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79화 (180/279)

제 179화

179화 – 깨어나세요, 드래곤이여

#1

드래곤 레어를 지키는 자들과의 전투는 제법 싱겁게 끝났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문지기.

문지기는 손님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가디언은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우, 이만하면 어때?”

[제법이군.]

가디언은 지키는 자임과 동시에 시험하는 자.

드래곤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지고한 존재 앞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은 되는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의 평가였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는 한없이 높은 허들이었지만.

“저쪽도 끝난 것 같군요.”

-캬 ;; 이게 바로 천상계

-ㅋㅋㅋ웅장해진다 웅장해져

-드선생님 전투는 ㄹㅇ 영화임

-요즘 액션 영화 매출이 그렇게 떨어졌다는뎈ㅋㅋㅋ

마법 대전 역시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였다.

가만히 서서 마법만 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끼리의 일대일 대전은 기사보다 많은 정보를 다뤄야 했다.

드레젠이 간단히 입을 열었다.

“마법사끼리 전투하는 건 꽤 복잡합니다. 비유하자면, 옛날에 구구단 놀이 아시죠?”

구구단 놀이.

학생 때 심심찮게 했던 놀이였다.

한쪽이 문제를 내면 맞히고 반격하는 룰.

마법 대전은 그 구구단 놀이를 수학자들이 풀어낼 법한 문제들로 대체하는 것과 비슷했다.

게다가 두 개, 세 개의 연산까지 동시에 해야 할 정도였다.

“그 구구단 놀이를 컴퓨터끼리 한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 수준은…… 대학교 수학 정도?”

-뭐얔ㅋㅋㅋㅋ

-무서워 뭐야;;

-이래서 유저들 중에 마법사가 없는 거였엌ㅋㅋㅋㅋㅋ

-진짜 마법사 유저 1도 못 봄ㅋㅋㅋㅋㅋ

“물론 어느 정도 보정이 들어가긴 하겠죠.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스킬로 쓰는 것과 직접 쓰는 것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열심히 몸뚱이를 굴리는 게 훨씬 나아요.”

맞는 말이었다.

영광의 전당에서야, 100% 정해진 스킬 셋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실제 게임은 아니었다.

실제 프로 선수 중에서도 마법사를 키우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후우, 후우…… 이제 끝?”

[그분을 만날 자격을 갖췄구나. 합격이다.]

“자, 잠깐. 진짜 드래곤이 있다고?”

[드래곤이라…… 그렇지. 지고하신 분은 드래곤이라 불리더군.]

도리안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진짜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정말 있다고?

그런 거였어?

“이, 이럴 수가…….”

“거 보쇼. 계약 한 번 잘못했다가 인생 말아먹게 생겼네.”

드레젠이 어깨를 으쓱하며 비아냥거렸다.

물론 충격을 받은 도리안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마법사형 가디언이 물었다.

[싸울 때는 제정신인데, 싸우고 나면 후유증이 생기는 타입인가?]

“그, 그건 아닌데. 이 사람, 원래 드래곤은 믿지 않았거든.”

[그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 경험하게 해 줘야겠군.]

드래곤은 손님을 배척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온화한 성격의 그린 드래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타 종족과 교류를 좋아했고, 가디언 역시 꽤 순한 성격이었다.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같은 정신 이상자들이랑은 전혀 다른, 정말 인격자의 모습이었다.

“그만 정신 차리고 따라오세요.”

“……내, 내 인생이…….”

“여러분, 계약 잘못하면 저렇게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대로 맨붕했자넠ㅋㅋㅋㅋㅋ

-절대 서면 안 되는 것 : 보증, 계약(브락시아)ㅋㅋㅋㅋㅋ

-아 이 맛에 드레젠님 방송을 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얔ㅋㅋㅋ

[‘크리드’님 10,000,000코인 후원!]

[이제 마법도 보여주셔야죠.]

“그렇지, 이제 마법도 보여드릴 수 있겠네요. 크리드 님 언제나 후원 감사합니다. 좋은 데 쓰겠습니다.”

-오오 역시 큰손ㅋㅋㅋ

-여기 큰손은 다 머기업이자너

-ㄹㅇ ㅋㅋ

-ㄹㅇ ㅋㅋ

드레젠은 도리안의 등을 떠밀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누가 전쟁 영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녀는 계속 ‘나는 끝이야-.’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드레젠은 도리안의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기껏해야 좀 도와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끝이라고 중얼거리는 겁니까? 제가 노예라도 해 달라고 했습니까?”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십쇼. 까딱 잘못하면 마나에 눌려 압사당하기 딱 좋으니까.”

도리안은 그의 말에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났다.

드래곤이라니.

정말 그 전설의 생명체를 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배워 보고 싶다.’

드래곤은 마법의 종주라고 배웠다.

시초는 아르간달이었지만, 그 마법을 상위 단계를 가지고 있던 것이 드래곤이라고 했지.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에는 계약에 관한 내용이 옅어졌다.

두 사람은 드래곤이 동면 중인 집, 드래곤 레어로 걸어갔다.

#2

“드래곤이라…….”

화면 밖에서 드레젠의 방송을 보고 있던 하이디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5배속으로 돌리고 있지만, 그녀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초인적인 인지 능력이 모든 내용을 쏙쏙 박아 넣어 주고 있었으니까.

드래곤.

그녀와 안 좋은 추억이 있는 몬스터였다.

‘그린 드래곤은 어떨까.’

레드 드래곤은 지옥, 그 자체였다.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려 하는 악마.

그녀가 기억하는 레드 드래곤이었다.

그린, 블랙, 실버 드래곤은 전쟁 이후 빠르게 몰살당했다.

레드 드래곤만이 살아남아, 마족과 전쟁을 치렀다.

‘그때는 강일 님이 모르셨으니까.’

일곱 영웅의 세뇌 덕분이었을까, 강일 역시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랬다가 봉변을 당해, 드래곤의 존재를 믿었던 사건이 엘프와 드래곤의 격돌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겠지. 불쌍한 아이들이었는데.”

엘프들의 새로운 둥지를 보니, 괜히 가슴이 미어졌다.

진즉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쯤 행복한 한때를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로드. 내일 행사 리허설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벌써 오후 2시예요.”

그녀의 전담 호위이자 비서가 말을 건넸다.

하이디엔이 너무 집중하고 있기에 최대한 시간을 준 것.

내일은 프로 리그 조지명식과 이벤트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방송은 나중에 보도록 할까.

짧게 아쉬움을 내뱉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예. 이제 일주일 있으면 본격적인 시작이군요.”

“재밌을 거야.”

그녀가 웃었다.

프로 리그.

실상은 뛰어난 인재들을 가리기 위한 대회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딜 봐도 강일보다 뛰어난 자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그분은 너무 자신을 모른다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연 그분을 뛰어넘는 자가 나올까요?”

“모르는 일이지. 기대는 하고 있어. 조금.”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들어, 아주 좁은 틈을 만들었다.

강일, 지금 드레젠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 사람을 보고 프로 선수를 본다면, 재미가 있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부디 그러길 바랐다.

그 짐이 너무도 무거워서 도망쳐 온 강일이었다.

다시 홀로 그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제대로 도와드릴 테니까요.’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다.

활활 타오르는 의지가 눈에서 빛났다.

#3

드래곤 레어.

입구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였다.

이끼가 잔뜩 껴 있고, 다 낡은 성좌의 동상이 있었다.

은빛 날개와 몸체를 가진 드래곤.

백색의 몸으로 태어나, 최고의 성좌까지 오른 존재의 동상이었다.

“스텔라…… 모든 드래곤의 어머니.”

[그분을 알고 있나?]

“그래. 딱 한 번, 볼 기회가 있었지.”

[부럽군.]

가디언이 말했다.

모든 성좌의 어머니이자 헬라와 전혀 반대되는 속성인, 빛을 상징하는 존재.

그녀는 드래곤의 시초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스텔라와 레드릭,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드래곤 편대들은 막을 자가 없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고 했지.’

마족도 이쪽에 신경 쓸 여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했다.

아무래도 엘프 제사장과 눈티아를 제거한 것이 큰 변수로 작용했겠지.

그림자 기사단 중 절반은 크리스 가문을 멸망시킨 자들을 쫓았고, 나머지는 무의 추종자들을 쫓으라 시켰다.

[이쪽이다. 잘 보고 오도록.]

드래곤 레어는 함정과 마법진의 집합체였다.

게다가 산맥에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몬스터까지 우글거렸다.

도리안이 꿀꺽, 침을 삼켰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인간의 기준에선 최고일지 몰라도, 인간 밖의 범주에선 뛰어난 마법사일 뿐.

진정한 영웅으로 각성하기 전의 도리안은 그런 존재였다.

전쟁을 겪고, 수많은 인간과 마족의 간계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빛을 발했던 존재.

다른 영웅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어서 그렇지, 도리안은 속으로 항상 고민하고 고뇌했다.

‘……더 나아갈 길이 있었구나.’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레어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데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제야 도리안의 감각에도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너무 강해서 일반인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

“짓눌리는 느낌인걸.”

“맞아요. 이 앞에서는 항상 마나를 두르고 있어야 합니다. 드래곤은 인간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도리안와 드레젠은 드디어 드래곤이 잠들어 있는 방 앞까지 도달했다.

가디언들이 먼저 들어가, 동면 중인 드래곤을 깨우기로 했다.

그그그그그-.

거대한 문이 열렸다.

족히 성 하나는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와 큰 거 봐;;

-진짜 크넼ㅋㅋㅋㅋ

-스케일 봐 진짜 쩐닼ㅋㅋㅋㅋ

-하 드래곤 좋아!

문이 열리는 것 만으로도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르르르르-.

천둥소리 같은 울림이 들렸다.

경계하는 목소리?

아니었다.

단순히 코를 고는 소리가 이토록 크게 들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봤다.

“……드래곤.”

성벽을 아득히 넘을 정도로 큰 머리.

딱딱하면서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암록색의 비늘.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역동적인 근육.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전신에서 미미하게 흐르고 있는 압도적인 마나였다.

‘몸이, 짓눌리는 것 같아.’

도리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중력을 조종하는 마법이 일대에 쫙 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는 존재건만, 세상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눈을 뜨시옵소서. 나의 주인이시여.]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마스터.]

스르륵-.

영원토록 감겨 있을 것만 같았던 눈꺼풀이 올라갔다.

[-그대들이 손님인가.]

“쿨럭!”

그가 말하는 하는 것만으로 도리안이 피를 토했다.

샛노란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드래곤의 위엄은 캠 너머, 시청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 진짜 지렸어;;

-아 바지 갈아입고 와야 댐

-미친;;

채팅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드레젠은 쓴웃음을 지으며 도리안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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