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7화
187화 – 또 하나의 후계자
#1
또 한 명의 생존자라니.
이건 드레젠도 몰랐던 일이었다.
일이 재미있게 되었다.
잘하면, 크리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지도 몰랐다.
“그럼 그곳부터 들러야겠군요.”
“북동쪽, 거인들의 땅으로 가면 될 것 같군.”
“거인이라…….”
거인.
드레젠과는 연이 없던 종족이었다.
오히려 대공과 연관이 있던 종족.
거인 학살자인 대공은 철통같은 방어로 제국의 북동쪽을 지켜냈다.
“그대가 간다면 거인들과의 전쟁을 끝낼 수도 있겠군.”
“궁금하군요. 또 하나의 생존자가 있다니.”
“가볼 텐가?”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생존자도 그가 거둘 수 있으면 좋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공에게 맡겨, 전력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다.
강자는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것이 좋았으니까.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음.”
황제와의 면담이 끝났다.
드레젠은 황궁을 나서며 곰곰이 생각했다.
또 다른 생존자라니, 그가 있었던 세계에서는 전혀 없었던 인물이었다.
“대공에게 있었던 제자가 그 생존자일지도 모르겠군요.”
기억났다.
당연히 스카이워커라는 이름은 쓰고 있지 않았지만, 대공이 아끼는 제자가 있었다고 했다.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동료들을 구하고 죽었다고 했었나.
그 존재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대공이 지나가듯,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더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
머릿속으로 대략 루트가 그려졌다.
크리스, 그리고 그림자 기사단과 함께하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았다.
와이렉스에 앉아, 그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듯!
-크리스도 이젠 가족 생기겠다ㅜㅜ
-그 제자에 대한 단서는 더 아는 거 없습니까?
-절.대.구.해.줘!
“구하긴 해야겠죠. 거인족이라……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군요.”
스카이워커 가문에 남아있는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 크리스는 어떤 반응일까?
혹여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이라면?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이가 좋지 않다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해 주면 될 일이었으니.
‘거인족에게 질 일은 없겠지.’
직접 보지 않았기에 그 잠재력이나 재능은 잘 몰랐다.
하지만 거인에게 죽을 정도라면 재능은 크리스보다 아래라고 판단된다.
일단 크리스에게 소식을 전하기로 했다.
‘꽤 길어지겠어.’
그림자 기사단이 할 일이 더 늘어나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어쩌면 커다란 변수가 될지도 몰랐다.
오랜만에 설레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2
크리스는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훈련장에 왔을 때, 그는 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훈련장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거, 드래곤?”
익숙한 기운이었다.
파베론 산맥에서 느낀 마나와 비슷한 마나가 훈련장 곳곳에 퍼져있었다.
드래곤이라고 하기엔 그 힘이 너무 미약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아, 샤페론.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성에 복이 굴러들어왔습니다. 우리도 이제 정령사를 보유하게 되었군요.”
정령사?
그거야말로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인물 아닌가?
훈련장에 작은 모래바람을 만들고 있는 바람은, 확실히 인위적인 것이었다.
마법이라고 보기엔 마나의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정령이 만들어낸 바람이었다.
“와아-! 엄청 신기해!”
“록시 누나! 진짜 짱이다!”
“상상 이상의 재능이로군.”
바람을 다루고 있는 자는 록시였으며, 그녀를 가르쳐 주던 엘프 정령사가 나직이 감탄을 내비쳤다.
인간은 다른 종족보다 번식이 빨랐다.
따라서 유전자가 다양했으며, 그만큼 재능의 범위도 넓었다.
인간이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와, 안녕?”
[안녕! 안녕!]
바람의 정령이 까르르 웃으며 록시의 주변을 맴돌았다.
정령사.
그 희귀하다던 자가 하시스 성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는 작게 감탄했다.
‘정령사는 처음 보는데, 엄청 신기하구나.’
자신의 힘이 아닌, 정령의 힘을 빌려서 싸우는 존재.
그 무엇보다 정령과의 친화력이 중요하다고 하는 자들이 바로 정령사였다.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소하게 느껴졌다.
[크오오오오-!]
[나 이제 갈래! 갈래! 무서워! 무서워!]
어렴풋이 들리는 울음소리에, 바람의 정령이 후다닥 사라졌다.
공포의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록시를 비롯한 아이들이 아쉬워했지만, 정작 그 울음소리를 무서워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뿌듯한 마음이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와, 성주님이다!”
“성주님이 오셨군요. 그럼 저는 이만…….”
샤페론은 다시 수련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왠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 크리스가 훈련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마침 와이렉스가 그곳에 착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마침 여기 있었구나.”
드레젠이 폴짝 뛰어내리며 크리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크리스는 군례를 올리며 드레젠을 맞이했다.
드레젠에게 우르르 몰려드는 소년병들.
그들은 록시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성주님! 정령이 찾아왔어요!”
“록시 누나가 정령사가 됐어요!”
“오, 그게 정말이냐?”
드레젠은 소년병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록시를 바라봤다.
엘프가 다가오며 그에게 보고를 올렸다.
“은인. 축하드립니다. 하시스 성에도 정령사가 생겼군요.”
“고마워. 록시,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록시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은화를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그 은화는 드레젠의 축복이었다.
은화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믿었다.
미신이라고 하지만, 믿는 사람 나름 아닐까?
“앞으로 정진하거라. 엘프들에게 잘 배우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록시는 꾸벅 인사를 하며 다시 수련하러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드레젠은 크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크리스, 잠깐 나 좀 따라와라.”
“네.”
속으로 의문부호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드레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그런 일은 없었는데.’
오늘도 평범한 하루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엘프들과 대화를 나눈 것 정도?
특히 엘프 로드인 하이디엔은 특별히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성으로 왔는데-.
“스카이워커 가문은 모조리 죽은 게 맞지?”
“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혹시 형제자매는 있었나?”
크리스는 자신과 함께 생활했던 남매들을 떠올렸다.
그들 모두 천재라고 칭송받던 이들이었다.
서로 승부욕을 불태웠을지언정 증오하거나 미워하진 않았다.
막내인 자신을 지키겠다고 앞다투어 나섰던 자들이 생각났다.
“네. 하지만…… 그들 모두 죽었어요. 저를 지키다가 그만…….”
-크리스 ㅜㅜ
-진짜 꼭 복수해야댐!
-어린애가 무슨 봉변을 당했길래ㅜㅜ
-선생님 꼭! 복수해 주십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의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라…….
그래도 데려갈 이유는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드레젠이 크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인의 땅 부근에서 네 가문의 사람이 살아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크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말입니까?”
“황제에게서 받은 정보니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어. 하지만…… 직접 확인해야겠지.”
“궁금하긴 하네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래. 당장 가 보자. 그리고 신성왕국에 들를 거야.”
신성왕국.
처음 들어보는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성왕국은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고, 스카이워커 가문과 접점이 없어 보였다.
뒤이어 들려온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끝까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번에 널 찾아온 놈들, 신성왕국 출신인 것 같더라고. 아무래도 연관이 있을 거다.”
“……그게 정말입니까? 신성왕국에서 왜…….”
“그걸 알아보러 가야지. 짐 싸자.”
크리스는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가문이 몰락한 비밀은 꼭 알고 싶었다.
정신없이 도망쳤기에 알 수 있는 여력은 없었으니까.
만약 원흉이 정말 신성왕국이라면-.
“알겠습니다.”
그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드레젠, 그리고 샤페론은 다르게 말하겠지만 복수는 하고 싶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었으니까.
#3
제국의 북쪽은 삭막하긴 해도 추운 곳은 아니었다.
대신 건조하고 척박한 동네였다.
사는 사람들은 없었으며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거인족들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바로 제국의 북쪽 경계였다.
오늘도 한바탕 격전을 치른 기사단이 막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거인족 놈들, 겨울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중앙에서는 지원군도 안 보내준답니까?”
“뭐……곧 오긴 하겠지.”
일정한 시기마다 노예, 범죄자들을 위로 올려보낸다.
그것을 이곳에서는 ‘지원군’이라고 부른다.
거인족은 아무것도 없는 바위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주식은 몬스터 및 살아있는 고기였다.
북쪽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거의 없어진 지경이었고, 결국 인간들을 습격한 것.
“후우-, 오늘도 다들 무사한가.”
“예-, 남아있는 자들 중에 거인족을 못 이기는 놈들은 없지 말입니다.”
“그거 다행이군. 내일도 순찰을 돌아야 하니, 정비는 잘 해두도록.”
3황자.
그마저 이곳에서는 기사단과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미 기술자는 다 죽어 버린 지 오래였다.
황궁에서도 북쪽으로 인재들을 파견 보내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만큼 거인족은 골칫덩어리였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황자님은 언제쯤 황궁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나? 이 녀석이 나만큼 잘 싸우면.”
황자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년을 보았다.
잔 흉터가 몸 여기저기를 두르고 있는 소년이었다.
황자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겠느냐.’
이제는 멸문해버린 가문.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오직 검으로만 영향력을 미쳤던 그 가문의 생존자.
직계는 아니었으나, 생존자가 없다면 가문은 그가 다시 일으키겠지.
“하하, 그 녀석이 아무리 대단해도 10년은 걸릴 텐데요.”
“그럼 그만큼 있다가 가야지.”
황자는 별 것 아니라는 말투로 툭 내뱉었다.
꾸욱-.
그의 말을 들은 소년의 주먹이 꾹 쥐어졌다.
정말로 자신이 진짜 마지막 생존자라면-.
‘도련님과 공녀님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해.’
이름 모를 소년이 생각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이질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오오오오-!]
기사단이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전투 준비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나가, 새로운 손님을 맞이했다.
“와이번? 와이번이 여길 왜 온 거야?”
“모두 무기를 내려라. 저건……어쩌면 지원군일지도 모르겠구나.”
황자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