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58화 (159/279)

제 158화

158화 - 치부

#1

엘루도와 에일라, 그리고 로드는 엘프라는 종족을 이끄는 수장들이었다.

로드는 중립을 지키는 편이었고, 제사장과 장군은 일반 엘프들과 전사들 위주로 챙겼다.

서로 마찰은 없었지만, 드레젠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후,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갔다.

“후-, 제사장과 이렇게 골이 깊을 줄이야.”

“내가 이방인이라 잘못한 건데 뭘.”

드레젠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화법을 썼다.

자신을 낮추고 불쌍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에일라와 전사들이 그를 보호하게끔 만들었다.

그 작전은 묘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전사들은 자신의 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사냥을 도왔다. 그대가 없었다면 전사들 몇이 죽었겠지.”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하자고.”

기분도 풀 겸, 두 사람은 훈련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기로 했다.

많은 전사들 역시 둘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훈련장 주위를 빙 둘러쌌다.

드레젠은 멀찍이 떨어지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병사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면, 본격적으로 분열을 조성할 겁니다.”

-진짜 사악햌ㅋㅋㅋ

-와;; 나였어도 깜빡 속았을 거 같은데;;

-진짜 심리전 오진닼ㅋㅋㅋ

-ㄹㅇ ㅋㅋ

심리전이라는 걸 아는 자는 드레젠의 시청자, 그리고 엘루도밖에 없었다.

엘루도는 눈치가 정말 빨랐지만, 너무 큰 계획을 준비하는 자였다.

당장 눈앞에서 치고 들어오는 자들에 대한 대처는 미숙한 편.

“엘루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빨리 행동해야 합니다. 같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는 너무 스케일이 커져, 감당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은 퍼즐처럼 조각들을 맞춰 가며 실현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대한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데는, 그 조각들을 하나씩 없애 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일부러 드레젠이 갑옷 대신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그 이유였다.

“마나는 사용하지 말고, 순수한 검술로 대결하길 원한다.”

“좋아. 괜한 소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

두 사람은 격렬하게 맞붙었다.

멀리서 하이디엔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평하시군.”

“왜? 신경 쓰여?”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이디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귓가를 만졌다.

드레젠이 자신의 귀를 따스하게 감싸 주었던 그날.

마법처럼 격정이 가라앉았던 그 감정이 생각났다.

“헤에-, 이거 완전 빠졌네 빠졌어.”

“아니라니까!”

하이디엔은 고개를 홱 돌리고 성소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예배는 하루 뒤.

깜짝 이벤트를 위해 마지막 작업을 서둘렀다.

#2

다음 날.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예배 당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로 모였다.

성소 앞, 거대한 광장에서 수많은 엘프들을 모아 놓고 성좌에 대한 강의와 업적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엘프들의 예배는 합동 장례식만큼 볼거리가 많은 이벤트입니다. 이것도 잘 편집해서 올려 볼게요.”

-편집자 일해라!

-일해라 편집자!

-ㅋㅋㅋㅋ와 근데 성소 낮에 보니까 엄청 예쁘네

-ㄹㅇ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건축물이다

캠이 성소의 전경을 슥 비췄다.

전체가 크리스털로 되어 있는 것 같은 거대한 탑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만약 이 건축물을 현대에 재현할 수 있다면, 무조건 관광 명소로 꼽힐 것 같은 비주얼.

벌써부터 클립이 나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즐길 때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가시죠.”

“자, 차례대로 앉길 바랍니다.”

“의자를 준비하라.”

예배의 시작은 모두가 앉을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쿠구구구-!

몇몇 엘프들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엘프 마법사가 사용하는 정령 마법의 정수였다.

땅에서 솟아나는 기다란 의자들.

“엘프는 정령 마법이라는 걸 사용합니다. 정령의 힘을 빌려 와서 발현하는 걸 의미하죠.”

정령들은 자연 어디에나 있었다.

인간은 대자연에 흩어진 마나를 사용하지만, 엘프들은 정령들이 공급해 주는 마나를 사용한다.

그것이 차이점이었다.

순식간에 멋들어진 예배당이 완성되었다.

그것도 녹음이 드리운 야외 예배당이었다.

“지금부터 이 땅을 구원한 성좌에 대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드레젠은 눈을 감으며 하이디엔의 기척이 멀어지는 걸 확인했다.

엘루도의 치부를 드러낼 작전이 시작되었다.

#3

예배가 있는 날엔 마법진, 그러니까 감지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틈을 타서 하이디엔과 엘르엘라, 그리고 실버문의 단원들이 성소 안으로 잠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삼엄한 경비가 성소 내부를 지키는 중이었다.

성소에 아무것도 없다면, 당연히 경비도 필요 없다.

‘……그 더러운 치부를 드러내 주마.’

하이디엔은 주먹을 쥐고 창을 들었다.

속전속결.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는 신념이 그녀를 움직였다.

“후우- 간다.”

그녀는 암살에 관한 것도 배웠다.

괜히 실버문의 수장이 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기척을 죽인 하이디엔이 쏜살같이 움직였다.

퍼억-!

마나를 담아 후려친 일격!

“끄억-!”

짧은 비명과 함께 벽에 처박힌 가드가 꿈틀댔다.

하이디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가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보통 이런 일은 엘르엘라가 전문이었지만, 오늘따라 하이디엔은 의욕이 앞섰다.

“우리 대장, 저러다가 사고 칠 것 같은데.”

“설마 그러겠어? 흥분하면 누구보다 차가워지는 게 하이디엔인데.”

그녀를 따르는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디엔은 흥분하고 화가 날수록 냉정해지는 타입이었다.

그 부작용으로 엘프에게는 없어야 할 성격까지 가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엘르엘라는 어깨를 으쓱하고 대장의 뒤를 따랐다.

“얼른 가자.”

그렇게 도착한 지하실.

하이디엔 앞에 거칠 것은 없었고, 가드들은 모두 창대에 얻어맞아 기절했다.

며칠은 요양해야 할 정도로 때렸으니, 당분간 깨어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엘르엘라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엘프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널브러져 있던 몬스터의 사체는 없어졌다.

그동안 엘루도가 치워 놨을까?

아니면-?

“이거, 몬스터들은 다 어디 갔지?”

“……진짜 성소 밑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이건-.”

“끔찍하지? 이게 제사장의 민낯이야.”

엘르엘라는 덤덤하게 말했다.

대원들 역시 그녀들이 처음 왔을 때와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있었다.

부들부들 떠는 동료들을 뒤로한 채, 하이디엔은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이 없어. 빨리 준비해.”

“알겠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겠군!”

작전은 간단했다.

제사장을 공개적으로 처형하기 위해서 증거를 수집하고, 성소의 지하를 그대로 찍는 것이었다.

엘르엘라는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불길한 불안감에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여기에 몬스터가 없지? 설마-.’

오늘은 모든 엘프가 모이는 자리였다.

그걸 이용하는 것이라면?

각을 재고 있었던 것은 자신들뿐만이 아니라면?

“이거 드레젠이 위험한 거 아니야?”

“-그가?”

하이디엔이 반문했다.

그 드레젠이 어디 가서 위험에 빠지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걱정되는 건 수많은 엘프들이었다.

제사장이 생각 없이 몬스터를 풀어놓는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

“시간이 없으니 얼른 올라가자. 마법진은 설치했지?”

“이쪽은 완료했다.”

“이쪽도.”

“좋아. 내가 이곳에 남아 있겠다.”

하이디엔이 명령하자, 나머지 대원들은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모두가 떠나가고, 하이디엔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동족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드레젠은 이 계획이 실패할 것도 염두에 두고 자신의 편을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오늘, 제사장의 멱을 딴다. 그리고 반역자들을 색출해서- 모조리 끝장낼 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하이디엔의 마나가 짙게 요동쳤다.

#4

예배는 경건했다.

제사장은 성좌에 관해 이야기하며, 성좌에게 충성을 다하고, 엘프의 긍지를 잊지 말자는 설교를 늘어놨다.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노래를 부르는 엘프들이었다.

-지린다;;

-아니 실화야? 야외에서 부르는데 공연장 뺨치넼ㅋㅋ

-그냥 부르는 게 아닌 듯;;

-와 멜로디 쩐닼ㅋㅋㅋ

엘프들은 마나로 소리를 공명하여 천상의 소리를 내기로 유명했다.

전쟁 도중, 그들은 위문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어, ‘천상의 합창단’이라고도 불렸다.

드레젠은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제사장은 합창을 들으며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드레젠이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리고, 탐지와 추적을 사용했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불길한 마나가 보였다.

-오?

-왔다!

-역시 제사장도 뭔가를 꾸미고 있었음!

-나름 똑똑하네.

기운은 꽤 거대했다.

루푸스와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훨씬 크고 강인한 기운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이곳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굉장히 희미해서 웬만한 전사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설마 저기에서 한 번에 도약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1km는 되는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엌ㅋㅋㅋ

-진짜 그러면 레게노다

-ㅋㅋㅋㅋㅋ 진짜 전투가 끊이질 않아!

성소에는 무기를 들고 올 수가 없었다.

옷 안에 갑옷을 입고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드레젠은 무기가 없어도 마스터급 이상으로 싸울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자, 얼른 치부를 드러내.’

엘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다시 부수는 것이 낫다.

드레젠은 얌전히 때를 기다렸다.

“자, 이제부터- 성좌들을 위한 성만찬을-.”

[크오오오오오오-!]

때가 왔다.

거대한 포효가 울렸다.

드레젠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제사장이 그를 가리키며 외쳤다.

“전사들이여! 저자를 잡아라!”

“내 그럴 줄 알았지.”

에일라 역시 벌떡 일어서 드레젠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뭐긴, 제사장이 날 몰아가려고 하는 거지. 나는 전투 전문이지, 저런 걸 조종하는 게 전문이 아니야.”

에일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제사장과 드레젠.

누굴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드레젠은 오러를 일으켜, 두 주먹에 감았다.

“곧 하이디엔이 증거를 들고 올 거다.”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

“그럼.”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쿠우우웅-!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지고, 충격파가 주변을 헤집었다.

성스러웠던 예배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로드가 곧 도착할 거다.”

“무엇 하고 있나 장군! 지금 저 이방인을 잡아!”

“-불가합니다. 제사장.”

오러를 두른 드레젠이 괴물과 대치하는 모습을 보고, 에일라가 엘루도의 명을 거부했다.

이제 그의 치부를 드러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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