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8화
198화 – 성좌여, 응답하소서
#1
선수들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해 준 뒤, 강일은 감독과 이야기했다.
하이츠를 총괄하고 있는 감독은 강일의 앞에서 정말 공손해졌다.
감독과 코치의 역할이 바뀐 것만 같았다.
“일단 선수들별로 작성한 트레이닝 표입니다. 웬만하면 이대로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금 드레젠…… 아니 강일 코치처럼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요.”
강일이 빙긋 웃었다.
이젠 제법 예전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지금 치고 나가지 않으면 다른 팀들도 따라올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훈련 시킬 테니, 걱정 마십쇼.”
“시간이 나면 다른 모드 선수들도 훈련해 드리겠습니다.”
감독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거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강일은 고개를 숙이고 감독실을 나갔다.
감독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엄청난 일이야. 흐흐, 팀이 날아오를 일도 머지 않았구만.”
리그 초반.
앞으로 하이츠 선수들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감독도 궁금했다.
다음 경기는 사흘 뒤.
외국 선수들까지 있는 ‘ST 텔레콤’과 한판 승부를 벌일 차례였다.
그곳에서 선수들이 벌일 활약이 기대됐다.
#2
“난리가 나겠구만.”
오는 길에 기사를 확인했다.
댓글은 엉망진창이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내용도 있었고, 그건 하이츠가 능력이 뛰어나서라는 말도 있었다.
특히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극성이었다.
요즘 연예인들 기사에는 댓글을 못 달게 해놨다는데, 그냥 인터넷 기사는 추천/비추천만 있었으면 했다.
“다들 손가락에 마귀가 쓰였구먼.”
택시 안에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기사가 그를 흘끔 쳐다봤다.
워낙 무서운 표정이어서일까, 기사는 다시 시야를 앞으로 돌렸다.
지금 말이라도 걸었다간 한 소리 들을 것 같았으니까.
[택시 요금을 지불하지 마세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요즘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을 하면 직접 결제하지 않아도 되는 기능까지 있었으니까.
기사의 인사를 뒤로하고 반지하로 들어갔다.
이삿날이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내일은 아무래도 휴방을 해야겠지.
“드디어 이 반지하를 벗어나는구나.”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기서 살았었다.
추억보다는 악몽이 더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요 몇 달은 정말 행복했었다.
‘20억이 덜컥 생겼네. 이 돈은 어디다 쓴담.’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차였다.
어머니 한 대, 자신 것 한 대.
그렇게 두 대를 사면 세금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
강일은 하이디엔에게 적당히 끌고 다닐 만한 차를 추천받기로 했다.
‘그건 그거고, 일단 방송부터 해야지.’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일단 감내해야겠지.
한숨을 푹 내쉰 강일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방송의 빌드업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선생님!
-ㄷㅎ!
-ㄷㅎ!
-진짜 하이츠 코치가 되신 겁니까?
-으앙 이제 공공재 아니야 ㅜㅜ
-해명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달라는 채팅이 대부분이었다.
강일은 마이크를 세팅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야무야 넘어가면 귀찮게 할 것이 뻔했으니,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자, 매니저들 일 시작하시고, 반갑습니다. 오늘 기사가 떴더군요. 본래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습니다.”
강일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키우고 싶은 선수가 생겼다는 말로 시작하여, 하이츠의 가능성까지.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 것까지.
그의 언변은 뛰어났으면 논리적이었다.
-그런 깊은 뜻이!
-이해했습니다
-크으 제2의 조커가 탄생하는건갘ㅋㅋㅋ
-올스타전 기대된다!
악성 채팅을 치던 사람들은 바로 매니저들이 쳐냈다.
순식간에 채팅이 잠잠해졌다.
앞으로의 행보를 말한 뒤, 화재는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넘어갔다.
회백색 세상으로 들어가며 강일이 말했다.
“오늘은 성좌의 모습을 직접 만나보도록 하죠.”
-와! 성좌!
-가즈아!
-이번엔 어떤 성좌가 우릴 맞아줄깤ㅋㅋㅋ
-스텔라 보고 싶어요!
“이왕이면 스텔라가 강림하면 좋겠지만……저희는 로키가 최우선입니다.”
미스틸테인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로키, 그 이상의 성좌와 접촉해야 했다.
크리스가 올 때까지 기다린 후 강일, 드레젠은 방을 벗어났다.
신성 왕국에서 귀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교황뿐이었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너는…… 수련이라도 하고 있을래?”
“하, 할 수 있을까요?”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힘이 있다면 크리스에게 수련할 수 있는 장소 정도는 그냥 만들어줄 수 있었다.
만들라고 하면 만들어야지, 귀빈에게 대들 수는 없잖은가.
드레젠은 크리스를 일부러 성기사가 훈련하는 곳에 집어넣었다.
“폐 끼치지 말고 수련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드레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성기사들과 한판 붙어 보면 좋겠다고 했지.
그렇지만 멋대로 대련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분위기를 만들라 이거지.’
크리스는 드레젠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훈련 중인 성기사들은 드레젠과 크리스를 흘끔 보더니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넘실거리는 신성력이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기선제압이라도 하는 것일까, 신성력이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음, 저렇게 하는 거구나.’
크리스는 멍하니 신성력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신성력의 원리가 보였다.
왠지 오러로도 그 비슷한 테크닉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써먹어 봐야지.’
크리스는 페베스 검술을 더 완벽하게 갈고닦기 위해서 검을 들었다.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저 꼬맹이가 어떻게?”
“허어, 이거 우연이로군요.”
새하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들.
그들이 크리스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빛냈다.
“파견 나갔던 인원들이 모두 연락이 끊겼는데,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을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밖으로 나간 자들은 모두 죽었다고 봐야겠죠.”
“사도님께서 경탄할 일입니다. 얼른 해결하지 않으면-.”
작당 중인 그들에게 한 명이 다가왔다.
방금 정보를 입수했는지,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초를 쳐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저 아이를 건드는 것은 계획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소?”
“귀빈께서 데려온 자라고 합니다.”
로브 안에 있는 얼굴들이 딱딱하게 굳었다.
귀빈과 함께 온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섣불리 건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겠지.
모인 이들 중 하나가 말했다.
“그렇다면 귀빈이 저 아이의 보호자겠군.”
“그렇습니다. 아마 비밀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거, 일이 조금 꼬였는데?”
“아니, 오히려 약점을 잡을 수 있겠군요.”
비릿하게 웃는 얼굴이 있었다.
볼에 요상한 문양의 문신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문신의 의미를 아는 이는 없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약점이라…….”
“그렇군요. 확실히-.”
사람들의 머리가 돌아갔다.
잔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일까?
이들 역시 신성한 나라에서 더러운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자아, 천천히 상의해 보시죠. 잘만 풀리면 강력한 실권을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크리스를 바라보던 이들이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이름 모를 이는 빠르게 자리를 옮겨,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신성한 왕국이라기엔 문제가 많은 곳이었다.
#3
드레젠은 현재 교황과 마주 보고 있었다.
그에게 부탁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교황청의 지하를 흔쾌히 내주었다.
“정말 성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겁니까?”
“운이 좋다면 그렇겠죠. 성좌들은 바쁘잖아요.”
“허허, 부디 응답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교황은 인자하게 말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구원자?
성좌와 이야기를 한다고?
그건 이미 전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교황인 자신도 성좌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것도 들린 건지, 아니면 꿈속에서 들린 환청인지 알 길이 없지.’
교황은 구원자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보길 원했다.
그가 진정으로 성좌와 통신할 수 있다면, 그를 위해서 기꺼이 교황의 자리까지 내놓을 수 있었다.
성좌는 이미 전설적인 존재였다.
전설이 뭔가!
“이곳입니다.”
전설은 현실에서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성좌라니.
교황이지만 아직도 그것을 믿는 것이 회의적이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재단이었다.
요직 교황만이 이곳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곳은…… 성좌의 기운이 가장 센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기도하며 성좌들의 목소리를 듣곤 했죠.”
“그렇군요. 교황 성하께서는 언제 마지막으로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흐음, 솔직히 말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은 지는 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드레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아니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성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성좌들은 지금 브락시아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관문 군주가 차원의 중심을 지키는 정도?
‘다른 성좌들은 무의 추종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까.’
무의 추종자들은 세계를 집어삼키는 자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조신이 성좌들을 계속 생성하고 있다지만, 무의 추종자의 세력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신성 왕국에 관심을 준다?
“그럼 제가 기도를 올려보겠습니다.”
성좌는 분명 존재한다.
본래 게임이라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이곳은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으니까.
드레젠은 천천히 걸어서 재단 위로 올라갔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신성력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성좌의 검이 반응합니다.]
[검을 재단 위에 세워 주세요.]
스릉-.
거대한 검을 꺼내자, 신성력이 검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통신기 역할을 하는 걸까?
드레젠은 재단의 중앙에 검을 꽂았다.
그리고 경건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응답하소서.”
그가 작게 읊조리자, 검에서 환한 빛이 터졌다.
교황은 깜짝 놀라 멍하니 성스러운 빛을 쳐다봤다.
자신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반응이 없었던 재단이었다.
항상 절망만 안겨주었던 재단이 빛나는 모습에, 교황은 절망했다.
그는, 진짜 구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