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7화
167화 - 여기도 이사 준비
#1
퇴원 수속은 빨랐다.
강일의 어머니, 임수아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옆에는 훤칠하고 잘생긴 아들, 강일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팔짱을 끼고, 그녀를 에스코트하는 모습은 뭇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임수아 역시 젊었을 때 한 미모 했던 여인이었다.
자외선을 받지 않고 5년이란 시간을 보낸 그녀의 피부는 고운 하얀색이었다.
“원래 이렇게 바로 퇴원할 수 있는 거야?”
“아니지, 엄마가 건강해서 그런 거야.”
5년이란 시간 동안 기초적인 영양 섭취도 하지 않고 꼼짝없이 누워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할 근 손실은 물론이고 뼈의 강도 약화, 장기의 약화 등등, 많은 부작용이 일어난다.
당장 한 달만 꾸준히 운동하지 않아도 근육이 빠지는 것이 인간의 몸뚱이였다.
5년이란 시간은 한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나가 좋긴 좋아.’
엘더슨에게서 얻은 마나를 거의 다 썼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깨어나자마자 거동할 수 있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한 대가도 치를 수 있었다. 간호사들, 그리고 주치의가 축복의 말들을 쏟아 냈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에 있었니? 엄마가 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나? 다른 세계.”
“뭐? 진짜?”
강일은 조용히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지 않았다.
유일한 가족이니,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수아 여사는 사색이 되었다.
다른 세계라니.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가 5년 동안 누워 있었는데 어떻게 바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
그녀도 지식이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그녀의 직업은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러네. 우리 아들, 이따가 다 말해 줘야 한다?”
“알았어. 그리고 오늘 엄마랑 나랑 할 일이 하나 있어.”
강일은 밝게 웃었다.
어머니가 깨어났음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간 생활하면서 감정이 메말라 버렸을 수도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것이었으니.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하겠어.’
겸사겸사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병원에서 나오고 있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늘씬한 여인과 그녀의 뒤를 잇는 기골이 장대한 남자 한 명.
그녀가 풍기고 있는 포스 때문인지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강일 님!”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
“모셔다드리러 왔죠. 사무실까지 느껴지던데요.”
“어머-.”
임수아 여사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젊은 여인이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에게 살갑게 인사하기까지!
대체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안녕하세요. 하이디엔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일이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임수아라고 해요.”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댁까지 모셔다드려도 될까요?”
임수아 여사는 잠시 망설였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혹시 아들이 위험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고 하던데, 그와 관련된 일일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엄마, 괜찮아.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
“일종의 파트너랄까요?”
“파트너?”
강일은 자연스럽게 하이디엔이 끌고 온 세단에 어머니를 태웠다.
그가 옆에 타면서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네. 가면서 설명 다 해 줄게.”
“그래. 근데-.”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여자 친구니? 아니면 부잣집 아가씨?”
“아니, 내 일 도와주는 후원자. 부잣집인 건 맞지만, 자수성가고.”
“어머.”
여사님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녀의 인식으로는 여성 혼자 자수성가해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
능력 있고, TV에서 본 어떤 연예인보다 훨씬 예쁜 여자.
슬쩍 보아하니 아들에게 호의적인 것 같았다.
‘아무렴, 저런 여자가 데려올 정도면.’
“읏차. 엄마 몸은 괜찮지? 머리 아프진 않고?”
“괜찮아. 옛날보다 훨씬 건강해진 것 같다, 얘.”
“지금부터 5년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줄게.”
“출발하겠습니다.”
풍채가 좋은 기사가 출발했다.
스르륵, 아주 편안하게 움직이는 세단은 도로 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앞에 ‘R’ 모양의 로고가 당당하게 붙은 세단.
홍해의 기적이라도 벌어진 듯, 차들이 슬금슬금 길을 비켜 주었다.
#2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아들의 인생은 말만 들어도 험난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
임수아 여사는 조용히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고생 많았네. 우리 아들.”
“괜찮아. 이제 진짜 잘 살고 있거든.”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옆에서 하이디엔이 작게 미소 지었다.
강일은 항상 말했었다.
고향에 가족이 있으니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이딴 쓰레기 같은 곳에서는 억울해서라도 못 죽을 것 같다고.
그 결실이 지금 이뤄졌다.
어느새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돈도 많이 벌었어. 이거 봐.”
“……혹시 사기 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에이-.”
임수아 여사에게 브튜브, 그리고 인터넷 개인 방송은 생소한 분야였다.
혹여 아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진 않을까, 순간적으로 걱정이 솟아났다.
15억.
15억이라는 금액이 아들 통장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진짜 네가 혼자 번 거야?”
“응.”
“그럼 이걸 다 직접 벌었다고?”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이디엔의 입술이 열렸다.
“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인이랍니다. 어머님. 믿으셔도 돼요.”
하이디엔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다.
임수아 여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성의 목소리였으니, 일반인은 그 아름다움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절로 마음을 움직이는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 하이디엔. 우리 집 말고 상암동으로 가 줄래?”
“거긴 왜요?”
“집 보러 가려고.”
은평, 그리고 상암에는 이제 막 들어서는 아파트가 꽤 있었다.
특히 은평구는 많은 곳을 허물고 다시 지을 정도로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다.
좋은 아파트를 꽤 싼값에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상암과 은평이었다.
5~10억 사이에 고급 신축 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았으니까.
“언제까지 반지하에 살 수는 없지.”
“그럼 그쪽으로 모실게요.”
“돈 그렇게 막 쓰면 안 돼, 아들.”
“괜찮아. 다음 달엔 더 많이 들어올걸?”
10억이 또 들어온다고?
임수아 여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로 아들을 쳐다봤다.
그가 없어지고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가.
깨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없었던 5년.
이제 새롭게 출발할 때였다.
“여기, 이쪽으로 찍고 가면 돼.”
“여기로 가 줘.”
차는 부드럽게 서울 한복판으로 향했다.
게임 속에서 엘프가 그랬듯, 이제 강일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때였다.
뒤이어 하이디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강일의 어머니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와-, 그럼 이분이 회장님이셔?”
“그렇죠. 전 공식적으로 후원받는 사람이고.”
“이야-, 출세했네. 우리 강일이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하이디엔이 꾸벅 인사했다.
임수아 여사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여러모로 훈훈한 분위기가 흘렀다.
부동산, 그리고 모델하우스.
본격적인 새집 마련을 준비했다.
“오늘 하루는 저도 데이트 기분 좀 내게 해 줘요.”
“데이트라니…….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면 곤란하지 않아?”
“어머, 감히 로드의 기분을 거스를 사람이 있으려고요?”
임수아 여사는 중간에 나란히 걸으며 잡담을 떨고 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지금은 모든 것을 처분하고 반지하의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고.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녀 자신의 잘못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엄마? 뭐 하고 있어? 혹시 몸 안 좋아? 사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다~ 보기 좋아서 몰래 뒤따라가고 있었지.”
“어휴, 이 양반 못된 마음 생길라. 그런 농담 하지 마.”
무슨 못된 마음.
임수아 여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 좋은데 아들이라는 놈은 여자의 마음을 공부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휴-.
그녀는 한숨을 푹 쉬고 걸음을 옮겼다.
하루가 다 저물고 있었다.
#3
임수아, 그리고 강일은 방에 도착했다.
새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금방 해가 질 시간이었다.
제아무리 마나로 인해 평범한 사람보다 건강해진 임수아 여사라지만, 휴식은 필요했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어?”
“혼자서는 살아도 되는데, 엄마가 일어났으니까 이젠 넓은 데로 이사해야지.”
“고생했네.”
그녀는 캡슐을 바라보며 차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걸 발명하고 상용화한 것이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여인이라지?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게임을 하는 거야? 영화에서처럼?”
“응 맞아. 난 그걸로 돈을 버는 거고.”
“엄마도 봐도 되는 거야?”
“당연히 봐도 되지. 아들 일하는 거 보려고?”
임수아 여사는 궁금했다.
아들이 하는 게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까?
그녀가 예전에 봤던 마X 영화 정도일까?
그런 초능력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면 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걸로 돈도 벌 수 있다며. 아이템도 팔고. 엄마가 왕년에 게임 좀 했지.”
“-아. 그거랑 좀 다를걸? 이건 운동신경이 좋아야 유리해.”
실제로 임수아 여사는 나이에 비해 젊게 놀았다.
PC 게임을 좋아해 RTS나 RPG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한 번씩 해 봤었다.
동네 PC방 대회에서 별들의 전쟁 대회를 우승했던 전적은 전설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
“그래? 그럼 느긋하게 구경이나 해 볼까?”
“좋아.”
강일은 컴퓨터를 세팅해 주었다.
아직 다 낡은 컴퓨터를 쓰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부팅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신의 엄마를 뒤로하고, 강일은 드레젠으로 돌아갔다.
이제 엘프들을 무사히 정착시킬 차례였다.
-ㄷㅎ!
-ㄷㅎ!
-쓰앵님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요ㅜㅜ
-동기화해서 잠들겄넼ㅋㅋㅋ
-지금부터 여덟 시간이면 새벽 4시가 넘는다구요!
방송을 켜고 빌드업을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시청자들이 들이닥쳤다.
오늘은 더욱 완벽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
아들, 드레젠이 활약하는 모습을.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바로 방송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