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93화 (194/279)

제 193화

193화 – 벌써?

#1

드레젠과 크리스가 신성왕국 부근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야심한 밤이었다.

저 멀리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도시가 보였다.

신성왕국의 수도이기도 한 곳이었다.

“저기가 신성왕국이군요.”

“그래. 녀석들은 이상한 취미가 있어서, 수도를 가장 앞쪽에 배치했지. 참 성격을 모르겠단 말야.”

이슬람교의 선지자처럼 개시를 받았다는 초대 교황이 세운 신성왕국.

그 의지를 이어받아 수 세기 동안 이 땅을 지켜왔다.

북부에 있으면서도 항상 쾌적한 날씨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교황의 힘 덕분이었다.

엄동설한에도 신성왕국이 다스리는 영토만큼은 따스했다.

“조금만 참으면 곧 따듯해질 거다.”

“네. 그래도 오러를 두르고 있으면 춥진 않아요.”

[이 정도 추위도 견디지 못하면 다가올 싸움에서 힘들 거다. 꼬마.]

“거뜬합니다.”

크리스는 자신을 지킬 역량이 충분했다.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왕국의 수도가 보였다.

이제 몰래 잠입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문득 예전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성기사들은 매우 권위적이고 자만심에 빠져 있다. 웬만하면 그들과 부딪히지 마.”

“네. 주의하겠습니다.”

“뭐……여차하면 다 엎고 튀면 돼.”

크리스는 드레젠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간단히 말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드레젠의 말대로 성기사들은 무자비하고 권위적이었다.

그들만이 성좌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음?”

성벽이 보일 무렵, 드레젠은 묘한 광경을 바라봤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사람들.

그 뒤를 쫓는 갑옷 입은 자들.

자세히 보니 도주하고 있는 민간인을 쫓는 병사들이었다.

‘가지고 놀고 있군.’

뒤에는 성기사도 있었다.

성기사는 기본적으로 신성력을 다룰 줄 아는 인간.

즉, 초인이었다.

중년 남녀, 그리고 아이들을 쫓으려면 이미 예전에 쫓았을 것이다.

드레젠이 인상을 찌푸렸다.

“공물을 바치지 못해 도망 다니는 자들이로군. 렉스, 저쪽으로 내려가자.”

[저들을 도와주려고? 왜?]

“성기사 놈들에게 간섭받지 않으려면, 힘을 보여줘야 하거든.”

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향을 틀었다.

드레젠은 신성력 역시 다룰 줄 알았으니, 알아서 할 것이란 믿음뿐이었다.

성기사들은 와이렉스의 존재를 눈치챈 듯,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그리고 신성력이 담긴 화살을 쏘아댔다.

[멍청한 것들.]

와이렉스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저 정도 화살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으니까.

몸으로 대충 맞아 주면서 열심히 도망가고 있는 자들 앞으로 내려갔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상태인데, 엄청난 크기의 와이번까지 등장했다.

민간인들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우, 우린 끝이야.”

“여보 어, 어떡해요?”

“히끅-.”

두 명의 아이들도 몸을 벌벌 떨었다.

쿠웅-!

와이렉스가 착지했을 땐, 뒤로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우르르 몰려온 병사들이 무기를 겨눴다.

“넌 뭐냐! 정체를 밝혀라!”

“당신들, 공물이 없어서 쫓기는 건가?”

“그, 그렇습니다.”

와이번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간인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신성왕국 : 스텔라의 절대적인 논리는 바로 돈이었다.

어떤 범죄라도 돈이 있으면 벗어날 수 있었다.

‘면죄부’라는 것이 만연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위로 올라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흠.”

성기사들에게 호감을 얻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면죄부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던가, 교황처럼 압도적인 신성력을 소유하고 있던가.

여기서 드레젠은 두 가지 모두 해당됐다.

“이봐. 너희들은 면죄부라는 것을 판다지?”

“누구냐고 물었다.”

“구원자.”

드레젠이 씨익 웃으면서 보석 덩어리를 던졌다.

탄지니움.

쿠우쿠에게 미리 받아온 것이었다.

탄지니움은 신성왕국에서 정말 높은 가치를 자랑했다.

신성왕국은 표면적으로 다른 종족의 침략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탄지니움?”

“그거면 면죄부 한두 개쯤은 살 수 있을 텐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있나 본데, 면죄부는 단순히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

화악-!

어둠을 불살라 먹는 빛이 터져 나왔다.

따스하고 경건한 기운.

신성력이었다.

민간인은 물론, 성기사들도 놀랐다.

이 정도 신성력은 교주, 그 이상이었다.

‘멍청한 놈들. 결국, 신성력도 마나를 다루는 테크닉의 일종인데.’

모든 기운은 결국 마나에서 출발한다.

스텔라의 성기사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평생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

그 안일함이 결국 파멸을 불러왔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말했잖아. 구원자라고.”

“……일단 이들은 저희가 인계하겠습니다.”

“나도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안내가 가능한가?”

성기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신성력은 곧 칼루스와 스텔라의 축복을 받았다고 믿는 성기사들.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을 진짜라고 믿는 눈치였다.

조금 고민하던 그들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겠습니다. 너희는 운 좋은 줄 알아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반도주하던 가족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겉은 찬란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진 곳.

신성왕국이었다.

#2

“오늘은 일단 이곳에서 쉬십시오.”

“고마워. 저 와이번은 걱정하지 말고.”

성벽 첨탑에 앉아있는 와이렉스.

그 자태는 신성왕국의 배경과 제법 어울렸다.

드레젠은 성기사들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하루 머물고, 내일 수도의 중심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테이밍한 소환수는 믿고 있습니다.”

드레젠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면죄부.

신성왕국을 멸망으로 이끈 원인이었다.

스텔라는 교황이 장기 집권하기 위해서 면죄부라는 것을 만들었다.

지구에서도 그랬듯, 면죄부는 곧 부패의 온상이었다.

“면죄부로 인해 어떻게 됐는지는, 우리네 역사도 잘 가르쳐 주었죠.”

-그거 ㅇㅈ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진짜 요즘 죄짓고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놈들이 너무 많음

-여기도 썩었네ㅜㅜ

초대 교황이 만들었던 찬란한 은빛 왕국.

서서히 안쪽부터 부식되어 가고 있는 퇴물이 되어갔다.

마족이 들어오면서 가장 많은 전력 이탈이 있었던 곳도 바로 신성왕국이었다.

평소에 어떻게 다뤘으면 수많은 민간인들이 마족 밑으로 들어갔을까.

“가장 확실한 건 스텔라 본인이 와서 정리해 주는 거겠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저, 스승님.”

“응?”

“이곳에서 강한 자들과 붙어볼 수 있을까요?”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들과 맞붙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그들의 미학은 폭발이었다.

광범위하게 터지는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해야 할 터.

“신성력은 폭발성 공격을 하지. 뭣하면 내가 상대해 줄 수도 있어.”

“그것도 좋겠네요.”

“그래도 본토의 맛을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드레젠이 사용하는 검술보단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검술을 겪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신성왕국에서 사용하는 검술은 선호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적으로 만난 이들이 훨씬 많았지.

“나중에 많이 만나게 될 테니까, 겪어둘 수 있을 때 겪어 둬.”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드레젠이 무언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투루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3

교황청.

갑자기 등장한 신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현재의 교황, 스텔러스 14세는 후덕한 체형을 가졌다.

그는 옥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신성력이 그의 강함을 알게 해 주었다.

‘곤란하군.’

그는 계속해서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답하는 일은 없었다.

착잡한 나날이 계속되는 때.

이 시기에 구원자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만나봐야겠군. 어쩌면-.’

“게 있는가.”

“부르셨습니까. 교황 저하.”

부드러운 목소리.

스텔러스의 목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교황의 제자라고 불리는 열두 사도 중 하나였다.

“구원자라고 불리는 자가 나타났다지? 그를 데려오거라.”

“그 말을 믿는 겁니까? 교황님.”

“수년 전부터 성좌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구원자라고 주장한 자가 나타난 상황이고. 그를 한 번쯤은 만나볼 가치가 있어.”

사도 중 한 명은 고개를 숙였다.

백색 와이번을 타고 나타난 구원자.

그 정체가 어떤 것인지 먼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황의 시간은 금보다 귀했다.

쓸데없는 상황에 시간을 빼앗긴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만, 제가 먼저 검증해도 되겠습니까?”

“흠,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하거라.”

교황은 흔쾌히 허락했다.

사도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구원자?

진정한 구원자는 스텔러스 일가뿐, 다른 이들은 절대 성좌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굳게 마음을 먹고 걸음을 옮겼다.

“사도님. 준비되었습니다.”

“가자.”

일련의 성기사 무리가 그의 호위를 맡았다.

넘실거리는 신성력이 그들의 위압감을 증명했다.

성기사에도 등급이 있었는데, 이들은 계급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구원자가 있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확인하고 데려오라 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군.”

“갑자기 구원자라니.”

“혼란스러워하지 마라. 우린 언제나 성좌의 충실한 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성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오롯이 성좌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훈련했다.

그 말의 의미를 상기하며 걸음을 옮겼다.

#4

“안에 있는가?”

“누구지?”

자동진행으로 밤을 보낸 드레젠은 아침부터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슬쩍 열어보니 하얀색 갑옷들이 시야를 꽉 매웠다.

그 앞에 있는,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드레젠은 그를 보고 단번에 정체를 알아차렸다.

“나는-.”

“사도로군. 가롯유다. 맞지?”

“-전에 우리가 만났던 적이 있는가?”

“없지만 알고 있지. 듣고 온 거 아닌가?”

구원자.

그 이름이 유다의 뇌리에 박혔다.

성기사들은 항상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눈썹을 씰룩이는 것이 보였다.

유다 역시 평정심이 조금 흔들렸다.

“교황이 오라고 했겠지? 사도인 너는 날 시험하러 왔을 테고.”

-ㅋㅋㅋㅋㅋㅋㅋ

-표정ㅋㅋㅋㅋㅋ

-Re : 뭐든지 아는 남자

-표정봨ㅋㅋㅋㅋㄹㅇ 구원자넼ㅋㅋㅋ

시청자들의 말대로, 유다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

정말 구원자인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드레젠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뭘로 날 시험할 거지?”

요한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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