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1화
201화 – 가장 위대한 자의 등장
#1.
유다, 그리고 요한이 끌고 온 성기사와 병력들은 일개 국가와 국기전을 치러도 될 정도의 규모였다.
급하게 모아서 이 정도일 뿐, 아마 각지에서도 명령받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
드레젠은 빼곡하게 모인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아주 제대로 작정하고 오셨군.”
“이단자! 너는 우리 스텔라의 기강을 흔들기 위해 파견된 자일 뿐이다!”
“가서 성좌랑 이야기나 하고 오세요.”
몸도 적당히 풀었겠다, 드레젠에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저 정도 성기사야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네자렉의 목걸이가 요동치는 중이었다.
신성 왕국에서만 가능한, 딱 한 번의 권능을 쓰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
“그 정도로는 날 못 막을 텐데.”
“웃기지 마라. 너희는 마스터라고 부른다지? 그런 존재가 신성 왕국에도 없을 것 같은가?”
사도들은 기본적으로 마스터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다.
성기사들 중에서도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검이라고 부르는, 뭐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너희는 나에게 안 돼. 적어도 여기서는.”
“이게 무슨 짓인가! 그대들은 왜 진정한 구원을 눈으로 보고도 외면하려 하는가!”
교황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명불허전.
신성 왕국도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부분이 있었다.
신성력이 강하다면 그만큼 스텔라와의 연결도 강하기 때문이었다.
교황의 신성력이 공간을 뒤덮었다.
“……아주 개판이네.”
뿌리부터 썩어 있던 것을 알고 있었지만, 터지기 직전일 줄이야.
모든 인류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들 있으니.
세상 곳곳엔 이기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드레젠은 그 이기적인 사람들 머리통을 반으로 가를 힘이 있었다.
“요한! 유다! 너희들은 신성력의 축복을 받았으며, 스텔라의 사명을 이어받은 존재다. 그 스텔라의 사자가 바로 이곳에 있다!”
“교황 성하. 노망이 드셨군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신성 왕국에는 다섯 명의 마스터가 있었다.
성검은 신성력을 극도로 압축한 비기였다.
이것은 검의 이름이 아닌, 오러 블레이드와 같은 경지의 이름으로 불렸다.
“……안 되겠구나. 요한, 유다. 너희들은 사도의 자격이 없다.”
“저희는 사도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성하. 노망이 드신 분은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셔야죠.”
“건방진 것들. 내 나이가 들긴 했지만, 햇병아리들에게 질 깜냥은 아니니라.”
교황의 본모습은 다소 거칠었다.
사람들에게 성좌의 말을 전파하는 선지자가 아닌, 오로지 악을 쳐부수기 위한 모습이었다.
크리스는 찌릿찌릿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너희들, 무의 추종자들과 함께 했지?”
“이단을 들먹이지 마라. 더러운 자여.”
가만히 있던 요한이 전면으로 나섰다.
그는 사도임에도 검을 사용하는 자로, 다섯 명의 성검 사용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옆으로 두 명의 성기사가 등장했다.
총 세 명의 마스터급 실력자가 있는 것.
‘어지간한 소국가보다 강한 전력인데.’
다시 말하지만, 마스터는 흔한 전력이 아니었다.
그 커다란 제국에서도 열 명이 채 안 되는 명사들이었으니.
홀로 도시와 맞먹는 전력이 셋.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힘들겠지만, 지금은 아닌데. 너희들은 정말 운도 없구나.”
드레젠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웃고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크리스의 눈이 빛났다.
크리스뿐만이 아니었다.
-치인다 치옄ㅋㅋㅋㅋ
-또 레전드 장면인가!
-아 드레젠 선수! 불리한데 웃고 있어요!
-요한 유다 고맙다! 오블도 브튜브 각을 뽑아 주는구나!
[‘크리드’님 10,000,000코인 후원!]
[마스터 상대로 정면승부 보여 주시죠.]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설프게 짓밟으면 또 꿈틀대며 귀찮게 했다.
밟아줄 때 확실하게 밟아줘야 찍소리도 못하는 법.
네자렉의 목걸이가 드레젠의 의지를 받아 환하게 빛났다.
“거기 셋. 덤벼라. 박살 내 줄 테니까.”
드레젠의 전신에 은빛 서광이 어렸다.
지금 이 순간, 드레젠은 세계관 최강자 중 하나인 스텔라의 힘을 빌려올 수 있었다.
빠직.
네자렉의 목걸이가 부서졌다.
괜찮았다.
이만한 목걸이는 다시 구할 수 있었으니까.
[네자렉의 목걸이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성좌 : 스텔라의 힘을 5% 빌려 옵니다.]
고작 5%였지만, 드러난 결과는 ‘고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콰아아아아아아-!
은빛 기운이 몰아치며 드레젠의 뒤로 거대한 환영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은빛 드래곤이었다.
“아아, 스텔라시여.”
털썩.
교황이 무릎을 꿇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니, 절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것.
저것이야말로 그들이, 이 신성 왕국 사람들이 꿈꾸던 모습.
이 나라를 세운 이유가 아니던가.
“후우…….”
압도적인 힘을 받아들인 드레젠이 후, 하고 한숨을 쉬자, 바람이 몰아쳤다.
그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퍼져 나가는 충격파.
돌개바람이 된 충격파는 주변에 있는 먼지, 잔해들을 모조리 쓸어 갔다.
이물질 하나 없는 새하얀 바닥이 그의 성스러운 모습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지금 너희들이 상대하는 건, 이 나라에서 숭배하는 성좌의 티끌이다.”
성좌.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자.
적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자를 일컫는 단어.
그 티끌의 힘은 인간보다 몇 배는 위대했다.
“그렇게 조잘조잘 찬양하는 성좌의 힘을 몸소 느껴 봐.”
드래곤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
용트림을 하며 깨어난 드래곤은 그야말로 인세의 폭군이었다.
드레젠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마스터급 성기사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야 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폭음이 들리고, 여파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끄으……!”
“이런 미친!”
“아아, 성좌시여!”
반응이 엇갈려 나왔다.
병사들 중에서도 경외감에 물들어,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 자가 나타날 정도였으니.
일격이었지만, 마스터들은 깨달았다.
지금 드레젠은 절대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단! 이단이다! 성스러운 성좌의 이름을 그딴 식으로 들먹이지 마라!”
“멍청한 놈.”
“그 힘이 정말 성좌의 것이라면, 어디 우리 전부를 죽여 보아라. 성좌의 힘으로 성좌를 모시는 신민을 죽인다고? 웃기는 소리!”
가롯유다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궤변이라는 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하는 순간, 그는 반역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명분은 만들면 생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힘이었다.
가롯유다는 교황과 드레젠을 꺾을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새로운 목소리가 들리기 전 까진.
“난 너희 같은 신민을 둔 적이 없는데-.”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다.
그 누구도 이곳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이 등장한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드레젠마저도.
모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멈춰 버린 공간 속에, 오직 한 여인만이 움직였다.
“나름 잘 다루네. 도로 가져갈게.”
“당신…….”
“잘 지냈어? 우리 그이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천진난만한 웃음은 그대로였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여전했다.
산, 바다, 하늘은 인간이 느끼기엔 너무도 컸다.
그렇기에 그 웅장함도, 그 대단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 엄청난 것을 실시간으로 느낀다면 과연 나약한 인간이 버틸 수가 있을까?
-뭐야 방송 왜이래?
-으악 또 끊긴다!
[email protected]($%)!_)%
-ㅑ)%!)(#)!
채팅창에 심한 노이즈가 꼈다.
여인은 캠에 한 번 시선을 주더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미안, 내가 와서 방해가 되나 보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다시 방송이 재개되었다.
은빛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사르르 휘날렸다.
드레젠이 가지고 있던 힘도, 그녀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흐음, 아들을 보는 기분이네. 어때? 이참에 내가 대모가 되어 줄까?”
“무슨 해괴한 소리를…….”
“너, 너는 누구냐!”
유다의 목소리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불안했다.
손발이 벌벌 떨렸다.
그건 내제되어 있는 본능에 기인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가진 힘을 모두 끌어모아도, 어찌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여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푸른 눈동자 속,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유다를 응시했다.
“방금 말했잖니. 나는-.”
[너희들 같은 신민을 둔 적이 없다고.]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한낱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울컥, 코와 입으로 피를 쏟은 유다가 풀썩 쓰러졌다.
“사도님!”
“저, 저 여인이……!”
“모두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싱긋 웃으며 말하는 여인의 말대로 되었다.
정말 모두가 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드레젠마저 압도하는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딴 것들이 내 이름을 대고 나라를 만들었다니, 참 어이가 없네.”
피식 웃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치명적이었다.
“이래서 인간들이란-.”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들 때문에, 일부러 수고를 좀 하기로 했다.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괜찮아. 나중에 같이 싸워야 할 것 같은데, 미리 봐두는 것도 좋지.”
그녀가 생긋 웃고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채팅창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18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2.
“아아-.”
하이디엔은 보고를 받고 캡슐로 들어가 동기화를 실행했다.
그러자 드러난 모습에,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뱉었다.
은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그녀를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은 많았다.
“정말로, 정말로 강림하셨어.”
성스러운 드래곤.
은빛 파괴자.
모든 성좌들의 장(匠) 등등.
많은 수식어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말이 있었다.
-대모.
“모든 성좌들의 어머니시여.”
하이디엔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았다.
부디, 우리의 새로운 집을 구원해 달라고.
악의 무리를 쳐부수고, 브락시아에 평화를 가져다 달라고.
그녀는 한줄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3.
두 팔을 활짝 펼친 여인이 하늘을 날았다.
수직으로 올라가, 거대한 형상을 만들었다.
혼돈의 힘을 머금어,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드래곤.
두 쌍의 날개는 하늘을 덮을 정도였으며, 긴 꼬리는 땅에 닿을 정도였다.
그 아름다운 자태는 절로 경외심이 들게 만들었다.
“아아-.”
“성좌시여.”
“성좌시여!”
모든 병사들이 하나같이 무구를 내리고, 넙죽 엎드렸다.
그 고고한 자태가 완성되는 순간,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는 오직 드레젠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이자, 모든 성좌들의 정점에 서 있는 자가 강림했다.
[내 이름은 스텔라. 창조주의 대리자이자 모든 성좌들의 어머니다.]
푸른 눈이 하늘에서 브락시아를 오시했다.
그녀가 또 충격적인 말을 했다.
[감히 내 사자를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건 또 뭔…….”
황당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