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9화
199화 – 크리스 분노하다
#1
그것은 기적이었다.
교황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찬란하게 솟은 빛기둥이 성스러운 힘을 퍼뜨렸다.
빛은 교황청을 수직으로 관통했다.
그 빛을 본 자들은 절로 무릎을 꿇었다.
“서, 성좌님이!”
“성좌님이 응답하셨다!”
“아아, 이런 일이!”
교황청 주변은 갑자기 기도하는 자들로 들끓었다.
빛을 본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가 되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
신성 왕국의 존재 의의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녕 사실인가! 정녕!”
교황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드레젠은 정말 구원자였던 것이다.
전설은 전설이 아니었다.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은, 그저 자신의 믿음이 부족했음이리라.
‘아아, 성좌시여. 못난 저를 용서하소서.’
[교신할 성좌를 선택하세요]
[스텔라]
[로키]
[토르]
[헬라]
[오딘]
[칼루스]
[데이몬]
…….
무수히 많은 성좌의 목록이 떴다.
드레젠은 잠시 고민했다.
어떤 성좌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까.
제일 믿을 만한 것은 스텔라였다.
반면 로키와 헬라는 쉽게 도움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성좌 : 로키가 관심을 보입니다.]
[강제로 교신이 진행됩니다.]
-앜ㅋㅋㅋㅋㅋ
-로키 클라스
-와 저 검이 저렇게 쓰이는구만ㅋㅋㅋ
-대박 바로 그림자 기사단까지 갑니다
-베드모아젤 누나 ㅜㅜ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드레젠이 얻은 아이템은 하나같이 허투루 쓰인 것이 없었기 때문.
주 무기로 사용하고 있던 검이 이런 식으로 활용될 줄이야.
드레젠 역시 모르던 일이었다.
“로키 님?”
[오오, 네가 형이 말한 그 녀석이구나? 반갑다 야.]
악동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속임수와 마법, 변신을 상징하는 트릭스터의 목소리였다.
로키는 조커로도 묘사되는 인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그와 어울렸다.
“반갑습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뭐야? 우리 쪽에 들어올라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스틸테인을 아십니까?”
[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 왜?]
“미스틸테인의 힘이 고갈되어, 거인족이 날뛰고 있습니다. 미스틸테인의 힘을 다시 채워 주셔야 합니다.”
[그래, 그런 무기였지. 겨우살이 창이었던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그런데 내가 지금 내려갈 수가 없는데?]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괜찮습니다.”
[흐흐, 좋아. 실력 검증이라고 생각하겠어. 브락시아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인간 기준에서는 조금 힘들지만.]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다면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해 주마.]
흐흐 웃은 로키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곧이어 퀘스트 창이 활성화되었다.
오랜만에 받는 퀘스트였다.
[퀘스트 : 로키의 명령]
[미스틸테인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성좌가 내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아르게스 대륙으로 건너가, 다음 재료들을 구해 오자.]
[오거 렉스의 뿔 / 성좌의 두 번째 죄악 : 야마타노오로치의 눈 / 사룡 스피라스의 심장]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난도의 퀘스트였다.
홀로 깨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퀘스트.
단순히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거라면 충분히 깰 수 있는 퀘스트였다.
당연히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는 로키가 말을 이었다.
[이번 시련은 홀로 해결해야 할 거야. 일종의 테스트라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그럼 안뇽! 아, 조만간 대모님께서 내려가신대. 기대하고 있으라고.]
교신은 일방적으로 끊겼다.
드레젠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실제 성좌와 교신을 하는 일이었다.
정신적인 부담이 상당했다.
마나도 상당 부분 빠져나간 것 같았고.
“후우- 끝났네.”
“정말 구원자셨군요.”
“앞으로 신성 왕국은 많이 바뀌어야 할 겁니다.”
“…….”
교황은 입을 다물었다.
찔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신성왕국을 세운 교리는 분명히 존재했다.
종교국가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교리였으니까.
그 교리가 조금씩 뒤틀리고, 왜곡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일반 시민들을 착취하고 공물을 바쳐야만 하는,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교황, 당신이라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알 겁니다. 그리고……사도들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명심하겠소이다.”
교황은 드레젠에게 허리를 숙였다.
드레젠은 통치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면서 성좌에게 말할 권리를 가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이 나라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럼……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입니까? 뭐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드레젠은 증명했다.
이제 본격적인 용건을 볼 차례였다.
자, 어디 우리 귀여운 크리스를 괴롭힌 장본인을 알아볼까?
“스카이워커 가문에 관련된 일을 모두 알고 싶습니다만.”
“……그, 그 가문은 악귀의 가문이 아닙니까.”
교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스카이워커 가문이라면 모를 리가 없지.
그와 사도들이 주역으로 무너뜨린 가문이었으니까.
스카이워커 가문은 제국에서도 반쯤 독립적인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눈치를 덜 볼 수 있었다.
“대, 대현자께서 스카이워커 가문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대현자라…… 그럼 그쪽이 기폭제겠고.”
실행에 옮긴 이는 과연 누굴까?
드레젠의 미소가 짙어졌다.
#2
드레젠이 한창 교황과 푸닥거리를 하고 있을 때.
크리스는 성좌의 기운을 느끼고 검을 늘어뜨렸다.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가 무릎을 꿇는 장면, 길을 가던 수녀들이 황급히 짐을 내려놓는 장면은 퍽 인상 깊었다.
빛이 사그라들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기운이 사라졌다.
‘와, 진짜 성공하셨나 보네.’
크리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드레젠, 자신의 스승은 대체 정체가 뭘까?
모든 성좌의 사람을 받는, 진정한 구원자일까?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혹시 귀빈의 손님입니까?”
“네, 그런데요.”
“교황 성하께서 특별히 만찬을 준비하셨습니다. 함께하시겠습니까?”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드레젠에게서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까.
그의 스승은 절대 일정에 없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개를 저었다.
“스승님과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했으니, 저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스승인 드레젠 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드레젠이라는 이름은 크리스의 약점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함께하고 있다고 하자, 그의 마음이 그대로 움직였다.
한 톨의 의심도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수녀는 친절하게 웃으며 그를 안내했다.
“궁금하네요. 신성 왕국의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거거든요.”
“그러시군요.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신성 왕국은 양질의 고기를 사용한 음식이 아주 일품이거든요.”
크리스는 맛있는 걸 먹는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스승, 드레젠과 함께하는 식사는 대부분 밖에서 했다.
실제로 마주 앉아서 고급스러운 식사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생각이 만연했다.
“이쪽입니다.”
“스승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보네요.”
“그분은 교황 성화와 함께 오실 겁니다.”
안쪽에서 드레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크리스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크리스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시지요. 귀빈의 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승님은?”
“그분은 조금 있다가 오실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시죠,”
크리스는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로브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다고나 할까.
그래도 작전의 반쯤은 성공이었다.
“마지막 생존자가 이렇게 크게 성장할 줄이야.”
“악귀의 가문은 이제 죽어야 한다. 네놈의 출신을 탓해라.”
“우리는…….”
크리스의 전신에서 오러가 꿈틀거렸다.
자신의 가문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다.
검의 논리로 의사가 결정되는 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가족 간의 정과 가문 식구들 간의 정은 끈끈했다.
그런 가문을 악귀의 가문이라고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악귀의 가문도, 마족의 가문도 아니야.”
쿠우우우우-!
건물 전체가 떨릴 정도의 오러가 솟아났다.
사도의 하수인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양의 오러였다.
‘교황 성하께서 시간을 많이 끌어 주셔야 할 텐데.’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저 아이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나다면?
초대 스카이워커 가주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면?
“귀중한 자산이다. 죽이진 말도록.”
“알겠습니다.”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크리스의 면전에 대고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악귀의 자식이 살아있다니, 말세로군.”
“우리가 정화해 줄 테니 걱정 말거라.”
“어미와 아비 곁으로 보내주마.”
크리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살면서 이렇게 화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이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스승으로부터 잘 배웠다.
“내 가문은- 위대한 검의 가문이다.”
콰득-.
크리스가 발을 구르자, 주변이 뭉개졌다.
분노로 인한 각성은 폭발적인 마나의 급증을 유도했다.
주변에 있는 마나가 빨려 들어왔다.
그 모든 마나가 크리스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에게 돌격했다.
#3
“음?”
드레젠은 교황에게서 정보를 캐내던 도중, 크리스의 기운을 느꼈다.
갑자기 폭등한 크리스의 마나.
주변을 집어삼키는 패왕의 기세가 드레젠의 피부를 자극했다.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교황을 쳐다봤다.
교황도 느낀 것이 있었는지, 멍하니 그쪽을 바라봤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무슨…… 난 들은 바가 없소!”
“누가 크리스를 건든 것 같은데, 진짜 가지가지 하는군.”
드레젠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교황은 부들부들 떨며 드레젠을 바라봤다.
그 역시 남들보다 많은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드레젠에겐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내가 협력해 주겠소. 감히 구원자에게 칼을 들이민 것과 마찬가지이니!”
오히려 교황이 더욱 화를 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넼ㅋㅋㅋㅋ
-당장 크리스 구해!
-절.대.구,해!
시청자들까지 난리가 났다.
절대 크리스를 잃을 순 없었다.
혹여 다른 세력이 개입한 거라면, 빠르게 움직여야겠지.
드레젠은 마나를 끌어 올려, 오러를 피워냈다.
“빨리 안내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아무런 일도 없을 겁니다.”
“아니, 제자가 문제가 아니라 성기사들을 걱정해야 할 거야.”
콰앙-!
심상치 않은 폭음이 울렸다.
두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