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5화
135화 - 드디어 위기!
#1
분지 안쪽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두 사람.
눈티아는 자신보다 배는 큰 거인과 함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계로 이뤄진 병사였다.
[강력한 자, 감지. 목표물 포착.]
“그래. 저놈이니까 천천히 괴롭히다 죽여 버리라고.”
그러면서, 눈티아는 가져온 물건을 내려놓았다.
마침 바람도 구덩이 안쪽으로 불고 있었다.
“리오넬에겐 미안하지만…….”
어차피 약해지는 건 둘 다 똑같았으니까-.
리오넬은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다.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으리라.
“나도 좀 거들어야겠군.”
미리 챙겨 온 활까지 들어, 시위를 당겼다.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건방지게 문을 찌그러뜨렸던 신입.
‘뭐, 아쉽긴 하다만…….’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눈티아가 시위를 놓았다.
파앙-!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 뒤로, 함께 온 조력자가 마탄을 날렸다.
총 세 명이 추가적으로 공격하는 상황.
“어우, 많이도 모였네!”
-와앀ㅋㅋㅋㅋ
-죽는다! 죽어라!
-죽!
-어!
-라!
-죽!
-어!
-라!
이젠 대놓고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상황.
드레젠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막아 냈다.
시간차로 공격하는 타이밍이 아주 예술이었다.
반동을 잡는 그 시점.
바로 그때 추가타가 날아오니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
“이제 얼추 배우는 다 모였구만.”
“오만한 놈.”
시큼한 향이 퍼졌다.
근육을 풀어 버리는, 전사들에겐 꽤 치명적인 독이었다.
냄새를 맡으면 이미 늦은 상황.
[중독되셨습니다.]
[근력이 점차 감소합니다.]
첩첩산중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근력이 떨어지면 공격을 막을 때 체력 소모가 커진다.
뿐만 아니라 근력의 손실만큼 마나로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난다.
터엉!
무릎, 그리고 바로 머리를 노리는 연속 공격을 막아 낸 후, 리오넬에게 달려들어 난전을 유도했다.
‘패는 얼추 다 꺼낸 것 같으니…….’
콰아아아아아-!
3천에 달하는 드레젠의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파직-!
흑뢰가 부정한 것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오만은 너희들이 했지.”
그 옛날, 스텔라가 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렸다.
머리는 나약한 놈들이나 쓰는 거라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수작질이 소용없다고.
드레젠 역시 격렬하게 공감했다.
“본격적으로 나오시겠다 이건가!”
리오넬은 잔뜩 긴장했다.
드레젠이 오러 블레이드를 꺼내 리오넬을 구석으로 몰았다.
저격수가 사격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몰아낸 것.
‘크윽-. 근력이…….’
리오넬은 죽을 맛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마나의 반탄력으로 쭉쭉 밀렸다.
일반적인 검술이라면 붙어서 버텨 보기라도 하겠는데, 오러가 개입된 이상 꿈같은 이야기였다.
“신기술, 보여 달라고 하셨죠?”
-네!
-아니 여기서 또 각을 잡아?
-이거이거 위기인 척하는 거임! 진짜임!
-아무튼 주작임! 아무튼 그런 거임!
드레젠이 리오넬을 있는 힘껏 쳐 냈다.
콰앙-!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리오넬이 쭈욱 밀려났다.
명백한 근력의 차이.
드레젠은 흙먼지 속에서, 어떤 능력을 발휘했다.
#2
“……젠장.”
눈티아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활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전장으로 합류했다.
뒤쪽에서 무기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치명적 부상. 확인. 패턴 오류.]
‘예상보다 더한 놈이었군. 진짜 이 기회에 싹을 잘라야겠어.’
결심이 섰다.
드레젠은 결코 살려 둬선 안 되는 놈이었다.
흙먼지는 금방 가라앉았다.
시야가 확보된 후, 시청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
-지렸다;;
-주모오오오오!
-으아아아 이번엔 촉수물이냐!
-체페슈 지린닼ㅋㅋㅋ
“끄르륵…….”
“왜, 이건 예상 못 했나 봐?”
드레젠이 씩 웃었다.
리오넬은 말 그대로 꼬챙이형을 당했다.
기술명 : 체페슈.
그림자를 이용해 공격하는 기사단의 기술 중 하나였다.
마나 소모가 엄청나고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위력 하나는 끝내줬다.
“크르륵…… 너…….”
리오넬은 온몸을 내달리는 고통과 목, 심장, 두 다리, 두 팔, 그리고 양쪽 폐가 박살 난 것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했다.
체페슈는 정말 무서운 기술이었다.
기척도,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창이었으니까.
“후우…… 일단 하나 끝났군요.”
리오넬의 동공에 초점이 없어졌다.
황금색 폴리곤 덩어리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그림자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내며, 드레젠은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마나 소비가 엄청나네. 1천이나 날아가다니.’
숙련 포인트가 없었다면 절대 사용하지 못했을 기술.
거의 궁극기에 견줄 만한 기술이었다.
이런 기술뿐만 아니라 더한 것들도 펑펑 써 댄 자신이 새삼 대견스러웠다.
‘주변 마나를 빨리 흡수해야겠군.’
리오넬처럼 경지에 오른 자들은 죽으면 마나가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드레젠은 그 마나를 흡수해서 나머지 전투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지렸다 진짴ㅋㅋㅋㅋ
-새로운 기술 진짜 쩌넼ㅋㅋㅋㅋ
-와 근데 마나통 절반 줄어든 거 실화야?
-실제였으면 엄청 잔인했겠누ㅠㅠ
[‘크리드’ 님 1,000,000코인 후원!]
[잘 봤습니다.]
[‘용성’ 님 10,000,000코인 후원!]
[모두의 코치님. 데이터 감사합니다.]
-????
-아니 여기서?
-아닠ㅋㅋㅋㅋㅋ프로 구단들 경쟁하냨ㅋㅋㅋ
-누가 더 돈 많은가 내기하는 거야?
-와 천만 원;;;
-지렸닼ㅋㅋㅋㅋ
“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 감사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좀 바쁘니까 이따가 하도록 하죠.”
드레젠은 어마어마한 후원 금액에 잠시 당황했다.
세상에 천만 원이라니.
여스트리머.
그것도 꾸준히 방송을 해서 구독자 숫자가 상당해야 나온다는 금액이었다.
게임 스트리머가 천만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네놈! 감히 리오넬을!”
“영감, 그러니까 왜 마족들과 내통을 하셨습니까?”
그림자 기사단.
드레젠이 초반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단체이자,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따라야 했던 자들이었다.
눈티아, 그리고 다른 선배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정이 쌓였다.
성장할수록 대우가 달라졌으니까 뿌듯하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영생할 수 없다.-
-성좌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지? 그 인성 파탄자 새끼들이 남긴 것이 뭐냐고!-
-구원은 있다! 바로 저기,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치가 떨렸다.
그토록 믿고 있었던 자가 내통하고, 배신하고 있었다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드레젠의 감정이 흔들렸다.
거대한 함선인 하이브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모습.
“당신 같은 인간이- 이 세상의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게 역겨워.”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드러났다.
예전에도 선보였던 그 눈동자였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주고, 심지어는 약간의 미래까지 볼 수 있게 하는 성좌들의 눈빛.
신족, 그중에서도 가장 속도가 빠르다던 ‘라파엘’의 힘이 담긴 눈동자였다.
“결국 인간은 영생할 수 없다. 네놈도 알고 있을 텐데.”
콰아아아아아-!
격돌.
두 거력이 부딪쳐 지형을 들쑤시고 환경을 파괴했다.
이곳이 도심이나 숲이었다면 아마 참사로 번졌으리라.
그 정도로 험악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 말을 예전에도 들었지.”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못 참고 중간에 뛰쳐나가 버렸으니까.
비겁하다고 욕하고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었다.
“그 끝이 좋았나?”
“구원은 바로 저기에 있다. 딱딱하고, 영원히 돌아가는 금속의 세계에!”
눈티아는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영생에 대한 집착은 광기를 낳았다.
광기는 곧 비틀린 계획으로 표현되었고, 결국 그림자 기사단 전체를 팔아넘기려고 했다.
그들은 대륙의 정세를 모두 꿰뚫고 있었으니까.
-영감;;
-아주 미쳤네 미쳤어
-진짜 중2병 실화냨ㅋㅋㅋ
-무식한데 신념까지 있고 거기다 셈ㅜㅜ
-엌ㅋㅋㅋ최악이다 진짴ㅋㅋㅋ
시청자들은 눈티아의 말을 듣고 채팅에 열을 올렸다.
꽤 철학적인 말을 던졌으나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즐기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저런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건 실력이 증명해 주겠지.”
“흐- 애송이가 버틸 수 있어 봐야 얼마나 버티겠느냐.”
뿌지직-.
근육과 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티아의 전신에서 금속이 튀어나왔다.
이미 그는 몇 년 전부터 마족들에게 개조를 받은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
내구성, 속도, 근력 등등…….
뭐 하나 빠짐없이 극도로 강화된 인조인간이었다.
[흐흐흐, 아주 재밌겠구나. 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마. 베리드와 손을 잡고, 성좌들의 적이 되거라.]
눈티아의 외형과 목소리가 변하자마자, 알림 팝업이 떴다.
오랜만에 보는 알림 창이었다.
[레이드 페이즈 발생!]
[차기 마왕 후보 : 눈티아 데스로드를 처치하세요.]
[눈티아를 처치하거나 그와 동료가 되십시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추후 세계의 스토리가 변경됩니다.]
-미친;;
-분기점!
-지렸다;;
-과연 드선생님의 선택은?!
-와 근데 조금 끌리긴 한다 빌런도
-빌런 해서 비밀들을 밝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뎈ㅋㅋㅋ
드레젠은 가만히 중지를 올렸다.
‘凸’ 모양은 브락시아에서도 심한 욕설이었기에, 뜻은 충분히 통용되었다.
그래, 어쩌면 마족들의 비밀을 캐고 2회 차를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오히려 회귀한 것처럼 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시작하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너희는 내 과거를 너무 망쳐 놨어.’
죽어도 싫은 것이 있다.
드레젠의 경우는 마족, 그리고 일곱 영웅들에게 굽실거리는 것이었다.
신념은 확고했고, 그 결과를 책임질 능력과 용기도 있었다.
남은 것은 뼈가 부서지도록 부딪치는 것뿐.
“덤벼 시X 새끼야.”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쌍욕이 흘러나왔다.
던전이 아닌 레이드가 두 번째로 시작되었다.
#3
눈티아.
그의 패턴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숱하게 대련해 왔고, 숱하게 격돌해 봤으니까.
나는 절대 이 자식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흐하하하하-!]
저 웃음소리.
검을 쥐는 자세, 보폭을 내딛는 거리와 속도.
들숨과 날숨.
마나의 흐름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내가- 한때 스승으로 모셨고, 모든 것을 전수받았던 자였으니까.
“이제 그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자.”
과거, 용사였던 시절에 끊어 내지 못했던 그 질긴 악연.
피를 토하면서도 끊어 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절대로 질 생각은 없었다.
눈티아의 패턴은 이미 모두 꿰고 있으니까.
“패턴 공략 들어갑니다.”
-가즈아!
-이번에도 솔로인가!
-옼ㅋㅋㅋ드디어 두 번째 레이드!
-솔로잉 가즈아아아아아아!
자신이 하는 행동이 모두 막히는 기분.
한계를 처절히 느껴야 하는 그 비통한 기분을 너도 그대로 맛보게 해 주겠다.
빌어먹을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