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8화
168화 - 귀족 대하는 법(권력 Ver.)
#1
게임에 접속하니 그를 반겨 주는 건 푸르른 바다였다.
어디까지 진행했더라-.
잠깐 생각한 드레젠은 이내 기억을 떠올렸다.
수송 작전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새로운 동료를 얻었고, 수만 마리의 거대 해상 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도 장관이네.”
-ㅇㅈ
-진짜 레게노다
-이겈ㅋㅋ 이 정도면 대항해시대 찍어도 될 듯ㅋㅋㅋ
-절대 못 이기지
시청자의 말대로, 이 정도 전력이면 국가 전복도 가능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제국과 한판 승부를 벌여도 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이었다.
해상 전력이 과하게 섞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렉스, 우리도 가자.”
식량은 넉넉히 챙겨 왔다.
엘프 특유의 가벼운 몸무게와 뛰어난 균형 감각은 울퉁불퉁한 괴물들 위를 평지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드레젠이 해야 할 일은 먼저 가서 항구의 진입로를 확보해 두는 것이었다.
좁은 길목이 약 다섯 개 정도 있었다.
미리 가서 양해를 구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것.
[출발하지.]
크아아아아-!
와이렉스가 포효하자, 듬성듬성 이끼가 껴 있는 비늘을 가진 와이번들이 호응했다.
와이렉스는 만드록스와 마찬가지로, 행성 전체에 있는 와이번들의 왕이었다.
허무함과 공허함 때문에 오랜 시간 동족들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본래 전 세계의 와이번들을 통솔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거, 잘 타고 있어요. 귀한 전력이니까.”
“알았다. 내 책임지고 철저하게 관리하지.”
와이번 무리 위에 타고 있는 자는 대부분 전사들이었다.
급하게 훈련시킨 것치고는 정말 뛰어난 기수가 되어 있었다.
천공 기사단이라고 명명한 집단의 대장은 바로 에일라였다.
“그럼, 간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엘프들이 와이번의 등에 올라서서 경례를 해 주었다.
드레젠은 밝게 웃으며 손을 한번 흔들어 주었다.
어느새 엘프들의 진정한 대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드레젠이었다.
-캬;;
-진짜 부럽닼ㅋㅋ
-나도 빨리 키워서 대접받아야짘ㅋㅋ
-현실에선 평범한 내가 이계에선 대장군?
-엌ㅋㅋㅋㅋㅋ
빡빡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풀 기회는 별로 없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야근이라도 하면?
결국 돈을 번다는 행위만으론 행복할 수 없었다.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는 이상향이기도 했다.
“여러분도 열심히 하셔서 영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치만 여기도 상당히 팍팍해요.”
그것도 사실이었다.
드레젠이라 이 정도까지 금방 올라왔지, 아직 다른 사람들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레벨만 오른다고 다가 아니었으니까.
“속력을 높여. 목적지는 세즈펠 운하다.”
[꽉 잡아라.]
콰아아아아-!
공기가 터져 나가며 굉음이 몰아쳤다.
제트 엔진 대신 마나로 초음속 비행을 하는 와이렉스.
드레젠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마나로 몸을 보호했다.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낯선 곳으로 향했다.
#2
세즈펠 운하.
작은 만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어, 미끄럼 협곡이라고도 불렸다.
바닷물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듯,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세즈펠 운하는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로신 왕국의 영토였다.
“그로신 왕국은 옛날에는 공국이었습니다.”
그로신 공작 가문.
그 옛날 베스티안 가문과 함께 브레이시스 제국을 건국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을 세운 가문이었다.
베스티안 가문은 브레이시스 왕과 긴밀한 친분을 유지하며 제국에 남았고, 그로신 공작가는 거대한 만에 터를 잡아, 공국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로신 공작가는 주변에 있는 소수 세력을 규합하여 정식으로 독립했습니다. 그게 오늘날 그로신 왕국이죠.”
제국과 다를 것 없는 문화에 소수민족의 문화가 섞여,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이 있었다.
제국의 땅이 워낙 커서 그렇지, 브락시아 대륙은 넓었다.
소국과 공국, 다양한 왕국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살아가는 대륙.
시청자들은 이제 막 새로운 지형을 봐서 상당히 들떴다.
-와! 새로운 곳!
-와! 신대륙!
-이곳도 점령해야지!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시작하는 방법은 없나?
-그러게. 모드 같은 거 나오나?
지금까지 시작점은 한 곳뿐이었다.
수많은 시체들로부터 시작하는 용병.
현재 개발자 노트에는 다양한 루트로 시작할 수 있는 방향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가상 현실이라 아직 개발되는 부분도 있겠죠. 아마 그 부분을 해결하면 될 겁니다.”
가상 현실은 아직 미지의 기술이란 평가였다.
그걸 열심히 가공하고 상용화하는 것이 (주)브락시아의 주요 임무였고.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인력을 투입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중이었다.
“요번 주에 패치 노트가 올라온다고 하니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리뷰 영상도 하나 찍어야 하나?”
-환영!
-격한 끄덕임!
-(하트 뿅뿅 이모티콘)
-대충 빨리 찍으라는 채팅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드레젠 자체가 이 게임의 고수였다.
고수가 바라보는 시스템은 어떨까?
고수가 바라보는 패치의 방향성은?
이미 그가 하나의 거대한 영향력이 되어 버렸으니, 그런 영상도 필수적으로 찍어야 했다.
“다 왔네요. 그럼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크아아아아-!
공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시작으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협상일지 협박일지는,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었지만.
#3
“뭐라? 은빛 와이번?”
“그, 그렇습니다. 배, 백색 와이번인지 은빛 와이번인지 거대한 와이번이 운하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쾅-!
탁자를 거칠게 내려친 중년 남성이 소리쳤다.
“그러면 당장 요격하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그 와이번 위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주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하여 보고를-.”
“나를?”
아직 숨도 채 고르지 않은 병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당장 턱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숨을 고르게 할 새도 없이, 그는 영주의 명을 받들어야 했다.
영주가 지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이번을 타고 왔다고? 그놈을 한번 만나 봐야겠구나.”
감히 겁도 없이 그로신 왕국의 영토를?
제국의 비호를 업고 있는 그로신 왕국의 상공에 들어온 침입자.
안 그래도 세즈펠 운하를 끼고 있는 영지라 잡음이 많이 들려오는 곳이었다.
전투라면 이골이 나 있는 병사와 기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와이번?
그 정도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
영지는 눈을 부라리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게 아무도 없느냐!”
“세즈펠 운하로 간다! 지금 당장!”
그를 보좌하는 집사가 소리치는 것으로, 이름 모를 영주는 세즈펠 운하로 향했다.
한편, 그를 기다리는 드레젠은 세즈펠 운하를 지키고 있는 요새의 첨탑 위에 앉아 있었다.
항구를 끼고 있는 세즈펠 운하 전역을 지키는 단단하고도 위협적인 요새였다.
“저기 오는군요.”
-자동 진행 만만세
-ㅋㅋㅋㅋㅋ만세만다!
-진짜 겁나 늦게 오네.
-일부러 빙빙 돌아서 온 것 같은데 참교육 가시죠!
드레젠이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웬만해서는 좋게 끝내는 것이 좋았다.
엘프들이 전투에 휘말리는 것만큼 귀찮은 건 없었으니까.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 주겠다마는.’
그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가 지나가는 것도 상당한 압박일 텐데, 거기다 마법 폭격까지 이어지면?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나라 하나 정복하는 건 순식간이겠지.
드레젠이 고민하고 있을 때, 후원 하나가 들어왔다.
[‘크리드’ 님 5,000,000코인 후원!]
[선생님, 이번엔 칼 안 쓰고 굴복시키는 모습도 강의하심이?]
-어머
-이건 가야지
-ㅋㅋㅋㅋㅋ아니 선입금이라고?
-ㅋㅋㅋㅋ미션을 이런 식으로 주네
-이건 못 먹어도 고지!
드레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값을 받았으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
안 그런 귀족들도 있었지만, 늦는 것도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그러면 귀족 상대하는 법을 강의해야겠군요. 오늘은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버전으로. 혹은 귀족 작위를 땄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드리죠.”
-좋다!
-ㅋㅋㅋㅋㅋㅋ조으다
-진짜 처세술이 중요함
-하;; 귀족한테 잘못 물려서 도망자 신세로 쫓겨 다니는 중임;;
권위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얻는 것이 정말 힘들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귀족들은 자신의 권위와 권력, 재력과 무력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다 자신이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건들지만 않으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커흠! 누구이길래 남의 영지에 함부로 들어와서 행패인 것이오?”
“행패라-. 그런 건 부린 적 없는데.”
“네 이놈! 말이 짧구나!”
처음부터 아주 가관이었다.
드레젠과 마주한 영주는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더 들어 볼 것도 없었다.
그로신 왕국은 넓은 범위에서 제국의 속국.
같은 자작이라도 제국의 자작이 훨씬 끗발이 좋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덤비는 거 맞지?”
드레젠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쿠우웅-!
어느새 훌쩍 내려와 그의 뒤에 내려선 와이렉스가 크르르- 하고 울어 댔다.
꿀꺽-.
느껴지는 마나가 보통이 아니었는지, 영주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영주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이, 이게 무슨-! 감히 영지에 저런 몬스터를 들이다니, 이게 행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케이드 백작이다. 제국에서 왔고.”
툭-.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뭔가를 바라본 영주가 눈을 부릅떴다.
백작의 인장.
그것도 제국 황가의 문장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는 인장이었다.
제국의 백작!
‘이, 이렇게 젊은 백작은 들어 본 적도 없지 않았는가!’
그로신 왕국의 특성상, 제국의 상황은 정말 빠듯하게 알아내야 했다.
요 몇 달 동안은 소식이 없었는데, 이런 신흥 귀족이 등장할 줄이야!
그는 황망한 눈으로 드레젠을 쳐다봤다.
그가 조용히 웃었다.
“죽고 싶냐?”
“아,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
-아ㅋㅋㅋ이게 뭐얔ㅋㅋㅋ
-결국 계찍누넼ㅋㅋㅋ
-계급으로 찍어 눌렀자낰ㅋㅋㅋ
결국 이 세계도 계급이 깡패요, 재력이 곧 권력이었다.
영주는 곧 드레젠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용건을 물었다.
“제, 제국의 백작께서 이곳엔 무슨 일로…….”
“운하 좀 빌립시다. 응?”
운하를 빌린다고?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드레젠은 간단히 설명했다.
“아주 많은 몬스터가 이 운하를 통과할 거다. 아무런 의심하지 말고 건들지도 말고. 알겠지?”
“그, 그게 무슨…….”
“수만 단위의 몬스터가 지나갈 거라고. 댁은 신경 쓰지 않으면 되고.”
수만이라니.
그 정도 몬스터는 어차피 건들지도 못했다.
결국 영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