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화
147화 - 일곱 영웅
#1
황궁 안에 있는 사람들만 모인 프라이빗 파티.
가끔 황제는 사용인들의 기분을 환기하고자 이런 파티를 열곤 했다.
확실히 엘리트만 모인 황궁이라 복지도 남달랐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성군이란 말이지.’
드레젠은 와인 한 잔을 들고 가볍게 목을 축이며 주변을 살폈다.
케이드라는 성을 받고, 이제는 백작이 된 드레젠.
이제 성주라는 것에 반발하는 이들도 분명 없어질 테지.
-황궁 파티 너무나 좋은 것ㅋㅋㅋ
-현실에서 파티할 시간이 어딨어ㅜ 게임에서라도 하자!
-맨날 일하고 집에 가면 뻗기 바쁨ㅋㅋㅋ
현대에 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파티를 열 시간이 없었다.
돈 벌기도 바빠 죽겠는데 파티는 얼어 죽을.
이런 파티는 정말 시간을 내서 하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행사였으니, 특별하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곱 영웅들이 이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겁니다.”
-그 아크메이지 말하는 건가?
-어딘가 맹해 보이던데
-화면으로 봐서 그런지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인가 싶긴 했음
영웅의 조건은 뭘까?
간단했다.
사람들을 많이 구하고,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된다.
거기다 위기의 순간, 짠! 하고 나타나 적들을 쓸어버리면 각인 효과는 배가되었다.
“그 여자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엄청 무서운 사람입니다. 전에 왜 수도가 평야에 지어졌는지, 이야기했었죠?”
-아 마법을 퍼부을 수 있다던!
-맞앜ㅋㅋ 숨을 곳이 없지 ㅇㅇ
-저런 데서 진 치고 있다가 메테오라도 맞으면 클나짘ㅋㅋ
“그 이야기를 당당하게 꺼낼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 여잡니다.”
드래곤과도 마법 대결을 펼칠 수 있는 희대의 천재.
사람들은 그녀를 멸망의 마도사라고 불렀다.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수도 방어전에 한에서는 다른 여섯 명의 영웅들을 압도할 수 있는 화력을 지니기도 했다.
‘……뭐, 잘됐나.’
오랜 기간 숨겨 놨던 감정이 꿈틀댔다.
일곱 영웅들은 자신이 최고인 줄만 알고 있는 연놈들.
그 오만함을 이용해 굴릴 대로 굴리고, 써먹을 대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최고급 전력인데, 함부로 죽일 수는 없지.
‘아주 뼛속까지 쪽쪽 빨아먹고 마족들에게 산 채로 뜯겨 죽게 해야지. 쉽게 죽일 생각은 없다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본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와인병을 돌리며 침착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길길이 날뛰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복수를 하겠다고 대놓고 알려 주면 상대방 쪽에서도 가만있겠는가?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강렬한 마나의 향이 훅 풍겨 왔다.
드레젠은 태연하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서는 뺨이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맹한 면상.
도리안이 그에게 다가왔다.
“당신, 정체가 뭐죠?”
-뚱인데요
-엌ㅋㅋㅋㅋㅋ
-아니 여기서 그 드립잌ㅋㅋㅋㅋ
-미치겠네 진짴ㅋㅋ
“드레젠입니다. 이젠 백작이죠.”
“그런 걸 묻는 게 아닙니다. 그 육체, 지금 기술력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육체예요.”
“그건 딱히 기억나지 않네요.”
도리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구는 사람은 황제와 그의 일가족 이외에는 처음이었다.
대제국의 공작이라도 그녀 앞에서는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하는 편이었다.
한데 드레젠이라는 이 남자는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성좌의 힘까지……. 수상하네요.”
“…….”
드레젠은 딱히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떫은맛보단 달달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히 부탁한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녀의 공식적인 지위는 드레젠과 같은 백작.
이런저런 영향력을 제외하면 같은 백작인 드레젠이 꿀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별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분은 아닌가 보군요. 존중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도리안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의 귀족들과 너무도 다른 태도 때문일까.
마탑이 낳은 최고의 인재이자, 실질적인 권력자 중 한 명인 그녀에게 꼬리를 흔드는 자들은 너무도 많았다.
그녀는 인파 속으로 사라지며 드레젠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신기한 사람이네.’
다른 장식 따윈 필요 없이 홀로 빛나는 보석.
그저 고정만 시켜 놔도 최고의 액세서리가 되는 보석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저 힘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재밌겠네.”
그녀 역시 드레젠과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서로의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이 파티장에서 교차했다.
#2
파티가 끝나고, 드레젠은 두 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황궁 밖으로 나왔다.
검을 돌려받았을 때, 발바로사가 물었다.
“이 검, 혹시 출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저도 알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발바로사의 목소리에 약간의 실망감이 묻어났다.
흡사 대답해 주기 싫어하는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었다.
드레젠은 말을 덧붙여 그녀가 실망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성좌가 만들어 주신 검이거든요.”
“아.”
“그림자 기사단의 입단 시험을 치를 때 얻은 검이라서 저도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겠네요.”
발바로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것을 물었습니다. 과연, 성좌께서 주신 검이라 이렇게…….”
“기회가 되면 재료를 분석해 보죠. 그럼.”
“살펴 가십시오. 백작님.”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드레젠은 다시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있었던 와이렉스.
그의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잘 있었어?”
[그렇다. 관리를 잘해 주더군.]
“그래 보이는데. 나도 가끔 해 줘야겠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와이렉스는 그르릉거리며 목을 내어 주었다.
그를 관리하고 있던 사용인들이 모두 부러운 시선으로 드레젠을 쳐다봤다.
와이렉스를 다루는 남자.
그들에게 있어선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존재였으니까.
“가자.”
[이제 귀족이 된 건가?]
“맞아. 임무도 받았지.”
파베론 숲을 개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브락시아에 있을 때도 발생하지 않았던 이벤트였다.
역사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긴, 위치부터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단 황궁을 조사하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일이 틀어지기도 했다.
일곱 영웅 중 하나가 눈앞에 등장했으니, 나머지도 있다고 봐야겠지.
쯧, 하고 혀를 찼다.
-황궁 좋다;;
-황궁 기사단 루트도 타 본다!
-이거 미연시 가능합니까?
-ㄱㄴㄱㄴ!
물론 못 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와 알콩달콩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결국 그 끝은 파멸일 뿐이었다.
마족이 아예 침범하지 못하게 막든지, 아니면 그들을 토벌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방식으로 엔딩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족들이 강림하면 탑이 생겨날 것이다.
마족은 그곳을 근거지 삼아 점점 세력을 늘려 가겠지.
드레젠은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역시 제일 먼저 엘프족을 꼬셔야겠지.’
엘프가 인류의 편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
그것은 수해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몬스터가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일곱 영웅과 드레젠.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병사, 기사들이 나서서 막아 냈다.
철저하게 공략을 찾아내고 일곱 영웅들과 함께 공략해 나갔다.
“딱 이 시기에 만렙을 찍었다면 해볼 만하겠군요.”
-뭐가요?
-우리도 알려 줘!
-또 몬스터 잡으러 가시남?
“맞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커다란 몬스터를 잡으러 갈 겁니다. 드래곤보다 훨씬 크겠군요.”
[‘오오오!’ 님 10,000코인 후원!]
[이번에도 솔로 갑니까?]
[‘시참이지!’ 님 10,000코인 후원!]
[시참이죠?]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분명 시청자들이 참여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오랜만은 아니지만 또 시참 갈까요?”
-가즈아!!
-가자!
-가즈아아아아!
-ㄱㅈ!!
-ㅅㅊ!
그의 한마디로 인해 채팅 창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시청자 참여!
드레젠의 방송에서 날뛸 수 있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이번엔 적당히 제한을 걸 생각이었다.
“그럼 한…… 100명 정도로 하죠.”
-오오
-100명도 솔직히 금방일 듯ㅋㅋㅋ
-으엌ㅋㅋㅋㅋ
“이번엔 정예가 필요하니, 제가 데려가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좀 데려가겠습니다.”
그 정도는 시청자들이 인정해 주었다.
거대 몬스터를 직접 토벌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경험을 쌓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럼 내일쯤에 시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윈과 샤페론을 데려가야겠군요.”
드디어 활약할 때가 온 성의 식구들.
드레젠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한동안 하시스 성 주변이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일곱 영웅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내가 나설 곳이 줄어드니까.’
이미 그들의 성향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것을 충분히 이용해서 상황을 꼬아 놓는다면, 홀로 일곱 영웅들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가능했다.
앞으로는 바짝 긴장할 필요성을 느꼈다.
#3
“로드!”
“음?”
한편 (주)브락시아의 상황실.
게임을 모니터링하는 중이었던 엘리스가 급히 하이디엔을 찾았다.
스케줄을 마치고 이제 막 한국으로 돌아온 하이디엔.
그녀가 엘리스의 부름에 나른하게 답했다.
“그, 그들이 게임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이 누군데? 성좌?”
“……아니요. 일곱 영웅들요!”
하이디엔은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일곱 영웅들은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했는데?
그녀가 황급히 모니터 앞으로 향했다.
“그럴 리가!”
화면 너머로 무릎을 꿇고 있는 드레젠이 보이고 있었다.
캠의 화면은 줌 아웃되어, 제국의 황제와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을 보여 줬다.
하이디엔 역시 기억하고 있는 자 중 한 명이었다.
“도리안! 그녀가 대체 왜……!”
“지, 지금 바로 프로그램 체크해 볼까요?”
“그래야겠어. 마법에도 이상 없는지 확인해 줘.”
“알겠습니다.”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겼다.
모니터링할 수 있는 모니터 옆에 무수히 많은 로그가 형성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로그를 체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돌리는 중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드레젠 님, 엄청 화내시겠는걸.”
엘리스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일곱 영웅은 드레젠, 강일의 역린과도 같은 존재였다.
게임도 철저히 검사를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나는 서버를 체크하러 가 볼게.”
“아, 알겠습니다.”
드레젠 비난 사건이 터진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일곱 영웅까지 등장했다.
하이디엔은 빠른 걸음으로 총괄 서버실을 확인했다.
마법으로 돌아가는 이곳은, 오직 하이디엔을 비롯한 몇몇 수뇌들만 확인이 가능한 곳이었다.
‘설마…… 내부에 배신자가 있나?’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프로그램을 바꿔 놓았다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전쟁 당시 그녀가 보여 주었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