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화
136화 - 시참 할 사람?
#1
압도적인 피지컬.
뛰어난 기술.
보통의 사람들은 그 두 가지 중 하나에만 재능을 보인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무인들은 모두 그랬다.
한마디로, 장기가 있다는 말.
[그림자 기사단의 기술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눈앞에 있는 옛 스승, 눈티아는 그림자 기사단의 정수였다.
나에게 ‘다 죽이면 암살이다!’라는 사상을 주입하기도 했지.
그래.
다 죽이면 그만이지.
“크으-.”
불똥이 튀었다.
뜨끈뜨끈한 느낌이 얼굴을 뒤덮었다.
달군 재 가루를 뿌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두 눈을 부릅떴다.
[흐흐흐하하하!]
무릎을 찌르면 비켜서고.
머리를 찍듯이 가르면 흘려 낸다.
거리를 벌리면 따라가고.
견제하면 파고든다.
-뭐야 한 대도 안 맞네
-;;;;이 사람 우리 속인 듯
-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
-아니 다 주작이었냐?!
-폭!
-동!
-주!
-작!
채팅 창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볍게 손을 털어 치워 버렸다.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싸울 거다.
쩌어어엉-!
혼돈의 힘이 맞부딪쳤다.
챠챠챠챠챵!
체페슈가 급소를 노리고 쏘아졌지만, 서로의 꼬챙이가 방해했다.
스르륵-.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뒤를 점해도 똑같이 응수했다.
[……제법이구나.]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울걸?
당신이랑 대련한 숫자만 셀 수 없을 정도다.
“이제 제대로 해 주마.”
[이제 제대로 해 주마-!]
쿠웅-!
눈티아가 도약했다.
나도 똑같이 도약한다.
사선 베기.
교차해서 막아 낸다.
[흐흐-!]
웃음소리 뒤에 느껴지는 살벌한 마나의 흐름.
최소한의 마나를 이용해서 상쇄한다.
파지직-.
힘을 내라는 듯, 흑뢰가 힘을 보태 줬다.
마나로 이뤄진 공격은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잔재주 따위는 소용없다!]
폭풍 같은 혼돈의 힘이 흑뢰를 집어삼켰다.
제아무리 방파제를 둘러도, 해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듯이.
마나를 쥐어짜, 녀석의 공격을 막아 냈다.
곧바로 몸을 날려 저격까지 피했다.
“후우…….”
숨을 고르자 마나가 쭈욱 차올랐다.
하지만 녀석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본래 집요하게 따라붙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 머릿속엔, 눈티아의 모든 것이 들어 있으니까.
#2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보통 인터넷 방송에서 명장면이 나오면 채팅 창이 폭주하기 마련이었다.
자신들이 내놓을 수 있는 감탄사를 표현하는 것.
시청자들의 권리이자 방송을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와.”
‘드레젠 함께 보기’ 콘텐츠 중인 스트리머들.
그들의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말이 없었다.
싸움은 처절했다.
드레젠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중이었다.
“What the-?!”
외국에서 클립을 따 보는 선수들도, 같은 한국인들도 모두가 감탄했다.
드레젠.
현재 최고의 스트리머이자, 세계의 코치라고 불리는 자.
혹자는 그자를 거품이라고 말했다.
혹은 베타 테스터니까-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이건 솔직히 인간의 피지컬이 아니잖아.”
“하하! 최고야, 이 사람은 진짜 신이라고!”
“와 내 팬티 어디 갔냐? 기저귀 파실 분?”
저마다 눈을 떼지 못하는 자들.
전투는 피지컬, 그리고 머리라는 것을 증명하듯 종횡무진으로 싸우는 드레젠과 눈티아.
속된 말로 말하는 ‘천상계’들의 싸움이었다.
특히 프로 선수들.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해야 하는 자들이 둘의 전투를 눈여겨봤다.
“야야, 녹화하고 있어?”
“당연하지. 이거 저작권에 걸리진 않겠지?”
“퍼뜨리지만 않으면 돼. 드레젠 님도 공공재라고 생각하라고 하셨으니까.”
“그럼 아주 질릴 정도로 돌려 보자.”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 소장 정도는 괜찮다는 드레젠의 공식 입장.
솔직히 그들이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영상으로 올라갈 내용이었지만, 프로들은 잘 때도 이 영상을 아주 면밀히 관찰하고 싶었다.
그들의 눈에서 열망과 존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허…… 이건 예상왼데.”
“이거, 잘못 덤빈 건 아니겠지?”
“그래도 시간을 생각하면 할 만해. 지금 이자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하는 거라고.”
감탄을 내뱉는 것은 자칭 드레젠의 라이벌인 가브리엘도 마찬가지였다.
VR로 동기화해서 함께 전투를 감상하고 있는 둘은 바짝 긴장했다.
역시 베타 테스터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인간의 반응 속도가 아니었다.
“연습 열심히 해야겠다?”
“안 그래도 그럴 셈이다.”
오랜만에 도전 욕구가 화르륵 피어났다.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으니까.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 영상 녹화만 해 둬.”
“그래~ 가자. 돈 벌어야지.”
두 사람은 드레젠이 홀로 클리어했던 던전 중 하나인 서리의 구덩이로 들어갔다.
드레젠은 레벨 60 언저리에 홀로 클리어했다.
현재 가브리엘의 레벨은 53.
공략법은 이미 나와 있으니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일.
“짐 덩이 하나 얹고 클리어해야 그 명성에 도전할 수 있겠지.”
“그래~ 잘났어 정말. 나는 뒤에서 얌전히 방패나 들고 있어야겠다.”
드레젠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을 때 벌어진 작은 일이었다.
#3
콰아아앙-!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눈티아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왜!]
쿠아앙-!
회심의 일격을 날렸지만 드레젠은 이미 공격을 읽고 파훼했다.
혼돈의 힘이 잔뜩 실린 오러로 주변을 잠식해도, 이상한 기술로 파훼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적절한 동작과 힘, 기술로 파훼했다.
이것도 파훼.
저것도 파훼.
공격, 방어, 움직임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모든 것을 읽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넌 뭐냐아아아아-!]
거기다 저격수의 개입까지 있었는데도 모든 것은 완벽했다.
터엉-!
마탄을 튕겨 낸 드레젠이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놀랍지? 나는…… 네가 상상도 못 할 곳에서 너랑 많이 싸워 봤거든.”
-엌ㅋㅋㅋㅋㅋㅋ
-베타 테스터 특) 뉴비인데 고인물임ㅋㅋㅋ
-앜ㅋㅋ경력 있는 신입이다 이 말이야~
-방금 드레젠 죽는 상상 함!
-근데 진짜 어림도 없자너;;
-우리 후원하신 분들 쩨트킥 맞으실 준비 되셨쥬?
압도적인 기량 차이.
모든 패턴을 받아넘기고 야금야금 공격을 찔러 넣는 전투 스타일.
눈티아, 그리고 암살자들을 상대할 때 유용한 방법이었다.
[하…… 그래, 시간 여행이라도 하다 왔나 보군. 그래그래…… 내가 졌다. 지금의 나는 널 어찌하지 못한다.]
-??
-끝?
-아니 백기를 든다고?
-안 돼에에에에! 여기서 포기하지 마라 인마!!
-아니 네가 그러고도 레이드 보스냐!!!
미션을 건 자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레이드 보스가 백기를 든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레젠은 붉게 점멸하는 마나통을 바라봤다.
‘300’이라는 숫자.
‘아직 방심할 수 없다.’
이 일대에 떠도는 마나의 농도가 옅어지는 중이었다.
드레젠이 강적과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
강력한 적들이 무분별하게 내뿜는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술.
그것이 바로 드레젠이 드래곤과도 일대일로 붙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래.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빌어먹을지언정 영생을 얻으려는 것이지.]
“그래서 마왕이 되려고 했군.”
[크흐흐, 그래. 맞아. 나 대신 네놈이 마왕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뭐, 됐어.]
파직-.
공간이 열렸다.
드레젠이 가지고 있는 붉은 통신기가 불길하고 요사스러운 빛을 뿜어냈다.
그걸 발견한 눈티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군. 너는…… 그래. 마치 미래에서 온 것 같아.]
-정답입니다~!
-이 집 아주 잘하네!
-허허 무당 해도 되겄엌ㅋㅋㅋㅋ
-그나저나 저거 불길한디;;
-저 게이트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음?
시청자들도 게이트를 알아봤다.
눈티아는 정말 악당이었다.
드레젠은 물끄러미 그것들을 바라보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마나는 반 정도 차올랐다.
[악당처럼 싸워 주마. 나와라! 이 세상을 점령하고 불태워라! 너희들의 주적이 정한 후계자를 죽여라!]
철컹-.
철컹철컹철컹철컹철컹-!
만약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이런 군대가 탄생하지 않을까.
광야에 딱딱하고 감정 없는 기계들이 꽉꽉 들어찼다.
거기다 하이브까지 등장했다.
무려 세 대나.
“…….”
드레젠은 물끄러미 대군을 바라봤다.
수백?
아니, 수천?
시야를 가득 채운 기계들의 모습에, 옛날 브락시아의 병사들이 느꼈던 감정을 느꼈다.
무기력함.
절망.
공포.
체념…….
‘마족을 처음 보는 이들이 이런 느낌이었겠군.’
베리드의 병사 하나는 오크보다 조금 강한 정도였지만, 물량과 전투 방법이 달랐다.
지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패턴에 대응해서 압박해 오는 기계들이었으니까.
드레젠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 장면은 마치 ‘앤드 게임’에서의 그 장면과 똑같았다.
[계획을 앞당겨야겠다. 네놈을 죽이고! 이 세상을 혼란으로 집어삼킬 것이다! 흐흐흐- 그렇다면 제국은…….]
-제국은?
-그래서 뭔데
-아 뭐 말하려고 했는데?
-설명충 더 말 안 하냐??
눈티아가 거기까지만 말하고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드레젠이 작게 말했다.
“역시 제국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나 보군요. 황궁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지
-보스도 흠칫한 것 같은데?
-뭘까? 궁금하다.
-그나저나 개 많은데 이거 어떻게 할 거임?
-뭐긴 푹찍이짘ㅋㅋㅋㅋ
빽빽하게 들어찬 기계 병사들과 기계 기사들.
유유히 떠 있는 하이브까지.
솔직히 말해서 드레젠 홀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야 많았지만-.
눈티아에게 아주 크고 아름다운 엿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악당은 참 비열해. 나는 옛날에 악당만 비열한 줄 알고 살았는데 말이야.”
-???
-아~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있어요!!!
-죽을 위기에 있는데 웃고 있어요!!
-와 이거 클립이다, 절.대. 수.출.해!
-또 어떤 꼼수를 부리려고 하는 것일까요?
[흐흐, 장막으로 도망가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네놈이 도망가든 그러지 않든, 이 무적의 군단은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 테니까!]
“누가 도망간다고.”
철컥-.
병사들의 총구가 일제히 드레젠을 향했다.
이제 발사만 하면 드레젠은 벌집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검자루를 굳게 잡은 그가 입을 열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물량이죠.”
-그거 맞지
-소련이랑 독일이랑만 봐도…….
-우리나라랑 중공군만 봐도…….
“미션은 포기해야겠군요. 하지만 질 생각도 없습니다.”
굳게 다짐했으니까.
저 역겨운 면상을 쳐부수기로.
그는 슬쩍 채팅 창을 바라봤다.
[채팅 참여 수 : 172,221명]
“……방송 타고 싶은 사람?”
충격적인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