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8화
148화 - 내부자들
#1
“오셨습니까. 황궁에선 별일 없으셨는지요.”
“별일은 없었지. 포상은 넉넉히 받았고.”
무사히 하시스 성으로 도착한 드레젠.
그를 맞이해 준 식구들이 궁금증을 물어봤다.
드레젠은 품에서 백작 위를 상징하는 패와 황제의 전언이 들어 있는 칙령을 건넸다.
샤페론이 그걸 받아 들고 감격에 젖었다.
“이건……. 드디어 백작 위에 오르셨군요!”
“너무 낙하산이라 좀 신경 쓰이긴 하더라고.”
단번에 백작 위라니.
황제는 목적 없이 도구를 남발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 역시 드레젠을 이용할 목적으로 불렀겠지.
드레젠은 그 목적을 역이용할 생각이었다.
“이 칙령은…….”
“숲을 개간하라곤 하는데…… 지금 당장 들이받는 것은 무리야.”
“그건 그렇지요.”
드레젠이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샤페론, 그리고 에드윈은 확실하게 활용할 수 있는 패였다.
무의 추종자도 당분간은 조용할 터.
“그러니까, 보좌로서 가야 하는 거로군요.”
“그런 셈이지. 호위 무사는 아니고, 돌격대장쯤이면 될까?”
“좋습니다. 아, 그리고 모집 중에 흥미로운 아이가 있어 보고드리려 합니다.”
흥미로운 아이라-.
드레젠 역시 관심을 보였다.
흥미로운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샤페론이 나직이 말했다.
“여자아이였습니다만, 마나가 제법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 이름은 뭐야?”
“록시라고…….”
드레젠은 옛날 일을 회상했다.
록시라는 아이의 정체를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크리스보단 못하지만, 분명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지.
‘서로 좋은 자극이 될지도 모르겠네.’
좋은 인재가 모이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크리스와 록시.
앞으로 잘만 키우면 하시스 성에 아주 좋은 전력이 될 것이다.
드레젠은 미소를 머금고 성으로 향했다.
“그 록시란 아이의 어머니도 있지 않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홀어머니가 있을 거야. 잘 챙겨 주도록 해.”
샤페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슥슥 적었다.
이제는 제법 집사 티가 나는 중이었다.
“크리스는? 잘 지내고 있지?”
“오늘도 훈련장에 있을 겁니다. 요즘은 2형을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으시지요.”
크리스라면 홀로 놔둬도 알아서 성장하겠지.
하지만 슬슬 색다른 자극도 받을 때가 되었다.
실력이 좋으면 뭐든 되는 브락시아였지만, 때로는 다양한 사람을 겪는 것도 중요했다.
“이번에 모집이 끝나면, 크리스도 함께 훈련하도록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휴식을 취해야 할 때였다.
드레젠은 방으로 향했고, 시청자들과 함께 간단히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2
크리스는 오늘도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했다.
탄탄해지는 몸이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강해지는 것을 느끼는데도, 드레젠이 보여 준 일격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후우-, 숨을 고르며 고민했다.
꿈을 꿀 때도 생각이 날 정도로 그때의 일격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드레젠은 그의 롤 모델이자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드레젠 님은 그렇게 젊은데도 어마어마한 힘을 얻으셨어.’
하지만 자신은?
아직 2형도 제대로 펼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가문에서도 배운 것들은 있었지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조금만 더 하면…….’
“허허, 이 아이인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광경이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그에게 호의적인 것 같지도 않았다.
“당신들, 누구야!”
“아이야, 힘이 필요하지 않느냐?”
“…….”
크리스는 아무런 말 없이, 평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검을 꺼냈다.
날이 바싹 서 있는 진검이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인영들이 비웃었다.
“꼬맹이 주제에 겁이 없군. 그 드레젠 밑에서 커서 그런가?”
“……패왕의 가문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뭐?!”
크리스의 털이 쭈뼛 섰다.
패왕의 가문.
그것은 멸문당한 스카이워커를 이르는 말이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
“다, 당신들 정체가 뭐야!”
“그거야말로 알 것 없지. 그냥 너에게 힘을 줄 사람들이라고만 알아 둬라.”
“힘……이라고?”
맨 앞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
드레젠이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크리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하지만, 저들은 내 정체를 알고 있어.’
한눈에 봐도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절대 끌려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계심을 풀지 않는 크리스의 모습을 보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정신력이라면 충분하지. 이봐, 포박 준비를 해라.”
“알겠습니다.”
“절대 다치게 해선 안 된다.”
“예.”
성큼성큼 다가오는 무장한 거한들.
크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그는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낯선 사람이 올 줄이야. 내 잘못이야.’
하시스 성 내에서 간 크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
그렇기에 보고만 하고 달랑 온 것이었다.
샤페론, 아론다이트, 에드윈이 바빠 보이기에 홀로 온 것이 잘못이었다.
“어머, 어린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시려는 걸까요?”
“누구냐!”
“저야말로 묻고 싶네요. 당신들은 누구신지.”
여린 목소리였다.
간드러지는 마담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꼬마야, 이 누나랑 같이 돌아가자꾸나.”
스르륵-.
장막이 걷히고, 크리스의 뒤에서 아그네스가 나타났다.
그녀가 크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꼬맹이 홀로 훈련을 하겠다니, 그 말을 듣고 지켜보고 있었단다.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에? 아, 아니요. 다행이네요.”
크리스도 얼핏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드레젠의 동료들.
그림자 기사단이 되어 버린 드레젠.
그중 한 명이라던 아그네스라는 여인도.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하찮은 실력으로 제 기척을 느끼려 하셨나요? 이거…… 암궁이라는 이름이 울겠네요.”
“아, 암궁? 죽은 게-!”
서걱-!
그녀의 정체를 알아본 남자의 목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푸슉! 황금빛 피 분수가 일었다.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의 빠르기로, 목숨 하나가 사라졌다.
“무슨-?”
“자아, 당신들이 누군지, 그리고 어째서 우리 귀여운 크리스를 노리는지 알 필요가 있겠어요.”
그녀는 그림자를 타고 침입자의 뒤편에 나타났다.
크리스, 그리고 낯선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벌건 대낮에도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암살자는 몇 되지 않았다.
낯선 이들은 암궁이라는 키워드를 알고 있었다.
‘염병할, 어쩌다 일이!’
“후퇴하라!”
크리스를 노린 작전은 실패였다.
목숨을 걸고 빠져나가야 할 순간이었다.
다행히 남자는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어딜-.”
퍼엉-!
아그네스가 움직이기도 전에 새하얀 연기가 치솟았다.
연기를 뚫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놓쳐 버렸네요. 괜찮니, 꼬마야?”
“네, 네에. 감사합니다.”
“이제부턴 홀로 다니면 안 되겠구나. 하시스 성도 위험하네.”
크리스는 긴장이 풀려 푹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나타난 자들은 자신의 가문을 알고 있었다.
벌써 가문이 멸망한 지 3년이 넘었다.
왜 저들이 이제야 나타났는지 의문이었다.
‘누굴까.’
크리스는 드레젠에게 상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힘을 준다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가 배운 지식은 적지 않았고, 가문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그네스와 함께 걸으며, 크리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결코, 좋은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듣자 하니, 스카이워커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라고?”
“아, 네. 이 일은 비밀로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젠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쥐고 흔들 꼬마가 아니라는 것.
“단장님은 알고 계시고?”
“네. 그래서 절 거둬 주셨어요. 제 체질이 엄청 특이하다고 하던데요.”
확실히, 느껴지는 마나가 범상치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떠도는 마나도 묘하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숲에 들어간다면 몬스터가 꼬일 정도로.
“과연, 그래서 자질이 뛰어나구나. 마나 컨트롤은 좀 배웠니?”
“아 네. 샤페론이 알려 줬어요. 그래서 그나마 평범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그네스가 인자한 얼굴로 크리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굉장한 실력을 가진 것치고는 정말 상냥했다.
“먼저 배워야 할 걸 잘 배웠구나. 이거, 단장님께 보고를 드려야겠네. 같이 가겠니?”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드레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3
-누가아아아-!
-누가 우리 크리스를!
-당장 벌합시다! 다 죽여!
-평화(물리)를 되찾자!
소식을 들은 시청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지금 크리스는 아이돌에 준하는 인기를 지녔다.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돌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캡슐과 패키지만 있으면 누구나 만날 수 있으니까!
“흠, 그랬단 말이지.”
“심각한 것 같은데요. 단장.”
드레젠도 인정했다.
스카이워커 가문의 생존자를 쫓는 무리는 어디에나 있었다.
현 황궁에서 그들에게 막대한 현상금을 걸어 놨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어린 크리스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아 지금까지 잘 숨어 지낼 수 있었지만-.
“그림자 기사단을 활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임무인가요?”
“그런 걸로 할까.”
드레젠이 단장으로 인정받은 후, 첫 임무였다.
본래 그림자 기사단은 세상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터줏대감 같은 이들.
하지만 이제부턴 다를 것이다.
“그림자 기사단도 많이 바뀌겠네요. 호호.”
“이젠 철저하게 이익을 위한 집단이 될 거니까.”
편하게 살던 때는 다 지나갔다.
드레젠은 당장 단원들을 소집했다.
“다들 불러와.”
“분부대로.”
“저는 어떻게 할까요?”
크리스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초롱초롱했다.
-엄마 나 죽어 ㅜㅜ
-진짜 심쿵했닼ㅋㅋㅋ
-아니 크리스 너무 존잘인 거 아니냐곸ㅋㅋㅋ
-하…… 현실에 사는 찐따들은 연애도 못하무ㅜ
“너는 이제부터 소년병들과 훈련을 같이 받으면 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잘 성장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내 제자라느니, 귀족 출신이었다느니 하는 건 다 잊고, 한 명의 병사로서 지내야 한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성이 착한 아이이니, 별문제 없이 무탈하게 적응할 것이라 믿었다.
크리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들어왔다.
드레젠이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