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54화 (155/279)

제 154화

154화 - 성소에 잠들어 있는 것

#1

엘프의 성소.

그곳의 경비는 로드 일가가 기거하는 곳 이상으로 삼엄했다.

꼭대기에 설치된 마법진은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를 감지하는 마법진.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감지하는 마법진.’

사실 드레젠은 그 마법진이 진짜 마법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 후반, 그림자 기사단이 힘을 쓰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 시제품이 이곳에 있었다니.

“저 마법진은 보통 마법진이 아니다. 인간들이 쓰고 있는 은신 기술도 소용없지.”

“저건 마법진이 아니야.”

“응?”

마법진이 아니라고?

드레젠의 대답은 생뚱맞았다.

마법진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정교하게 감지를 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라는 것.

하이디엔이 코웃음을 쳤다.

“흥, 다 아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구나. 저건 제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설치한 마법진이다. 인간은 흉내 낼 수 없지.”

“수명이 짧아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잘 보고 있어라.”

저걸 돌파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앞으로 하이디엔의 견식을 넓혀 주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엘프가 가진 사고방식만으로는 그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

“내가 저걸 어떻게 파훼하는지.”

사실 간단한 작업이었다.

저 꼭대기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의 정체는-.

‘베리드가 사용하고 있는 생체 탐지기.’

훗날 암살자들이 힘을 잃는 데 한몫했던 물건이었다.

드레젠이 용사의 신분으로 이곳에 왔을 땐, 성소는 이미 멜리젠에게 파괴당하고 난 뒤였다.

그래서 감지기의 존재를 몰랐었다.

-그래서 저게 뭔데요 ㅜㅜ

-아 제발ㅋㅋㅋㅋㅋ

-절단신공 좀 어떻게 해 봐아!

-ㅋㅋㅋㅋㅋ미치게 만드넼ㅋㅋㅋ

[‘후원맨’ 님 25,000코인 후원!]

[정보료 드립니다ㅜㅜ 젭알 알려 주세요ㅜㅜ]

급기야 정보료라는 것도 바치기 시작한 시청자들.

드레젠은 채팅 창을 흘끔 쳐다보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금 있다가 알려 드릴게요.”

-넘나 치명적이곸ㅋㅋㅋ

-절.대.캡.처.해!

-이건 밈이다^^7

나름 치명적인 모습이었나 보다.

드레젠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훗날 군대에서 필수적으로 익혔던 마법이었다.

“저 탐지기는 인체가 가지고 있는 열과 생체 에너지를 체크합니다.”

소리가 거의 닿지 않는 범위, 경비를 서고 있는 엘프가 없는 사각지대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곳을 지나가도 들킬 테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저 감지기는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비해 질이 떨어져 보였다.

“이 감지기의 약점은 얼음 마법입니다.”

-오?

-그럴듯한 발상이다

-그렇지만 생체 에너지는요?

-순간적으로 얼려 버리는 건가?

“네, 맞습니다. 그냥 얼음 마법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심장 마비가 올 정도의 마법이 필요합니다.”

드레젠에게는 마법의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이 마법은 일반 병사들도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마법이었다.

베리드를 저격하기 위해 아크메이지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몇 달을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건 특별한 마법이라 마법에 소양이 없는 분들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되니까요.”

완벽함은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 있을 뿐.

당시 마법사들의 모토였다.

이 신념이 아니었다면 감지기를 파훼할 수도 없었으리라.

“마법의 이름은- ‘아이스 더미’입니다.”

빠직-.

그의 심장에서부터 얼음꽃이 피어났다.

이 마법은 누구든 익힐 수 있었지만 다루기는 어려웠다.

수없이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능숙하게 감지기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싸늘한 감각이 심장을 덮침과 동시에 감시망으로 몸을 날렸다.

“크윽-.”

순간적으로 숨이 멎었다.

잠시 숨을 참고 고통을 견뎠다.

마법은 찰나였고, 이내 찌릿한 감각이 심장을 강타했다.

“푸하! 이 감각은 새로 느껴도 적응되지 않네요.”

이 마법의 유일한 단점이 바로 이것.

마법을 시전하면 약 2초 정도 빈틈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를 나눠서 감지기를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죠? 이제 가드들을 제압하러 갑시다.”

감지기는 레이저 감시기처럼 통과하면 감지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었다.

곧 바뀌긴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드레젠이 움직였다.

장막이 그의 몸을 가려 주었다.

#2

하이디엔은 성소가 잘 보이는 나무에 앉아 대기하는 중이었다.

엘르엘라 역시 언제든 화살을 쏠 수 있도록 나뭇가지에 화살 몇 개를 박아 넣었다.

그녀가 하이디엔게에 물었다.

“드레젠이 진짜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아마 실패하지 않을까?

저긴 로드도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승인받지 않은 자가 간다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는 구조였다.

“근데, 성소 안에는 뭐가 있어?”

“나도 잘 모른다. 먼발치에서 중앙 제단밖에 못 봤거든.”

“저렇게 큰 건물인데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이상하잖아.”

그것도 그랬다.

엘르엘라는 엉뚱한 성격과 다르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틀에 박힌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

하이디엔 역시 성소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성소엔 뭐가 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왜 여태까지 생각하지 않았을까?

저 성소에는 무엇이 잠들어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궁금증은 드레젠이 성공한다면 풀리겠지.”

“흐응, 그렇겠지. 그나저나…… 대장 그 남자한테 관심 있지?”

“뭐,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엘르엘라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하이디엔의 귀가 빨개졌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며 작은 소리로 닦달했다.

“빨리 경계나 해. 헛소리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고.”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봐. 사적인 감정은 둘째 치더라도 친해져서 나쁠 건 없어 보이는데?”

“아, 알고 있다.”

하이디엔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주목한 곳은 성소의 꼭대기.

마법진의 중심부였다.

#3

“높긴 꽤 높네요.”

때마침, 드레젠은 성소의 꼭대기에 도착했다.

역시, 마법진이 아닌 기계장치가 그곳에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장치보다 훨씬 급이 떨어지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 장치가 바로 오늘의 전리품입니다.”

생체 정보를 인식하는 것으로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드레젠은 기기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신기하누

-와 판타지랑 SF랑 섞어 놨네

-세계관 특이하다

-이제 이 감지기는 제 겁니다.

드레젠의 생체 정보를 등록하고, 잠시 기기를 꺼 두었다.

돌아갈 때 다시 켜 두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이제 밑으로 내려가서 가드를 처리할 차례였다.

‘엘프들의 멍청함이지.’

고민할 것도 없었다.

드레젠은 옥상에서 궤도를 잡은 뒤, 그대로 뛰어내렸다.

유명한 암살 게임에서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걸 똑같이 재현해 봤다.

“힘 조절해서-.”

죽이진 않을 거다.

기절할 정도로만 힘을 조절해서 때릴 생각이었다.

아직도 장막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들킬 염려는 없었다.

퍼억-!

그의 주먹이 엘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크억!”

“누구냐!”

뒤이어 품에 있던 단검 하나를 꺼냈다.

거리 계산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날 부분을 잡고 던지니, 엘프 이마 중앙에 손잡이 부분이 꽂혔다.

“끄윽-.”

꽤 강한 힘으로 던졌으니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겠지.

정문에 있는 가드는 모두 쓰러뜨렸다.

저 멀리 느껴지는 하이디엔에게 손짓했다.

이제 성소의 민낯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저, 저거!”

“……이럴 수가.”

스르륵, 장막을 풀고 둘이 있는 곳으로 수신호를 보내는 드레젠.

두 여인은 깜짝 놀랐다.

잠입에 성공한 것도 모자라 경비까지 무력화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홀로 해낸 것이다.

‘저자가 마스터 이상의 무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마법진이 아니라는 말 역시 사실이었고, 쭉 이어서 사고를 해 본다면 마족과 협력하고 있다는 것도 신빙성이 있었다.

“얼른 가자! 얼른!”

“그, 그래.”

정문은 뚫렸다.

이제 안쪽을 조사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두 여인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드레젠은 여유롭게 가드를 치우는 중이었다.

-캬;;

-와 방금 아찔했닼ㅋㅋ

-오우야 간접 번지점프 무엇ㅋㅋㅋㅋ

-간 떨어질 뻔ㅠㅜ

시청자들은 난데없이 번지점프를 경험했다.

그 결과, 대부분이 우는소리를 했다.

나름 짜릿한 경험이라, 드레젠도 조금은 개운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증명했다. 이제 너희들이 용기를 낼 차례야.”

“우리도 각오는 됐다.”

엘르엘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은 하이디엔의 얼굴을 보고 슬며시 웃었다.

썩 마음에 드는 눈빛이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엘프 로드가 됐을 무렵의 하이디엔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가자.”

하이디엔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부디, 이 걸음이 헛걸음이기를 빌었다.

그래서 눈앞의 남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엘프들의 삶은 아직 깨끗하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가자.”

엘르엘라의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성소에 진입했다.

#4

성소 내부는 고요했다.

드레젠은 탐지를 사용했다.

그가 확인하려는 곳은 성소 지하였다.

멜리젠이 이곳에 있을 테니, 분명 지하에서 기운이 느껴질 것이다.

-와 이쁘네

-건물 이쁜 듯

-이 밑에 엄청난 놈이 잠들어 있다닠ㅋㅋ

그냥 레이드도 아니고, 잘만 성장한다면 월드 보스급 몬스터 정도로 추정되는 멜리젠.

드레젠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밑으로 내려갔다.

하이디엔과 엘르엘라 역시 숨을 죽이고 밑으로 향했다.

“대놓고 있군. 딱히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인데.”

지하로 뻗어 있는 나선형 계단.

잘 다듬어진 광석이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세 사람은 뚜벅뚜벅 밑으로 내려갔다.

“성소가, 원래 이렇게 불길한 곳이었어?”

“쉿. 앞쪽에 뭔가 있다.”

지하 깊숙한 곳에 들어오자마자, 엘르엘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하이디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프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 탁한 기운에 특히 민감했다.

두 여인이 걸음을 빨리했다.

“이게 성소라고? 말도 안 돼!”

“그래, 내가 말했잖아.”

-빙고다 빙곸ㅋㅋ

-여기에 과연 뭐가 있을까?

-하이디엔 멘붕하는 거 보고 싶다!

-으어 엘프들도 썩었어!

하이디엔의 동공이 심각하게 떨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그녀의 걸음이 일순간 멈췄다.

드레젠이 그녀의 뒤에서 말했다.

“왜, 무섭나?”

“…….”

“네가 진짜 엘프 로드가 되고, 동족을 제대로 이끌려면 썩은 부분도 볼 줄 알아야 해.”

“알았다.”

그랬다.

썩은 부분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암 덩어리가 되겠지.

하이디엔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법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