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화
166화 - 사랑하는 우리 엄마
#1
“얼추 정리는 됐는데,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부 처리해야죠.”
“저도 돕겠습니다.”
강일이 물었고 하이디엔과 엘리스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녀들 역시 강일의 방송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해충은 질질 끌면 번식하고, 일대를 썩게 만든다는 것.
발견하는 즉시 둥지까지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은 즉시 행동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마나는 충분한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러고 보니, 내일이 브튜브 정산일이네요.”
그랬지.
강일은 괜스레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오랜 기간 염원했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재 수익 월 10억 이상.
드레젠이라는 칭호는 이미 중소기업 정도로 커졌다.
‘이제 그만 쉬고 일어나셔야죠.’
항상 자신을 향해 웃어 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잊고 지낸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흔들릴까, 이를 악물고 달려왔던 것이었다.
쌀쌀한 밤바람이 뜨거워지는 감정을 식혀 주었다.
“돌아가자.”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둘이 다 했지.”
특히 엘리스의 공이 정말 컸다.
도주할 걸 알고 잠복해 있었던 점도 그렇고, 항상 엘더슨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엘리스는 뿌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가슴을 쫙 폈다.
“에헴.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용사님께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사인! 그리고 사진을 원합니다!”
강일은 홀가분하게 웃었다.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을 내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으로 가서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입고 있는 옷의 등판에 커다란 사인까지 해 주었다.
“됐지?”
“와- 정말 감사합니다.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그랜절이라도 할까요?”
날뛰는 엘리스를 진정시키고, 각자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헤어졌다.
집 안으로 들어간 강일은 물끄러미 자신의 방을 훑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이 살기엔 너무 비좁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그는 뜬눈으로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얼른 내일이 됐으면.”
브튜브 구독자 500만.
그 고지가 머지않은 것을 확인한 강일이 흐뭇하게 웃었다.
내로라하는 브튜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개인 크리에이터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엄청난 채널을 양성했다.
‘아직 연예인들을 따라가기엔 좀 모자라네.’
특히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아이돌의 경우, 조회 수가 억대를 넘나드는 동영상이 수두룩했다.
언젠가 자신의 채널도 이 정도 가치를 지니게 될까?
화려한 안무를 뽐내며 화면을 노려보는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이걸 볼 때가 아니지.”
이래서 아이돌이 무섭구나.
강일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턱을 괴고 딸깍딸깍.
해가 뜰 때까지 지루한 작업이 계속되었다.
#2
대학 병원.
요즘 찾는 횟수가 적어졌다고 해도, 강일은 이곳을 꾸준히 방문했었다.
방송국에 공지를 올렸다.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 방송을 늦게 켤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어머! 강일이 왔구나. 커피 한잔 마실래?”
“안녕하세요. 주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사람.
그녀는 강일이 일을 그만뒀음에도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항상 강일이 키보드를 두들기던 자리에는 못 보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아마도 금방 뽑은 후임이겠지.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 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틈틈이 드세요. 많이 싸 왔어요.”
그는 이제 베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자가 아니었다.
주전부리를 잔뜩 사 가지고 온 강일이 턱, 하고 커다란 비닐봉지를 올려놨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크기에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어머! 이게 다 뭐야? 이런 거 먹으면 수간호사님께 혼나는데…….”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저번에 인수인계도 못 하고 그만둬서 죄송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에이-. 자기가 만들어 준 자료집, 엄청 좋아! 모르는 거 있으면 다 그거 찾아본다니까?”
실제로 그가 만든 자료집은 세세한 것까지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긴가민가해서 찾아보면 어김없이 해결책이 쓰여 있는 기적의 자료집.
심지어 원무과를 담당하는 사람이 복사해서 나눠 주라고 했을 정도였다.
강일은 밝게 웃었다.
“저희 어머니. 1인실로 옮길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어요.”
“1인실?”
“네. 일이 잘 풀려서 여유가 좀 생겼거든요.”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학 병원의 1인실 요금은 꽤 비싼 편이었다.
종종 병원비가 밀릴 때도 있었던 강일이었다.
그런데 1인실이라니.
“오올~ 강일이 성공했어?”
“입에 풀칠 정도는 해요.”
“호호, 어쨌든 축하해! 상담하러 가자.”
서류를 작성하고 이것저것 절차를 밟았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들러붙어서 숨을 쉬고 있는 어머니를 옮겨 주었다.
갑자기 우르르 몰려온 간호사들 때문에 병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작은 해프닝이었다.
“1인실은 보호자가 계속 옆에 계실 수 있어요. 여기, 간이침대 쓰시면 되고요.”
“감사합니다.”
“필요하시면 벨 눌러 주시고요, 짐은 이쪽에 두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고 떠났다.
강일은 꾸벅 인사를 하고 혼자가 되었다.
핸드폰 화면이 켜지며 알림이 울렸다.
많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입금됐다.”
[브튜브 코리아 : 1,453,120,500원]
[잔액 : 1,534,850,500원]
“……와.”
돈.
누군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지만, 현대에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돈 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돈이 많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빼고는 다 누릴 수 있다.
최고는 아니지만 절대 불행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바로 돈이었다.
“진짜 10억이 들어왔네.”
브튜브가 그냥 대박도 아니고 초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엘리스가 투입된 후, 영상의 퀄리티는 점점 상승했다.
옛날보다 요즘 영상이 훨씬 조회 수가 잘 나오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집 하나는 해 드릴 수 있겠지.”
누군가에겐 10억은 평생 구경도 못 해 볼 돈이겠지.
몇 달 전의 강일도 그러했다.
10억은커녕 1천만 원도 못 벌던 형편이었으니.
한데 이제는 월에 10억씩 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집은 현금으로 사는 게 낫겠지.”
대출을 받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빚을 지는 건 싫었다.
최대한 현금을 많이 남겨 두는 쪽으로 자금을 운용하기로 했다.
그는 하이디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이디엔, 지금 통화돼?”
“네. 이제 막 회의가 끝났거든요.”
“다행이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녀의 웃음소리가 작게 흘렀다.
“말씀만 하세요. 무슨 부탁을 들어 드릴까요?”
“오늘 입금이 됐거든. 자금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아, 알겠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추천드릴게요.”
하이디엔은 바로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새삼 그녀를 알고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느꼈다.
정말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까.
언제 기회가 된다면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오늘 그의 몸 상태는 지구로 돌아온 이래,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후우-.”
천천히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진정한 치료를 시작했다.
눈을 감고 그녀의 의식, 저 깊은 곳으로 향했다.
#3
컴컴한 어둠 속.
행복한 한때를 그리며 걸음을 걷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언제쯤 이 길이 끝날까, 한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걷고 또 걸었다.
‘그래, 어차피 아들도 없는데.’
아들이 실종된 후, 그녀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어서 이 길을 나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끔찍한 기억이 그녀를 붙들었다.
언제나 가정의 구심점이 되었던 아이.
그 아이가 어느 날 사라져 버렸으니까.
이 끝없는 어둠에서 나가면, 아들이 돌아와 있을까?
‘그냥 이곳에서 계속 걷는 게 낫겠어.’
여인은 걷는 것을 포기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끔찍한 무기력함이 그녀의 발목을 턱턱 붙잡았다.
아들이 없는 세상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혼자 죽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아들, 보고 싶다.’
저-기.
저 먼 곳에서 빛이 아른거렸다.
본능적으로 저기까지만 가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느꼈다.
아들이 없는 세상.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
여인은 빛 쪽에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익숙한 실루엣.
집 밖에서 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아들처럼 보였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아아아아아-!”
“……아들?”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이 없던 시절에 들었던, 자신을 찾던 그 목소리.
“엄마-!”
“가, 강일이야? 강일이니?”
여인이 벌떡 일어섰다.
다신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꿈일까?
진짜일까?
뭐든 좋았다.
다시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엄마.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네.”
“강일아…… 강일이 맞아?”
“나 맞지. 이렇게 컴컴한 데서 뭐 하는 거야? 얼른 나가자.”
“여기서 나가면…… 너 없어지는 거 아니니?”
그녀의 아들, 강일이 활짝 웃었다.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팔목을 감쌌다.
어느새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 돌아온 지가 언젠데. 얼른 가자.”
“지, 진짜지? 진짜 돌아가면 있는 거지?”
“그럼.”
두 사람은 나란히 빛을 향해 걸어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그녀, 임수아에게 쏟아졌다.
느껴지지 않았던 감촉들이 서서히 살아났다.
천천히 눈을 뜨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아들이 보였다.
“일어났네.”
“…….”
강일의 어머니, 임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어둠 속에 잠긴 후, 처음으로 보는 아들의 얼굴이었다.
절대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얼굴이 눈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4
“환자분 깨어나셨대요!”
“어머, 어디 어디!”
보통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수년 동안 병원에 다녔던 간호사들에게도, 이 사건은 기록에 남을 정도로 희귀한 사건이었다.
의사들이 뛰어오고,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몸 상태를 체크한 의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왜 정상이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강일이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황당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지금 당장 일상생활을 하셔도 무리가 없을 만큼.”
어쩐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강일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