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화
133화 – 계획 알아내기
#1
탑.
드레젠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왔다는 소식을 들은 눈티아가 축하주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은 현재 여독을 푸는 중이었다.
짐을 풀고,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 물건은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입니다. 마족들이 서로 통신하는 장치거든요.”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은 카메라 렌즈처럼 생긴 구체였다.
붉은 빛이 점멸하고 있는 것은 아직 작동한다는 증거였다.
드레젠은 조심스럽게 마나를 넣었다.
그러자-.
[통신 채널 양호.]
[현재 1번 게이트 순항 중.]
[하이브 27번, 임무 돌입.]
온갖 기계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나의 공급을 끊자 다시 잠잠해진 구체.
이것만 있다면 눈티아가 마족과 대화하는 내용은 충분히 엿들을 수 있었다.
“이걸로 증거를 잡아 보죠.”
마족, 베리드는 현대와 유사하게 통신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잘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전쟁 중반, 이 장치를 입수하고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보를 미리 알고 대응하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었고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
-캬;;
-지렸닼ㅋㅋㅋ
-완전 도청 장치자너!
-와 이거 진짜 사기템ㅋㅋㅋㅋ
사기적인 아이템은 맞았으나 엄연히 유통 기한이 존재했다.
마족은 바보가 아니니까, 자신들이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알아챌 것이다.
“이걸로 재미 보는 것도 한동안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최대한 많이 뽑아 먹어야겠죠.”
엘프의 정보부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었다.
자신들의 작전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언어를 싹 다 바꾼 것은 물론, 채널까지 수시로 바꿨으니까.
정보전의 승리가 곧 전쟁의 승리로 직결된다는 것은 여기나 지구나 똑같았다.
“그럼, 이제 내려가 보죠. 어떤 말을 하는지 오늘 밤에 들어 보도록 할까요?”
-축하주 조아요!
-세상을 구했는데 축하주밖에 없냐!
-역시 플레이어들은 다 호구였어ㅜㅜ
-적절한 보상을 내놓아라!
-플레이어의 노동엔 정당한 대가가 필요하지!
다 맞는 말이었다.
대충 수고했다, 잘했다는 말로 추켜세우기엔, 사회 물을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
받은 만큼만 일하라.
그것은 이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림자 기사단이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살아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두둑하게 챙겨 줄 겁니다.”
보상 하나는 확실했다.
대륙 최고의 암살자들을 운용하는 단체에다, 다크몬드까지 휘하에 두고 있었다.
돈과 보물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한 곳이지 않은가.
드레젠은 시청자들을 달래곤 밑으로 내려갔다.
조촐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2
식당.
드레젠은 눈티아가 건네준 잔을 받아 들었다.
“축하하네. 보고는 이걸 마시고 하지.”
“감사합니다.”
고민 없이 쭉 들이켜는 드레젠을 바라보며, 눈티아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림자 기사단.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유명한 이름에 속는다.
그 명성과 소속감!
진실을 은폐하기에 딱 좋은 이름들이었으니까.
“제국력 1년에 만들어진 술이네. 초대 황제가 성좌를 기리며 준 것이지. 그림자 기사단원들이 임무를 마치고 왔을 때만 마시고 있다네.”
“달달하군요. 기분이 좋네요.”
“허허, 그렇지. 자, 그럼 보고를 들어 볼까?”
드레젠은 가지고 온 마족의 잔해를 넘겨주었다.
차가운 금속이 눈티아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브락시아에선 볼 수 없는 골격이었다.
“정교하군. 게다가 마나까지 은은하게 흐르고 있고.”
“그렇습니다. 전혀 새로운 종족이었습니다.”
“허어…… 어째서 이런 일이.”
안 그래도 요즘 흑마법사와 언데드,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공학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외부의 새로운 적이라면 더 골치 아파질 터.
눈티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황제에게 찾아가야겠군.”
“다녀오실 겁니까?”
“같이 가지.”
드레젠은 잔을 들어 남아 있는 술을 모두 비워 냈다.
속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속아 줄 때였다.
“알겠습니다.”
“이건 의뢰에 대한 보수네.”
찰랑거리는 금화 주머니가 손아귀에 쏙 들어왔다.
얼추 세어 봐도 10골드가 넘는 거금이었다.
이건 잘 아껴 뒀다가 현실에서 돈이 썩어나는 이들을 위해 풀기로 했다.
게임의 재화가 필요하신 분들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나는 이걸 분석해 볼 테니, 오늘은 이만 쉬게.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아.”
“알겠습니다. 그럼.”
속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꽤 불쾌했다.
아마 실제로 이 독을 마셨다면 속이 불타는 느낌을 받았겠지.
드레젠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쿵, 일부러 나가기 전 문에 부딪혀 살짝 비틀거리는 모습도 보여 줬다.
-연기 뭐얔ㅋㅋㅋㅋ
-진짜 이분 2회 차라니까
-요즘 유행한다는 회빙환인갘ㅋㅋㅋ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임?
채팅 창을 흘끔 보고 그는 방으로 돌아갔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끝까지 집중을 풀지 않았다.
#3
문을 닫자마자 마나를 이용해 소리를 차단했다.
그리고 상태 창을 확인했다.
[-중독-]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중독이라는 글씨만 보였다.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세계 최고의 암살자가 하는 짓이라는 게 고작 독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거라니.
“그림자 기사단이 쓰는 독에는 혼돈의 힘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해독하기가 무척 까다롭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독이 힘들었다.
하지만 드레젠은 이번에 얻은 힘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흑뢰는 이런 경우에도 쓰였으니까.
“흑뢰를 얻으셨다면 이 정도로 미약한 혼돈은 정화할 수 있습니다.”
-흑뢰 만능설;;
-진짜 사기넼ㅋㅋㅋ
-제작자 놈들 밸런스 고려 안 한 거 실화냨ㅋㅋㅋ
-싱글 겜에 무슨 밸런스야! 다 때려 뿌셔야지!
-ㅋㅋㅋ그거 맞닼ㅋㅋㅋ
어차피 팀 파이트에선 밸런스가 그럭저럭 맞으니, 싱글 게임에선 상관없었다.
유저들이 패키지 게임을 하는 것.
아니,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으니까.
갖은 노력 끝에 쥐꼬리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현실과는 달리, 게임은 확실한 보상이 주어졌으니까.
“해독하겠습니다.”
드레젠은 흑뢰를 일으켜 술에 들어 있는 독성분을 태워 버렸다.
순식간에 편안해진 속을 느끼며, 그가 씩 웃었다.
“아마 밖엔 사람들이 좀 있을 겁니다. 마나 파장을 느꼈을 테니까, 지금쯤 뭐 하나 궁금해하겠죠.”
-진짜?
-짜라짜짜~ 여기서 미션맨 등장합니다~
-엌ㅋㅋㅋㅋㅋ
-과연 그는 뭐든지 다 아는 남자일 것인가!
[‘아니야’ 님 10,000코인 후원!]
[없다에 5마넌 건다.]
“오호, 정말입니까? 아주 바람직하군요. 좋습니다. 실패하면 뭐 할까요?”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뭐 시키지?
-실패하면 탑 꼭대기에서 엉덩이로 이름 쓰깈ㅋㅋㅋ
-실패하면 눈티아랑 바로 맞짱 가즈아!
[‘나니니시마스카’ 님 7,700코인 후원!]
[탑에서 번지 점프 해서 그랜절!]
어이가 없는 요구 사항이 늘어나고 있었다.
드레젠은 피식 웃고는 약간의 작업을 했다.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였다.
“이건 제가 잠입할 때 많이 쓰던 방법인데…….”
마나를 일부러 폭주시켜 엉망으로 보이게 하는 눈속임.
생각보다 쓸 만한 기술이었다.
드레젠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 아는 사람도 없었다.
파직-.
순간 속이 울렁이며 마나의 흐름이 불안정해졌다.
안색이 창백해졌고, 다크서클이 길게 자라기 시작했다.
-아닠ㅋㅋㅋㅋ
-진짜 연기력 갑이누
-드레젠특) 뭐든지 다 함
-못하는 게 뭐옄ㅋㅋㅋ
-이 정도는 해야 베타 테스터구나;;
-비터라니까?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자, 시청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아니, 게임을 하라고 했더니 연기를 하고 있다니.
드레젠은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연기를 이어 갔다.
“자, 그럼 개봉 박두 하겠습니다.”
그는 마나의 막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오베론을 비롯, 선배들이 와 있었다.
“잘 다녀왔다고 들었다. 첫 임무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속이 좀 안 좋아서 이야기는 짧게 못 할 것 같군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오베론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드레젠은 하하 웃으며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 눈은 빠르게 뒤쪽에 있는 선배들을 훑었다.
‘역시.’
그들은 안도하고 있었다.
왜?
축하하고 걱정해 주지 못할망정 안도라니?
“좀 어려운 임무였습니다. 속이 좀 안 좋았는데 술까지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달달한데 좀 세네요.”
“음? 그게…….”
“그건 그렇지. 어쨌든 고생했네. 오베론, 방해하지 말고 가지.”
오베론이 이상함을 느낀 듯, 되물으려 했지만 선배들이 그를 끌고 가 버렸다.
드레젠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아니야’ 님 50,000코인 후원!]
[미션은 언제쯤 실패할 것인가;;]
[‘나니니시마스카’ 님 10,000코인 후원!]
[이길 수 없는 드선생님;;]
-ㅋㅋㅋㅋㅋ아직도 미션 거는 흑우가 있다?
-뿌슝빠슝 ㅋㅋ뤀ㅋㅋㅋㅋ
-그것은 거멓고 말랑말랑한 카우였다;;
-킹정 자산 따위는 없습니다. 예?
드레젠은 피식 웃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도청할 차례였으니까.
#4
“어때 보였나?”
“……위험합니다.”
눈티아, 그리고 레오닐.
둘은 눈티아의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레오닐은 남몰래 복귀하자마자 단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본 것을 그대로 말했다.
“……하이브를 그냥 찢어 버렸단 말이지. 우리 기술을 쓰지도 않으면서?”
“그렇습니다. 완벽한 전사의 모습이었습니다.”
“확실히 카이렌이나 할레단 후작을 이긴 것이 요행은 아니었어.”
리오넬은 마지막 장면 역시 빠짐없이 보고했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마나를 내뿜는 드레젠의 모습은 솔직히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티아는 결정을 해야 했다.
당장 죽일 것인지, 아니면 진짜 우리 편으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그에게, 리오넬이 말했다.
“제가 힘을 빼놓겠습니다. 그러니 마무리를 해 주십쇼.”
“……그 정도라고?”
“장담합니다. 놈은 위험합니다.”
“내 약을 타 두었는데 위험하다고?”
레오닐은 정확하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한 의사 표현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이 되고 나서, 이렇게 큰 공포와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다.
리오넬은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주장했다.
“반드시 오늘 처리해야 합니다. 그자가 위협이 된다면 반드시!”
“……그러지.”
그래.
싹은 미리 잘라 버리는 것이 낫다.
조커 중의 조커, 와일드카드로 써먹으려 했지만 수제자가 말하는 드레젠은 폭탄이었다.
그렇다면 얼른 제거하는 수밖에.
“천천히 약부터 살포해야겠구나. 허허.”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말거라. 아직 나도 현역이니.”
게다가 도움을 줄 자들도 있고.
눈티아의 입매가 매끄럽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