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화
130화 – 함선 떨어뜨리기
#1
하이브는 일종의 함선이었다.
구릉지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든 하이브는 철저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존재였다.
하이브가 나타나면 영지 전부가 나서야 했다.
아니면 마스터가 나타나든가.
그만큼 위험한 존재였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베타 테스터 때 얼마나 많이 잡아 보셨으면ㅋㅋㅋ
-아련한 표정 무얔ㅋㅋㅋ
-군대 전역한 사람이 짓는 표정이넼ㅋㅋ
콰직-!
횡으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의 목이 허공을 갈랐다.
깔끔하고 정확한 솜씨.
유려한 선이 병사들의 목을 하나씩 줄였지만, 숫자는 아직도 빽빽했다.
“기계들을 상대할 땐, 병사들 상대로 힘 빼시면 안 됩니다. 광역기 함부로 날리고 그러면 안 돼요.”
처음에 그들을 상대할 때는 정말 애를 먹었다.
그가 익힌 검술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아찔한 경험이었다.
옛날, 알파고와 이세돌 씨가 그러했듯, 기계는 철저한 계산으로 행동하는 유기체였다.
공략의 핵심은 변칙적인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기계들은 예상을 벗어날 때, 데이터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이브를 상대할 때는 항상 3할의 힘을 남겨 두어야만 했다.
적들의 방심을 유도해서 계산할 틈도 없이 쓰러뜨리는 방법이 유행이었다.
하이브는 정말 똑똑하지만, 그만큼 단순했다.
“처음엔 새로운 스타일을 연습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퍼억! 퍼억!
기계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빠르고 절제된 몸놀림이 일품이었다.
그런 움직임을 훑는 하이브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투 방식 : 근접]
[속도를 적용한다.]
[대응 프로세스를 배포하겠다.]
하이브가 빠르게 연산을 마쳤다.
근접해서 전투하는 상대의 대처법을 즉시 다운로드한 병사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저 돌격하고 견제하던 녀석들이 갑자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몇몇은 착실하게 붙어서 견제까지 했다.
“이게 녀석들의 특징입니다. 패턴에 바로 대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거든요.”
피피핑-! 하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붉은색 레이저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탄막 게임에서 흩뿌려지는 모습을 실제로 겪으면 어떤 느낌일까?
게임에서도 ‘어버버-’ 하면서 당황하는데, 현실이라면 그대로 벌집이 되어 버리겠지.
“이런 건 간단하게 튕겨 내 주고-.”
티티티팅!
라이트 세이버가 적들의 탄환을 튕겨 낼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저가 반사되어 그대로 기계들에게 적중했다.
요상한 소리를 내며 허물어지는 기계들 사이로 돌진한 드레젠.
환상적인 검무와 함께 병사들의 수를 차근차근 줄여 갔다.
[……새로운 패턴 발견.]
[도탄 방어 시스템 필요.]
[대응 프로세스를 배포하겠다.]
기계들의 눈이 다시 붉어졌고, 패턴이 다시 변했다.
튕겨 낸 탄을 방어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 것.
다채롭게 변하는 패턴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변하는 패턴이라 굉장히 까다로웠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마족들은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와 저걸 어떻게 깨;;
-콘텐츠 대박 어렵넼ㅋㅋ
-와…… 골렘은 있어야 깨는 거 아닌가?
-함선을 어떻게 막아 진짴ㅋㅋㅋ
중세 시대에 함선이라니.
아마 보통 사람들이라면 막막함과 좌절감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스터의 경지인 드레젠은 달랐다.
그가 떨어뜨린 하이브만 수백 대.
필승의 전략이 반드시 존재했다.
“마나 적응력 50 이상, 오러 블레이드를 습득하신 분이라면 해볼 만합니다.”
-??
-거의 앤드 콘텐츠인뎈ㅋㅋㅋ
-진짴ㅋㅋㅋㅋ 너무 허들이 높다~ 이 마리야ㅜㅜ
-우리는 대리 만족 하겠습니닼ㅋㅋㅋ
아직 멀고 험한 길이었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도달하겠지.
이 세상이 마스터로 넘쳐 나는 세계가 되길 빌었다.
앞으로 들끓게 되는 마족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동네마다 마스터 한 명쯤은 있어야 했다.
드레젠은 그런 세계 속에서, 편하게 놀고먹을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
솔선수범을 보이면 후발 주자들은 더욱 발전해 가며 그를 따라오겠지.
그가 방송을 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었으니까.
전투.
숨이 턱턱 막히고 새로운 감각의 영역을 들어가는 순간이 짜릿했다.
‘이쯤에서 기사를 죽여야겠군.’
다음은 기사를 죽이는 일.
하이브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기사는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박력 넘치는 상대.
빠르게 처치하기 위해 절기를 쏟아 낸다면 하이브는 곧장 그것을 분석하고 대응한다.
“기사는 적당한 힘으로 상대해 주세요. 패턴을 바꾸지 말고, 조금씩 변수를 만들어 내는 전투 방법이 필요합니다.”
기사라고 해 봤자 검술이 뛰어나다거나, 특별한 기술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광역으로 터지는 마나 포를 쏘는 것이 다인 녀석.
병사들과 다른 점이라면 무식하게 단단한 외골격뿐이었다.
“제가 오러 블레이드를 먼저 익히라고 했죠?”
그의 검에서 쭈욱 뻗어 나온 오러 블레이드.
표면이 원자 단위인 이 오러 블레이드는, 세상에 자르지 못할 것이 없는 최강의 무기였다.
하이브가 분석해도 소용없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하이브가 유일하게 분석해도 대응하지 못하는 무기입니다. 이것 때문에 전쟁에서는 마스터의 존재가 정말 소중했죠.”
전쟁의 주축이 되어 하이브를 썰어 버릴 수 있는 전쟁 병기들.
거기에 이졸데가 만든 엄청난 숫자의 골렘들까지.
인류의 동아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얼른 마스터까지 오르시기 바랍니다.”
-일단 목표는 마스터다
-만렙부터 시작인 게임ㅋㅋㅋ
-언제 마스터까지 ㅜㅜ
-갈 길이 멀다;;
콰드드드득-!
오러 블레이드에 휘감긴 검은 무엇이든 파괴했다.
그것이 설령 기사의 단단한 장갑일지라도.
콰가가각, 하는 소리와 마나의 불똥이 튀었다.
[치명적…… 손상!]
“기사는 오러 블레이드로 난도질해 주면 됩니다.”
콰각! 콰가각!
오러 블레이드가 회전하며 기사의 사지를 절단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단면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결국 허무하게 쓰러져 버린 기사.
[……연산 오류]
[대응 프로토콜, 없음.]
[차선책으로 물량을 투입해야 함.]
게이트가 다시 열리고, 병사들이 쏟아졌다.
드레젠은 기사의 시체 위에서 자세를 고쳤다.
날카롭게 흐르던 마나가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날리고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새로운 패턴 감지.]
[분석을 시작한다.]
“녀석이 패턴을 분석해 대응하는 시간은 약 3분 정도입니다. 그 안에 치명상을 입혀야 합니다.”
드레젠의 공격 방식이 확 변했다.
검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마나들.
페베스 검법을 적극 활용한 광범위 공격이 주변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
퍼퍼퍼퍼펑!
화려하게 터지는 모습이 블록버스터 저리 가라였다.
-시원하누
-크으 오늘 사이다는 이거다!
-ㅋㅋ뤀ㅋㅋ 진심 속이 뻥ㅋㅋㅋ
-스릉해여 드레젠!
터지고 나뒹굴고 날아가는 적군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
드레젠은 마나의 잔상을 남기며 하이브로 진격해 들어갔다.
하이브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투투투투- 하는 소리와 함께 마나로 만들어진 포탄이 쏘아졌다.
‘마침 잘됐군.’
파직-.
그의 손에서 얼마 전에 얻은 힘이 뻗어 나왔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검은 뇌전의 꽃.
마법으로 따지자면 어떤 경지일까.
5서클? 6서클?
“베드모아젤 님이 왜 관문 군주가 되었는지 알겠군요.”
폭발하면 작은 집 한 채는 통째로 증발시킬 것 같은 포탄이 여러 개.
그것들이 드레젠에게 그대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검을 휘둘러 막아 내는 대신,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파지직!
검은 뇌전의 꽃이 활짝 피었다.
[치명적 오류]
[새로운 에너지 발견]
[대응 방법…… 검색 실패]
[본대에 업로드 중…….]
“하이브는 새로운 전력에 대한 분석을 본대에 의뢰합니다. 절대로 막아야 하는 일이죠.”
그래 봐야 성좌의 힘을 무슨 수로 분석하겠냐마는.
파지직-!
검은 뇌전에 닿은 포격이 모조리 흩어졌다.
연기처럼.
-지림;;
-성좌 클라스
-ㄹㅇ 쩔었닼ㅋㅋㅋ
-마! 이게 성좌의 힘이다!
마나로 이뤄진 공격은 대부분 통하지 않는 힘.
드레젠은 정말 막강한 능력을 얻었다.
네자렉의 목걸이, 메긴교르드가 빛나기 시작했다.
성좌의 힘과 압도적인 신체 능력 버프가 더해졌다.
‘사라미스식 검술의 비기.’
검술에서 제일 파괴력이 높은 기술이라고 하면 당연히 찌르는 것.
체중까지 실어 찌르는 기술이라면 두꺼운 갑옷 사이도 파고들었다.
하물며 마나를 극한까지 수련한 초인이 내지르는 찌르기는 어떨까.
“코어를 노려서-!”
드레젠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났다.
땅을 박차고 마나를 등 뒤에서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히고 소닉 붐이 기계들을 찢어발겼다.
[트란스픽시오 : Transfíxĭo]
모든 것을 꿰뚫는 일격이 하이브의 코어를 향해 쏘아졌다.
하이브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즉각 업로드를 중단하고 거대한 눈에서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레이저가 쏘아졌다.
붉은색의 열 덩어리가 드레젠을 집어삼켰다.
-오매;;
-하이브 진짜 무섭네
-드레젠 죽는다!
-죽나?!
-설마??
파지직-.
드레젠은 찰나의 순간, 검끝에 검은 뇌전을 활성화했다.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명장면처럼, 그는 레이저 광선을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투콰앙!
회색 빛줄기가 하이브를 관통했다.
[……치명적 ……류]
[기…… 불능…….]
[업로드…… 실……패.]
“확실하게 마무리해 줘야 합니다.”
드레젠의 마나가 간당간당했다.
하지만 마무리 일격은 충분히 날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페베스 검술의 찌르기, ‘퐁고’를 사용해서 확실하게 마무리했다.
“휴…… 얼추 끝났군요.”
콰아아아아앙-!
하이브가 성대하게 터졌다.
후폭풍까지 완벽하게 견디는 것이 사냥의 끝이었다.
광풍에 휘말려 저 멀리 착지한 드레젠.
꽤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멀쩡한 갑옷을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와 지렸닼ㅋㅋㅋ
-하루만 드레젠이 되고 싶다ㅜㅜ
-선생님 팬티 좀 보여 주십쇼
-진지하게 개소리하넼ㅋㅋㅋㅋ
-오늘도 영상 각이 날카롭다!
아마 바로 편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엘리스의 영상 편집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후끈하게 타오르는 기계의 잔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알림이 떴다.
[축하합니다! 99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레벨이 오르지 않습니다. 일정 경험치에 도달할 때마다 숙련 포인트를 얻습니다.]
[숙련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숙련 포인트는 마나, 혹은 체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숙련 포인트 1 = H.P/M.P 10]
“드디어 만렙 달성이군요.”
마족들이 주는 경험치는 어마어마했다.
흔히 RPG에서 쓰이는 문구가 있었다.
만렙부터 시작이라고.
세이브 더 브락시아는 그야말로 만렙부터 시작인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