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92화 (193/279)

제 192화

192화 – 은빛 드래곤을 섬기는 자

#1

“황자 저하! 서, 서리족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난데없는 소식에, 황자는 어안이벙벙했다.

서리족이라니.

기어코 드레젠이 분쟁을 일으켰나 싶었다.

제국의 북쪽은 소식이 영 느렸기 때문에 드레젠이 서리족에게 어떤 자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갑자기 서리족이 왜 온다는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이, 일단 경계는 하고 있습니다만…… 저쪽에서 전투 의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나가 보겠다.”

황자는 자신의 검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서리족이라니.

갑자기 일이 복잡해졌다.

잔뜩 인상을 구기고 나갔지만 멍하니 검을 내리고 있는 기사단원들을 바라보고 의아해했다.

쿠웅-!

거인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가 막사를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드레이크? 아니……드레이크보다 훨씬 큰데?”

“제 파트너 중 하납니다. 저하.”

등 위에 타고 있던 인영이 훌쩍 뛰어내렸다.

이런저런 기운에 섞여 잘 몰랐지만, 분명 드레젠의 목소리와 기운이었다.

황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지원군, 도착했습니다.”

“반갑소. 인간 지휘관. 서리족의 지휘관인 쿠우쿠라고 하오.”

“바, 반갑소. 한데 정말 도와주러 온 건가?”

황자가 드레젠을 바라보며 물었다.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답은 쿠우쿠에게서 나왔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황자의 표정은 여전히 이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자 표정봨ㅋㅋㅋㅋ

-하긴 나라도 저랬을듯ㅋㅋㅋ

-깜짝 놀라셨어요?

“은인께서 부탁하셨소. 이곳에서 함께 거인들을 막아 달라고. 은인의 부탁이라면 우리 서리족은 기꺼이 응할 것이오.”

“자네…….”

“제가 좀 인기가 많습니다.”

드레젠은 능청스럽게 상황을 넘겼다.

그가 서리족을 이끌고 온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신성왕국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드넓은 설원을 지나면, 더 북쪽인데도 불구하고 따스한 기후를 자랑하는 지대가 나왔다.

“거인족은 당분간 잠잠하겠죠.”

“당장 내려올 기미는 보이지 않네. 숙소를 마련해야겠군. 따라오시오.”

“가자.”

쿠우쿠를 비롯한 서리족이 움직였다.

만드록스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똬리를 틀었다.

신기한 듯, 기사단원들이 흘끔흘끔 쳐다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흐으, 백작님 진짜 엄청나네?”

“그러게. 저런 소환수까지 거느리셨다니.”

“진짜 존경스럽다. 이러다가 나중에 공작까지 올라가시는 거 아니야?”

기사단원 중 하나가 설레발을 쳤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 벤시가 툭 내뱉었다.

“저하가 다시 황위 경쟁에 뛰어드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

그녀의 한 마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벤시는 아직까지 황자가 옥좌에 앉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 말고는 황제가 될 재목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만약 그렇다는 거지. 너무 무겁게 듣지들 마.”

“아, 알겠습니다.”

벤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기사단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그녀를 따라 막사로 향했다.

드레젠이 오고, 거인족과의 전투를 치르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서리족이라니.

‘웬만한 기사보다 강하다고 했지.’

전투에는 이골이 난 북방 기사단이었다.

과연 자신보다 강한지 궁금했다.

서리족은 육체의 힘으로 기교를 부리는 자들이었다.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겠지.

“이곳에서 지내면 되겠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시오.”

“고맙소.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군.”

쿠우쿠는 황자를 동등한 입장에서 대했다.

황자 역시 서리족에게 제국의 신분을 들먹일 생각은 없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편견 없이 대화를 나누고 보니, 꽤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이곳도 서리족의 땅만큼 척박하구려.”

“그렇소. 아무래도 지형이 비슷해서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소.”

“이곳의 인간은 서리족과 비슷한 것 같소이다.”

쿠우쿠는 높은 곳에 올라 땅을 바라봤다.

훈련하는 자들, 분주히 움직이는 자들.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식량을, 나무를, 물품을 구하러 떠나는 이들.

기사단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악착같이 애쓰는 중이었다.

‘인간들도 별반 다르지 않군.’

항상 호화롭게 생활하는 인간들만 봐서 그런지, 색달랐다.

동질감도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살아가는 동족들도 비슷한 심정이겠지.

쿠우쿠는 한동안 말없이 인간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봤다.

황자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 그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2

“크리스. 우리는 내일 출발할 거야.”

“네. 정말 서리족과 친해지신 거예요?”

“일이 조금 있어서. 꽤 됐지.”

두 사람은 만드록스 앞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만드록스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이 아이가 스카이워커의 자손인가?]

“그래. 제법 닮았어?”

[빼다 박았군. 초대 스카이워커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드레젠은 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성장의 시기가 다소 느렸던 크리스.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며 홀로 싸웠던 그는, 어른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재능을 개화했다.

샤페론이 죽고, 혼자 남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정도라니, 진짜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니까.’

시궁창 속에서 굴러, 대륙 최강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젠 그 길을 자신이 닦아줄 차례였다.

“헤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누가 가르치는 건데.”

드레젠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 드레젠이 가르치고 있었지만, 알맹이는 크리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미래, 다가올 재앙 속에서 빛났던 검사.

용사인 자신과 일곱 영웅, 대공을 비롯해서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빛났던 검의 황제.

‘받은 빚은 갚아야겠지.’

크리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초대 크리스가 길을 만들었고, 드레젠이 그 길을 닦았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크리스는, 그 길의 끝을 볼 것이다.

“그럼 들어가서 푹 쉬어라.”

“예!”

오늘따라 크리스는 신이 나 있었다.

드레젠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가 만드록스의 거대한 팔에 기대며 말했다.

“신성왕국에 가 본 적 있어?”

[아니, 그런 곳은 모른다. 그들이 자랑하는 군대와 이야기한 적은 있었지.]

“광신도 같았나?”

[정확하군. 성좌의 뜻이 그렇게 고귀하고 복잡한지 몰랐는데 말이야.]

드레젠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신성왕국.

브락시아에 살면서 가장 꺼려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용사 프로젝트는 ‘어디서’ 진행할 것인지도 꽤 큰 논란이었다고 한다.

그때 강력하게 용사의 소유권을 주장했던 곳이 신성왕국이었다.

“그곳은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성을 되찾은 거인들이라면 귀중한 전력이 되어줄지도 모르고.

드레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억나는 것을 정리했다.

-이름만 들어도 광신도 느낌인데;;

-옛날부터 판타지에서 종교국가는 암 덩어리라는 게 국룰이짘ㅋㅋㅋ

-ㄹㅇ ㅋㅋ

-고거 킹정이짘ㅋㅋㅋ

수많은 클리셰 중 하나였다.

신,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의 이름을 빌려 온갖 악행을 휘두르는 국가.

종교를 내세운 국가의 포지션이 딱 그만큼이었다.

브레이시스 제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부패해 있는 국가이기도 했다.

“이번엔 응해 줄까?”

드레젠이 뇌까렸다.

크응-.

만드록스가 귀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드레젠은 그의 딱딱한 비늘을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자리를 옮겼다.

“잘 부탁한다. 서리족.”

[그래.]

“아, 그리고 카라탁스도 찾았어.”

[그 까탈스러운 애가 말은 잘 듣더냐?]

“나름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성좌를 불러와야 할 때고, 정면으로 부딪치기 위해서는 신성왕국으로 가는 것이 필수였다.

이 시기에 이쪽에서 먼저 성좌를 찾는 것은 신성왕국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

“크리스의 비밀도 파헤쳐 봅시다.”

-가즈아!

-브튜브도 각 잘 나온닼ㅋㅋㅋ

-그냥 고대로만 올려도 조회수 100만은 그냥 넘기던뎈ㅋㅋㅋ

-진짜 장난 아님ㅋㅋㅋ

하루에 몇 개씩 올라가는 동영상.

수익은 쏠쏠하게 잘 나오는 중이었다.

구독자도 이제 곧 600만을 바라보는 중이었고.

그가 할 일은 빠르게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로 내일 출발하겠습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가, 신성왕국이 모습을 드러낸 차례였다.

#3

그 국가는 황금빛 띠와 은색으로 바탕으로 묘사되곤 했다.

건물마다 작은 깃발이 나부꼈다.

은빛 드래곤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양의 깃발이었다.

그곳은 평화로웠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으니까.

“오늘 어떤가?”

“항상 똑같지 뭐.”

“그런가? 허허. 이제 곧 예배시간이니 얼른 들어가 쉬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일상.

하지만 그들의 뒷이야기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후우, 또 예배를 가야 한다니.”

“여보, 어떻게 해요? 이제 공물로 낼 돈도 없어요.”

“이, 이번 한 번만 안 가면 안 되나?”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물.

위대한 성좌이자 모든 드래곤의 어머니, 성좌의 어머니라고 불렸던 자를 위해 바치는 물건이었다.

공물로 낼 것은 다양했다.

돈부터 시작해서 가치 있는 물건까지.

없다면 성소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굶어 죽겠어요.”

“하아…… 어떻게 하지.”

남자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는 수밖에.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보. 짐 싸.”

“네에!? 아, 안 돼요!”

그들은 성기사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일반인인 그들이 성기사의 추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성기사는 신성력을 사용하는 초인들이었으니까.

“그래도 해야 해. 다른 도시는 그나마 살 수 있을 거야. 여긴 미쳤다고!”

“……알겠어요.”

결국,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집.

그곳엔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가구들, 생활용품, 심지어는 용변을 보는 기구까지.

모든 것이 없었다.

“이렇게 아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잖소.”

“그건 그렇지만…… 어, 어떻게, 방법이 있어요?”

“내가 조사하고 계획까지 세워 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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