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55화 (156/279)

제 155화

155화 - 지저분한 곳

#1

하이디엔, 엘르엘라, 드레젠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말을 잃었다.

성소의 지하엔 꽤 커다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본래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이었다.

아니, 성좌의 석상이 있어야 할 공간이었지만, 전혀 다른 것들이 그 공간을 채웠다.

“이, 이게…….”

“우욱! 이, 이게 뭐야?!”

“내 이럴 줄 알았지.”

드레젠이 살벌하게 웃었다.

제사장이라는 놈은 이 지하에서 각종 실험을 하고 있었던 모양.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몬스터까지 조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이런…….”

하이디엔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동족을 보호해야만 하는 엘프들의 사명.

그 사명을 저버린 광경이 이곳에 있었다.

“끔찍해, 끔찍해! 어째서 이런 곳이 있는 거야?!”

“제사장에게 물어봐야지.”

드레젠은 주변을 살펴봤다.

정경을 설명하자면,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엘프들이 벽에 주르륵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밑에는 부글부글 끓는 용액에 담겨 있는 시체 조각들이 언뜻 보였다.

황금색 핏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몬스터들의 사체들도 널브러진 광경.

“이곳에서 뭔가를 하긴 하나 본데.”

“킬리안, 도리에스, 살리아, 앙쥬.”

하이디엔이 떨리는 눈으로 엘프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모두 최전선에서 몬스터와 싸우다 전사한 이들이었으니까.

“왜, 왜 이들이 이곳에 있는 거야?”

“진실은 언제나 꽤 잔혹한 법이지.”

드레젠도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들은 왜 이곳에 있을까?

그리고 제사장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밖으로 나가자. 제사장이 곧 올지도 모른다.”

“……어째서, 어째서!”

-멘붕했네

-ㅜㅜ 진짜 잔인하네

-와 진짜 황금색 피 아니었으면 토했을 듯;;

-완전 쓰레기 새끼네!

시청자들도 함께 격분했다.

현대에서도 인체 실험은 비인도의 끝판이지 않은가.

시체를 잘라 여기저기 이어 붙인 자국도 있었다.

“이거, 전형적인 클리셰군.”

제사장은 아무래도 꽤 거대한 것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침착을 유지하고 있는 엘르엘라가 하이디엔을 잡아끌었다.

격분한 하이디엔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제사장을 죽여 버리겠어.”

“아서라. 지금 일을 터뜨리면 죽도 밥도 안 돼. 조금 더 기다려.”

“뭐라고? 지금 뭐라 그랬어! 여기, 내 동료들이 능욕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하이디엔! 가만히 좀 있어!”

눈이 돌아가 버린 그녀는 드레젠의 멱살을 잡았다.

어마어마한 완력이었지만, 드레젠은 가볍게 그걸 풀어냈다.

하이디엔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 진정하라는 거야. 복수는 철저하게, 그리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해야 하는 법이다.”

“……젠장!”

언젠가 그녀가 드레젠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두 손을 올려 하이디엔의 귀를 잡아 주었다.

너의 어떤 상처도, 과거도, 다 믿어 주겠다는 표현.

엘프에게 있어, 최고의 신뢰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너…….”

“진정하고 나가자. 다 괜찮아질 거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도 아름다운 엘프의 얼굴.

하이디엔은 고개를 푹 숙이고 끄덕였다.

엘프들을 바른길로 이끌기 위한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몇 년 후, 그녀가 로드가 된다면 이런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겠지.

-진짜 이쁘네;;

-우는 것도 예쁘면 어떡햌ㅋㅋㅋ

-진짜 남자들도 여자 못 만나겠넼ㅋㅋㅋ

-게임에서 연애하러 갑니다ㅋㅋㅋㅋ

겨우 진정된 하이디엔이 발걸음을 돌렸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다짐했다.

“이 더러운 것들을 내가 직접 치우겠어.”

엘프들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인 그녀.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후폭풍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거야 엘프들이 잘 넘기겠지.

‘어쩌면-.’

드레젠은 한 가지 가설을 더 세웠다.

제사장이 멜리젠을 깨우고, 위기를 조성하고,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라고 했다면?

그래서 레드 드래곤의 분노를 사게끔 했다면?

“조사할 가치는 차고 넘치겠군.”

구원의 시기는 조금 더 빠르겠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하이디엔에게 말했다.

“이 일이 끝나면, 엘프들의 거주지를 옮기는 게 어때.”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시스 성이라고, 내가 다스리는 성 옆에 엄청난 수해가 있거든. 그곳이라면 내가 도움을 주기도 편하겠지.”

“생각해 보겠다.”

하이디엔은 눈물을 훔치며 대충 대답했다.

같이 걷고 있던 엘르엘라가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그걸 이렇게 쉽게 답하면 어떡해?!”

“좋아, 차기 엘프 로드께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니, 걱정을 덜었군.”

“무슨- 이봐!”

그럴 생각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는데!

드레젠은 어느새 씩씩거리며 쫓아오는 하이디엔을 보며 작게 웃었다.

“적당히 분위기는 환기시킨 것 같군요.”

-크으

-이것이 바로 인터넷으로 연애를 배우는 건갘ㅋㅋㅋ

-개 웃기넼ㅋㅋ

-와 드레젠 님 처세술 보솤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분노를 담았던 채팅에서, 밝은 분위기로 넘어갔다.

드레젠은 하이디엔과 엘르엘라를 돌려보낸 뒤, 경비들을 깨웠다.

그들을 간단히 세뇌시킨 후,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오늘 이곳에 그가 방문했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었다.

#2

다음 날.

드레젠에게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로드와 제사장이었다.

“간밤엔 잘 지냈는가?”

“베려해 주신 덕분에 별 탈 없었습니다. 도시도 정말 아름다웠고요.”

로드가 웃었다.

“그거 다행이군. 몇 가지 주의 사항만 지켜 준다면 싱케루스는 이방인을 배척하지 않는 편이네.”

“그러길 바라야겠네요.”

드레젠이 웃었다.

뒤에서 그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는 제사장이 홱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자신이 성소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아-, 이틀 뒤에 성소에서 작은 예배가 있으니, 한번 참석해 보시게.”

“엘프들의 문화를 견식할 좋은 기회군요. 알겠습니다.”

드레젠이 진심으로 웃었다.

딱 적당한 시기에 판이 짜였다.

성소 아래에 있는 그 참극을 만천하에 공개할 시기로 딱이었다.

“크흠, 로드시여. 외부인은 예배에 초대하지 않으셔도-.”

“모처럼의 손님이지 않소. 어차피 이 대륙에서 성좌는 모든 이들이 섬기지. 나쁠 것은 없다고 보네만.”

“그렇지요. 하면 감시를 붙이겠습니다.”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무슨 짓을 꾸미려는지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감시 정도야 이들이 감수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도록 하지. 양해 좀 부탁드리오. 엘프들의 수가 나날이 줄어 가고 있어서 말이지.”

“이해합니다. 개의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고맙구려. 그럼 편히 쉬게.”

로드가 떠나갔다.

제사장이 한번 눈길을 주고 떠났다.

그의 눈초리엔 엄청난 적대감이 담겨 있었다.

드레젠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지만.

-저거 싸가지 보솤ㅋㅋ

-참교육의 시간이 다가온다.

-진짜 그켬이야 비리의 온상이네

-얼른 준비해서 패 버리죠!

“저 제사장이라는 엘프, 우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적대감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는군요.”

에드윈과 샤페론이 제사장을 경계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들도 상당히 기감이 발달했다.

특히 적의를 감지하는 데 있어선 더 뛰어났다.

“맞아. 저 녀석이 이번 임무의 중심이거든.”

“호오-, 역시 꿍꿍이가 있는 겁니까?”

“그렇지. 어제 뭘 봤는지 얘기해 줄까?”

드레젠은 두 사람을 앉혀 놓고 지난밤 본 것을 얘기했다.

내용 전달이 될수록, 그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인간들이나 엘프나 하는 짓이 똑같다니, 둘의 얼굴에 실망감이 묻어났다.

“허어,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 박살 내야지. 뭘 어떻게 해. 문제는 다른 엘프들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드레젠은 방금 전, 예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걸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 한다.

“이따가 그 여자가 올 거다. 실버문도 올 거야. 그때 회의를 해 보자.”

“알겠습니다.”

“허, 그런 일을 벌이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에드윈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명예롭게 죽은 자들을 또다시 이용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릴없이 하루를 보냈다.

“저는 수련을 하러 가겠습니다.”

“오, 저도 어울려도 되겠습니까?”

“좋아, 한판 붙어 보자고.”

드레젠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툭 던졌다.

“사람 없는 곳에서 놀아. 엘프들은 시끄러운 거 별로 안 좋아해.”

“알겠습니다.”

샤페론이 정중하게 답하고 숙소를 나섰다.

드레젠은 정좌를 하고 앉았다.

-기대된다

-이번에 또 어떤 깽판을 칠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엘프_마을에서_AVI

-도랏냐곸ㅋㅋㅋ

할 일이 없을 땐 마나를 모으면서 빠른 진행을 해야 하는 법.

일단 목표는 마나 10,000을 찍는 것이었다.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1만이 넘어가면 전성기에 한 발자국 가까이 갈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이라고.

‘그때까지, 정진한다.’

이번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브락시아에서의 그때보다 훨씬 여유로운 상황.

당연히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자동 진행 돌리고, 저녁에 회의를 하겠습니다.”

드레젠이 눈을 감았다.

주변에 있는 정순한 마나가 그에게 천천히 흡수되었다.

드레젠은 아직도 강해지는 중이었다.

#3

“우리 왔어!”

“인간과 회의라니, 의외로군.”

저녁이 되자, 하이디엔이 실버문의 정예를 이끌고 숙소로 들어왔다.

다행히 멘탈은 제법 회복된 듯 보였다.

하이디엔은 드레젠을 바라보며 풀썩 앉았다.

“다들 데려왔다. 이틀 뒤에 예배가 있는 건 알고 있나?”

“그래. 오늘 로드에게 들은 참이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다.

드레젠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성소 지하에서 제사장이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 어제 하이디엔과 엘르엘라와 함께 그걸 확인했지.”

“뭐라고?!”

“소리 낮추고, 잘 들어.”

실버문의 간부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이디엔이 옆에서 그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맞다. 정말…… 참담한 광경이었어. 거기다-.”

하이디엔은 아직도 그 광경을 잊지 못했다.

함께 전장을 누볐던 친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

적어도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쓰러졌던 전우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하이디엔은 이번에, 큰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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