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화
150화 - 뒤틀림
#1
본래 이동이라면 매우 지루해야 하지만,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그렇지 않았다.
자동 진행!
전투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진행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니까.
드레젠은 자동 진행을 켜 두고 시청자들과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강제 종료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게임을 저장해 주세요.]
“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벌써 여덟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정신없이 몰두하던 시청자들이 아쉬워했다.
드레젠은 안 그래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에게 비수를 한 번 더 꽂았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 2부 방송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팀원들과 만나 봐야 할 것 같네요.”
-앗 ㅜㅜ
-안 돼에에에에에!
-현생을 살아라 휴먼ㅋㅋㅋㅋ
-ㅠㅠㅠ 드바ㅜㅜ
곡소리가 들렸지만 어쩌겠는가.
사실 여태 휴방 없이 달린 것이 더 대단한 것이었다.
아쉬움을 감추고, 공식적인 방송이 종료되었다.
강일은 저장한 뒤 팀원들이 보낸 톡을 보았다.
-지금 회사에서 정보를 빼돌린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헉, 진짜요?-
-예. 대표님도 함께 찾아보고 계세요.-
-헐;; 그럼 진짜 대박 사건인데;;-
-제게 아이피 주시면 제가 개인 컴퓨터 해킹해 보겠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누가 감히 드레젠을 건드리는가!
일이 틀어지면 그들의 밥줄도 끊기는 것.
사활을 걸고 그의 이미지를 지켜야 했다.
“잘들 하겠지. 그리고…… 아직 내부에 남아 있나.”
철저하게 신분을 속이고 있다면, 그것도 색출해 내야 할 터.
내부에서 비수를 갈고 있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하이디엔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데, 잠깐 통화 돼?”
“네, 가능합니다.”
언제나 친절한 그녀의 목소리.
하지만 오늘따라 불안감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강일이 물었다.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은데, 맞아?”
“네. 제 생각에도 그래요.”
아니면 강일 본인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정말 진득한 악의가 느껴졌다.
하이디엔은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지금 엘리스가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며칠 내로 잡힐 거예요. 의심 가는 사람이 몇 있거든요.”
“그래. 그리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상의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일곱 영웅.
분명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영웅 중 한 명이 떡하니 등장했다.
이것도 관계가 있을까?
“일곱 영웅 중 하나가 등장했다.”
“네. 저도 확인했습니다. 그건-.”
“서버의 오류는 아니겠지?”
하이디엔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긍정.
“예. 서버를 확인해 봤는데, 몇몇 영웅들만 확인이 되었습니다.”
“몇몇 영웅?”
“네. 일곱 명이 전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데이터를 지울 순 있고?”
일곱 영웅들을 지워 버리면 그만 아니겠는가.
강일의 말은 이상적이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서버에 등록한 캐릭터는 수정도, 삭제도 불가능합니다. 그 방법은 아직 연구 중이라…….”
“-그래. 어쩔 수 없지.”
“현재 확인된 데이터는 데스 킹, 대현자, 아크메이지뿐입니다.”
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좋은 놈들만 남았네.
나머지 네 명은 그와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이 셋도 그나마 좋았다는 거지, 평범하게 생각하면 악연일 뿐이었고.
“알았어. 정보 고마워. 나는 부계정으로 들어가서 도서관에 가 봐야겠다.”
“도서관이라면…….”
“마침 아크리움 신전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거든.”
하이디엔이 작게 감탄했다.
이런 날이 있을 줄 알고 모든 문헌들까지 복원해 두었다.
하지만 만약 누가 ‘의도적’으로 자료들을 지웠다면?
“좋은 생각입니다. 저도 계속 조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통화는 끝났다.
강일은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 넣으려다, 방송국 쪽지가 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매니저들을 통해서 각종 스폰이나 연락을 주고받기에, 개인적인 쪽지는 오지 않는데.
발신자를 보니 ‘다영’이었다.
“웬일이지?”
문득 하이디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다영의 캡슐로 게임을 한번 해 보라고 했지?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가 합방 도와 드려도 될까요?-
강일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계정은 핵이 없는 계정으로 인증을 받았다.
지금 화제인 것은 그의 캡슐.
마나가 조금 들어 있긴 했지만, 보급형 캡슐일 뿐이었다.
‘나중에 최고급 캡슐을 준다고 하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평범한 캡슐일 뿐이라는 것.
인증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신의 캡슐을 정밀 검사하여 이상이 없다는 걸 밝히는 것.
둘째는 이미 인증된 곳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것.
“확실한 것이 좋지.”
자신이 살고 있는 반지하를 공개하는 것이 좀 꺼려지긴 했다.
이곳은 강일의 콤플렉스이자 치부였다.
드레젠이라는 화려한 방송인이 사는 곳.
민낯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옛날이랑 지금이랑은 좀 다르지.”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는 이미지 메이킹을 할 능력이 있었다.
그래도 용사로서 이것저것 배운 것이 있었으니까.
그는 이제 능력 있는 남자였으니까.
#2
아크리움 도서관.
데이몬을 숭배하는 자들이 세운 문헌들의 무덤.
드레젠, 아니 케일이 되어 있는 강일이 그곳에서 책들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역사서가…….’
일곱 영웅들과 관련된 일화는 너무 유명했다.
최초로 범람을 막아선 자들이었으니까.
그는 한쪽 구석에 있는 문헌을 찾아냈다.
“여기 있군.”
두꺼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영웅들의 역사’였다.
파라락, 책장을 빠르게 넘겨 맨 마지막 챕터로 향했다.
그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일곱 영웅 중 명맥을 잇고 있는 자들은 셋에 불과하다.]
“……흠.”
그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는 절대 아니었다.
나비 효과일까?
강일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알겠어. 세 놈만 잘 이용하면 된다 이거지.”
무의 추종자는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야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흐, 잘됐어.”
-다 죽여 버릴 수 있을 테니까.
강일은 희게 웃었다.
창식이, 하이디엔이, 수많은 시청자가 질색하는 그 미소가 떠올랐다.
#3
다음 날.
강일은 핸드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내심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송인은 원래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이니까.
“준비되셨습니까?”
“잠시만요. 빌드업을 좀 해야 해서.”
강일은 능숙하게 배경을 조정했다.
이전에 하이디엔과 본사에서 촬영했을 때가 생각났다.
경험이 있으니 세팅은 금방 끝났다.
이른 아침부터 그의 방송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잉?
-이 시간에 방송을?
-엄청 빠르자너?
-선생님 지금 커뮤 난리 났어요 ㅜㅜ
그 역시 기사와 커뮤니티의 게시 글을 확인했다.
악의적인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여론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입증하면 된다.’
핵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면 그만이었다.
실시간과 그냥 자료.
어떤 게 더 믿음이 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결과가 보여 줄 테니까.
강일은 화면을 켜고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드레젠입니다. 이곳은 제가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조금 좁죠?”
-단칸방이네유
-스튜디오면 괜춘하죠
-ㅇㅇ 스튜디오면 뭐
-어차피 캡슐 들어갈 자리만 있으면 되는 거임ㅋㅋㅋ
시청자들은 그럭저럭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도 분탕을 치러 온 자들이 속속 보였다.
-해명하세요해명하세요해명하세요
-주작방송 그켬;;
-빨리해명해요
-해명해!
강일은 피식 웃었다.
화면을 돌리니 그의 캡슐이 보였다.
“안 그래도 오늘은 해명 방송 겸 합방 때문에 일찍 켰습니다.”
-오오
-진짜?
-기사님들이넼ㅋㅋㅋ
-일련번호부터 가즈아!
드레젠은 드레젠이었다.
그는 빠르게 대처하는 자세를 보였다.
일단 기사님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십니까. (주)브락시아의 기사입니다. 에-, 오늘 캡슐 점검을 의뢰받고 왔습니다.”
“저인 줄 아셨나요?”
“아뇨, 하하. 방송인이실 줄은 몰랐네요.”
젊은 기사는 멋쩍게 웃었다.
강일은 콘텐츠를 빠르게 진행했다.
기사는 강일이 드레젠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점검은 시작되었다.
“에- 일단 일련번호를 검색해 보겠습니다.”
기사가 척척 진행하는 동안 또 한 명의 손님이 등장했다.
칙칙하고 걸걸한 저음의 목소리만 오디오를 채웠는데, 밝고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드레젠 님! 저 안 늦었죠?”
“아, 어서 오세요. 이제 막 방송 켰습니다.”
바로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다영이었다.
어젯밤, 그녀와 개인적인 연락처를 교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제일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드레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방송인이었다.
시청자들도 갑자기 들려온 다영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
-다영좌!
-헉ㅋㅋㅋ 이거 찐이야?
-화면! 화면 보여 줘요!
-다룽이들 다 모여라아아아아!
캠이 옅은 화장과 수수한 옷차림의 다영을 잡았다.
항상 캠을 켜고 방송하는 다영.
그녀의 얼굴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었다.
당연히 시청자들도 그녀의 얼굴을 알아봤다.
-와 찐이다!
-엌ㅋㅋ진짜였어!
-으잌ㅋㅋㅋ그럼 다영좌 드선생님 얼굴 보는 거야?
-여윽시 성덕ㅋㅋㅋㅋㅋ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부럽다는 채팅을 쏟아 냈다.
지금 드레젠은 게임하는 자들의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다영은 초반에 쌓아 온 인연을 지금까지 잘 이어 오는 중이었다.
성공한 덕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다영입니다! 제가 드레젠 님을 도와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어떤 부분을 도와주실 건지도 말씀해 주세요.”
“네! 이 캡슐이 조작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좀 찾아봤는데, 캡슐 자체에 핵이나 치트 프로그램을 이식하면 다른 계정을 써도 해당 치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죠.”
벌써 치트 프로그램이 조금씩 퍼졌다.
하이디엔은 그 출처를 회사 내부에서 찾고 있었다.
마법이 없다면 캡슐에 치트를 심어 놓는 것이 불가능할 테니까.
그 범위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저 캡슐로 들어가서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거 말 되넼ㅋㅋ
-이야 제대로 해명되겠네
-짜고 치는 거면 어떡함;;
-그거야 로그 확인하면 될 일이짘ㅋㅋㅋ
게임 내부에서 로그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계정 정보가 노출이 되기에 방송인들이 꺼려 하는 부분이긴 했다.
“점검 끝났습니다. 딱히 이상은 없네요. 다른 프로그램도 보이지 않고요. 여기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잡담을 떠는 와중 캡슐 점검을 마친 기사가 다가왔다.
큼지막한 태블릿 PC에 나온 결과.
반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