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뇌까리며 입을 열었다.
이곳, 개척지에 왔다는 건 몬스터를 잡거나 아티팩트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아르게논 대륙을 개척해, 브레이시스 제국의 속국을 건설하는 것.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명분이었지만 언제 기틀이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혹시 사냥이나 조사 나가시면 같이 가도 될까요?”
“좋아. 저기 있는 네 동생도 따라와.”
“정말이요? 어, 언제 가시는데요!?”
그녀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드레젠은 내일쯤 출발할 예정이었다.
구할 물건이 더러 있었으니까.
“내일.”
“좋아요, 마침 저도 일정이 없었으니까. 방해는 안 될 겁니다.”
“백작님. 이 늙은이도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은자디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더가 걱정스레 말했다.
“외조부께서는 오늘 돌아오셨잖아요. 좀 쉬어야 하지 않아요?”
“허허, 아직 팔팔하니 괜찮다. 고작 트롤 몇 마리 죽인 거로 무슨.”
“좋습니다. 그럼 넷이서 출발하죠.”
검사 셋에 마법사 하나.
정석과는 머리가 먼 조합이었다.
보통 법사, 궁사, 검사 둘이서 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게 정석이라는 거고, 실력자들은 변칙적인 조합을 꾸리기도 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더, 당신도 푹 쉬세요.”
“넵!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드레젠은 내일을 기약하며 두 사람과 헤어졌다.
다음날, 모두가 모였다.
#2
“기묘하네요.”
“뭐가?”
“검사 셋이 저를 둘러싸고 걷는 게…… 나쁘진 않아서요.”
다음날.
항구를 나서, 주변을 정찰했다.
아르게논 대륙은 현재 몬스터 소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시간도 걷지 않았는데, 습격만 세 번을 넘게 받았다.
그야말로 야생.
‘저쪽이었던가.’
드레젠은 특유의 기억력을 살려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를 졸졸 쫓아오던 스테판은 문득 목적지가 궁금해졌다.
마법사가 마법을 쓸 틈도 없이 끝장내는 세 검사.
덕분에 스테판은 승차감이 아주 좋은 마차에 올라탄 것 같았다.
“백작님.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쓸 만한 아티팩트를 구하러. 겸사겸사 내 개인적인 볼일도 처리하고.”
로키가 준 퀘스트를 깨야만 했다.
지금 서리족과 황자는 거인족 때문에 제법 고생하고 있을 테니까.
크리스야 안전한 곳에 두었다지만- 그렇다고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위치는 알고 가시는 겁니까?”
“그럼요. 조사를 해 왔죠.”
은자디아는 걱정스레 물었다가 자신감 넘치는 드레젠의 말에 묵묵히 따랐다.
오늘 그들이 가는 코스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거대한 제국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사람이 다니는 길 자체는 얕게 남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성이 있는 곳이었다.
“언데드가 많을 겁니다. 특히 스테판은 규모가 작은 마법 위주로 골라 써.”
“아, 알겠습니다.”
스테판의 마나 역시 아더와 비슷한 종류였다.
어둡고 퀴퀴한, 악마들이 주로 쓰는 마나.
데이몬을 숭배하는 자들 중에서, 아주 가끔 나타나는 희귀한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재능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
‘실험체라. 나도 그렇지만, 너희들도 끔찍한 삶을 살았지.’
그것이 동질감처럼 퍼졌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갔을 것이다.
은자디아는 이미 은퇴하고 없었지만, 또 새로운 기분이었다.
“저기-.”
들어가기 전, 아더는 전부터 궁금했던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자신들을 아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했다.
일반 사람들 뿐 아니라, 귀족들 역시 그들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없었다.
후작, 공작…….
그런 사람들도 정체를 몰랐는데, 백작이 알고 있다니.
“무슨 일이지?”
“백작님은 어떻게 저희 정체를 아셨나요?”
“너희, 무의 추종자들에게 붙잡혀서 실험당한 거 아니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떠올라, 아더는 깊게 눈을 감았다.
아직도 잠을 잘 때면 이따금 꿈으로 나오는 장면들.
감추고, 덮고, 숨겨왔던 것들을 휙 들춰본 것처럼 불쾌했다.
하지만 티를 낼 수도 없는 상황.
그 밝던 스테판의 얼굴도 급격히 어두워졌다.
“맞아요. 좀…… 안 좋은 추억이었죠.”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트라우마는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오러의 힘을 얻고, 마스터급 실력을 갖췄음에도 어렸을 때의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드레젠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놈들, 내가 패고 다니거든. 특별히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아!”
“저, 정말이에요 백작님?”
스테판이 물었다.
무의 추종자들이 누군가.
마족과 손을 잡은 희대의 악역들이었다.
무력뿐 아니라 세력도 장난이 아니었으니.
“맞아. 너희들도 나중에 자리를 줄까? 복수는 해야지.”
“……정말입니까?”
“그래. 나도 그 녀석들을 무척 싫어하거든.”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그들의 마음이 드레젠에게로 확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통정리는 대충 끝났다.
이제 던전을 공략하고 챙길 걸 챙기면 되겠지.
드레젠은 문득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은자디아가 은퇴한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었지 아마?
그것도 성좌가 잡아 오라고 한 녀석 중에 하나였다.
미래의 화근을 미리 없앤다면, 은자디아 역시 좋은 전력이 되겠지.
아르게논 대륙에선 여러모로 얻을 거리가 많았다.
“그럼, 들어간다.”
그는 당당히 선봉에 서서 낡은 고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첫 번째 목표인 사룡 스피라스의 부하들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들을 타고 가다 보면, 스피라스의 세력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으리라.
“준비해.”
“예.”
안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들이 느껴졌다.
-기대된다
-새로운 대륙이니까 몬스터도 세겠지?
-ㄹㅇ 기대됨ㅋㅋㅋ
-아까 트롤 보니까 무쟈게 크더만;;
-진짜 오지고 지리는 부분이다.
웬만한 실력자는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드레젠은 그렇게 생각하며 콰앙-! 하고 발로 문을 시원하게 까버렸다.
망자들이 득실거리는 던전.
훗날 사람들이 ‘사룡의 고성’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