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9화
189화 – 엇갈린 운명
#1
기사단이 훈련하는 곳.
황자는 두 소년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문의 직계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소양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드레젠의 제자라고 하니, 그 실력이 기대되는군.’
스카이워커는 검의 가문이었다.
오러를 사용하는 검술의 시초.
스카이워커의 검술은 악귀와 같다고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악마’라고 불렸다.
직계자손이니 그 검술을 익히고 있겠지.
“가문의 검술을 익히고 있느냐?”
“예.”
“그렇다면 여기서 보여 보거라.”
크리스는 황자의 말에 드레젠을 한 차례 바라보았다.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는 페베스 검술을 봐도 따라 하거나 하지 않을 위인이었으니까.
크리스는 검을 꺼냈다.
‘도련님은 페베스 검술을 제대로 익힌 적이 없었을 텐데.’
에릭은 페베스 검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페베스 검술의 위험성으로 인해 배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페베스 검술은 익히면 익힐수록 악마에 가까워졌다.
무지막지한 정신적 압박을 이겨내야만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도련님이 페베스 검술을 익혔을 리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었으니까.
고이 모셔뒀던 문서를 꺼낼 때가 되었다.
에릭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검술 시연이 시작되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페베스 검술은 오러로 완성되는 검술.
크리스가 쥔 검날에 오러가 피어났다.
황자는 물론이고 에릭 역시 놀라울 정도의 수준.
‘이제 10대 초중반일 텐데, 저런 오러라니.’
‘……역시 도련님.’
에릭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과 크리스는 비슷한 또래였다.
이제 오러를 입히는 수준인 자신과 능숙한 기사 수준의 오러를 구사하는 크리스.
둘의 차이는 이미 하늘과 땅 수준으로 벌어져 있었다.
“후우-.”
크리스는 드레젠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도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밤의 모습.
그밖에도 페베스 검술을 사용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드레젠은 페베스 검술을 사용하며 절대 악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만 따라 할 수 있는 거라면 괜찮아.’
크리스 역시 이미 형태는 모두 머릿속에 있었다.
그걸 펼치기만 하는 거라면 괜찮았다.
드레젠에게 이미 마나의 흐름을 배웠으니까.
검이 움직이고, 페베스 검술의 정수가 흘러나왔다.
-와 잘한다
-ㅋㅋㅋㅋ엄청 잘하네
-저렇게 배워놓고 하나씩 따로 연습하는 거구나;
-천재는 천재다ㅋㅋㅋㅋ
-리틀 드레젠이넼ㅋㅋㅋ
올올이 풀어져 나오는 검술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패도적인 기운을 담고 있으면서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모습.
에릭은 물론이고 황자까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크리스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된다.’
페베스 검술을 휘두를 때마다 피를 봐야 했던 가문의 사람들.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드레젠은 페베스 검술을 진정으로 완성시켰다.
그 결과가 이곳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마, 말도 안 돼!”
에릭이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
자신이 아는 페베스 검술은 저런 것이 아니었다.
훨씬 광기가 넘치는 모습이어야 했다.
저건, 저건 페베스 검술이 아니었다.
“저건 페베스 검술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
“제가 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건, 저건 진짜 페베스 검술이 아닙니다!”
에릭은 머릿속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가문의 정통을 중시하던 스카이워커 가문이었다.
직계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못했던 페베스 검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상한 검술을 가지고 페베스 검술이라니!
“그게 정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저도 몰래 익혀 왔고요.”
“그렇군. 생존자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딱히 에릭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 홀로 생존했다고 생각했으니.
그 상황에서 비전서를 찾아 탈출한 것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할 일이었다.
황자는 에릭과 크리스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크리스라고 했나, 재능은 확실히 엄청나구나.’
솔직히 욕심이 났다.
드레젠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제자로 거뒀을 테지.
매달려서라도 제자로 들였을 정도로 탐났다.
황자는 에릭에게 페베스 검술이 적힌 책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본 황자가 직접 비교해보고 싶구나. 가져올 수 있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스카이워커의 직계였다면 목숨을 걸고 지켰을 문헌.
하지만 에릭은 어떻게 해서든 크리스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싶었다.
백작의 제자와 황자의 제자.
누구의 제자를 더 쳐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무려 황자의 제자가 아닌가.
“왜 죽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드레젠이 조용히 뇌까렸다.
시청자들 역시 그 의견에 동조했다.
크리스와 함께 동고동락한 시정차들이었다.
사회생활을 많이 했던 사람들은 에릭의 행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꼬맹이가 벌써부터;;
-컷 해야 됨
-질투심 밴!
-찍소리도 못하게 눌러버려야 됩니다!
꽤 과격한 욕설을 날리는 자들도 보였다.
이런 사소한 질투가 곧 정치의 시작이었다.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간 에릭을 바라본 드레젠이 황자를 바라봤다.
“미안하네. 내면에 질투심이 있을 줄이야. 하긴 놀랐겠지.”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페베스 검술은 크리스가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저 친구에겐 그걸 보여줘야겠군요.”
“그래. 스카이워커 가문의 검사는 악귀와 같다는 소리가 있지.”
“감정에 사로잡혀 검을 휘두르는 자는 전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위력이 강해도 마찬가지지요.”
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상대하는 거인들이 딱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압도적인 피지컬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무기였다.
어지간한 자들은 손발을 휘두르는 것 자체로 피떡이 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힘이 기술을 이기는 건 아니었다.
“기존 페베스 검술은 힘, 오러의 무식한 양으로 승부를 봤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은 부족했죠.”
성좌, 스카이워커가 남긴 오점이었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일부러 그랬다는 소리가 있었다.
너무 완벽한 검술을 남겨 주면 자만심에 빠질까 봐.
결점을 남겨, 발전의 여지를 줬다.
‘수많은 세월 동안 발전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지.’
후우-.
한숨을 쉬며 시연을 마친 크리스가 황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두터운 박수 소리가 들렸다.
황자가 크리스의 시연을 보고 보인 반응이었다.
아름답고 위력적인 검술이었다.
“천재로군.”
“과찬입니다. 저하.”
“아니, 본인은 쓸데없는 희망을 심어주지 않는다.”
황자는 딱 잘라서 말했다.
브레이시스라는 성을 버리고 이곳에 온 이래, 최고의 천재를 만났다.
황궁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자신도 크리스라는 소년의 나이 때, 저런 퍼포먼스는 보이지 못했으니까.
왜 그가 검의 가문의 직계인지 보여주었다.
“황궁에도 그대처럼 대단한 인재는 없다. 자부심을 느껴도 좋아.”
“감사합니다.”
그 사이, 헐레벌떡 뛰어온 에릭이 보였다.
몇 번을 펼쳐 보았는지, 끝이 다 닳은 책 한 권과 함께였다.
그는 공손히 두 손으로 황자에게 책을 가져다주었다.
“여, 여기 있사옵니다.”
“그래. 크리스라고 했나? 이건 자네 가문의 비전이다. 가문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원한다면 돌려주겠다.”
“괜찮습니다. 저하.”
“호오, 왜지?”
크리스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였다.
그의 가문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언제나 숙이는 것은 저쪽, 내려다보는 것은 이쪽이었다.
설령 그것이 황제의 가문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이제 낡은 검술입니다. 페베스 검술은 제 손을 거쳐 더욱 완벽하게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건 페베스 검술이 아닙니다.”
-말 한번 잘한다!
-멋있다 크리스!
-누나들이 응원한다! 꼭 꽃길만 걷자!
-형님들도 응원한다!
드레젠은 채팅창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보이진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널 응원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이거 아주 물건이로군. 네 뜻은 잘 알겠다. 그럼 사양 않고 살펴보도록 하지.”
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황자는 꼼꼼히 검술을 살펴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탁.
그가 책을 덮고 에릭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에릭.”
“예, 저하.”
“그 책은 당장 불태우는 것이 좋겠구나.”
“네, 네!?”
충격이었다.
이건 분명 스카이워커 가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빼 온 비기였다.
그런데 태워 버리라니!
“그, 그게 무슨…… 이, 이해를 잘 못 하겠사옵니다. 저하.”
“네 노고는 잘 알고 있다. 아마 목숨을 걸고 지켰을 테지. 하지만 그 검술은 미완성이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니 알겠더구나.”
황자는 자상했다.
쪼그려 앉아, 에릭의 눈높이로 내려온 그가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에릭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던 자가 놓지 못했던 과거의 유산.
황자는 에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릭. 너는 내 제자다. 그 누구도 아닌, 브레이시스 3황자의 제자. 그만큼 재능이 있으며 누구보다 당당할 권리가 있다.”
“화, 황자 저하.”
“그러니 과거의 유물은 이제 버리거라. 스카이워커 가문은 네 인생에 없는 것이다. 네 인생은 나, 3황자가 책임지겠노라.”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툭, 낡은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에릭 역시 평범한 소년이었다.
소년, 소년의 마음은 누가 이끌어주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하기 마련.
“좋은 스승을 얻었군.”
이로써 에릭의 처우도 결정되었다.
저런 스승 밑에서 크는데,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이제 에릭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
시기와 질투에 먹히지 않고 잘 성장하겠지.
“이걸로 한 건 해결이군요. 크리스도, 에릭도 각자의 길을 잘 걸어갈 겁니다.”
선의의 라이벌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 에릭은 크리스에게 도달할 레벨은 아니었다.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는 그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하늘에 닿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뛰어야 하는 법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습격이다-!”
쿠웅-.
저 멀리서 땅 울림이 느껴졌다.
드레젠과 황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거인족의 출몰.
드디어 실력 행사를 할 때가 다가왔다.
“거인족과의 전투도 겪어야 할 일이니, 이번 기회에 간단한 공략을 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좋지!
-역시 공략 잘 뽑으시넼ㅋㅋㅋㅋ
-가즈아!
저쪽에서 먼저 건드렸으니, 드레젠에겐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
그가 씨익 웃으며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