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0화
170화 - 구역 정리
#1
백작령의 병사들이 끝도 없이 도열해 있었다.
거의 모든 군사력을 지금, 이곳에 집중했다.
뿌우우우우-!
카라탁스가 목울대를 움직여 울음소리를 냈다.
“와, 저, 저게 다 엘프야?”
“해상이라서 다행이지, 전부 육지 몬스터였어 봐.”
“진짜 말도 안 나오는군.”
으레 그렇듯, 병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해상 몬스터들이 이렇게 뭉쳐 다니는 것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나오는 해상 몬스터는 거의 없는데-.
“엘프다.”
“오오, 실물을 직접 보다니! 무척이나 아름답군. 하, 저런 미모라니.”
“허…… 할 말이 없군.”
엘프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
본래 엘프들은 미색 때문에 해를 많이 입어, 다른 종족들과는 교류를 끊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태생이 인간보다 강하고, 오래 사는 종족이었다.
수그리고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서 오시오. 엘프.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베스티안 백작이라고 하오.”
“반갑소. 백작. 엘프를 이끄는 하이디엔이라고 합니다.”
기품 있는 목소리에 백작이 움찔했다.
변경백이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마나를 의연하게 받아넘기고 있는 엘프.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작은 살짝 긴장했다.
게다가-.
‘저 여인도 만만찮군.’
단단한 갑각에 이끼가 낀 와이번에서 내린 엘프 여인.
저자도 백작 자신 이상의 실력자였다.
그 밖에도 강자들이 많이 보였다.
수는 수백만이라고 하지만, 평균이 월등하게 높았다.
“안내를 맡게 되었습니다. 파베론 산맥의 구역 정리를 도와 드리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끝까지 협조하겠소.”
베스티안 백작은 엘프와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잡음이야 있겠지만, 그건 시간이 점차 해결해 주겠지.
잘하면 엘프들과 무역도 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들 지쳐 보이는데, 어서 출발하시죠.”
“알겠습니다.”
휴식을 취한 와이번들이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엘프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당연히 무의 추종자들을 따르는 이들 역시 존재했다.
뿐만 아니라 황궁에서, 각 영지에서 파견 나온 정보원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엄청난 소식이다. 엘프라니!’
엘프의 미모는 전설로 내려올 정도로 대단했다.
아마 여기저기서 득달같이 달려들 거다.
‘어서 가야겠군.’
‘영주님께 소식을 전해야겠어.’
뿔뿔이 흩어져,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드레젠은 그들을 눈에 담았다.
그들이 소식을 가져다주겠지.
그렇다면 엘프를 노리는 이들이 올 것이다.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다.’
그는 파베론 산맥을 완벽하게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파베론 산맥에 용병들이 잘 가지 않는 이유.
그것은 험준한 산세와 더불어 강력한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크, 오우거, 각종 맹금류 몬스터, 와이번 등등.
파베론 산맥은 절대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산맥이었다.
“엘프들만 알 수 있는 길을 만들 겁니다. 수해는 넓으니까요.”
“그러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가능하겠나?”
“불가능할 것도 없죠.”
엘프들이 부리는 정령은 정말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자연 속에서, 그들은 무적이나 다름없는 힘을 발휘했다.
드레젠 역시 그걸 겪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숲에서라면, 그 어떤 적들이 와도 엘프들은 잘 버틸 것이다.
“엘프들은 숲에서 정말 강합니다. 성좌가 낳은 자식을 이길 정도였으니.”
“……그게 사실인가? 엄청난 전력이군.”
엘프라는 종족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과 별개로, 그들에겐 치명적인 한 수가 있었다.
실버문의 존재, 그리고 에일라와 와이번의 기수들.
“거기다 엘프들은 몬스터의 눈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까지 있습니다. 딱히 몬스터를 토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그들에 안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이디엔을 비롯한 실버문 일행이 종횡무진 숲을 누빌 수 있는 이유도 거기서 나왔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깊고 넓은 수해 안에서 엘프들을 걱정한다는 건 쓸데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드레젠은 백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와이렉스를 호출했다.
“와이번들을 불러서 적당한 장소에 있는 몬스터를 쫓아내자.”
[오크 부락이 있는 곳은 어떤가.]
“좋은 생각이다.”
오크는 번식력이 뛰어나고 적응력이 뛰어난 종족이었다.
한 번씩 솎아 주지 않으면 또다시 범람을 일으킬 것이다.
엘프들은 오크에 대한 억제력, 그리고 주변 몬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백작령 인근을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겠지.
‘게다가 파베론 산맥에 잠들어 있는 드래곤을 깨우는 것도.’
드래곤.
대 마족 전장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필수 전력.
그들은 길고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이 깨어난다면, 드레젠은 드래곤과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에일라! 절 따라오세요.”
“알았다!”
마나를 담아 소리치니, 그쪽에서도 반응했다.
와이번들이 드레젠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엘프들과 와이번들은 꽤 깊은 교감을 나눈 모양.
과거에도 그랬듯, 두 종족의 콤비는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할 셈인가?”
“오크 부락을 쓸어버릴 겁니다. 그들의 터를 빼앗아 제2의 싱케루스를 건설하죠.”
“오크라……. 알겠네. 명을 받들지.”
와이번들은 꽤 오랜 비행에 지쳐 있었다.
관리를 해 주었다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았던 여정이었겠지.
오크 고기는 와이번들에게 최고의 영양식이었다.
근육이 꽉꽉 들어찬 살점은 영양분이 풍부했고, 숫자도 많았으니까.
[크아아아아아아-!]
저 멀리 바위산이 보였다.
와이렉스의 포효가 울리자, 거뭇거뭇한 형체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제국에 있는 와이번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돌고래보다 훨씬 똑똑한 와이번이었다.
그들은 대번에 새로 합류한 무리들과 꺅꺅대며 교류를 나눴다.
“와이번들이…… 서로 소통하는 건가?”
에일라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나는 덩치 큰 와이번을 바라봤다.
브레이시스 대륙에 서식하는 와이번은 덩치와 힘이 좋았다.
반대로 엘프의 숲에 서식하는 와이번은 속도가 빠르며 선회 반경이 매우 짧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진화해 온 와이번은, 서로 반갑다며 인사하는 중이었다.
“아, 와이번의 지능은 돌고래 이상입니다. 말만 못할 뿐이지, 정말 똑똑하거든요. 한번 인정만 받으면 편해질 겁니다.”
-진짜 와이번 마려워
-로망인데ㅜㅜ
-125트째, 오늘도 난 인정을 받기 위해 산에 오른다…….
-ㅋㅋㅋㅋㅋㅋ
-와이번 엄청 까다로워ㅜㅜ
시청자들의 채팅은 언제나 유쾌했다.
드레젠은 바람을 맞으며 밝게 웃었다.
이제 뷔페를 체험할 시간이었다.
#2
오크 부락.
범람에서 자울렉을 잃은 오크들은 새로운 로드가 나타날 때까지 마법사들이 관리했다.
그들은 한 가지 묘수를 냈다.
모든 부족을 통합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로드를 선출하자는 의견.
마법사이기에 생각이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취익-, 저건 뭐냐.”
“……어째 불길하다.”
마법사들은 한데 모여 오늘도 투기장을 열었다.
싸움을 좋아하는 오크들은 환영하며 강자를 가리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가장 강한 대전사가 곧 로드가 된다.
그건 오크들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다.
“우어어어어어어-! 내가 이겼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패자에겐 가차 없이 칼날이 떨어졌다.
황금빛 피 분수가 대지를 적셨다.
오크들은 아직 상공에서 뭐가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너무 심취한 나머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도망가라-! 당장!”
“도망가라! 이 멍청이들아!”
갑자기 마법사들의 호통이 주변을 휩쓸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괴성이 들렸다.
[크아아아아아-!]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기억했다.
범람을 일으켰던 날, 인간들보다 무서웠던 것이 바로 백색의 와이번이었다.
하늘에서 꽂히는 와이번들의 발톱은, 생명의 위협을 넘어 종족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태생적으로 각인된 강자에 대한 공포.
그 공포가 고개를 팍 들었다.
“도망가라! 도망가!”
“취이익! 도망가라!”
크아아아아-!
와이번들이 떼로 울었다.
수많은 오크들이 한곳에 뭉쳐 있으니, 와이번들에겐 아주 신나는 식사 시간이었다.
두 무리를 합치면 거의 200마리에 가까운 와이번들이 오크 부락을 덮쳤다.
“오크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흠, 그러게요. 오크들이 무슨 짓을 했나?”
드레젠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크들은 부락을 만들어 따로 생활하는 종족이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갖 오크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어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잘됐군요.”
드레젠은 와이렉스의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중간에 몇몇 엘프들에게 길을 안내하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걸어서 이곳까지는 약 하루가 소요되니, 그 전에 깔끔하게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스킬 레벨도 올릴 겸, 오크 청소나 하겠습니다.”
네자렉의 목걸이가 빛났다.
오크들을 처형할 시간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오크들이 드레젠을 발견했다.
그를 처리하기엔 주변에서 날뛰고 있는 와이번들이 너무 많았다.
와이번들은 영리하게 오크들을 사냥했다.
“둥글게 몰아라!”
드레젠이 소리치자, 와이렉스가 포효했다.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듣는 와이번들.
날개를 펄럭이며 부락을 둥글게 감싸, 포위했다.
오크들은 안간힘을 쓰며 빠져나가려 했다.
“이 정도 오크도 잡다 보면 수련이 되겠죠.”
서걱-.
오러가 담긴 검날이 오크를 베었다.
더없이 깔끔한 검술.
그 모습을 바라본 에일라와 기수들 역시 전투에 가세했다.
순식간에 오크들의 사체가 산처럼 쌓였다.
“후우-. 이제 얼추 정리가 됐군요. 언제쯤 도착하려나.”
엘프들과 투닥거리는 스토리도 이제 끝이었다.
한동안은 엘프가 정착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크리스를 키우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엘프를 노리고 접근하는 녀석들이 당분간은 아주 많을 테니까.
드레젠과 엘프들은 정리하고, 와이번들은 포식했다.
카라탁스는 언제든지 필요할 때 부르라며 근처에 있는 심해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챕터가 막을 내린 것 같아 기분이 좋군요.”
-그거 ㅇㅈ
-엘프 챕터 끗!
-ㅋㅋㅋㅋ 다음 챕터는 뭥미
-일단 엘프들 방어부터 해야지.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마족들은 아직도 엄청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분쇄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동맹이 필요했다.
‘최대한 해 봐야겠군.’
드레젠은 2부를 준비하며 생각했다.
저번처럼 당하고만 있진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