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화
140화 - 그 용사가 대처하는 법
#1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들이 몰려드는 것은 똑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인사를 하며 빌드업을 기다리는 시청자들.
강일은 아직 캡슐에 동기화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피 추적해서 알아내는 중임다. 사장님.-
-팬 카페에서도 분탕이 들어왔는데, 이것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매니저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일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들은 드레젠에 관한 모든 언론을 통제할 기세였다.
강일은 열정적으로 대처하는 팀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이디엔이 사람 하나는 잘 뽑았네.’
이 정도라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방송을 시작하기 위해 VR 고글을 뒤집어썼다.
새로운 시간 축에 들어간 드레젠이 채팅 창을 바라봤다.
‘아직은 조용한데.’
그렇다면 별 탈 없이 방송을 진행하면 되겠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오늘 받은 동영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ㄷㅎ!
-ㄷㅎ!
-오늘도 시사회입니까?
-시사회! 좋다!
-드레젠 님은 역시 후원으로 혼내 줘야 해!
사람들이 환호하는 드레젠의 방송.
그들은 브튜브에 가기 전에 영상 보는 것을 관례로 여겼다.
오늘 보여 줄 영상은 그림자 기사단에서 있었던 일들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편집을 할 수 있느냐!
‘엘리스라면 가능하지.’
마법을 이용한 획기적인 편집 시스템.
어마어마한 작업 속도는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 보여 주는 것이 가능했다.
드레젠이 시청자들에게 가볍게 운을 띄웠다.
“여러분 저희 팀의 편집자가 너무 유능하셔서, 그림자 기사단에서 벌어진 일을 오늘 바로 편집하셨답니다.”
-지렸넼ㅋㅋㅋ
-거긴 무슨 다 고인물 집단인가요?
-편집자님 인생 2회 차인 거임!
-만렙 편집자 회귀하닼ㅋㅋㅋㅋ
딱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드레젠은 작게 웃은 후, 동영상을 재생했다.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상이 등장했다.
둥둥-!
가슴을 뒤흔드는 베이스와 함께 시작된 그림자 기사단에서의 여정.
이번에도 사건 사고로 뒤덮인 에피소드였다.
“오-.”
-영상 퀄 지렸다
-진짜 영화 보는 것 같음ㅋㅋㅋ
-우리나라 감독이 보고 배워야 하낰ㅋㅋㅋ
-으잌ㅋㅋㅋ ㄹㅇㅋㅋㅋ
칭찬을 듣는 것만큼 보람찬 것도 없었다.
드레젠은 방송 화면 너머, 시청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톡 화면을 띄워 놨다.
실시간으로 일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있는 팀원들.
그중에서도 해커 편집자가 일을 기똥차게 하고 있었다.
-이제 공론화해도 괜찮습니다. 게시글 삭제해도 아이피를 추적할 수 있슴다.-
‘오케이.’
마침 동영상도 끝나 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악플 다는 이들까지 철저하게 괴롭힐 계획도 팀원들이 쭉쭉 세웠다.
치가 떨릴 정도로 악독한 계획을 세우는 팀원들 덕분에 헛웃음만 나왔다.
‘경찰에 넘기지 않고 끝까지 괴롭히겠다 이거로군.’
딱히 선처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벌인 전쟁이니, 그들이 책임져야겠지.
-진짜 영화 한 편 봤닼ㅋㅋㅋ
-이번에 베스트 1등 예상합니다!
-ㄹㅇㅋㅋ
-이게 1등 안 되면 주작이다
-와 영어 자막까지 꼼꼼하게 달아 주는 센스 보솤ㅋㅋㅋ
엘리스의 편집 실력은 브튜브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였으니, 좋은 반응은 당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문제를 거론할 때였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발견한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짚고 넘어갈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드레젠은 해당 사이트를 화면에 띄웠다.
채팅 창이 순식간에 갈고리로 물들었다.
-?
-??
-???
-아니 이게 뭐얔ㅋㅋㅋ
-누가 감히 드선생님을 의심하는가?
-와 밑에 악플 보소
“흠, 제가 회사에서 특혜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조작된 캡슐로 게임을 하거나, 핵을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흐음…… 이전에 증명 방송을 했었는데 부족했나 봅니다.”
-지렸네
-와 지금 브락시아에 대놓고 시비 건 건가?
-고소 드립 나왔구연ㅋㅋㅋㅋㅋ
-아니 지들이 뭘 안다고 고소를 햌ㅋㅋㅋㅋ
거기엔 (주)브락시아 회사에 고소한다는 내용까지도 들어 있었다.
더 밑에는 꽤 많은 자들이 악성 댓글을 남겼다.
-그럴 줄 알았음ㅋㅋㅋ
-회사랑 짜고 치는 거 진짜 양심 없다;;
-핵 쓴 캡슐로 돈 어마어마하게 벌었네;;
-이거 사기죈데 고소 때리죸ㅋㅋㅋ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드레젠은 심한 말을 보고도 덤덤한 반응이었다.
이 정도 도발이야, 별것도 아니었다.
브락시아에선 더한 매도도 당해봤으니까.
“제 팀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작 영상인지 아닌지 밝혀 줄 겁니다. 여러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누
-중립 기어 박아라
-요즘 하도 주작이 많아서 중립 기어는 필수임
-맞지맞지
-그래도 저희는 믿겠습니다!
드레젠은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송을 이어 가기 위해 게임을 실행시키려고 했다.
그때, 하이디엔에게 톡이 왔다.
-다영 씨의 주소지를 찾아보니 바로 위 건물이더군요.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 보세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건 사생활도 보호해야 하는 문제였다.
오늘은 그냥 방송을 하고, 다음 방송 때 협의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드레젠은 방송을 시작하기 전, 매니저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매니저들은 오늘 채팅 유의해서 봐 주세요.”
[‘뉴비환영해!’ 님 1,000코인 후원!]
[알겠습니다.]
[‘Hak_God’ 님 2,000코인 후원!]
[맡겨 주십쇼]
매니저들까지 단단하게 대기시켜 놓은 후, 드디어 게임을 실행했다.
한편 악의적인 게시물을 올린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2
“야, 근데 이거 진짜야?”
“나만 믿으라니까? 증거물 가져다준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본사 내에서.”
“진짜?”
며칠 전, 누군가가 그들에게 제보해, 정보를 전달해 준 것이 시작이었다.
몇 번을 돌려 봐도 진짜 같았고, 나름대로 신빙성 있는 자가 보내 준 자료라서 터뜨렸다.
하지만 오히려 드레젠 측에선 뻔뻔하고 당당하게 나오는 중이었다.
“야 이거…… 만약 진짜 아니라면 우린 X 된 거야.”
“아 진짜라니까?! 내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진짜 그러길 바라야지. 안 그래도 요즘 몰아가기나 물타기 때문에 말 많은 거 알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일을 꾸민 자는 총 두 명.
그것도 20대,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었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새파란 청년들이었지만, 돈을 주겠다는 말에 혹했다.
“……하 이거 불안한데.”
“그래도 이미 까발려졌으니까 끝났어.”
그들은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터.
하지만 이미 사건은 시작되었다.
#3
하이디엔은 엘리스에게 보고를 받은 후부터 자료를 분석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걸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누군지 훤히 보이는데요?”
엘리스가 하이디엔의 옆에서 말했다.
그녀는 아주 자세하게 분석한 파일을 하이디엔에게 넘겨주었다.
주석까지 붙여 가며 써 낸 보고서엔 마법으로 조작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반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는 것들.
엘리스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볼 수 있었으니까.
“전에도 분명 사고 치지 말라고 했건만…….”
“원래 용사님을 아니꼽게 생각하던 녀석이었잖습니까. 이번 기회에 그냥 없애 버리시죠.”
“후우…… 얼마 안 남은 일족이 이렇게 이기적인 마음을 품을 줄이야.”
하이디엔은 엘프나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서로의 신념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들.
남에게 폐가 가든 말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오해하고, 싸우고, 서로 헐뜯는 지금이 너무 싫었다.
“썩은 부분은 빠르게 도려낸다.”
“알겠습니다.”
엘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전쟁을 시작한 자는 곧 백기를 들게 될 것이다.
“후……. 어딜 가나 눈에 보이지 않는 놈들이 문제로군요.”
하이디엔은 작게 읊조리고는 일정을 위해 몸을 돌렸다.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었으니까.
대화를 마친 그녀가 대기하고 있는 자들에게 걸어갔다.
#4
회백색 세상 속으로 들어온 드레젠.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할 일이 많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서 영지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탑 안에 있는 포털을 이용합시다. 오늘부터 그림자 기사단의 거주지는 하시스 성입니다.”
“단장의 뜻이라면.”
“쓸 만한 물건도 모조리 가져갑니다. 바로 이동하죠.”
아쉽게도, 하시스 성에는 포털이 없었다.
대도시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에만 설치된 포털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에렌틸에서 출발합니다.”
파베론 산맥 너머, 비옥한 토지를 다스리고 있는 후작가의 대지였다.
아그네스, 그리고 드레젠을 포함해 남은 이들은 정확히 열.
탑은 넓었고, 필요한 물자들은 많았다.
“30분이면 충분하죠? 그때 모이겠습니다.”
“그러지.”
드레젠의 지휘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여러 번 해 본 것처럼 능숙하고 적절한 지휘였다.
드레젠 역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과 함께 물건들을 챙겼다.
탑 안에는 실속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이 정도만 챙겨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군식구가 늘었고, 정보 조직도 생겼으니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늘 겁니다.”
-ㅇㅇ
-단체 하나 굴리는 데 돈 많이 들어가지
-맞지ㅋㅋㅋ
-그래서 1만 골드 떼 온 건가?
-엌ㅋㅋ후작가 여전히 불쌍하닼ㅋㅋㅋ
물자를 끌어올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당분간은 다가오는 위협을 막으면서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고, 그림자 기사단을 열심히 굴리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정들었던 탑을 떠나려니 어색해하고 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라니.”
“새 단장은 가만히 둘 생각은 없는 것 같군.”
오베론은 동료 기사단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기사단은 음지에서만 활약했다.
하지만 드레젠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힘은 적절한 곳에 쓰여야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결국 이름뿐이라면 의미가 없지.’
드레젠은 포털 앞에서 기사단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눈티아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신 말고도 마족에 붙을 생각이 있다는 다른 사람들.
과연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궁금했다.
“기사단이 있다면 흑막을 더 알아볼 수 있겠군요.”
-로망이다
-용병왕도 되어 보시는 건 어떠심ㅋㅋㅋㅋ
-엌ㅋㅋ그건 부계로 하시잖음
-하시스 성 이제 무시 못 하겠누
“다 모였으니, 출발합시다.”
“에렌틸에서부터 하시스 성까지 얼마나 걸리지?”
“돌아서 가면 사흘 정도 걸리겠군요.”
산맥을 곧장 넘어가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한 달이 다 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
성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혹은 노리는 자가 없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십중팔구 뭔가 사건이 있긴 있을 거야.’
이 기회를 놓칠 녀석들이 아니었으니까.
어쩌겠는가.
자신의 몸은 하나이고 닥쳐오는 위협은 많은데.
드레젠은 포털 안으로 들어가며 성에 있는 자들이 잘해 주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