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절대자의 뉴비생활-152화 (153/279)

제 152화

152화 - 엘프의 손님

#1

엘프들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수해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가끔 물자를 얻으러 나가는 것이나, 무기를 공수해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자급자족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엘프들이 공식적으로 나가는 것은 대부분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동료들의 복수는 끝났나?”

“그렇다. 흩어져 있는 동료들도 데려오는 길이지.”

“마침 잘됐네.”

하이디엔은 웅크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이렉스를 흘끔 쳐다봤다.

언제 봐도 섬뜩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 와 봤더니 역시 드레젠이었다.

‘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드레젠은 장작을 구해 온 두 사람을 흘끔 쳐다봤다.

샤페론과 에드윈은 아주 능숙하게 장작더미를 구해 왔다.

하이디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저들은?”

“아, 내 성 식구다. 마침 부탁할 게 있었는데,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부탁……?”

그녀는 저도 모르게 경계 태세를 취했다.

드레젠이라는 인물은 도무지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대놓고 나쁜 사람이면 이 악물고 덤벼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드레젠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 너희의 성소에 조사할 일이 생겨서. 손님으로 좀 맞아 줬으면 좋겠다.”

“서, 성소라고?”

-ㅋㅋㅋㅋ귀여워

-대표님 깜짝 놀라는 거 봨ㅋㅋㅋ

-진짜 이름도 똑같고 모델링 제대로 뽑은 듯ㅋㅋㅋ

-오늘부터 하이디엔파로 갈아탑니다!

이제 하이디엔이 현실에 있는 진짜 하이디엔과 똑같이 생긴 걸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았다.

연예인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의 외모라 게임에서도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하이디엔을 만나기 위해 실력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을까.

그녀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건 불가능하다. 정신이 나갔군.”

“성소라서?”

“단순히 마을을 구경하거나 손님으로 있는 건 어떻게든 가능하다, 하지만 성소는 나조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인간이 들어가는 건 죽여 달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 나도 알고는 있지. 하지만 그곳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하이디엔은 더욱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엘프의 성소는 성좌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제사장, 그리고 로드가 아니면 절대 출입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같은 엘프도 안 되는데, 인간이?

‘이번에는 절대 안 돼.’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의 말을 들어 손해 본 것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는군. 엘프의 일은 엘프가 알아서 한다.”

“너- 차기 엘프 로드 아닌가?”

“그, 그렇다만. 어떻게 알았지?”

드레젠은 작게 한숨을 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대충 말을 해 주었다.

그녀는 드레젠과 앞으로 쭉 가야 할 사이였다.

헬라의 자식 중 하나가 성소에서 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앞으로 행동하는 데 있어 큰 지표가 될 것이다.

“그, 그게 사실이라고?”

“그래. 멜리젠이 그 아래 잠들어 있어. 그리고-.”

드레젠은 말을 이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지금도 현실에 배신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인원들이 모두 재현되어 있다면?

‘안쪽에서 배신자들을 찾을 절호의 기회지.’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게임이기도 했지만, 역사를 되풀이하는 시뮬레이션이기도 했다.

웬만한 것들은 그대로 구현이 되어 있겠지.

만약 엘프들이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멍청하진 않으려나.’

어쨌든 찔러볼 가치는 있었다.

그래서, 폭탄을 던졌다.

“-엘프들은 전부 순수하고 착할 것 같은가?”

“뭐?”

“엘프들 중에도 마족과 연관된 놈들이 있을 수 있다. 무의 추종자의 스파이도 있겠지.”

“-그런 궤변을!”

“궤변인지 아닌지는 네가 직접 판단해. 차기 로드가 그 정도도 못하면 안 되잖아.”

하이디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람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

자신은 차기 로드였다.

주민들을 따스하게 보살펴 줘야 하겠지만, 거를 것은 단호하게 걸러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배신자라고? 그런 게 있을 리가.’

하이디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저자가 엘프들을 평가하는가.

엘프들은 고상하고 순수한 종족이었다.

“그럼 보여 주지. 엘프들이 어떤 종족인지. 위협은 내가 알리겠다.”

“마음대로 해.”

드레젠은 속으로 웃었다.

엘프들의 거주지로 들어가기만 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었다.

하이디엔은 흥, 하며 코웃음을 치곤 안내를 시작했다.

“따라와라. 아-. 저 와이번은 두고. 벌집이 되기 싫으면.”

“그렇다네. 와이렉스. 내가 말한 곳으로 가 봐.”

[그러지. 정말 그곳에 동료가 있는 건가?]

“아마.”

하이디엔이 오기 전, 그는 와이렉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렸다.

비스트 마스터의 세 번째 소환수가 이 근처에 있었으니까.

단순히 잠들어 있을 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의 소환수였다.

[다녀오지.]

그는 쿨하게 말한 뒤에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장작을 한껏 모아 온 두 사람은,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드레젠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가자.”

“장작은 어떻게 합니까?”

“그냥 버려. 따듯한 곳에서 잘 테니까.”

“…….”

-에드윈 표정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근데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닌뎈ㅋㅋㅋ

-아 개 웃곀ㅋㅋㅋㅋ

드레젠과 자신이 구해 온 장작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에드윈.

그가 작게 한숨을 쉬고 후두둑, 장작을 쏟아 냈다.

샤페론 역시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2

엘프들이 거주하는 도시, 싱케루스.

순수한 자연을 받든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모든 건물이 목재와 자연 그대로의 돌로 지어졌으며, 건축 양식이 굉장히 독특한 것이 특징.

“정지!”

“나다. 하이디엔. 이 사람들은…… 손님이고.”

“이, 인간?”

싱케루스를 지키는 경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살벌하게 생긴 활을 들고 있었다.

엘프의 정석.

“엘프들은 인간들과 근육의 밀도가 다릅니다. 그래서 여리여리하지만 웬만한 기사 이상의 근력을 가지고 있죠.”

하이디엔 역시 그렇게 얇은 라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력적인 창술을 펼칠 수 있었다.

전부 그런 체형 때문이었다.

-오오

-숨겨진 근육!

-이것이 바로 실전 압축 근육이닼ㅋ

뭇 여성들이 알면 정말 좋아할 체형.

그것을 엘프들이 가지고 있었다.

하이디엔이 드레젠을 가리키며 말하자, 엘프들이 사뿐히 착지했다.

“하이디엔 님. 정말 이자들이 손님입니까?”

“그래. 이번 임무에서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나쁜 자들은 아니야.”

“……그렇군요. 당신의 말이니 믿겠습니다. 전 보고를 위해 먼저 가 보겠습니다.”

하이디엔이 고개를 끄덕였고, 경비원 하나가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남은 경비원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드레젠과 샤페론, 에드윈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저들,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그래. 적어도 해코지하진 않을 거다.”

“무슨 일로 온 겁니까? 이곳은 인간이 올 만한 장소가 아닌데.”

하이디엔은 고민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저들이 엘프들에게 용건이 있다는 것.

믿을 수 있다는 것만 어필해 줘야 했다.

“잠시 일이 있다고 하더군. 모처럼이니 노숙하고 있는 걸 도와줬을 뿐이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경비는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이디엔은 엘프들을 위해 헌신하고, 주민들에게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갑자기 엘프들을 저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감시를 붙여 두겠습니다.”

“응. 일단 보고는 개인적인 초대로 올려 줘.”

“예.”

경비대는 곧 뒤에서 걸어오는 인간들에게 관심을 끊었다.

옛날엔 교류가 있었다고 하는데, 오래전에 끊긴 상태였다.

워낙 멀리 사는 종족이라 소수 부족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인간과는 일절 만나지 않아 납치를 당하거나 노예상인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히 동떨어진 종족이었다.

“인간은 무척 오랜만이네요.”

“아마 주민들도 꽤 놀라워할 거야.”

엘프들도 인간들과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와 엘프들 기본적으로 이쁘넼ㅋㅋㅋ

-선남선녀네 진짜

-엘프들이랑 꽁냥거리고 싶다!

-진짜 갓겜! 이건 갓겜이야!

드레젠이 가는 행보는 새로운 루트가 대부분이었다.

누가 벌써 제국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할까.

그래서 드레젠이 가는 곳은 연간 화제였다.

“엘프들의 우호도를 올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소수 민족들을 모아서 이곳으로 오시면 아주 환영받을 겁니다.”

-오오 메모다!

-이런 의뢰도 해 봐야짘ㅋㅋㅋ

-오늘부터 당장 엘프들 찾으러 갑니닼ㅋㅋ

-엘프 원정대 ON!

엘프.

판타지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족.

그들이 사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인간들이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종족이 사는 곳.

서리족과는 또 다른 정경에, 시청자들의 넋이 나갔다.

-와

-진짜 대박ㅋㅋㅋ

-풍경충인 나로서는 너무 좋다!

-크으;; 이 맛에 가상 현실 하지ㅜㅜ

[‘엘프짱!’ 님 10,000코인 후원!]

[좌표! 좌표 좀 알려 주세요! ㅜㅜ]

드레젠은 손짓으로 좌표를 띄웠다.

시청자들이 메모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하나의 성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이디엔. 어서 오거라. 인간이라니…… 의외로구나.”

“로드를 뵙습니다. 이들은 제 손님입니다. 일전에 약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는 수백 년을 살아온 엘프였지만, 겉모습은 20대 후반 정도의 청년으로 보였다.

연예인 뺨을 그대로 후려칠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그가 하이디엔을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 환영한다. 나는 엘프 로드 알렉시오라고 한다.”

“로드를 뵙습니다.”

드레젠은 엘프들이 쓰는 예법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인간과는 조금 다른 포즈.

자연을 사랑하는 그들은 두 발과 두 손을 땅에 짚어, 자연에 대한 사랑을 표시한다.

그 모습을 보며 몰려온 엘프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거, 뭘 좀 아는 친구가 왔군. 모처럼의 손님이니 편하게 지내다 가게.”

“감사합니다.”

“며칠 정도를 머무를 건가?”

“일주일 안으로 떠날 겁니다. 별 탈은 없을 테니, 염려 마시길.”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이디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딸아, 이들에게 머무를 곳을 안내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하이디엔이 세 사람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넓은 곳으로 부탁할게.”

“잔말 말고 오기나 해.”

까칠했지만 은근히 친절한 그녀의 안내가 시작됐다.

드레젠은 주변을 슥 훑어봤다.

호기심 섞인 눈빛들이 꽂혔다.

인간들을 처음 봤으니까 당연한 일.

‘역시.’

그 속에서 혐오와 분노, 질타의 시선이 느껴졌다.

드레젠은 속으로 웃었다.

역시, 이곳에도 끄나풀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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