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78화 (179/279)

제 178화

178화 – 드래곤의 레어

#1

브락시아 대륙에서 계약이라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가졌다.

하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계약의 의미.

무언가를 거래하거나 서로의 이해 관계를 위해 제약을 거는 것.

또 하나는 영혼을 구속해야 하는, 일종의 내기였다.

“진짜 계약을 원할 줄은 몰랐습니다만.”

“제 마법사 인생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드레젠은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가 알고 있는 ‘일곱 명의 영웅’은 이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진짜 도리안 구스타프였다면, 엘프에게 빌붙어 ‘그들만 보이는’ 마나를 연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래곤을 불러 협력을 요구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아집 덩어리가 됐을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뇌를 개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신 좀 차리라고 면상을 후려쳐 주고 싶은 도리안만 씩씩거리고 있으니, 게임 할 맛이 안 났다.

내가 원하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전력을 다해 부딪힐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일부러 조작한 건가.’

쓴웃음이 나왔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냥 대충 써먹고 버리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실력 자체는 정말 좋았으니 데리고 다니면 편하긴 하겠지.

“본 백작은 마법사가 된 이후 제 이름을 건 계약은 항상 승리했습니다. 바로 진행하시죠.”

“-그러죠.”

모리안의 태도는 당당했다.

너무 자신만만해서 드레젠 본인이 혹시 틀렸나? 할 정도였다.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공기 중에 떠다니는 느낌은 드래곤만 가질 수 있는 마나였다.

정령도, 몬스터도 아닌 드래곤.

단일 개체로는 브락시아 최강의 생명체가 깨어날 준비를 마쳤다.

“조건은 뭡니까?”

“그대와 그대의 제자가 내 가신이 되는 것. 그리고 본 백작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드레젠은 잠시 고민했다.

스쳐 지나가는 단어들이 있었기 때문.

황궁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그것은 필시 대륙에 큰 영향을 미칠 테지.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곳에 등장하는 것은…….

‘그걸로 해야겠어.’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저에게 주시고, 더불어 제가 부르면 언제든지 도와주러 오십시오.”

“그것뿐? 좋습니다.”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계약은 빠르게 이뤄졌다.

도리안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계약서가 없어도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도장은 영혼.

두 사람의 계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정말 묻고 싶은데, 그런 짓을 하면 드래곤이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깨어나지 않았으면 제가 수습했을 겁니다.”

싸늘한 대답에 코웃음이 나왔다.

이맘때쯤, 그녀의 마법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완성형은 아닐 것이다.

일곱 영웅의 완성은 전쟁이 발발한 뒤였고, 실전을 제대로 치르면서 함께 성장했으니까.

화룡점정은 바로 자신.

-아아 이건 노예의 냄새다.

-ㅋㅋㅋㅋㅋㅋ아ㅋㅋㅋㅋ도리안 플래그 몇 번이나 꼽는 거얔ㅋㅋㅋㅋ

-저러고 잘 되는 꼴을 못 봄ㅋㅋㅋㅋㅋ

-이걸로 영웅 중 한 명 획득!

-도리안! 넌 내꺼야!

시청자들은 벌써 난리가 났다.

드레젠은 항상 최고의 결과를 위해 움직였다.

선택 하나하나, 말 한마디가 모두 포석이었다.

그를 분석한 브튜버들은 드레젠을 천재보단 정치가에 가까운 사람이라 말했다.

“따라 오시죠.”

“어디로 가는 거죠?”

“당신이 못 보던 것들이 있는 곳.”

도리안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계약까지 한 이상, 가면을 쓸 필요는 없었다.

처음이었다.

황제에게까지 항상 가면을 쓰고 다녔던 도리안이었건만, 이제 고작 두 번밖에 보지 않은 백작에겐 민낯을 드러냈다.

‘어차피, 이제 곧 내 사람이 될 거니까.’

남자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탐이 났다.

그녀와 그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자를 고작 계약으로 얻는다면, 황금의 탑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녀의 생각이 어찌 되었든, 궁금증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꽤 자신만만한데, 드래곤을 만나면 살아남을 수는 있는 겁니까?”

“드래곤이라고 다 사악한 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드래곤은 그린 드래곤이죠.”

드래곤은 옛날, 종이책 시절의 드래곤 설정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성좌가 옛날 판타지를 좋아했나?

색별로 성격도 달랐고, 능력치의 차이도 조금씩 있었다.

“그린 드래곤은 엘프와 가장 친한 드래곤이죠. 자연을 제법 사랑하거든요.”

“그런 미신을 아직도 믿어요?”

도리안이 툴툴거렸다.

드레젠은 그저 웃으며 앞으로 향했다.

파베론 산맥의 중심부는 유독 가파른 협곡이 존재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한 정경을 자아냈다.

드레젠은 절벽의 끄트머리로 향했다.

“플라이 마법은 사용할 줄 아시죠?”

“당연한 말씀을.”

“그럼 따라오십쇼.”

-!?

-아니 잠깐;;

-고소 공포증 있다구요!

-여길 뛰겠다고!?

직접 동기화해서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기겁했다.

캠을 1인칭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VR 기기.

속도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부작용도 함께했다.

드레젠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훌쩍 뛰어내렸다.

어마어마한 속도감이 캠을 통해 전해졌다.

-으아아아아아!

-번지점프도 안 했는데;;

-엌ㅋㅋㅋ 이러다 죽는거 아니냐고요!

-아ㅋㅋㅋ바지 갈아입고 와야겠닼ㅋㅋㅋ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드레젠은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곳이야말로 파베론 산맥의 중심부였다.

지고의 생명체가 숨어 있는 보고였다.

“흡-!”

촤아악-!

검이 허공을 가르자, 공간이 갈라졌다.

뒤따라오던 도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분명 마법으로 이뤄진 결계였다.

그런데 자신이 감지하지 못했다고?

‘대체-.’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갈라진 공간 안에는 평평한 대지가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까딱 잘못하면 곤죽이 될 판이었다.

[플라이.]

시동어를 외우자, 그녀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쿠웅-! 하고 드레젠이 착지하는 소리도 들렸다.

‘역시 기사들은 무식해’라고 생각한 그녀는 사뿐히 땅에 내려섰다.

직후, 드레젠을 쏘아보며 말했다.

“어째서 여기에 이런 곳이 있는 거죠?”

“그럼, 드래곤이 대놓고 침대에서 낮잠이라도 잘 줄 알았습니까?”

“이것도 그 마나로 이뤄진?”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도리안의 자존심이 다시 한번 뭉개졌다.

그녀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불쑥,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진짜 있으려고?

아니겠지.

하지만 이미 계약은 성사된 상태였다.

영혼을 걸고 한 계약에서 무르기란 없었다.

계약은 체스가 아니었으니까.

“준비하십시오.”

“무슨? ……이건.”

여태까지 느껴 본 적 없는 위압감이 엄습했다.

쿠웅-!

거대한 존재감이 주변을 압도했다.

이 산맥에 이만한 존재감이 있었나?

도리안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가디언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정확히는 읽어 봤네요. 저게 그 가디언인가요?”

은색으로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리안은 섣불리 계약을 했다는 사실도 잊고, 눈앞의 적을 바라봤다.

적어도 마스터 이상의 존재감이었다.

체구는 인간과 비슷했다.

조금 더 큰 정도일까.

[그대들은 불법 침입을 했다.]

“지금 동면 중이신 분을 만나러 왔다. 심각한 사안이 있어서.”

[그렇다면 날 꺾으면 되겠군.]

드레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배려심 넘치는 말을 던졌다.

“네가 죽으면 주인이 슬퍼할 텐데.”

[같잖구나.]

콰득-.

수호자는 땅을 밟으며 드레젠을 덮쳐왔다.

발 구름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뒤쪽의 땅이 불쑥 솟아오를 정도였다.

드레젠 역시 힘으로 맞섰다.

콰아아아아-!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아직은 힘드네.’

마나의 출력이 달렸다.

가디언은 정통 검술을 사용했다.

그의 마나는 이상하리만치 끈적였다.

마나와 마나가 부딪히면 생기는 반탄력이 없었기에, 정통 검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콰가가각-!

마나의 불똥이 살벌하게 튀었다.

[블레스, 스트렝스, 헤이스트, 임모탈, 슬로우 힐, 힐 윈드-.]

화아아악-!

살짝 밀리던 힘이 가디언을 압도했다.

뒤에서 도리안이 어마어마한 버프를 걸어줬기 때문이었다.

콰드득-!

땅이 버티질 못하고 사정없이 뭉개졌다.

드레젠은 한참을 붙어 있다가 가디언을 힘으로 밀어냈다.

[기본은 되어 있군.]

검을 한번 턴 가디언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회전하는 마나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접근은 중간에 저지되었는데, 도리안의 마법이 가디언의 갑옷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쩌엉-!

금속을 쪼개는 소리와 함께 주춤, 뒤로 물러나는 가디언.

[……마법사인가. 그렇다면 이쪽도 숫자를 늘려야겠군.]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

무려 5서클의 마법이 직격했는데, 타격이 하나도 없었다.

도리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5서클 중에서도 까딱 잘못하면 마스터급 실력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마법을 뿌렸는데, 통하지 않았다.

‘까다롭겠어.’

가디언의 옆에 환한 빛무리가 일렁였다.

공간이 갈라지고 등장한 검은색 로브의 인영.

아마 마법사형 가디언일 터.

도리안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법 대전인가? 좋아.”

[헤이스트, 스트랭스, 임모탈…….]

그 역시 은빛 가디언에게 각종 버프를 걸어주기 시작했다.

이로써 드레젠이 가지고 있던 힘의 우위도 완전히 사라졌다.

드래곤의 가디언.

드레젠도 그 위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포식의 기회로군.’

그의 특성 중 하나인 마나 포식.

가디언은 최상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아낌없이 뿜어냈다.

드레젠은 입맛을 다시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럼, 제대로 놀아 볼까?”

[바라던 바다.]

두 검사의 검에 찬란한 오러 블레이드가 맺혔다.

드레젠과 가디언의 검술은 화려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제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드레젠은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캠을 조작했다.

-와 마법!

-마법사끼리 싸우는거 보고 싶었는뎈ㅋㅋㅋ

-맨날 칼질만 보다가 보니까 새롭다ㅋㅋㅋㅋ

-마! 이게 바로 파티 사냥이다!

도리안은 가볍게 선공을 날렸다.

가디언 역시 비슷한 마법으로 응수했다.

뒤이어 그는 도리안에게 얼음 화살을 마구잡이로 날렸다.

콰장창창-!

시린 한기가 주변을 물들었다.

얼음 파편은 유리보다 날카로운 창이 되어 주변을 들쑤셨다.

“흐응, 조금 하는데.”

도리안의 목소리는 위에서 들렸다.

어느새 캐스팅을 마친 그녀가 불의 창을 쏘아냈다.

화륵-!

차갑게 식었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게 바로 마법사들의 싸움.

공기와 기후마저 바뀌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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