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1화
171화 - 어머니의 감상
#1
캡슐에서 나온 강일은 아직도 자신의 방송을 보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중계방.
직접적으로 채팅을 칠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방송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 둔 시스템이었다.
게임 내 시간과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에선 아무래도 느리게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나 방송 끝났어.”
“오- 그래? 잘하던데?”
임수아 여사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들의 이미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가족들과 티격태격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사회생활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풋풋한 청년.
그것이 아들, 강일의 이미지였다.
‘정말 5년 동안 저 세계에서 있었던 거구나.’
임수아 여사는 꽤 많은 사람을 만나 봤다.
일하거나,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있었다.
화면 속의 강일, 드레젠이라고 하는 인물은 노련하게 사람을 구워삶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를 확실하게 활용하는 모습까지, 인상적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평가해 주는 거 진짜야?”
“그럼, 왜, 평소에는 조금 박했나?”
“말도 마. 그래 가지고 회사에서 제대로 할 수 있냐는 말만 맨날 들었어.”
임수아 여사는 뜨끔했다.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들의 못 미더웠던 하루하루를 핀잔했었던 나날.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
그녀는 영상 재생을 잠시 멈추고 중요한 이야기를 물었다.
“너희 아빠는, 소식 있니?”
“아니, 연락할 생각도 없었어.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겠지.”
임수아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빚을 지고, 이혼 직전까지 사이가 안 좋았던 부부였다.
그렇게 금실이 좋았었는데…….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엄마도 이거 해 보고 싶은데.”
“그래? 좋지. 가끔 같이 파티도 하자.”
“좋아, 그럼 엄마도 방송 나갈 수 있는 거야?”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의 합방이라, 채팅 창 반응이 제법 궁금해졌다.
자신의 어머니, 임수아는 꽤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브리엘 정도일까.’
어머니가 제대로 게임을 하기만 한다면, 단기간 내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크리스, 그리고 큰형님의 아들과 함께 키워 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조용히 사이트를 보고 있었다.
강일은 주변을 둘러봤다.
캡슐이 있어서 그런지 둘이 자기엔 비좁았다.
“엄마, 주변에 호텔 있는데, 거기서 자고 오자.”
“여기서 자기엔 좀 비좁나?”
“아무래도 그렇지. 첫날인데, 여기서 자는 건 좀 그렇잖아.”
임수아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은 둘이 자기엔 협소했다.
이부자리도 하나밖에 없어, 불편할 것이 뻔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간단한 짐을 챙기고 가까운 호텔에서 자기로 했다.
“엄마는 이사할 때까지 거기서 며칠 있어. 장기 투숙 신청하고.”
“그럴까? 돈 많이 번다고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
“……1년 내내 여기 있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실제로 그가 벌어들이는 돈은 꽤 많았다.
평범한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절대 만질 수 없는 돈.
그걸 단 한 달 만에 벌었다.
강일이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돈이기도 했다.
“부담 갖지 말고 얼른 가자.”
“그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이사하는 날에 맞춰서 캡슐도 주문해 둘게.”
“어머, 그건 좀 환영이다. 얘.”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향한 두 사람.
강일은 지구에 오고 난 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치를 부렸다.
객실을 최고급으로 잡아, 하룻밤에 거의 100만 원에 육박하는 숙박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
처음엔 걱정하던 임수아 여사 역시 방을 보더니 은근히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럼, 내일 봐 아들?”
“어, 내일 조식 먹으러 내려와.”
“그래, 아들 덕분에 제대로 된 호사도 누려 보겠네. 내일 봐.”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임수아 여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강일은 잠만 잘 생각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싼 방을 구했다.
이제 슬슬 몸도 신경 쓸 생각이었기에, 룸서비스를 시켜 먹었다.
한 끼에 3~5만 원 정도 하는 비싼 식단.
하이디엔이 잘 챙겨 주긴 했지만, 홀로 먹어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많이 먹고 슬슬 몸도 만들어 보자.”
근육이 넘쳐 났던 옛날 몸이 그리웠다.
현실에서도 몸이 좋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외모가 평가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 너도나도 아는 사실이었으니.
여유가 생겼으니 자신을 가꾸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음, 맛있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스테이크와 달콤한 향기가 훅 올라오는 크림 파스타.
한 입씩 음미하자 인스턴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미와 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강일은 오랜 시간 음식을 음미하며 밤을 보냈다.
#2
다음 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강일은 왜인지 모르게 꽤나 주목받고 있었다.
개조된 그의 몸뚱이는 웬만한 연예인 뺨치도록 잘생겼다.
왜?
영웅은 응당 뭇 사람들에게 선망받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영웅! 용사는 빼어난 외모와 완벽한 실력을 갖춰야 하오!
-그렇지. 같은 남자라도 반해 버릴 정도로 만들어 보자!
-우리 용사는,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될 겁니다. 공학자들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죠.
이러한 이유로, 강일의 얼굴과 몸은 이상향에 가까웠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 직원까지 흘끔거릴 정도이니, 불편할 정도였다.
“인기 많다? 아들?”
“그런 소리 하지 마. 민망해 나도.”
“엄마는 호텔리어 반대다. 박봉에 고생이 많아서 신경 못 써 준대.”
“그거 위험한 발언이야.”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상쾌한 아침을 시작했다.
강일과 임수아 여사는 알게 모르게 극진한 대접까지 받았다.
호텔리어들이 은근하게 강일을 챙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다 듣자 하니 모자지간인 것 같은데, 인상이라도 남기기 위함이었다.
“그럼 가 볼게요.”
“그래, 밤에 놀러 와.”
임수아 여사는 짐을 챙겨 떠나는 아들을 배웅했다.
그녀가 장기 투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밀하게 퍼졌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만큼 잘생긴 청년.
거기다 어머니를 장기적으로 최고급 객실에 머물게 할 수 있는 재력.
은밀하게 접근할 구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어머니를 공략해야 한다는 의견이 돌았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손님.”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요. 힘들 텐데-.”
“아닙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임수아 여사는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연결했다.
오늘도 세이브 더 브락시아라는 게임을 관찰할 생각이었다.
‘프로 리그도 개최한다고 하던데.’
프로 리그.
한때 그녀가 꿈꾸던 자리였다.
집안의 반대와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잠시 꿈꾸듯, 몽롱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돌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너무도 멀리 와 버린 현실이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대단하네.”
그녀는 이제 막 아들이 오크라고 하는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실력.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엘프라고 불리는 이들도 눈에 띄었지만, 아들만큼 활약하진 못했다.
그녀는 괜스레 두근거림을 느꼈다.
‘나도 이젠…….’
직장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다시 들어간다 해도 염치가 있는 이상, 힘들다는 것은 알았다.
그녀는 아들 몰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마침 화면에서 빠르게 재생되고 있는 게임이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아들에게 보탬이 좀 되어야겠어.”
어차피 할 일도 없었다.
몸은 건강한데 할 일은 없으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게임으로 향했다.
소싯적, 열정적으로 했던 피가 들끓었다.
어느새 그녀는 세이브 더 브락시아의 공략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3
강일은 반지하로 돌아와서 방송 준비를 서둘렀다.
어제는 조금 일찍 끈 감이 있었으니, 빨리 방송을 켰다.
역시나 전 세계에서 그의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일은 어떻게 됐지?’
그는 게임을 시작하기 전, 엘리스가 보낸 뉴스 기사를 읽어 보았다.
경찰이 출동했고, 자신을 향한 악의적인 게시물을 작성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는 것.
회사 내부에서 사과문을 발표해, 깔끔하게 처리한 것 등등.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일 처리였다.
“앞으로 건드는 놈은 없어지겠는걸.”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이디엔이 손을 써 놨는지 허위 정보 유포,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자, 익명을 가장해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 확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만만치 않았다.
오죽하면 현실에선 평범한 사람이 인터넷만 켰다 하면 미친놈처럼 키보드를 두들긴다는 사례도 있을까.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많이 모이셨네요.”
-오예!
-오늘부터 병사 키우기 가는 겁니깤ㅋㅋㅋ
-크리스를 굴려라! 록시를 굴려라!
-굴려라 굴려라!
회백색 세상을 마주하며, 드레젠은 곰곰이 생각했다.
재능 있는 자들.
그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어떻게 하면 피워 낼 수 있을까.
답은 하나였다.
“여러분들 말대로, 죽을 때까지 굴려야겠군요.”
잠재력이란, 본래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법.
죽기 직전까지 밀어붙이다 보면, 어떻게든 다 되는 법이었다.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손님들이 들이닥치겠군요. 그들을 응대하고 적절한 조치도 취해야 하니, 당분간은 내정에 집중하겠습니다.”
여독도 풀 겸, 오랜만에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자리 옆에는 쿨레드가 앉아 있었다.
쿨레드가 드레젠을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했다.
“돌아오셨군요. 이거…… 엄청난 일을 가지고 오셨네요.”
“맞아. 그래서 좀 도와주려고 왔다.”
쿨레드가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영지와 마탑의 차이점이라면 마탑은 주동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
쿨레드의 일 처리는 정직하고 여유가 흘렀다.
드레젠은 서류를 한 뭉텅이 집어서 자리를 잡았다.
“이건 내가 처리하지.”
“알겠습니다. 아, 그곳에 이시스의 눈물 계약서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탑에서 또 찾아오겠다고 서신을 보냈습니다.”
“골렘 때문이겠지?”
쿨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골렘.
사람처럼 싸울 수 있는 골렘은 여태까지 하나도 없었으니까.
세작들이 소문을 퍼뜨렸겠지.
드레젠은 본격적으로 업무 방송을 시작했다.
‘음?’
그런 서류를 살펴보던 그의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