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3화
203화 – 아르게논 대륙
#1
아르게논 대륙.
한때 이 대륙은 광활한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단일 최강의 국가가 지배하고 있던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웠으며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
임진왜란을 결심한 일본처럼, 제국은 다른 곳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전쟁이다!-
그들은 뱃길을 이용해 수많은 탐사를 보냈고, 결국 다른 대륙을 찾기에 이르렀다.
마석 광산이라는 것을 발견한 제국은 수많은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강화 병사’라고 하는 이들이 출몰했고, 그들의 힘은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래서 이름 없는 대륙 사람들은 침략자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칼, 방패, 그리고 제대로 된 대장술도 없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때는 아직 마법과 오러도 없을 시기였다.
드레젠은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세계관을 풀어냈다.
아르게논 제국 사람들은 잔인했고, 탐욕에 가득 찼다.
이름 없는 대륙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겁탈, 약탈했다.
“브레이시스라는 영주가 있었는데, 일은 거기서 벌어졌습니다.”
브레이시스 성.
오늘날 브레이시스 제국의 모태가 된 곳이기도 했다.
그 앞에서 벌어진 전투는 이름 없는 대륙의 운명을 건 전투이기도 했다.
그곳이 뚫린다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테니까.
하지만 강화 병사를 앞세운 아르게논 제국은 막강했다.
“뚫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분이 내려왔습니다.”
훗날 성좌라고 불리게 된 자들과 마법의 시초인 아르간달이었다.
아르간달은 마법으로 강화 병사들을 쓸어버렸고, 전투는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브락시아 대륙의 시초이자 아르게논 대륙의 멸망을 불러온 사건이었다.
“몬스터는 그 후에 나타났고, 브락시아라는 세계 자체는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죠.”
아르게논 대륙은 특히나 몬스터들이 대거로 등장했다.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던 창조주.
수많은 시간을 살아서일까, 인간성을 대부분 상실한 대목이기도 했다.
“결국, 드래곤까지 출몰했고, 아르게논 대륙은 몰락해버렸죠.”
남은 자들은 브락시아 대륙으로 넘어와, 소수민족으로 자리했다.
브레이시스 왕이 민간인들은 건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그들은 브락시아 대륙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남긴 유적지에 보면, 각종 아티팩트가 많이 묻혀 있습니다. 던전이라고도 불리죠.”
-크으
-진짜 세계관 너무 잘 짰네
-ㄹㅇ ㅋㅋ
-얼른 아르게논 대륙으로 가고싶닼ㅋㅋㅋ
실제로 브레이시스 제국은 슬슬 아르게논 대륙을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주 조금씩 뱃길을 통해 원정대를 보내, 전진기지를 세우는 중이었다.
수많은 용병이 아르게논 대륙으로 원정을 떠났다.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아마 지금쯤 새로운 동료들도 원정대에 합류해, 던전을 조사하고 있을 겁니다.”
-얼마나 쎄요?
-최소 마스터급이지!
-직업도 다양할듯ㅋㅋㅋ
“좀 특이한 녀석들이죠. 그 녀석들도 기구한 삶을 살았던 놈들이거든요.”
마스터라고 알려진 자들은 아니었다.
실력은 마스터급이었지만.
그들과 친해지는 과정은 순탄치 않겠지.
하지만 든든한 동료가 될 수 있는 재목들이었다.
“여러분들도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넘어가면 파티로 맞이해 보십쇼.”
대륙은 대양을 지나야만 했다.
드레젠은 와이렉스에게 계속해서 마나를 공급해 주었다.
장장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드레젠은 자동 진행으로 빠르게 스킵해 버렸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땐, 조그마한 항구가 보였다.
“저기가 바로 개척지, 알스미어입니다.”
알스미어.
아르게논 대륙을 개척하는 자들이 모인 항구였다.
크어어어어어-!
거대한 울음소리를 내뱉어, 존재감을 뿜어내는 와이렉스.
항구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보였다.
“환영 인사부터 받아 보죠.”
와이렉스가 고도를 낮췄다.
아직 이곳은 은빛 와이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 흉흉한 기세가 올라왔다.
와이렉스가 울부짖자, 근처 둥지에 있던 와이번이 날아올랐다.
환영인사가 시작되었다.
#2
[크오오오오오-!]
두 번째 울음이었다.
알스미어에 있는 자들은 모두 바짝 긴장했다.
종이 울리고, 무구를 들고 나타난 자들이 수두룩했다.
알스미어는 꽤 단단한 항구도시였다.
몇 번이고 함락당할 뻔했지만, 꿋꿋이 버티고 보강했다.
그 결과 철통같은 방어를 자랑하게 되었다.
“젠장, 와이번들이 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날뛰는 거야!?”
“긴장하지 마. 외조부가 돌아오실 때까지만 버티면 되잖아.”
“저게 끝이 아니라면?”
자꾸 불길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친 여인.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들춰 맸다.
사실 외조부가 없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우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너 누나 못 믿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 와이번 따위 내 대검에 걸리면 반 토막 난다 이거지.”
여자는 대부분 뼈가 가늘고, 작은 체구를 가졌다.
하지만 대검을 매고 있는 이 자는, 어지간한 남자보다 큰 키게, 어깨도 넓고, 뼈도 굵었다.
무려 188cm라는 키를 자랑하는 여전사.
성별만 여자일 뿐, 타고난 근력은 어지간한 남성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 내 앞에서 꼭 지켜줘라. 알겠지?”
“흐흐, 우리 인연이 어디 가겠어?”
반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낸 남자는 작은 체구의 마법사였다.
스테판 로릭스.
아더 로릭스.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였다.
그리고-.
“저기 온다!”
“와이번 중에 가장 큰 놈이 내려온다!”
“모두 경계해!”
두 사람은 아르게논 원정대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으며, 여태까지 막아낸 몬스터의 숫자만 천 단위가 넘어갔다.
남자, 스테판 로릭스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기이잉-!
그의 지팡이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검붉은 마나가 치솟아, 마법을 만들어냈다.
“준비!”
“어- 잠깐! 저 위에 사람이 타고 있는데!?”
“뭐라고?”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에, 순식간에 팽팽했던 긴장감이 팍 사라졌다.
사람이 타고 있다는 말은, 적이 아니란 말과도 같았으니까.
그들은 모두 제국 사람들이었다.
제국에서 테이밍은 제법 심심찮게 보이는 마법.
와이번을 테이밍한 자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설마, 와이번을 테이밍 했다고?”
“말도 안 돼!”
“귀, 귀족인가?”
저만한 와이번을 관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테이밍한다는 것은, 그 몬스터가 먹고, 자는 것까지 책임져야 함을 뜻했다.
그 와중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긴장해! 저놈이 다른 나라에서 온 놈인지 누가 알아! 다들 죽고 싶냐!?”
“아더!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조용히 해봐. 몬스터는 절대 우리 친구가 아니라고. 여태까지 당한 게 있으면서도 모르겠냐?”
장신의 여성, 아더는 기다란 검 손잡이를 굳게 말아 쥐었다.
그녀의 말대로 아르게논 대륙의 몬스터는 브락시아에 있던 물렁물렁한 녀석들과는 달랐다.
같은 오크여도 더 강하고, 더 잔인했다.
몬스터 주제에 전략을 쓰는 모습도 이따금 보였다.
“그러니까, 너도 정신 바짝 차리라고. 엉?”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어?”
스테판이 손을 올려 와이번을 가리켰다.
훌쩍 뛰어내리는 인간.
착지점은 바로 알스미어의 성벽이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이름 모를 사람은 지면과 맞닿았고, 와이번은 동족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읏차-.”
마치 하늘이 아니라, 바로 위에서 떨어진 것 같은 착지 음이 들렸다.
딱딱한 돌로 되어있는 바닥일 텐데, 부드럽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파직-.
마나의 잔재가 성벽을 훑었다.
아더는 저도 모르게 검을 겨눴다.
그 편린만 느껴졌을 뿐인데, 지금 등장한 남자가 얼마나 거대한 마나를 가졌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다, 당신 누구야!”
“나? 여기 도와주러 온 사람이지. 조금 갑작스럽긴 했지?”
싱긋 웃는 모습이 귀티가 줄줄 흘렀다.
본토에서 여자들이 달라 불고도 남을 얼굴상이었다.
아더가 검을 준 손에 힘을 풀지 않고 물었다.
“그런 보고는 없었는데. 정체를 밝혀라.”
“이거면 설명이 되겠지.”
땡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백색 인장.
아더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 용병이 되었을 때, 반드시 익혀두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인장 중 하나.
명실상부한 대륙 최고의 국가인 브레이시스 제국의 백작을 상징하는 패였다.
“배, 백작님?”
“저, 정말 제국의 백작님이에요? 그, 그렇다면 군대를-.”
“군대는 없어. 나 혼자 온 거니까.”
몇 사람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렸다.
백작이 뭔가!
제국에서 병력의 핵심을 담당하는 존재들이 바로 백작인데, 홀로 왔다고?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읽은 드레젠이 피식 웃었다.
“내가 그 군대만큼 잘 싸우니까 괜찮아.”
“…….”
-키야
-치인닼ㅋㅋㅋㅋ
-이거지! 이런 자신감 좋지!
-ㅋㅋㅋㅋㅋ표정 보솤ㅋㅋㅋ
-어이없겠넼ㅋㅋㅋㅋ
드레젠의 눈이 아더와 스테판에게 향했다.
그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애타게 찾고, 그리워했던 이들이 팔팔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있었다.
아더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엄청난 마나는 그렇다쳐도…… 본토와 이곳은 다르다는 거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지.”
여기서 몇 년을 굴렀던 적이 있었으니까.
다른 누구보다 아르게논 대륙을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여전히 못 믿는 눈치인 다른 이들을 둘러봤다.
‘여기도 좀 쓸만하게 바꿔야겠군.’
제법 요새의 티가 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이곳저곳 뜯어고칠 곳이 많이 보였다.
차근차근, 급하지 않게 보강해 나가면 되겠지.
“배, 백작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일단 저희 알스미어를 지휘하고 있는 자작님에게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용병들, 그리고 인부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진 후,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더는 후우- 하고 긴장을 풀었다.
“대단한 사람이 왔군.”
“그,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너는 마법사라는 놈이 아직도 그런 걸 몰라?”
아더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녀가 넋두리를 읊듯 말했다.
“진짜 엄청난 마나량이었다고. 우리 둘을 합쳐도 저 인간 하나한테 안 될 만큼.”
“그, 그 정도야?”
“그래. 하! 갑자기 자괴감이 드네.”
아더는 푹 한숨을 쉬고 걸음을 옮겼다.
남동생의 팔을 질질 끌며 드레젠이 향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모르는, 끈끈한 인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