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8화
138화 - 그림자 기사단의 새 단장
#1
전투가 끝났다.
레이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보상 분배의 시간이 지나고, 드레젠은 세션의 문을 닫아 둔 채로 스트리머, 유저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동영상의 수익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도움을 받았으니 정당하게 값을 지불해야 한다.
훗날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이 정도 돈은 충분히 포기할 수 있었다.
드레젠이 말하자, 스트리머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말했다.
“에이, 저희가 여태까지 받은 게 있는데요. 괜찮아요!”
“맞아요. 솔직히 드레젠 님 공략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텐데.”
“정 그러시면 스트리머랑 유저들 이름으로 기부라도 하시는 건?”
스트리머들의 의견은 그쪽으로 굳어졌다.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뿌린 정보값, 공략값만 해도 훨씬 가치가 넘치는 일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더불어 그들 역시 이미지라는 것이 있었다.
-스트리머들 다 착하넼ㅋㅋㅋ
-여기서 저는 돈 주세요! 하는 게 더 이상하짘ㅋㅋㅋ
-그랬다간 난리 날 듯 ㅜㅜ
-그것도 맞다.
이번엔 유저들 차례였다.
그들 역시 따로 이견은 없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드레젠이 갖는 것을 원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자신들에게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우리도 뭐……. 하하.”
“일일이 계좌번호를 줄 수도 없는 거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잖아요.”
“즐겼으면 그걸로 된 거라……. 돈 문제 때문에 엮이면 별로입니다.”
“그래도 가끔 팬 미팅이나 이런 거 해 주세요!”
그런 거라면야.
드레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돈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
생각보다 사람들은 선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군중 심리라는 것이 또 무서웠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익은 투명하게 공개해서 관리 잘하겠습니다.”
그걸로 사람들은 만족했다.
어차피 돈을 노리고 온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레이드에 참여한 유저들은 오직 재미를 위해서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깜짝 이벤트와 마찬가지인 느낌이었으니.
“그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동영상은 수익 창출하지 않고,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훈훈하게 끝났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보상을 가지고 돌아갔다.
“저도 갈게요. 레벨도 3이나 올랐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다영, 그리고 강아지 등등의 스트리머들이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눈티아도 자신 앞에서 몸이 두 동강 나 버렸다.
숙련 포인트 역시 두둑하게 얻었고, 그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금속을 보상으로 얻었다.
[베리드의 강화 외골격]
[신체 강화] [??] [???]
-전설의 금속, 아다만티움과 비슷한 경도를 자랑하는 금속.-
“세이브 더 브락시아에서 손꼽히는 재료입니다. 이건…… 제가 무기로 만들어서 경매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미쳤다!!!
-와 이걸 팔겠다고?
-하긴 이제 팔아도 되겠닼ㅋㅋㅋㅋ
드레젠에겐 더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마족의 금속으로 만드는 무기는 과연 값이 얼마나 나갈까?
초반, 아니 중후반까지 꾸준하게 쓰일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심지어는 팀 파이트에서도 사용되겠지.
“후…… 이제 얼추 끝났으니 마무리를 지어 봅시다.”
드레젠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눈티아의 시체를 챙겼다.
이미 인간이 아닌 몰골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인류의 균형을 지키는 자들이기도 했지만, 인류를 수호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의 눈티아는 이미 그림자 기사단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
“그럼 돌아가서 정리하고, 오늘 1부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자 기사단도 끝났넼ㅋㅋㅋㅋ
-하루에 하나씩 해치워서 깔끔
-사이다 편-안
-이게 게임이지!
싱글 게임의 묘미는 역시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진짜 엔딩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쭉쭉 강해질 시기였다.
드레젠의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웠다.
#2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식당에서 대치했다.
그들 역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전투를 감지했다.
합류할까 했지만, 오베론을 비롯한 중립파 인원들과 눈티아를 옹호하는 이들의 분쟁이 생겼다.
“빨리 비키는 것이 좋을 거야.”
“오베론.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단장님의 뜻을 그르칠 수 없지.”
“신입을 배척하는 것이 단장의 뜻인가? 그렇다면 난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없네.”
섣불리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실력도, 숫자도 비슷했으니 잘해 봐야 양패구상일 뿐이었으니.
오베론은 이 자리에 드레젠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마나 중 하나는, 드레젠의 것이었다.
‘익숙한 마나가 둘, 아니…… 셋이라니.’
리오넬, 눈티아, 그리고 드레젠까지.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눈티아와 리오넬이 합심하여 드레젠을 친다면, 당해 낼 수 있을까?
오베론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루하고 팽팽한 대치 상태를 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드레젠을 도와야 한다고, 눈티아와 리오넬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입이 들어온 지 이제 겨우 3주 남짓.
뿐만 아니라 이제 첫 임무를 끝낸 신입이었다.
“불합리함을 보고도 침묵을 택하다니,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군. 비키시오.”
“단장의 말은 곧 기사단의 방향성이다. 그걸 무너뜨리려는 거야말로 건방진 생각이다.”
스릉-.
오베론이 얇은 검신의 세검을 꺼냈다.
요정족들이 주로 쓰는 무기이자 일격에 급소를 찔러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무기였다.
오러가 넘실거렸고, 마나가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정녕 피를 보자 이거군.”
“가서 얘기만 나누게 해 준다면 그럴 일은 없네.”
“하…… 언제까지 그렇게 점잔 떨 수 있는지 보자고.”
두 집단이 충돌하려 할 때, 콰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는 소리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식어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활짝 열린 문에서 걸어 들어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신입!”
“새벽에 죄송합니다. 좀 시끄러웠습니다.”
서서히 동이 터 오르는 시각이었다.
햇살이 탑의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그곳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드레젠은, 개선장군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왜 싸우고들 계십니까?”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냐?”
“그야, 내가 이겼으니까.”
텅-.
드레젠이 들고 있던 것을 던졌다.
눈티아였던 흉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모두의 아미가 눈티아의 시체를 보고 팍 일그러졌다.
“이게 여러분이 모시고 있던 단장의 정쳅니다. 신입을 시기해서 죽이려 한, 그런 녀석이었죠.”
“……진짜 단장님이 맞나? 아무리 봐도 이건 이상한데.”
“마나의 잔재를 남겨 뒀습니다. 자매품으로 리오넬도 있습니다만.”
드레젠은 지친 기색이었다.
갑옷은 멀쩡했지만 덕지덕지 먼지가 묻어 있었고, 안색은 초췌했다.
한눈에 봐도 격렬한 전투를 치른 모습.
오베론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가 단장을 죽인 건가?”
“네. 베리드라고 하는 녀석들과 손을 잡았더군요.”
베리드.
이들 역시도 간간이 들었던 종족이었다.
기계라는 것만 알았지, 그들이 어떤 종족인지, 뭘 목적으로 하고 움직이는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단장을 따라가는 기사단원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서로 파벌을 갈라서 싸우는 것보다, 왜 단장이 이런 녀석들과 손을 잡았는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선배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확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지금 뭘 하는 건지, 왜 소수의 사람끼리 아웅다웅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았다.
드레젠은 천천히 눈티아가 했던 말들, 하려고 했던 계획을 설명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이 세계를 갖다 바치겠다니, 누가 그런 걸 정했는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싸웠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
-말 잘하누
-맞는 말이지
-이게 바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ㅋㅋㅋ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
드레젠은 기사단을 모조리 흡수하기 위해 최대한 눈티아를 나쁜 놈으로 만들었다.
그림자 기사단은 잘 넘어오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으니까.
“증거물들을 보러 가시죠.”
그들은 드레젠이 안내한 분지로 따라갔다.
처참한 광경을 바라본 기사단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잔해들이 격렬한 전투를 증명했다.
“허…… 이 정도 규모라면 도시 하나를 박살 낼 수 있었겠군.”
“적어도 백작령 이상의 도시겠지.”
“진짜 이계의 군대를 데려온 건가.”
그림자 기사단의 눈빛에 원망과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드레젠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다소 낯간지러운 이야기들이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또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기사단이 창설된 이유가 뭡니까?”
“대륙의 균형을 위해서.”
“그런데 단장이라는 놈이 대륙을 저버리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수작질에 놀아났고.”
“…….”
선배 기사단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파직-.
드레젠의 손끝에서 흑뢰가 피어났다.
미약하게 발현된 흑뢰가 선배 기사단원들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더욱 명확하게 현실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드레젠이 한 행동은 그간 쌓여 있었던 약 기운을 태워 버리는 것.
어떠한 형식으로든 정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약 기운이 모두 사라졌다.
명령의 주체가 없어져, 잠시 약 기운이 잠잠해졌던 선배 기사단원들의 시야가 탁 트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리석었군.”
“하! 그림자 기사단이라니……. 결국 명예에 먹혀 있었는가.”
“이거…… 자괴감이 드는구만. 부끄럽기도 하고.”
드레젠은 제정신으로 돌아온 선배 기사단원들을 보고 말했다.
이제 진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새 단장이 필요했으니까.
“새로운 단장이 필요합니다만, 누가 하실 겁니까?”
“……이미 다 같은 마음으로 결정한 것 같네.”
“그래. 애송이라고 얕봤는데, 하하! 이거 완전 물건이었잖아?”
“아그네스 역시 동의할 거다.”
선배 기사단원들이 모두 드레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마디씩 하는 그들의 눈빛에선,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그들을 대표해서 오베론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그림자 기사단을 이끌어 주게. 드레젠.”
본래 드레젠은 조직을 맡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림자 기사단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명예도, 그 위명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대륙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정보력.’
드레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