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화
143화 - 패러다임이란 이런 것
#1
드래곤이 하시스 성을 침공했을 때, 하시스 성에 있는 병사들만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마탑, 베스티안 백작가, 그리고 군노이스 자작령 등등.
수많은 이들이 재앙을 감지했다.
“속보입니다! 지금 드래곤이…… 드래곤이 출몰했다고 합니다!”
“드래곤이라고?”
지부장이 깜짝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시스 성은 아주 귀중한 곳이었다.
이시스의 눈물을 제작하는 재료가 이곳에서만 났고, 드레젠이 있는 위치였으니까.
“당장 마탑에 지원 요청하고, 우리도 도우러 간다.”
“알겠습니다.”
초기 대응은 조금 늦었지만, 마법사들은 마법을 난사할 수가 없었다.
충분한 준비를 하고 전장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 마법사였다.
소식은 빠르게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즈음, 드레젠이 하시스 성이 내려다보이는 하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은데요?”
-멀리서 봐서 그런 거 아님?
-엌ㅋㅋ그렇지
-멀리서 봤는데 저 정도면 엄청 큰 거 아닌가?
-그래도 하이브나 마족들 보다가 저런 거 보니까 아담하긴 하네요
전함 크기인 하이브나 거대한 기사를 보다가 저 멀리서 드래곤을 보니 아담해 보이긴 했다.
와이번보단 확실히 컸고, 하이브보다는 작은 체구.
드레젠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스톤 골렘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는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확실히 잘 만들었네.”
“……저건 어떤 골렘이지?”
뒤에서 와이렉스를 타고 있던 선배 기사단원이 물었다.
언데드로 보이는 드래곤과 맞상대하는 골렘이라니.
적어도 아이언 골렘이나 쥬엘 골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드레젠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저건 스톤 골렘입니다. 하시스 성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거죠.”
“뭐라고?”
“말도 안 돼!”
-ㅋㅋㅋㅋㅋㅋ
-드레젠 사전에 안 되는 건 없닼ㅋㅋ
-지는 게 안 되는 거짘ㅋㅋㅋ
-엌ㅋㅋㅋ그거 맞지!
말이 안 될 건 없었다.
역사 속에서 인식이 그렇게 박혀 있을 뿐이지,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뭐, 언제나 그렇듯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죠.”
-우리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으잌ㅋㅋㅋㅋ
-이번에는 드래곤이넼ㅋㅋ 쉬질 못하누
그건 좀 동감이었다.
느긋하게 영지물로 전환하려고 했는데, 또다시 습격이라니.
언제쯤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드레젠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얼른 끝내 버리고 좀 쉬자.’
성벽 한쪽이 무너져 있었고, 그곳으로 작은 크기의 언데드들이 꾸역꾸역 밀려오고 있었다.
투콰앙-!
드래곤의 꼬리에 얻어맞은 골렘의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졸데가 아직 숙달된 파일럿이 아니기 때문인지, 반파 직전이었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일단락 짓고 정리하도록 하죠.”
“우리도 돕지.”
“언데드라면 필시 흑마법사들이 있겠지. 저 정도 규모의 언데드라면 더더욱.”
와이렉스가 하시스 성 상공에 도착했다.
그러자마자 열 명의 그림자 기사단원이 일제히 뛰어내렸다.
마치 헬기를 타고 도착한 특수부대원 같은 느낌이었다.
-크으 묘한 뽕맛잌ㅋㅋㅋ
-멋있눜ㅋㅋ
-클립 다 따 놨지?!
-뛰어내렸더니, 그것이 착지였습니다.
드레젠 역시 성벽 아래로 낙하했다.
들끓는 언데드에겐 역시 신성력이 즉효약이었다.
새하얀 신성력이 온몸에 서렸다.
콰아아앙-!
신성력의 폭발력이 몰려 있던 언데드를 강타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었네?”
“성주님!”
“딱 맞춰서 오셨군요!”
“죽을 뻔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자들이 반가움에 소리쳤다.
드레젠은 뚜둑, 몸을 풀고 주변을 살폈다.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꾸역꾸역 몰려오는 언데드를 침묵시키는 것.
성벽은 상대적으로 병력이 몰리지 않았다.
“난 저쪽에서 수습하고 있을 테니, 잘 버티고 있어.”
“알겠습니다!”
전투에서 사기란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드레젠 한 명의 등장이었지만, 전투력은 배가 넘게 뛰었다.
병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감히 하시스 성을 침공해?
그런 마음으로 언데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2
“아니 저건 또 뭐야?!”
“……드래곤이랑 일대일로 붙을 수 있다고?”
“젠장! 그뿐만이 아니라고!”
드레젠이 왔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였다.
흑마법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술이 완전히 막혔다.
“저 골렘…… 여태까지 우리가 봐 왔던 거랑 완전히 다르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고 후퇴해!”
“모두 철수한다! 작전은 실패다!”
몇 달을 들여 준비한 계획이 허무하게 막혔다.
골렘이야 드래곤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도 완전히 대파되어, 갈가리 찢기고 있지 않은가.
“젠장, 갑자기 저런 게 어디서 튀어나와서는!”
“드레젠이 왔으니 얼른 철수해야 한다! 더미를 준비해!”
흑마법사들 역시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해 왔다.
탐지와 추적술을 교란시킬 수 있는 더미를 설치하고,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서 드래곤을 조종하는 것.
마지막 계획이자, 최후의 발악이었다.
“마법진은!”
“준비됐다!”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 마법진에 올라갔다.
밝은 빛과 함께 그들이 사라졌고, 한 발자국 늦게 검은빛 화살이 그곳에 박혔다.
“쯧, 놓쳤군요.”
최대한 빠르게 달려왔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암궁, 아그네스가 혀를 찼다.
그녀는 눈을 돌려 남아 있는 마법사들을 찾아냈다.
“저기 있군요.”
[크오오오오오오-!]
골렘이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긴 했으나, 드래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콰아앙-!
드래곤의 앞발이 골렘을 무자비하게 가격했다.
퍼석, 골렘의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하지만 스톤 골렘은 육중한 몸을 부딪쳐 끝까지 저항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정말…… 하시스 성은 터무니없이 강하군요.”
한 개의 성으로 드래곤을 막아 내다니.
정말 엄청난 업적이었다.
그녀는 헛웃음을 짓고 탐지와 추적술을 펼쳤다.
“저기 숨어 있었군요.”
찾아내는 데 조금 애먹긴 했지만 그래도 마법사는 상성상 암살자들에게 약했다.
아그네스는 거대한 활을 들었다.
과연 저들이 자신의 화살을 막아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저들은 과연, 어떤 수준까지 도달했을까?
“어디-.”
드래곤을 조종하느라 정신없는 이들은 그녀의 사냥감일 뿐.
끼기기기-.
시위가 요란하게 울렸다.
오러와 혼돈.
그 두 가지의 힘을 섞는 것은 꽤 자신 있는 일이었다.
‘막지 못하면 다 죽는다.’
드래곤에게 먹였던 일격이 다시금 펼쳐졌다.
아직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눈치챘어도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저 녀석들은 드래곤을 조종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후후, 꿰뚫리세요.”
피잉-!
살벌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화살이 대기를 갈랐다.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간 화살이 적을 꿰뚫었다.
“크아아악-!”
“뭐야?!”
“젠장, 실드-!”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순식간에 실드 마법을 펼쳐, 화살이 날아온 곳을 보호했다.
한쪽 팔부터 다른 쪽 팔까지 단번에 관통된 마법사는 그대로 즉사했다.
“어디…….”
아그네스는 혀로 입술을 한번 축이고 다시 시위를 당겼다.
본래라면 자리를 옮겨야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흑마법사의 수준은 뛰어났지만, 그래 봤자 사령술사일 뿐.
전투를 업으로 삼는 자신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맞아라-.’
파앙-!
이번에도 공기를 가르며 묵빛의 띠가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콰장창창!
실드 마법을 그대로 깨부수고 또 한 명, 마법사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제, 젠장.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하수인들을 풀어! 당장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도망치면, 살아남을 수는 있고?!”
흑마법사들은 뒤가 없었다.
여기서 성공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만약 어찌어찌 살아남는다 해도 자신의 상관이 살려 둘 리가 없었다.
멍청한 짓일 수도 있었다.
흑마법사는 나름대로 귀한 인적 자원이었으니까.
“반응이 영…….”
아그네스가 자리를 옮겨 그들을 관찰했다.
보통 이렇게 궁지에 몰리면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죽을 각오를 하고 암살자를 찾거나, 도망가거나.
그런데 흑마법사들은 두 개의 선택지를 모두 버렸다.
“이익…… 죽더라도 드래곤을 던지고 죽으란 말이야!”
“으아아아아! 나도 모르겠다!”
“저렇게 저돌적인 놈들일 줄이야. 빨리 처리해야겠군요.”
골렘이 막는 것도 이젠 한계였다.
이미 거동도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위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한 번에 많은 수의 표적을 노릴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
[크오오오오오오-!]
퍼석!
골렘의 핵을 제외한 부분이 모두 부서졌다.
그래도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래곤을 붙잡아 둘 수 있었던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마무리만 잘하면 되는 순간이 되었다.
#3
“얼추 정리는 된 것 같은데…….”
무너진 성벽 부근.
병사들과 함께 언데드를 박멸한 드레젠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보스 남았다.
-그러게, 저건 또 어떻게 처리하냐;;
-드래곤이라닠ㅋㅋ 하이브보다 빡실 거 같은데
-엌ㅋㅋㅋㅋ이번에도 시참 ㄱㄱ?
“시참은 필요 없습니다. 저건 자의로 움직이는 녀석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언데드라 하이브보다 쉬우면 쉬웠지,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골렘이 충분히 시간을 끌어 줬으니, 나머진 자신이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새로운 검술을 보여 줄 때도 되었다.
“본래는 페베스 검술을 조금 더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만, 슬슬 다른 검술도 시연해 드려야죠.”
-이제 알려 줌 x 시연해 줌ㅋㅋㅋㅋ
-알려 줘도 못 따라 해ㅡㅜㅜㅜ
-슈퍼카를 보는 킹반인 같은 거지ㅜㅜ
-엌ㅋㅋㅋㅋㅋ비유 봨ㅋㅋㅋ
서리족이 다스리지 않고 있는 북쪽의 땅.
그곳은 거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었다.
거인족과 제국은 옛날부터 어떠한 자원을 두고 분쟁 중이었다.
지금은 3황자가 거인들을 아주 많이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3황자가 주로 쓰는 검술입니다. 자신보다 체급이 큰 자들을 상대할 때 효율적이죠.”
기본형은 브레이시스식 검술이었다.
황실에서만 특별하게 전수되는 최고급 검술에, 3황자는 자신만의 비법을 더했다.
크리스, 일곱 영웅 중 한 명인 검성과 더불어 검의 천재였던 3황자.
그가 드레젠에게 전해 준 비기이기도 했다.
“이 검술은, 마법과 그 이론을 공유합니다.”
이론뿐이라면 검사도 마법을 익힐 수 있었다.
실제로 드레젠도 마법 이론만큼은 빠삭했으니까.
천재는, 단순 습득이 빠른 자들만을 칭하지 않았다.
이따금 누구도 생각해 내지 않은 방법으로 더 큰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도 천재의 능력 중 하나였다.
“천재가 남겨 준 검술입니다.”
콰아아아아아아-!
드레젠이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크기의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마법과 이론을 공유한다는 건, 자연에 있는 마나를 끌어다 쓰기 때문이었다.
페베스 검술이 동화라면, 이 검술은 흡인이었다.
“검술 이름도 심플합니다.”
안티-자이언트.
거인들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검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