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화
141화 - 전설의 크리처
#1
파베론 산맥.
요즘 들어 와이번들의 활동이 잦아져서 그런지, 오크 부락들은 물론 타 몬스터까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인간들은 와이번의 눈길을 피해 숲속에서 진귀한 약초를 캐 오기도 하고,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했다.
‘아직 준동할 기미는 안 보이는데.’
높은 나무, 빼곡한 수해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막을 거두고 주변을 살피는 작은 여인.
그녀가 가진 마나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만약 가설이 진짜라면-.’
푸드드득-!
새들이 날아올랐다.
먹이를 찾거나 철이 지나 새로운 거처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미지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움직임.
그 모습을 관찰한 그녀가 나무 사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하나라도 얻어 가야 해.’
아직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진 못했다.
확실히 다크몬드가 아닌, 본인 홀로 움직이려니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위도우 그레인은 내부를 다스리느라 정신이 없겠지.
‘이럴 때 그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아쉬움을 삼키며 새가 날아간 부근을 수색했다.
이윽고 마나의 잔재를 찾은 그녀가 눈을 빛냈다.
“꽤 대규모……. 이 근처에 은신처라도 있는 건가요?”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장막을 유지한다면 전투가 발생했을 때 마나가 모자랄 수도 있었다.
장막을 펼치는 대신, 그녀는 일반 암살자들이 사용하는 은신술을 이용했다.
천천히 전진해 보니, 한눈에 봐도 수상한 동굴이 보였다.
‘대놓고 광고를 하는군요. 하지만…… 새들이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림자 기사단뿐만 아니라 저들도 고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만능 해결사처럼 보였지만, 분명 대륙 전역에는 대응할 수 있는 자들이 충분히 있을 터.
여인, 아그네스는 항상 그 점을 명심했다.
“……조사할 가치는 충분한데.”
그녀가 발을 들이려는 순간-.
쿠우우우우우-!
숲이 울었다.
섬뜩함이 아그네스의 전신을 내달렸다.
“이미 늦었나!”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이런 규모의 마나를 모으다니!
그녀가 입술을 씹으며 거리를 벌렸다.
마나의 여파는 일대의 지형을 바꿀 정도였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쿠웅-!
거대한 발소리가 들렸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생명체가 내는 발소리였다.
아그네스는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기억들을 뒤졌다.
그림자 기사단, 그리고 다크몬드에는 잡다한 정보들이 많았으니까.
“분명-.”
쿠우우웅-!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에서부터 피어나는 거대한 마나, 그리고 포효가 울렸다.
그 포효를 듣자마자 그녀의 뇌리에 꽂히는 지식이 있었다.
‘드래곤……!’
파베론 산맥 어딘가에는 드래곤의 레어가 존재했다고 믿었다.
드래곤이 등장한 것은 까마득한 옛날이었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1만 년을 사는 지성체였으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진짜 드래곤이 깨어난 거라면- 지금 그녀가 멀쩡히 두 발을 대지에 딛고 서 있지 못했으리라.
‘일단 상황을 조금 더 봐야겠군요.’
그녀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멀찍이 떨어졌다.
콰앙-!
구덩이가 폭발하면서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색 뼈.
그리고 덕지덕지 붙어 있는 살점.
퀴퀴한 냄새를 넘어 독기까지.
“어린 드래곤을 부활시키다니…… 대체 언제부터…….”
아무리 봐도 성체는 아니었다.
허나 성 하나를 충분히 무력화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드래곤밖에 없다면 어찌어찌 막을 수 있겠지만, 구덩이 사이로 튀어 오르는 언데드가 상황을 증명했다.
‘빨리-.’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보다 하시스 성을 무장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드레젠의 부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아그네스가 최대로 마나를 전개하여 달렸다.
#2
“으음? 이건…….”
평화로운 하시스 성.
오늘도 크리스와 함께 수련하고 있던 샤페론이 고개를 들었다.
퀴퀴한 냄새와 불길한 마나였다.
그것도 아주 규모가 커다란…….
[오오오오오-!]
여태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울음소리였다.
크리스 역시 미미하게 몸을 떨었다.
드레젠이 뿜어내는 것보다 훨씬 불길하고 압도적인 마나였으니.
“이게 무슨 일일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들은 현재 폐허가 된 마을에 있었다.
아직 드레젠이 손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슬슬 자재들이 들어오고 있는 곳.
거대한 훈련장으로 개조할 마을이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나머지는 성안에 있는 곳에서 하죠.”
“그러자.”
크리스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170cm도 안 되었던 키가 쑥쑥 크고 있었다.
이제는 샤페론의 가슴팍까지 자란 그가 불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 성주님도 안 계신데.’
하시스 성 사람들도 만만찮게 강했지만, 드레젠의 유무는 차이가 너무 컸다.
정신적 지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여러 차이를 낳았다.
샤페론과 크리스는 끌고 온 말을 타고 숨 가쁘게 내달렸다.
드레젠이 없는 지금, 믿을 것은 평소 방비해 왔던 것들이었다.
“벌써 움직인 것 같은데?”
“역시 아이젠하트 경비대장이 철저히 하는군요.”
성벽에 도착하자, 벌써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각자의 무구를 가지고 황급히 방어 태세를 취하는 레인저 및 일반 병사들.
그중 몇이 샤페론과 크리스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미지의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어서!”
말 역시 긴장감을 느꼈는지, 빠르게 내달려 성문을 통과했다.
아직 어떤 몬스터인지, 또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은 상황.
정찰을 나가 있던 레인저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샤페론 경. 무사히 돌아오셨구려.”
“얼터 공.”
“불길하고 어두운 기운이오. 그 기운이 백작령 전역에 퍼지고 있소.”
샤페론은 저 멀리, 산맥에서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번개의 힘은 빠르고 강했다.
그건 탐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민감하고,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는 타입으로 변한 것.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그리고 많다.’
쿠웅-!
거대한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는 수해에서 진동이 들렸고, 나무가 우수수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모든 이의 이목이 쏠린 순간, 성벽 위로 사뿐 내려앉는 인영이 있었다.
모두가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여인, 아그네스는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적이 아니에요. 드레젠 님의 동료랍니다.”
“……아는 여인이오?”
“저도 처음 봅니다만.”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아그네스는 품에서 그림자 기사단을 상징하는 패를 보여 주었다.
그걸 알아본 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림자 기사단?”
“부족하지만 그 자리를 맡고 있답니다. 얼마 전까진 막내였죠. 호호.”
아그네스는 태연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는 크리스를 바라보며 잠시 눈을 빛냈다.
또한, 수련하다가 온 것인지, 온몸이 땀범벅으로 변해 버린 에드윈에서 한 번 더 멈췄다.
“그림자 기사단을 실제로 보다니…….”
“현재 드레젠 님이 부재중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성의 방어 능력이 얼마나 됩니까?”
아이젠하트가 성벽 안쪽, 지금 한창 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격납고를 바라봤다.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연구에 매진했던 여인, 이졸데가 떠올랐다.
골렘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단가가 싸고 가성비가 좋은 스톤 골렘이었지만, 한 기라도 확보된다면 전력이 확 뛸 것이다.
“골렘이 나온다면 기본적인 방호 능력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적은 일반 몬스터가 아닙니다. 파베론 산맥에는 드래곤의 사체가 많이 묻혀 있다고들 하지요.”
드래곤!
수 세기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전설의 몬스터.
전설이나 동화 속에나 나오는 존재가 실제로 등장했다고?
실감 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드래곤이라니…….
“그래서 드래곤이 정말로 나타난 겁니까?”
“진짜 드래곤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살아 돌아올 수도 없었을 겁니다. 드래곤의 사체로 만든 언데드, 그리고 수많은 졸개가 이리로 오고 있답니다.”
생긋 웃으며 말하는 내용치고는 살벌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골렘이 있다면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 기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
아이언 골렘 정도로는 턱도 없었고, 철보다 단단한 광물로 만들어진 쥬엘 골렘 정돈 되어야 했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골렘은 스톤 골렘입니다.”
“……그거라면 시간 벌이용이겠군요.”
“약간의 개량을 거친다고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소.”
그렇게 된다면 여기 있는 자들끼리 막아야 하는 것.
하필 드레젠이 없을 때!
성벽에 있던 간부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소. 바로 공성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쿠웅-!
숲이 다시 울렸다.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숲을 파괴하며 전진하는 중이었다.
[크오오오오오-!]
와이번과는 차원이 다른 울림.
내부가 진탕이 되는 느낌에, 병사들이 토사물을 쏟아 냈다.
그것은 크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웨에에에엑-!”
“크리스! 괜찮나?”
“으으…… 네, 괘, 괜찮……. 으욱.”
에드윈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샤페론 역시 다가와 말했다.
“제가 성 안쪽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당장에라도 위액을 쏟아 낼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샤페론이 크리스를 들쳐 업었다.
키에에엑-!
발 빠른 졸개 언데드들이 먼저 도착했다.
그들의 입에는 인간의 시체로 보이는 것들이 물려 있었다.
“저건…….”
“요격 준비-!”
“정찰을 나갔던 레인저 요원들이군요.”
으득-.
아이젠하트가 이를 갈았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3
“드레젠이 없는 하시스 성은 쉽지.”
“그래도 너무 과한 거 아니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조금이라도 시간이 끌려 봐. 어떻게 될까?”
흑마법사들이 숲에 숨어 이야기를 나눴다.
드레젠은 그들에게 있어, 조커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자신들을 향해 낫을 들이밀고 있는 사신이었다.
“빨리빨리 밀어 버리고, 말려 죽여야 한다고.”
“그것도 그렇군. 그쪽에서는 어떻지?”
“그쪽은…… 이제 막 준비한다고 하더군.”
흑마법사들은 알 수 없는 대화들을 나눴다.
어쨌든, 최우선 목표는 하시스 성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불러낸 몬스터였지만 오싹한 마나가 일품이었다.
“자, 얼른 끝내자고.”
“그래.”
흑마법사들이 마나를 움직였다.
[크오오오오오-!]
거대한 피어가 뿜어져 나오며, 드래곤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