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화
149화 - 성좌가 낳은 죄
#1
그림자 기사단은 새로운 지령을 받아 들었다.
스카이워커를 쫓고 있는 자들을 역추적할 것.
기사단은 단장의 말을 듣고 바로 임무를 하러 떠났다.
“그럼 출발하자고.”
“하, 어떤 간 큰 놈이 우리 꼬마를 노렸을까?”
“이모랑 삼촌이 다 잡아다 족쳐 줄게. 우리 꼬마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살벌한 말을 너무 친절하게 해서 그런지, 크리스도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자들도 든든한 모습에 흐뭇하게 반응했다.
-흐뭇
-이거지
-이게 바로 빽이란 것이다
-ㅋㅋㅋㅋㅋ진짜 대륙 최강 암살자들이 빽이얔ㅋㅋㅋ
생각만 해도 든든한 뒷배들이 아닌가.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빠르게 사라졌고, 드레젠은 성 곳곳을 돌아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골렘의 제작 과정을 확인하는 것.
드레젠은 격납고로 향했다.
“이졸데의 상태를 보러 가야겠군요. 후유증이 좀 남아 있을 테니.”
-그나저나 골렘 진짜 멋있던데
-저 그 방법 제시했다가 욕 바가지로 먹음 ㅜㅜ
-엌ㅋㅋㅋ저돜ㅋㅋㅋㅋ
-그냥 영입하는 게 제일 속 편할 듯ㅋㅋ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이론을 들고 오면 항상 일어나는 일이었다.
궤변과 혁신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들이 떠드는 것은 기존 학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조목조목 따져도 모자랄 판에, 무작정 덤벼드는 것은 학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고.
“여러분들은 천천히 실력을 키우면서 주변에 있는 위협부터 차근차근 제거하는 것이 좋습니다.”
-용병왕 루트로 따라가는 게 제일 속 편함
-ㄹㅇ 그게 제일 쉬운 듯
-진짜 용병 체고다 ㅜㅜ
현재로서는 용병이 되어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제일 편한 루트이기도 했다.
이제 드레젠의 방송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방송이 되어 가기도 했다.
공략 영상도 1부 방송보단 2부 방송에서 따온 것이 훨씬 많았다.
“여, 이졸데. 살아 있냐?”
“성주님! 축하드립니다. 이제 슬슬 거동이 가능합니다.”
“아주 잘했어. 특별 휴가 줄 테니까 푹 쉬고 다시 일하자.”
아직 병실에 있는 이졸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드레젠이 백작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당당히 드레젠의 가신이라고 말하고 다녀도 문제가 없었다.
“네. 조금만 더 연구하면 저 핵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성의 수호신을 만들면 되겠군.”
데스 나이트의 핵은 흑마법의 결정체이긴 했지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핵을 이용해 골렘의 코어를 만든다면 어마어마한 결과물이 나오겠지.
퍽 기대가 되는 재료였다.
“이제 마탑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올 거야. 그들에게 천천히 정보를 풀어. 아직은 남발할 때가 아니라는 거, 알지?”
이졸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발명하거나 획기적인 사용 방법을 공급할 때의 문제점.
그걸 악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자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순수한 의도를 뒤틀어 버리는 자들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네. 아주 천천히 풀어야죠. 누가 감히 우리 영지에 협박을 가하겠어요?”
“완급 조절 잘하면서 풀어.”
이졸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다짐했다.
하시스 성이 북적이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았다.
#2
-그래서, 언제 가요?
-엘프 보고 싶습니다!
-엘프! 엘프! 엘프!
한참 성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시청자들이 얼른 출발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드레젠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안 그래도 오늘 저녁, 와이렉스를 타고 수해로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성질이 급하시네, 조금 기다리시면 즐거운 콘텐츠를 구경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으아아 우린 얼른 엘프들을 보고 싶다!
-하이디엔도 예쁜데, 다른 엘프들은 얼마나 예쁠까!
-부캐는 엘프를 목표로 간다!
아직 소년병의 모집은 끝나지 않았고, 드래곤이 휩쓸고 간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하시스 성은 회복해야 할 시기였다.
그의 집무실로 모든 간부들이 모였다.
쿨레드부터 시작해서 아이젠하트까지.
각자의 일로 피곤이 뚝뚝 묻어났지만 성주의 명령이니 기꺼이 모였다.
“퇴근하고 불러서 미안한데, 당장 떠나야 하거든. 그래서 불렀다.”
주방장에게 명령하여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다과도 준비했다.
딱딱한 내용이니, 조금이라도 배려해 준 것.
-악덕 성주닼ㅋㅋㅋ
-야근한 것도 억울한데!
-으아아아 당장 사표 써!
현대에서 직장 생활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이제 제법 노련한 방송인이 된 드레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캠을 향해 요상한 미소를 지어 준 후에 말을 이었다.
“엘프들이 살고 있는 수해로 갈 거다.”
“예?”
너무 갑작스러웠다.
쿨레드는 먹고 있던 쿠키를 뱉을 뻔했다.
정확히는 뿜을 뻔했다고 말해야겠지.
“황제가 숲을 개간하라는 임무를 내려 주셔서 말이지, 우리만으론 힘들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본래 숲에 살고 있는 엘프들을 끌어들여서 새로운 터전을 줄 거야.”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다.
게다가 엘프족은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는 종족이었다.
이유는 흔히 알고 있는 클리셰대로였다.
엘프의 미를 탐하는 자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는 귀족들이 좀 극성이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보는데.”
“파베론 산맥은 드래곤의 영역입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 않아도…… 엘프들이 숲을 망쳐 놓으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가? 그럼 안 깨어나게 조심하면 되겠군.”
“…….”
참 드레젠다운 발상이었다.
간부들이 원망 반, 호기심 반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한데 섣불리 반발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 드레젠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척척 해냈기 때문이었다.
“이거 참…….”
“지, 진짜 가능한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들 역시 드레젠의 기상천외한 방법을 궁금해했다.
그는 다 계획이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성좌가 낳은 죄가 엘프들이 살고 있는 수해에 잠들어 있지.”
“그게 뭡니까?”
“어지간한 드래곤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야.”
그런 생물이 있을 리가.
모두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드레젠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헬라가 풀어놓은 가장 큰 죄가 그곳에 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건데, 헬라의 자식 중 하나라고 하더군.”
“헤, 헬라의 자식이라면…….”
“세계에 퍼져 있는 죄악 중 하나야. 그중 하나를 상대할 거야.”
“아니! 미쳤습니까?! 그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에드윈이 버럭 소리쳤다.
헬라가 자신의 힘을 나누어 창조했다는 몬스터.
각 대륙의 환경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몬스터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우리의 적이 녀석들을 조종할 가능성도 있고, 지금이라면 녀석을 죽일 수 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겁니까? 형에 이어서 당신까지 잃을 순 없습니다.”
-오오 이거 뭐얔ㅋㅋㅋㅋ
-ㅁㅇㅁㅇ!
-아니 이건 좀ㅋㅋㅋㅋ
-에드윈……왜 그래 갑자깈ㅋㅋㅋ
드레젠도 꽤 당황했다.
“나는 남자 취향 아닌데.”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선 성주님을 형 대신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살하러 간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도 그건데, 죽을 일은 없다니까?”
그에겐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전 세계에서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힘이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단언합니까?”
“나만 믿어.”
-오빠 믿지?
-엌ㅋㅋㅋㅋ
-가장 믿어선 안 되는 말이지
-진짜 에드윈도 이해는 간닼ㅋㅋ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레젠에겐 더 큰 위협을 대비해야 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가 에드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실패할 것 같으면 바로 발 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전에 봤던 그들이 도와줄 거다.”
“그들이라면…… 설마.”
“그래.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자들이지.”
에드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뭐라고 한들, 드레젠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번엔 샤페론이 물었다.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지금. 샤페론, 에드윈은 나와 함께 가자.”
“예?”
“백작의 명령이다. 당장 짐 싸.”
드레젠의 막무가내식 명령에, 두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는가.
귀족인 데다 성주인 드레젠이 시키면 해야지.
그렇게, 세 사람은 와이렉스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해에 있는 몬스터의 정체가 뭡니까?”
“멜리진.”
“멜리진이라면…….”
에드윈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드레젠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설명해 주었다.
멜리진이란 몬스터는 공략을 필수로 숙지해야 하니까.
“상반신은 여인, 하반신은 드래곤으로 되어 있는 반인반수의 몬스터다. 지금은 그렇게 생겼지만, 완전히 각성하고 나면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지.”
“폴리모프한 드래곤입니까?”
“그건 아니고. 내가 알기론 원래 그렇게 생긴 거다.”
“허어…… 녀석의 특기나 공략은 알고 계신 거라도 있습니까?”
이번엔 샤페론이 물었다.
몬스터의 사전 조사는 필수였다.
당연히 그것도 차근차근 설명해 줄 생각이었다.
“녀석의 특기는 놀랍게도 체술이다. 꼬리 한번 휘두르면 웬만한 마을 하나는 그대로 작살나.”
“…….”
대체 그런 놈을 어떻게 잡으라는 건지.
샤페론과 에드윈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그들을 그나마 안심시키는 단어들이 들렸다.
“지금은 와이번만 한 크기일 거야. 하지만 몇 년 후엔 진짜 산처럼 거대해질 거다. 그래서 지금 잡으러 가는 거고.”
엘프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려면 아주 조금 키워 놓을 필요는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일곱 영웅 중 하나를 먹이로 던져 주고 싶었지만, 영웅들은 나중에 써먹을 곳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엘프 중에 싹수가 노란 종자들을 골라내는 것.
‘그들 중에도 있단 말이지. 무의 추종자들과 손을 잡은 놈들이.’
그놈들이 설치는 바람에 레드릭의 자녀가 노했고, 자신은 드래곤과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이번에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레드릭의 자녀는 찾아갈 필요가 있었다.
현재 유일하게 깨어 있는 드래곤이었으니까.
“이번 사건은 할 일이 꽤 많겠군요.”
-기대된다!
-나는 엘프만 있으면 된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엘프?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뭇 판타지에서 로망으로 나왔던 바로 그 존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일이 잘만 풀린다면 그와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저도 기대가 되는군요.”
바람결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그는 브레이시스 제국의 국경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