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화
128화 – 조촐한 훈수
#1
다음 날.
드레젠에게 임무가 내려왔다.
파트너는 없었고, 내용은 사라미스 지대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지령을 받은 드레젠은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요즘 사라미스 구릉에서 상단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간단한 일이니 조사를 해 보도록.”
“다녀오죠.”
정말 간단한 임무였다.
사라미스 구릉은 먼 곳도 아니었다.
오아시스 근처라, 쉼터로 자주 애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워낙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는 사라미스 사막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조금 특이했다.
“사라미스의 마스터 중 하나도 그곳에서 실종됐더군. 그래서 우리가 나서는 것이네.”
“흠…… 네임드가 나타난 걸 수도 있겠군요.”
“위험하면 바로 돌아와. 그림자는 암흑 속에 있어야 하는 법이지. 허허.”
눈티아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순간적으로 드레젠의 눈망울이 흐려졌다.
“……그러죠.”
드레젠은 기계적으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벗어났다.
눈티아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슬슬 약발이 듣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낱 인간일 뿐이지. 허허.”
미끼는 던졌다.
그곳에서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사라미스 구릉지.
그곳부터 강림이 시작되겠지.
드레젠은 첫 제물로 딱 알맞았다.
#2
“어휴, 연기하느라 힘들었네요.”
-ㅋㅋㅋㅋ명연기
-이걸 또 속네
-연기 배우 하셔도 되겄어욬ㅋㅋㅋㅋ
-영감탱이 웃는 거 봤음? 어우 소름ㅋㅋㅋㅋ
드레젠은 피식 웃었다.
그림자 기사단에 관한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을 그들과 함께했다.
오베론을 비롯해 선배, 동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
눈티아가 직접 얘기해 준 것도 있었고.
-자네는 용사라는 신분 때문에 그냥 넘어갔겠지만, 사실 그림자 기사단에 세뇌된 자들은 많네.-
-세상의 균형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건, 선도 악도 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들은 모두 눈티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균형의 수호자라는 슬로건을 내밀었지만, 글쎄.
기계가 아닌 이상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반드시 미끼가 있을 겁니다. 혹시 마족이 나타난다면, 꽤 재밌겠네요.”
눈티아는 드레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기껏해야 그림자 기사단의 자격을 얻은 정도라고 생각하겠지.
그림자 기사단 선배들 역시 시련을 통과했으니까.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미행도 붙겠군요. 적당히 연기를 해야 합니다.”
-나름 철저하네
-눈티아인지 눈탱이인지 너무 음흉해 보임
-조심해야겠누
고전하는 모습 정도야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었다.
와이렉스도 돌려보냈으니, 지금은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아공간 주머니까지 받았으니 물자는 넉넉했다.
천천히 수다나 떨면서 이동할 생각이었다.
“캠프나 즐기면서 편안하게 힐링하는 방송으로 갑시다.”
-그렇다
-이거 원래 힐링 방송이었음ㅋㅋㅋ
-엌ㅋㅋㅋ맞네
-힐링 : 사이다여서 그렇짘ㅋㅋ
그래, 본래 드레젠의 방송은 힐링을 추구하는 방송이었다.
하다 보니 시원시원한 사이다로 힐링을 주게 되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조용한 분위기에서의 힐링을 하고 싶었다.
도보로 이동한다면 구릉지까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이동해야 했다.
“자, 그럼 적당한 장소를 찾아볼게요. 생존 팁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라미스 지대는 사막과 광야를 합쳐 놓은 느낌이었다.
다행인 것은 모래만 있는 사막은 아니라는 것.
이런 경우는 생존력이 대폭 올라갔다.
쉴 수 있는 곳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대충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지형이면 됩니다. 나머진 마나가 해결해 줄 테니까요.”
-마나 만능설
-엌ㅋㅋ마나 체고
-지금 마나 연구가 한창이라는데
-논문으로도 나오겄음ㅋㅋㅋ
“이곳이 좋겠네요.”
혹시 모를 폭우도 대비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은 바위 아래 자리를 잡았다.
‘ㄱ’ 자 모양으로 꺾여 있어, 적당히 바람도 막아 주겠거니 싶었다.
드레젠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작 없이도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를 꺼냈다.
찰칵- 하는 소리가 정겹게 울렸다.
“자~ 불멍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하늘을 바라보니 새하얀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언젠가.
담뱃불만 보이던 한밤중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별이었다.
싸늘한 바람을 등지며 드레젠은 마나를 키트에 주입했다.
화륵-.
불이 붙고 주변이 조금이나마 따스해졌다.
“마나를 얼마나 주입하느냐에 따라 화력과 시간이 결정됩니다. 꽤 많은 마나를 주입했으니, 밤새 꺼질 일은 없겠네요.”
-분위기 끝장나누
-ㅋㅋ엌ㅋㅋ 실제로 여행만 다니는 스트리머도 있음ㅋㅋㅋ
-ㄹㅇ 힐링 방송이지
-마! 여기도 힐링임!
-엌ㅋㅋ나도 모르게 불멍 때리게 되누
장작이 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길을 스치며 나는 소리가 아늑하게 느껴졌다.
드레젠은 밤을 보내며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다.
보통 이럴 땐 썰을 풀거나 공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
“여러분은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시나요?”
-33
-25
-28!
-저는 아직 30ㅋㅋㅋ
다양한 레벨군이 있었다.
게임에 투자하지 못한 사람들은 2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
드레젠과 같이 달렸던 사람들은 보통 30대에서 40 사이.
크게 달라진 구석은 없었다.
드레젠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봤다.
“전이랑 별로 차이가 없네요?”
-ㅋㅋㅋㅋ엌ㅋㅋㅋ
-그건 이제 슬슬 스킬 노가다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ㅠㅠ 우리도 드레젠 같았으면 ㅜㅜ
-진짜 천재들은 게임하고 있겠지 열심히ㅎㅎ
간혹 50이 넘어가는 이들이 보였다.
보통 게이머를 지망하는 이들이거나, 진짜 재능이 있는 이들, 혹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했던 이들이었다.
일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25~35 구간에서 완전히 막혀 버렸다.
-진짜 딱 오크까지만 잡을 수 있음 ㅜㅜ
-ㄹㅇ
-그것은 성지였다~ 이 마리야
-ㅋㅋㅋㅋ저는 파티로 사냥하는데도 힘들어 죽겠음 ㅜㅜ
드레젠은 슬슬 다른 스트리머들의 동향도 궁금해졌다.
잠깐 자동 진행을 켜 둬도 될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재미있는 계획이 떠올랐다.
“그럼 막간을 이용해서 제가 탐방을 좀 다닐까요?”
-훈수 ON!
-드가 하는 훈수면 킹정이다
-저도 훈수 좀 제발 ㅜㅜ
-가즈아! 재밌겠다!
“그럼 잠시 조정 좀 하고 오겠습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제일 먼저 방문할 이는 이전에도 인연이 있었던 다영이었다.
#3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다영은 한창 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있었다.
콘텐츠는 ‘드레젠 리액션’.
요즘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콘텐츠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의 시청자 수가 몇 배나 증가했는데, 그녀는 남몰래 돈을 조금씩 모으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라, 지금 드레젠이 자신의 방송에 온다는 사실이었다.
-빨리 게임 켜ㅓㅓㅓㅓ!
-얼른 켜라! 게임 켜!
-검사받아야짘ㅋㅋㅋ
“으어어 알겠어요! 바로 접속합니다!”
마치 사감 선생님이 감독하러 오시는 것 같은 느낌.
다영은 후다닥 게임을 실행했다.
VR 모드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
“어…… 어디까지 했더라?”
-다영 님은 주 콘텐츠가 수련이라;;
-ㅋㅋㅋㅋ맞음 아직도 렙 10 언저리 아님?
-그런데 웬만한 사람들보다 싸움 잘함ㅋㅋㅋ
그녀는 아주 혹독한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드레젠이 만들어 준 판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다영 님! 이곳입니다!”
“가요~.”
오늘은 대련을 하는 날.
요새의 훈련장에 도착한 그녀가 버클러와 한 손 검을 들었다.
처음에는 꽤 무서웠으나 지금은 능숙하게 대련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현실에서도 보는 눈이 달라졌을 정도였으니.
‘드레젠 님이 보고 있다, 드레젠 님이…….’
그녀는 속으로 몇 번이나 뇌까리며 검을 잡았다.
그때, 후원 하나가 도착했다.
[‘드레젠’ 님 100,000코인 후원!]
[힘 빼고 하세요]
“넵!”
그녀는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이어진 대련에서, 그녀는 제법 준수한 실력을 뽐냈다.
검술 스킬이 벌써 14.
스텝과 다양한 스킬 역시 10레벨이 넘어갔다.
레베린 요새에서, 그녀는 이미 명물이 되었다.
“흐압!”
“역시 저 눈은 진짜 타고났네요.”
나중엔 마나를 이용해 공수를 주고받지만, 그 발단이 되는 지점이 바로 눈이었다.
다영은 그 눈이 정말 특출 나게 좋았다.
쉴 새 없이 깜빡이면서도 모든 동작을 따라가는 동체 시력.
드레젠은 캡슐에서 가만히 그녀의 전투를 지켜봤다.
“빈틈!”
수비 용도로만 쓰였던 버클러가 매섭게 빈틈을 찔렀다.
콰앙-!
마나 역시 제법 실려 있었는지, 검과 충돌해서 굉음을 쏟아 냈다.
그녀가 익혔던 프링키 검술은 레벨이 어느덧 15까지 치솟아 있었다.
“잘하고 있으니 더 볼 건 없겠네요. 하체 운동만 좀 더 하시면 되겠어요.”
-칭찬!
-드좌가 칭찬했다!
-이것도 클립 각이짘ㅋㅋ
-하체 운동이라니…… 게임에서도 운동이라니!
“오늘따라 더 매섭습니다?”
“하하! 칭찬 좀 받았거든요!”
다영은 대련 상대를 연신 몰아붙였다.
요즘 들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미리 보이기도 했다.
드레젠에게 말했다면, 그것이 어느 영역이라고 답해 줬겠지만, 지금은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자, 다음은 제 방송에서 가끔 언급되었던 ‘강아지’ 님에게 가 보죠.”
-엌ㅋㅋㅋㅋ
-조으다!
-스포하고싶다.스포하고싶다.스포하고싶다!
-얼른 가서 봐요!
그 시각, 강아지는 열심히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드레젠의 방송 시간과 최대한 겹치지 않게 했지만, 오늘은 합방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을 미리 켰다.
“오늘은~ 드디어 구덩이에 갈 겁니다!”
“와…… 이거 우리가 깰 수 있을까?”
강아지는 거대 MCM에 소속되어 있었다.
크리에이터를 전문적으로 육성, 케어하는 회사 소속이라는 것.
그녀는 따로 팀을 꾸려서 활동하긴 했지만, MCM 소속 사람들도 합방을 자주 했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얘기가 나왔던 서리의 구덩이 공략!
무려 열두 명의 인원이 모여 파티를 꾸렸다.
“후우…… 진짜 떨린다.”
“그러게. 야 야, 잘할 수 있지?”
“몰라……. 그런데 해야 해.”
그들은 선생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시시덕거리는 중이었다.
모든 스트리머들을 합치면 드레젠의 반 정도 되는 시청자들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커다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드레젠 역시 나름 엄청난 프로젝트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거, 재밌겠네요.”
구경하는 맛이 있는 콘텐츠였다.
커다란 전투를 앞두고 긴장을 풀기엔 딱이지 않은가.
아주 잠깐만 구경하겠지만, 충분히 흥미를 돋우는 중이었다.
-선생님 지켜보신다!
-흐흐, 재밌겠누
-과연 일반인들의 구덩이는?
-이런 것도 꽤 재밌다구
-가즈아아아아아!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구덩이를 향한 어린 학생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열두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조심스럽게 발을 떼었다.