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76화 (177/279)

제 176화

176화 – 갈등하는 그녀

#1

도리안 구스타프.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두 남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타실래요?”

“괜찮습니다. 어딜 가는지도 모르는데.”

아.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은 그녀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왔다.

치렁한 로브가 땅에 질질 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엘프들을 이주시켰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될 겁니다.”

도리안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숲을 바라봤다.

엘프들의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숲의 초입.

아크메이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색하다.

-싸늘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도리안이 왔네?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거물이 등장한다는 건, 그에 따른 사건도 커다랗게 터질 확률이 있다는 얘기였다.

대륙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일곱 영웅 중 하나가 하시스 성 근처에 왔다.

아마 뭔가를 계획하고 있겠지.

“협조, 부탁해요.”

“정확히 뭘 하시려는 거죠?”

“엘프들의 조사와 협력 의사를 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주변 정리도 좀 하고.”

드레젠은 어깨를 으쓱하고 걸음을 옮겼다.

크리스 역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그걸 안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본격적인 마법 퍼포먼스는 처음 보는 크리스.

‘이렇게- 하는 건가?’

그는 마나가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했다.

그리고 시험 삼아 똑같이 움직여 보았다.

잠시 그의 손이 흐릿해졌다.

“어?”

돌연, 도리안이 크리스를 바라봤다.

분명 작은 마나의 움직임이었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저 꼬마가 한 행위는 단순 카피가 아니었다.

“얘.”

“네?”

“마법사 지망생이니?”

“아뇨. 저는 기사가 될 겁니다.”

크리스는 씩씩하게 말했다.

도리안의 눈빛이 일렁였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기사가 되려고 하는 걸까?

‘이 자 때문인가.’

그녀의 눈이 드레젠을 흘겼다.

딱 보니 드레젠의 종자 같은데, 틀렸다.

이 아이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

한 번 본 것만으로 마법적 기교를 따라 한다고?

“넌, 기사가 될 재목이 아니야.”

“네?”

“마법사. 마법사가 딱이지.”

그녀는 에둘러 말하는 법을 몰랐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말해도 사는데 지적받지 않으며 살아왔으니까.

자연스럽게 오만함이 배어 나오는 말투가 형성됐다.

그녀가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지내왔었으니까.

하지만-.

“저는 기사가 될 겁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뭐라고?”

굳은 의지가 담긴 한 마디.

그것이 도리안에게 큰 파장으로 다가왔다.

꾸욱-.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흘끔, 드레젠을 쳐다보니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니 저년이 어디서 우리 크리스를;;

-말 잘했다 크리스!

-그랗췌! 아주 잘 받아쳤구만!

크리스를 항상 바라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

그가 드레젠의 시야에서 벗어난다면 크리스를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크리스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신세대 아이돌이었다.

오죽하면 굿즈도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올까.

“그렇다네요. 일단 이동하시죠. 이런 곳에 오래 있긴 싫어서.”

“……그러죠.”

항상 맹하던 그녀의 무표정에 금이 갔다.

드레젠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크리스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었다.

“멋있었다.”

“네? 아, 아닙니다.”

크리스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스카이워커 가문은 기사의 가문이자, 검술의 상징이었으니까.

그의 꿈은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것.

그게 마법사의 가문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크리스에겐 자긍심과 자부심이 남아있었다.

“어쨌든, 케이드 백작이 협조해줬으면 좋겠군요.”

“그러죠. 어려운 일도 아니니.”

드레젠은 이미 그녀의 감정이 상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것.

바로 전투를 제외한 곳에선 멘탈이 자주 흔들린다는 점이었다.

그 점을 철저하게 이용해서 가루가 되도록 부려먹을 생각에 벌써 들떴다.

‘마법 셔틀이나 돼라.’

“제가 안내하도록 하죠.”

드레젠은 웃음기를 가리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캠이 그의 얼굴을 잡았고, 씰룩이는 광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청자들이 반응한 것도 당연했다.

-아니 이 양반 또 시작됐닼ㅋㅋㅋㅋ

-괴롭힐 마음 x10000000

-아ㅋㅋㅋㅋㅋ도리안 벌써 불쌍하자너

-아크메이지를 가지고 노는 스트리머가 있다?

지금 유저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리안 정도 되는 거물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그것도 하나의 콘텐츠였다.

“걱정은 되지 않지만, 조심하십쇼. 엘프들은 몬스터가 있어도 자유롭게 다니거든요.”

“그러죠.”

딱딱한 대답이 들려왔다.

자존심에 금이 쩍쩍 간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엘프가 거주하고 있는 곳까지 향했다.

#2

“어서 오십시오. 은인. 이분들은?”

엘프들이 한창 움직이고 있는 도시의 입구.

벌써 꽤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에, 드레젠이 작게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소개를 멈추지 않았다.

“여긴 내 제자. 그리고 이쪽은 손님.”

“그렇군요. 안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드레젠의 말이라면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이라고 해도 믿을 엘프들이었다.

그만큼 무한한 신뢰가 싹트고 있었다.

그와 함께 온 크리스와 도리안 역시 경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손쉽게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자, 도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엘프들은 타 종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녀가 알고 있는 상식을 부정하는 상황이었다.

드레젠이라는 자 때문이겠지.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그 이유가 궁금해, 지나가는 안내하는 엘프에게 물었다.

“본래 엘프들은 다른 종족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하지만 은인의 손님이면 예외지.”

냉랭한 반응이었다.

살갑게 웃어주었던 엘프가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

그 표정마저도 도리안에겐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에게 수많은 축복을 받으며 자라왔으니까.

누구도 그녀에게 딱딱하게 군 적이 없었다.

‘……엘프니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분명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엘프는 인간이 아니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더 말 해봤자 좋은 대답은 듣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로드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잘 다녀와.”

드레젠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엘프 전사는 꾸벅 인사하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도리안이 드레젠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엘프들은 호의적이지 않으니, 이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당분간은 붙어 있어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니 생소한 마나가 떠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엘프들의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다던 특별한 마나였다.

게다가 어렴풋이 정령의 기운까지 느껴졌다.

이 신비로운 곳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직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저 소년.

자신과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사로 키우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 당대 최고의 마법사가 될 것이다.

“이봐.”

“예?”

“정말 마법사가 될 생각이 없나?”

“네. 없습니다.”

“……그렇군.”

한 번 더 물었지만, 여전히 철벽같은 소년이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친근함이 없는 곳에서 멋대로 행동할 만큼 생각 없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폐하를 못 보는 건 아쉽긴 하지만-.’

저 소년.

꼭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뛰어넘는 마법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드레젠은 한 발자국 뒤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중이었다.

‘역시.’

과거, 그녀는 제자가 없어서 무척 아쉬워했다.

크리스와의 접점도 전혀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던 모양.

이렇게 엄청난 재능을 가진 이는 본 적도,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이디엔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나만? 아니면 다 같이?”

“은인과 그의 제자는 괜찮습니다만, 외부인은 따로 안내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철저한 차별이었다.

도리안도 그 점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따로 할 일이 있었으니까.

“이 땅은 본래 황제 폐하의 땅이다. 엘프들이 무단으로 점거한 것이지. 하지만 관대하신 황제 폐하의 자비로, 엘프들과 동맹을 맺기 위해 왔다.”

“-그건 그대가 아니라, 황제가 와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문이 열리며 하이디엔이 등장했다.

그녀는 도리안에게 뒤지지 않는 분위기를 풍겼다.

일족의 로드가 된 후, 그녀는 각성이라도 한 듯 강해졌으니까.

도리안의 눈이 하이디엔을 쫓았다.

‘강하네.’

“듣기로는 이곳, 파베론 산맥은 본래 드래곤의 땅이었는데, 안 그런가?”

“-이제 드래곤은 없다.”

도리안은 기세를 받아치며 반박했다.

드레젠과 크리스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사태를 구경했다.

크리스는 가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 펼쳐지는 것에, 살짝 질린 얼굴이었다.

“잘 봐둬.”

“……네?”

“앞으로 네가 살아갈 곳의 사람들은 만만치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피해선 안 된다.

앞으로 그가 이끌어갈 가문 역시 이런 일에 자주 휘말리겠지.

그걸 모르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피해왔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

‘이제부터는 나도 변해야 해.’

가주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마 악마들이 사는 지옥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세상을 호령하는 가문.

그 원대한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이 피어났다.

“엘프는 여기, 드레젠의 말에만 협력한다. 우리는 분쟁을 원하지 않지만, 인간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싸울 용의가 있다.”

“……하,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인간의 수는 많다.”

“그래서? 그들이 숲에서도 우릴 이길 수 있을까?”

도리안이라면 숲을 통째로 불태울 수 있었지만, 막아내는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엘프는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꺼냈다.

“드래곤이 사라졌다고? 누가 그러지? 여기 이렇게 충만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뭐, 라고?”

도리안은 다시 충격을 먹었다.

다른 분야에서는 최고가 아닐지언정, 마법에서만큼은 최고인 줄 알았다.

실제 인간 중에서도 최고라 불리고 있었고.

그런데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기운이 있다고?

“역시 인간은 자연과 친하지 않아서 느끼지 못하는군. 이곳, 파베론 산맥의 중심부엔 드래곤이 잠들어있다; 내 장담하지. 우리 엘프가 괜히 이곳에 자리를 잡았겠는가?”

하이디엔은 도리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녀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곳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했던 도리안이 느끼는 괴리감이란, 일반인이 느끼는 것과 다른 것이었으니.

“……드래곤이, 실존했다고?”

“못 믿겠으면 조사해보던가. 몬스터가 많아서 힘들겠지만.”

하이디엔이 업신여기는 미소를 지었다.

드레젠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 모습이 왠지 현실에 있는 그녀와 겹쳐 보였다.

가끔 직원들이나 투자자들을 괴롭힐 때 나오는 미소가 저랬지.

“아, 그리고 저 누나한테 잘 보여라.”

“네? 아 네.”

“앞으로 큰 인물이 될 테니까. 널 많이 도와주기도 할 거고.”

“알겠습니다. 그런데……진짜 엘프들은 예쁘네요.”

기 싸움을 하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크리스는 태연해 보였다.

이런 분위기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레젠은 궁금해서 물었다.

“근데, 진짜 이곳의 마나는 좀 다르냐?”

“네. 로드님이 말씀하시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역시 천재는 천재여ㅋㅋㅋㅋ

-우리 드선생님은?

-선생님도 보이겠지!

-무려 세계관 최강잔데!

드레젠은 쓰게 웃었다.

물론 안 보인다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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